'사랑의 정치'를 보며 민주노동당 정치를 고민하다
박지아 (민주노동당 영등포구위원회 여성위원장)
지난 6월 20일부터 21일까지 우리나라 정당 역사상 처음으로 개최된다는 민주노동당의 정책당대회가 진행되었습니다. 사실, 수많은 일정과 일상과 얇은 지갑의 무게를 느끼며 부산으로 향하는 마음이 가볍지는 않았습니다.
정당은 ‘우리사회의 문제는 무엇이며 어떻게 해결하겠다는 정책’으로 국민들에게 지지를 얻어서 정치를 해는 한다는 명제가 학교 때 배운 정치경제 과목의 정답일 뿐인 우리사회에서, 민주노동당은 처음부터 ‘정책정당’을 표방해왔습니다. 그렇기에 당원들과 당의 정책을 함께 토론하고 만들어가는 정책당대회는 말 그대로 역사에 남을 일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의미를 살리기에는 준비나 사전소통이 많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저를 짓눌렀나 봅니다. 그렇게 도착한 정책당대회 중 성소수자위원회의 ‘사랑의 정치’ 상영회는 저에게 가장 기억이 남는 행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이유가 영화 내용이 너무나 좋았기 때문은 아닙니다.
당연한 권리를 당연하다고 말하는 것...
정책당대회 '사랑의 정치' 상영 후 간담회 장면
물론, 영화도 좋았습니다.
영화 ‘사랑의 정치’는 캐나다 퀘벡지역의 동성애 커플들이 ‘결혼의 합법과 양육의 합법’을 쟁취해나가는 과정을 그린 영화입니다.
캐나다의 퀘벡 지역은 전 세계에서 가장 먼저 성차별 금지를 법으로 명시한 곳입니다. 캐나다 정부는 그 사실을 자랑스럽게 홍보했지만, 실제로는 많은 차별이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동성애 부부의 결혼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벌어지는 법적, 정책적 불평등입니다. 법이 그들을 법적으로 부부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이성애 부부는 당연하게 누리는 각종의 사회복지 혜택을 누릴 수 없으며, 아이를 입양하는 것 역시 많은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 영화는 이에 맞서 동성애 커플들이 합법적인 결혼의 권리를 쟁취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습니다.
이 글을 쓰기위해 이리저리 영화평을 찾다보니 어떤 분은 “동성애자들의 결혼에 찬성해온 나 또한 이 영화를 보기 전까지는 동성애자들의 양육권에 대해서는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고 하시더군요. 결혼과 양육이 자연스레 연결되는 이성애 커플과 달리 동성애 부부들에게는 이 과정 역시 사회의 곱지 않은 시선과 편견을 넘어서 법과 제도와의 투쟁을 통해서야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영화는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저의 경우는 영화를 보며 머리로는 당연하다고 생각해 오던 것이 실제 사건과 영상을 만나며 더욱 선명해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평소에 ‘동성애 결혼과 양육’에 대해 당연한 권리라고 생각하지는 했지만, 그것이 당연한 권리이게 만드는 투쟁을 함께 해야 된다는 생각은 별로 해 본적이 없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지금 이 순간에도 사회의 편견에 고통 받는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을 진짜 내가 피부로 나의 아픔으로 느끼고 있는가 하는 고민이 들기도 했습니다.
이런 면에서 영화를 상영한 성소수자위원회의 결정은 탁월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당에서 성평등 강사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여러 지역으로 강의를 다니는 과정에서 당원들의 성소수자 문제에 대한 인식이 ‘아직 갈 길이 많이 남아있다’는 생각이 들곤 했습니다. 그렇기에 성소수자에 대한 당원들의 인식을 드러내고 구체적인 문제와 만나는 시간이 필요하며 그를 위해서는 영화상영이 참 좋은 방식이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실제 영화상영이 끝나고 이어진 질의응답 시간에 많은 질문이 이어졌습니다. 어디서도 물어보기 어려운 의문들을 풀어내는 시간이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진보정당의 당원으로서 찬성하는 입장을 가져야 한다는 당위(정답)는 있지만, 아직 남아있는 어려움 혹은 거부감을 드러내는 것이 진짜 우리의 입장을 만드는 시작일테니까요. 여성위원회의 활동과 성평등 정신 역시 당내에서 그런 과정을 밟아왔고 아직도 나아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뭐가 당연한 거지?
그러나 영화를 보면서 많은 고민이 다시 시작되기도 했습니다.
영화에서는 동성애 커플이 부부가 되는 것을 당연한 목표로 상정하고 이를 위해 투쟁하는 과정만이 나와 있습니다. 이성애자가 당연히 누리는 권리를 성정체성 때문에 못 누리는 것이 부당하다는 생각에는 동의합니다. 그러나 정말 동성애 커플이 가야할 길이 가족제도로의 편입일까요?
여성주의에서는 오랫동안 가족주의를 문제삼아왔습니다. 세상의 제도 중에서 유일하게 변할 수 없는 자연스러우며, 기능적이라고 여겨지는 가족은 실제 많은 문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성애의 부부와 자녀로 이루어진 가족만이 정상이라는 ‘정상가족 이데올로기’가 대표적인 문제로 여겨지고 그에 따라 배제된 동성애 가족구성권을 지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가족주의의 문제는 이것만이 아닙니다.
생산과 분리된 재생산이 존재한다고 상정하고 그 모든 기능을 가족에게 맡김으로서 수많은 국가의 책임을 개별 가정에 짐 지우고 있는 모습, 그리고 가족 안에서도 여성에게 그 역할을 맡김으로서 발생하는 노동의 소외와 여성의 경제적 지위 하락, 가족 같다는 말 속에 숨겨진 폭력성(사장님이 직원을 가족 같다고 말할 때는 주로 월급을 안주실 때 희생을 요구할 때더군요), 가족이 되기 위해 꼭 거쳐야하는 순서매기기(위계화) 등등.
우리는 보통 배제된 권리를 주장할 때 기존의 권리를 당연하게 여기고 이를 확장하려고 노력합니다. 여성의 인권을 주장할 때 ‘인권은 당연하고 여성도 인간이니까 같은 권리를 가진다’는 논리를 사용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이런 논리는 한편으로는 ‘남편이 가족 내에서 폭력을 행사하는 것이 당연하니 여성도 동등해지기 위해 폭력을 사용하겠다’ 내지는 ‘남편이 폭력을 행사하는 가족 내에서 엄마가 아이를 때리는 것은 별로 큰 문제가 아니다’는 주장처럼 이상한 방향으로 가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무엇을 당연하게 여기는가는 ‘우리가 무엇을 지키려고 하는가’에 대한 깊은 고민을 하게 만들며, 이 과정이야말로 우리가 만드는 ‘진보’의 진정한 모습일 것입니다.
여기까지 생각이 다다르니 진짜 심각한 고민이 나타났습니다. 과연 민주노동당에서 성소수자의 인권과 성평등은 진짜 당연한 목표일까 하는 생각이 든 것입니다. 성평등 강의를 할 때 ‘당강령에 있다’는 근거를 대기도 하지만, 진짜로 그것이 근거가 될 수 있으며, 되고 있으며, 당의 활동은 이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가하는 오래된 고민이 다시 고개를 든 것입니다.
토큰이 토큰에게
2009 퀴어퍼레이드에 걸린 민주노동당 현수막
토그니즘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구색 맞추기로 불리기도 하는데, 불평등한 사회에서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서 토큰의 가운데 구멍처럼 작은 신분상승의 기회를 주는 것입니다. 조직에서 여성 관리인을 한 명 정도 임명함으로써 성차별하지 않는다는 명목으로 상징성을 띄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런 토크니즘이 주는 영향은 불평등의 문제를 사회구조가 아니라 개인적인 문제로 여기게 만들고(저 성공한 여성을 봐! 너도 노력하면 될 수 있어!), 작은 자리를 놓고 다투게 만들어 오히려 불평등한 사회제도에 목매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민주노동당에서 여성위원회 활동을 하면서, 여성주의 운동을 하면서, 우리의 여성운동이 토큰은 아닐까 고민을 하는 순간들이 있습니다.
가장 많은 여성후보를 냈다는 자랑스러운 논평을 내는 민주노동당에서, 때마다 고개를 드는 여성할당 논쟁, 년1회 실시하는 성평등교육 기간에 대한 논쟁을 보며, 그런 논쟁의 바탕에 (단순히 형식의 논의가 아니라) 근본적인 배제가 자리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겁이 날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장애운동이, 성소수자 운동이 우리에게 그리고 나에게 토큰은 아닐까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선거 때마다 장애운동 진영, 성소수자 진영의 민주노동당에 대한 지지는 자랑스러워하면서, 각계각층의 지지를 자랑하면서도, 그것을 진정으로 진보라는 개념으로 받아들이고 있는가, 그 기준으로 변하려고 노력하는가 하는 고민이 생겨왔기 때문입니다.
장애인의 접근권이 보장되지 않는 사무실에 앉아, 아직도 ‘남자친구 있어? 여자친구 있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서야 반성하는 나를 보며, 이 고민은 이제 시작이고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생각을 새삼 해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토큰이던 아니던 그 운동의 당사자들이 피해자만이 아니라, 토큰을 찢어낼 주체라고 믿기에 다시 힘을 내봅니다.
‘착한 지배가 아니라 지배가 없는 세상을 꿈꾸기 때문에 노무현을 인정할 수 없었다’는 김진숙 지도위원의 말이 더욱 가슴에 다가오는 오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