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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과 살이 마주치는 감각의 제국, 혹은 열정의 시대

2010.10.18 15:04 | Posted by 민주노동당 성소수자위원회 성소수자위원회

-  자전소설『테이킹 우드스탁』과
   영화 <테이킹 우드스탁>가 욕망하는 것


“사랑받을 가망이 없다고 느끼게 되면 섹스는 순전히 육체적 경험으로만 남는다. 그로부터 얻는 쾌감, 그 육체적 감정적 황홀경, 그 순수한 에너지의 분출은 외로움과 이성애자 세상으로부터의 전면 거부라는 감옥으로부터 탈출할 구멍을 제공한다. 오직 성적일지언정 누군가 나를 열렬히 원한다는 그 순수하고 강렬한 체험은 인생에 정당성을 부여한다. 나를 원하는 누군가 있다는 것은 기꺼이 살아갈 이유가 되어준다. 성적인 접촉, 어떻게 정의되든 그 접촉은 많은 게이들의 피와 뼛속 깊이 녹아 있는 존재론적 고독에 대한 해독제가 되었다. 우리의 성적 취향이 마음에 안 든다는 이유로 사회가 우리를 억압할 경우, 섹스는 혁명적인 행위가 되고, 많은 이들에게는 분노를 표출하는 행위가 된다. 그것은 세상을 향해 치켜올리는 가운데 손가락이자, 우리를 경멸하는 이들에게는 골칫거리였다. 그것은 우리가 얼마나 다른지를 확인시켜준다. 그것은 우리도 살아갈 권리가 있음을 주장한다.”

- 엘리엇 타이버, 『테이킹 우드스탁』중에서 



긴 인용으로 이 글의 서두를 연다. 전설의 록 페스티발인 ‘우드스탁 페스티발’의 창시자이자 화가 및 극작가로 다재다능한 활동을 해온 엘리엇 타이버는 자전 소설『테이킹 우드스탁』을 통해 60년대를 회고한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소설은 엘리엇 타이버가 우여곡절 끝에 ‘우드스탁 페스티발’을 성공적으로 개최하며 역사의 한 획을 긋는 과정을 생생하게 묘사한다. 그런데 사실 그가 더욱 천착하고 있는 지점은 게이라는 자신의 성 정체성을 둘러싼 다양한 욕망과 경험들이다. 거기에는 유명한 사진작가 로버트 메이플소프, 극작가 테네시 윌리엄스, 배우 록 허드슨 등과의 내밀한 성적 체험에서부터 스톤월 항쟁에 이르는 공식적 역사까지 세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성 소수자들이 꿈꾸는 혁명은 금지된 육체적 욕망에서 비롯된다. 내가 욕망하는 몸과 나를 욕망하는 몸을 자유롭게 향유하는 것. 혁명은 몸에 대한 억압의 사슬을 끊어버리는 데서 출발한다. 그들에게 있어 섹스란 억압의 원인이자 또한 그 억압에 저항하기 위한 최선의 도구이다. 엘리엇 타이버가 과거에 유명 인사들과 벌였던 성적 경험들을 술회하는 것은 단순한 스캔들이나 가십거리로 독자들의 호기심을 충족시켜주기 위해서가 아니다. 자신의 섹스 라이프를 밝히며 공공연하게 가시화하는 것은 그자체로 성 소수자 저항 운동의 기저를 이루는 실천이다. 나아가 그것은 오늘날 주류 역사에 매몰된 퀴어 역사를 복원해내는 고유한 언어의 발명이자 서술 방식이다.


엘리엇 타이버에 따르면, 우드스탁 페스티발은 바로 이 퀴어들이 최전선에 서 있는 몸의 정치학에서 기인한다. 따라서 퀴어 주체인 그가 우드스탁 페스티발의 선구자가 된 것은 당연한 귀결일지 모른다. 이제 그곳에는 성 소수자들을 위시해 세상의 부조리한 핍박에 맞서려는 모든 소수자들의 열정이 결집한다. 미국 전지역에서 모여든 히피들은 저항의 음악에 몸을 맡기고서 마약에 취해 섹스를 하면서 몸의 감각 중추들을 자극하고 증식한다. 그것은 실패한 이성의 시대를 종식시키고자 육체적 접촉이 주는 쾌감에 기회를 제공한다. 이토록 서로의 몸을 갈망하고 서로의 체온을 원하는데, 존재의 이유에 무엇이 더 필요한가! 어떠한 정제된 율법도 살과 살 사이를 비집고 들어올 수는 없다.


이 자전 소설의 진솔한 언어들은 이안 감독의 섬세한 손길을 거쳐 영상으로 옮겨진다. 영화 <테이킹 우드스탁>은 이안 감독에게 있어 <결혼 피로연>, <브로크백 마운틴>과 더불어 퀴어 영화 3부작을 완결하는 영화이며, 제작자인 ‘포커스 픽처스’의 제임스 샤머스에게 있어서는 <브로크백 마운틴>과 구스 본 산트 감독의 <밀크>에 이은 퀴어 영화 3부작의 마지막 작품이기도 하다. 감독으로서, 또 제작자로서 자신의 영화 세계를 일단락하기 위해 선택한 작품은 전작들보다 한층 더 여유롭게 관객들을 감각의 제국으로 이끈다.


영화는 원작에서처럼 엘리엇 타이버가 동성애자로 겪어야만 했던 다양한 경험들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50만 명이 운집한 우드스탁 페스티발의 다채로운 볼거리들을 감각적으로 시각화하는 데 주안점을 둔다. 아마도 원작이 보여준 성적 경험들의 적나라한 묘사에 매혹되었던 관객들이라면 영화의 다소 밋밋하고 느슨한 플롯에 실망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이안 감독이 방점을 찍은 부분은 분명 우드스탁 페스티발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원작과 전혀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안 감독은 영화 매체가 가진 장점을 최대로 부각시키기 위한 취사선택을 했다. 한정된 러닝타임 속에서 시각화의 대상으로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했던 것은 바로 우드스탁 페스티발의 풍광이다. 우드스탁 페스티발의 완벽한 시각적 재현만으로도 엘리엇 타이버의 목소리가 농밀하게 감각적으로 기입될 수 있다. 영화는 서사 장르이기에 앞서 시각 예술임을 명심하자.


그가 제시하는 우드스탁 페스티발의 재현 전략은 크게 두 가지이다. 먼저 페스티발이 벌어지는 베델 평원으로 향하는 히피들의 긴 행렬을 공들여 재현하고 있는데, 그 모습을 긴 호흡으로 관조하듯 담아낸다. 엘리엇 타이버가 책을 통해 들려준 그 세계는 생생한 시각 이미지로 재탄생하여 마치 뉴스릴을 연상시키는 듯한 화면 속으로 관객들을 자연스럽게 초대한다. 그리고 화면을 여러 개로 분할하여 분주한 페스티발의 광경을 다양한 각도에서 보여준다. 그것은 동시 다발적으로 일어나는 행위들을 하나의 스크린에 담아내기 위한 노력이며, 곧 감각을 최대치로 끌어내고자 하는 노력이다.


그는 여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주인공 엘리엇의 시점에서 화면을 일그러트리며 감각을 극대화한다. 마약에 취한 엘리엇의 시선에 투영된 세상을 그대로 재현해내기 위해 화면의 왜곡도 불사한다. 알록달록한 천 조각 위의 문양들은 꿈틀대고 페스티발이 한창인 베델 평원은 파도치듯 울렁거리며 몽환적인 불빛을 뿜어댄다. 이러한 영상의 스펙터클을 통해 관객은 페스티발의 중심으로, 감각의 중심으로 한 발짝 더 들어간다.


히피들이 밀집한 채 나체로 자유롭게 어울리는 그곳은 영화 <브로크백 마운틴>의 원초적 공간인 ‘브로크백 마운틴’이 확장된 공간이다. 고리타분하고 편협한 세상에 반기를 드는 욕망의 몸짓이 꿈틀대는 공간, 혹은 그 욕망이 유일하게 허락되는 공간으로서 일맥상통한다. 또한 <테이킹 우드스탁>은 동시대 <브로크백 마운틴>의 실패한 동성애보다, 그리고 <결혼 피로연>의 게이 아들이 보여준 가부장과의 타협보다 멀리나간, 시대를 초월한 욕망을 전시한다. 적어도 그곳에서만은 엘리엇이 남자와 키스하는 순간, 주변의 환호성을 받는다.


이제 우리는 책을 통해서건, 영화를 통해서건 마음을 열고 느긋하게 감각의 제국, 열정의 시대에 몸을 맡기면 된다. 그러면 살과 살이 마주치며 감각하기 위해 존재하는 몸의 가치를 60년대의 그 치열했던 저항의 공간이 환기 시켜 준다. 우리는 그렇게 감각하는 몸을 소유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든지 살아갈 권리가 있다.



김경태 (동성애자인권연대)

Comment

  1. 캬.. 2010.10.23 08:22

    저도 이 구절 보면서 떨렸는데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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