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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수자가 꿈꾸는 무지개마을 만들기

2010.05.31 21:15 | Posted by 민주노동당 성소수자위원회 성소수자위원회




지역에 새바람이 일어날 2010년을 맞이하여 성소수자위원회의 회원들은 함께 모여 성소수자가 꿈꾸는 무지개마을을 구상해보았습니다. 성소수자가 꿈꾸는 지역의 모습은 어떤 것인지, 지금 우리가 살고있는 현재의 지역의 모습과는 어떤 차이가 있는지 보도록 할까요?





열심히 마을을 구성하고 있는 회원들. 자신이 원하는 것을 마을 곳곳에 채워넣고 있습니다. 무엇인가 다양한 모습들이 그려지고 있는 것 같죠?





먼저 마을의 중앙에는 모든 이들의 평등을 지향하는 평등광장이 자리잡았습니다. 이곳의 시민들은 모두가 평등하며, 차별하지 않고 타인의 인권을 침해하지 않는 마음이 내면화 되어 있습니다. 시민들이 자유롭게 소통할 수 있는 '광장'을 중심으로 마을이 사방으로 뻗어나가 있습니다. 광장의 한복판에는 성소수자들의 복지를 책임질 성소수자센터가 위치 해 있습니다. 그동안의 이성애중심적인 행정과 시스템을 넘어서 모든 성적지향과 성별정체성의 사람들이 편안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만들어 져 있습니다.

광장의 주변에는 사람들이 쉴 수 있는 공원과 시가지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 중 북서쪽에는 하비밀크와 같은 성소수자 정치인이 관련 정책을 펼 수 있는 의회가 있습니다. 의원 정수에 LGBT할당 30%의 꿈도 담아 보았습니다.

광장의 남쪽에는 넓직이 강을 가로질러서 성소수자의 자긍심을 표출할 수 있는 365일 퍼레이드 가능한 길이 있습니다. 무지개 빛으로 꾸며져 춤추고 행진하며 날마다 즐거운 마을이 될 것 같습니다.




마을의 식량은 퍼레이드 거리의 왼편에 한적한 논밭에서 얻어집니다. 친환경적 농법으로 생산되며 주민들이 함께 공동으로 생산하고 공동 분배하게 됩니다. 각각의 조그마한 땅이 있어 주말 등 틈틈히 농사를 짓게 됩니다. 마을을 감싸고 있는 강에서는 아이들이 물놀이 하고 사람들이 낚시를 즐길 수 있을만한 깨끗한 강줄기가 흐릅니다. 시멘트로 감싼 강과 선착장이 아니라 옛모습 그대로 작은배를 대어놓을 수 있는 나루터가 존재합니다.





이렇게 키워서 수확된 쌀과 농산물은 초중고등학생들의 친환경 무상급식의 원료가 됩니다. 아이때부터 고등학교를 졸업하기까지 무상보육, 무상교육, 무상급식이 지자체와 학교를 통해 이루어지게 됩니다. 일반 남녀 부부 뿐만 아니라, 성소수자들도 아이를 키울 수 있도록 입양센터를 설립하였습니다. 아이들과 학생들은 이러한 교육을 받으며 자라나, 경쟁 일편적이고 스펙쌓기 급급한 대학이 아니라 지성을 쌓고 공부할 수 있는 대학으로 진학할 수 있습니다.

주거지역과 가까운 곳에는 무지개병원이 있습니다. 이 병원 역시 무상으로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또한 안전한 성전환 수술과 관리시스템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트랜스젠더들이 엄청난 가격때문에 자신의 모습을 포기하고 살아가거나 큰 위험성을 감수하거나 외국으로 나가는 등의 불편부당함 없이 살아갈 수 있습니다. 또한 무지개병원은 여성의 임신, 출산에 대한 자기결정권을 완전히 보장합니다.




마을의 한쪽에는 하비밀크의 삶과 투쟁을 기념하는 성소수자 도서관이 설립되어 있습니다. 이 도서관에는 멋진 문지기도 있고, 성소수자 이론과 해방, 자유와 평등 이론과 실천, 성소수자 문화와 예술, 이주·장애·인종의 다양성에 관한 책들이 모두 구비되어 있습니다. 단, 이 도서관을 출입할 수 없는 블랙리스트도 있으니 명심하세요. 1. 2MB, 2. 딴나라당, 3. 보수기독교, 4. 호모포비아, 5. 자본가, 6. 제국주의자, 7. 전쟁광은 독서 분위기에 해를 끼치기 때문에 이용을 할 수 없습니다.

성소수자들이 행복한 웨딩마치를 할 수 있는 웨딩홀도 이 마을에는 존재합니다. 이곳에서 백년가약을 약속한 사람은 모두 부부로서, 파트너로서, 동반자로서 마을안에서 어떤 차별도 없이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무지개마을의 전경입니다. 어떻습니까? 제법 그럴듯한 마을의 모습이 만들어 졌습니다.
마을을 구성해 보면서 우리는 우리가 꿈꾸고, 성소수자들이 살기 좋은 마을이 어떤 곳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차별이 없고 평등한 마을

무상급식, 무상교육, 무상보육, 무상의료가 실현되는 마을

성소수자들의 문화가 발현될 수 있는 마을

식량주권이 지켜지는 마을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살 수 있는 마을

진보정치가 실현되는 마을

편안하게 쉴 수 있고 교류할 수 있는 공간이 있는 마을

투쟁과 역사를 잊지 않고 지켜나가는 마을


재밌고 독특해 보이면서도 사실은 누구나가 다 꿈꾸던 그런 마을이었습니다. 우리는 이런 마을과 지역을 만들기 위해 이 지도를 모델삼아 하나하나 고민해 나가야 겠습니다. 지역의 주민과 서로 이해하게 되는 것 부터 법과 제도, 환경까지. '친환경무상급식'이 최대의 화두가 된 오늘처럼 함께 만들어 간다면 이러한 마을이 형성되는것은 멀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차별없이 행복한 무지개마을을 만드는 이 걸음에 성소수자와 민주노동당이 함께 가야 겠습니다.

Comment

  1. 달팽 2010.06.01 18:36

    이런 마을에 살고싶어요!!! 무지개 마을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할 일들이 많네요~! 우리 모두 힘내요!!

  2. 하쿠나 2010.06.05 09:58

    빨리 메종드히미꼬와 같은 마을을 만들었으면 좋겠어요^^
    그곳에서 퍼레이드도 하고... 같이 함께 노년을 준비하는...
    그런 아름다운 곳...

5월의 성소수자위원회 소식

2010.05.31 05:59 | Posted by 민주노동당 성소수자위원회 성소수자위원회



안녕하세요? 당원여러분, 바쁘게 뛰어다니느라 언제 어디로 흘러가는 줄도 모르는 계절의 여왕 5월의 끝자락을 잡고 성소수자위원회가 인사드립니다. 가뜩이나 기념일들도 많은 이 달에 또 선거운동하느라, 여기저기 챙기고 살펴보느라 정신없으셨죠? 저희도 그랬답니다.

5월의 시작은 많은 노동자들과 함께 했습니다.
2010년 노동절을 맞이한 여의도공원은 많은 노동자들과 그들과 함께하는 시민들의 장이었습니다. 예년보다 인원은 적었지만 여의도공원을 가득 메운 노동자들의 투쟁에의 의지는 변하지 않았습니다. 성소수자위원회는 일찌감치 자리를 잡고 동성애자인권연대와 함께 성소수자 노동권에 대해서 알렸습니다. 지난 11월에 보시고 알아보시는 분도 계셨었고, 연단에서 들려오는 성소수자를 환영해주는 인사가 더 이상 놀라운 감정만이 아닌 연대의 뜨거운 마음으로 다가오는 날이었습니다.

성소수자 고용차별에 대한 간단한 스티커설문을 진행해 보았습니다. 성소수자가 차별받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육안으로 보기에도 99%쯤 되었지만, 성소수자가 교사나 청소년 상담원이 되는 것은 안 된다고 응답하신 분들이 꽤 있었습니다. 성적 지향이나 성별정체성이 윤리적인 문제 혹은 사적인 취향으로 인식되지 않고, 노동 속에서 차별로 이어지지 않도록 더 열심히 알려야 되겠습니다.

또한 옆에서 친구사이 활동가분들도 오셔서 동인련과 함께 군형법 92조 “계간”조항에 대한 탄원서를 받는 캠페인을 진행했습니다. 계간 조항은 동성애를 닭에 빗대어 비하하며, 서로 합의한 관계까지도 범죄로 규정하여 징역형으로 처벌하는 조항입니다. 많은 반대에도 불구하고 작년 11월 변경된 법안에는 오히려 처벌강도를 높이는 등 동성애 혐오를 공고히 하고 있습니다. 당원 여러분들도 관심을 가지고 함께 탄원하는데에 동참해주시기 바랍니다.

탄원서 작성 : http://www.gunivan.net/

이후에 노동권과 관련된 계획은 무궁무진합니다. 2차 성소수자 노동자 실태조사도 진행할 예정이며, 이것을 통해 전보다 더 좋은 논의들을 함께 나눌 수 있도록 정리할 계획입니다. 또한 성소수자와 다양한 노동 분야와의 연대의 끈을 단단히 할 수 있는 방법도 고민 중에 있습니다. 앞으로 활동을 해 나가면서 천천히 보여드리도록 하겠습니다.



5월 17일은 아이다호 날입니다. 차근차근 풀어보자면, 국제동성애혐오반대의 날(International Day Against Homophobia, IDAHO)이라고 합니다. 2005년 프랑스의 루이 죠르쥬 탱이 제안하여 시작되었고, 이듬해 유럽 의회에서 동성애 혐오를 비난하는 결의문을 통해 IDAHO가 승인되었습니다. 1990년 5월 17일 세계 보건 기구가 동성애를 국제 질병 분류에서 뺀 것을 기념해 정해졌습니다. 또한 5월 17일은 2004년 매사추세츠 주에서 동성결혼을 합법화한 날이기도 합니다. 매년 수십, 수백개의 국가에서 이날을 기념한 캠페인, 토론회, 전시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개최되고 있습니다. 성소수자위원회에서는 아이다호날에 큰 활동은 보여드리지 못했지만, 5월의 중순에 동성애 혐오에 대한 반대를 천명하는 의지굳은 날이 있다는 것을 꼭 기억하시고 그 의미를 함께 기념해 주시길 바랍니다.



5월의 중-하반기는 전국을 들썩였던 6.2 동시지방선거를 향해 달렸습니다. 각자 자신이 속한 지역에서, 필요로 하는 곳에서, 지지하는 곳에서 민주노동당의 후보를 당선시키고자 하는 마음이었습니다. 그 가운데에 선거와 진보정치 실현에 대한 많은 고민들이 있었고 서로 또 모여서 의견을 나누기도 했습니다. 발로 뛰기도 했고, 좌절하기도 했고, 간절하기도 했습니다. 이 모습은 어디에서나 다르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최선을 다한 그 모습,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6월에는 성소수자들의 축제, 퀴어문화축제가 열립니다! 올해 11회를 맞이하는 퀴어문화축제에는 다양한 퀴어 영화, 전시회, 강연회 등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축제의 백미를 장식하는 퀴어퍼레이드는 6월 12일 청계천일대에서 진행됩니다. 성소수자위원회와 함께 성소수자 자긍심의 행진에 발 맞추어 주세요!

자세한 일정 : http://www.kqcf.org/


Comment

  1. 하쿠나 2010.06.05 10:00

    퀴어 퍼레이드에 이번에는 정말~ 새로운 바람이 불었으면 좋겠어요.
    많은 당원들이 이곳에 함께 참여하기를 희망하면서...

성소수자 인권기본조례를 제정합시다!!

2010.05.31 03:44 | Posted by 민주노동당 성소수자위원회 성소수자위원회

- 민주노동당 성소수자위원회 레이가

 

2007년 법무부에서 제정하려고 내놓았다가 고된 풍파를 겪고 실현화되지 않은 ‘차별금지법’논란이 2010년에 다시 열기가 뜨거워지고 있다. 법무부가 올해 10월 즈음 다시 차별금지법을 제정하려고자 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차별금지법은

"「헌법」의 평등이념에 따라 성별, 장애, 병력, 나이, 출신국가, 출신민족, 인종, 피부색, 언어, 출신지역, 용모 등 신체조건, 혼인여부, 임신 또는 출산, 가족형태 및 가족상황, 종교, 사상 또는 정치적 의견, 범죄전력, 보호처분, 성적지향, 학력, 사회적 신분 등을 이유로 한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합리적인 이유 없는 차별을 금지하고 예방하며 불합리한 차별로 인한 피해자에 대한 구제조치를 규정한 기본법을 제정함으로써, 헌법 및 국제 인권규범의 이념을 실현하고 전반적인 인권 향상과 사회적 약자ㆍ소수자의 인권보호를 도모함과 아울러 궁극적으로 사회통합과 국가발전에 기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법적 근거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하자면 차별금지법은 인간의 기본권을 박탈당할 위협에 노출되어 있는 사회적 약자 및 소수자를 보호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법적 근거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지난 2007년 10월 31일, 법무부가 입법 예고한 차별금지법안의 차별금지대상에서 ‘성적지향’을 비롯하여 ‘학력, 가족형태 및 가족상황, 병력, 출신국가, 언어, 범죄 및 보호처분의 전력’ 등 7개 항목이 삭제되어 올바른 차별금지법 제정의 의미를 훼손시키는 차별금지법이 나타나게 되었다. 특히 그 중 ‘성적지향’의 항목은 여러 가지 차별금지 조항 중에서 가장 거센 반발을 불러 일으켰다. 차별금지법을 ‘동성애 허용법안’이라고 명명하며 일부에서는 ‘며느리가 남자라니, 동성애가 웬 말이냐’ 와 같은 동의하기 힘든 구호가 등장하기도 하였다. 또한 의회선교연합에서는 기자회견을 통해 성적지향 포함 7개 조항을 삭제하라고 입장을 밝혔다. 이러한 현상들의 배경에는 우리 사회 속에서 성적지향과 성정체성에 대한 잘못된 인식과 공포를 조장했던 보수기독교세력의 압력과, 대부분 잘못된 오해로 비롯되어진 사회전반의 호모포비아적 분위기가 있었다. 2010년인 오늘, 다시 차별금지법이 다시 논의되려 하고 있지만 이에 예상되는 여러 가지 어려움과 난관들은 크게 변화되지 않은 실정이다.

 
 
이렇게 기초적인 법안 제정의 어려움들에서 볼 수 있듯이, 우리나라에는 성소수자에 대한 법률이나 제도적 방어막이 전혀 존재하고 있지 않다. 성소수자는 실질적 차별을 받고 있다고 하더라도 구제할 기본적 방안이 없기 때문에 자신 스스로 모든 것을 감내해야하는 상황 속에서 살고 있다. 성적지향과 성정체성에 대한 잘못된 혐오와 편견으로 인해 성소수자들은 침묵을 강요당하고 이 문제는 개인적인 문제로 치부당하기 일쑤이다. 이를 타개하기 위하여 기본적으로 차별금지법과 같은 포괄법이 필요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 포괄법은 적극적인 성격의 것은 아니며, 차별금지를 명시하고 있지만 차별받은 실제상황에 대한 적극적 구제조치가 전혀 없다. 또한 성소수자에 대한 인권감수성이 높아야 하는 공무원, 교사, 청소년 상담기관에 대한 인권교육은 전무하다.


 
모든 지자체는 시민들이 안전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행정을 꾸려나가야 할 의무가 있다. 따라서 정부는 물론 각 시ㆍ도ㆍ기초 지방자치단체들은 성소수자 차별을 금지하고 인권증진을 도모해야 할 책임이 있다. 성소수자가 지역 속에서 주체로 살아갈 수 있도록 각 지자체에서 해결방안이 모색되어야 한다. 성소수자 뿐만 아니라 사회적 소수자들이 안전하며 차별받지 않고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는 지역적 환경과 제도가 만들어 져야 한다.


 
민주노동당의 성소수자인권기본조례는 지역에서 성소수자 차별금지 및 인권증진을 위한 계획을 수립하기 위한 기본과제이다. ‘성소수자’ 인권기본조례로 구상한 것은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혐오가 위의 사례에서 보듯이 극명하고 시급한 과제이기 때문에 포괄적인 차별금지 안에서 다양한 차별항목 중에 하나로 다루어지거나, 여성 관련 조례에 일부분으로 논의되기 보다는 성적지향과 성별정체성이 독자적으로 논의되어야 더 실천적이고, 실현할 수 있는 방법과 통로가 모색되어질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민주노동당이 제시하는 성소수자인권기본조례는 다음과 같은 방향이 포함되어 실현되어야 한다.

① 정기적인 모니터링과, 실태조사를 통해 이성애 중심적인 지역문화, 행정제도를 개선

- 이성애 가족 중심의 지역문화, 행정제도 등을 개선

- 지방자치단체 인권실현 평가 제도를 도입

- 매년 성소수자들이 경험하는 차별실태를 조사하고 차별시정을 위한 정책방안 강구

 

② 성소수자 차별금지 및 인권증진을 위한 기본계획을 수립 / 차별 시정을 위한 정책 마련

- 민ㆍ관 협력팀을 구성하여 계획을 수립하고 이행

- 전담 인력을 배치하고, 그 제원의 확보하여야 함

 

③ 차별방지를 위한 인권교육, 지침마련의 의무화 / 차별행위에 대한 적극적인 시정조치

- 공무원, 교사, 청소년 상담기관 종사자 등을 우선으로 정기적인 인권교육을 실시

- 공공기관, 청소년 상담기관에 비치할 성소수자 인권지침서 · 상담매뉴얼 제작 보급

- 기본계획을 기반으로 차별행위가 발생했을 시 구제할 수 있는 신청제도 마련

- 성정체성과 관련 상담ㆍ지원센터를 마련, 상담지원인력을 배치


 
민주노동당의 후보자 중, ‘성소수자인권기본조례 제정’을 처음으로 자신의 공약으로 삼은 사람은 민주노동당 서울시의원 비례후보 3번인 김동희 후보다. 김동희 후보는 현 마포장애인자립생활센터 소장이며 민주노동당 장애인위원회 정책위원장, 장애인주거지원법제정추진연대 준비위원장 등을 역임하고 있다. 출마의 변에 ‘중증 장애인으로 그리고 기초생활수급권자로서 이 사회 빈곤과 차별의 한복판에서 살아왔다...(중략)... 저는 이 사회의 모든 차별과 싸워왔으며, 앞으로 장애인 뿐 아니라 차별받는 모든 이들과 함께 싸울 것입니다.’라고 밝히고 있듯이 그는 누구보다도 소수자의 관점을 견지하고 차별받는 사람들의 마음을 잘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다. 김동희 후보가 시의원이 되면 가장 힘을 쏟을 부분이 바로 차별 없는 서울을 만드는 것이다. 장애인, 성소수자, 여성, 아동, 어르신 등 서민과 도시 안에서 억압받는 사람들을 위한 정책들이 그의 공약이다.

 
 
이번 2010년 지방선거에서는 성소수자 밀집지역을 중심으로 성소수자가 적극적이고 매력적인 유권자층으로 부상하고 있다. 마포의 경우, 마포레인보우 유권자연대(마레연)를 성소수자 스스로 구성하여 자신의 정체성을 기반에 둔 유권자운동을 펼치고 있다. 마레연은 선거운동이 시작될 즈음이 되면 각 마포의 각 후보들에게 성소수자들의 표심을 좌우할 질문들을 뽑아 질의서를 보낼 예정이다. 또한 성소수자 단체들의 연대회의인 ‘무지개행동’은 7가지 요구안에 합의할 것을 각 후보자들에게 제안하고, 성소수자 유권자들을 가시화하기 위한 홈페이지를 개설하고 있다. 이미 예전부터 성소수자들은 각 선거에서성소수자 인지/ 친화적 후보자를 가려내고 자신의 요구, 주장을 제기하기 위한 질의서를 보내거나 성소수자 후보자에 대한 적극적인 지지를 표명하며 유권자로서의 권리를 행사해 왔다.




  이번 6.2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는 성소수자공약을 마련한 정당도 있고 그렇지 않은 정당도 있다. 민주노동당은 위에 설명한 ‘성소수자 인권기본조례 제정’이 15대 중요공약 중 하나로 들어가 있다. 진보신당의 경우, 성소수자 뿐만 아닌 다양한 차별을 금지하고 인권을 보장하도록 하는 ‘반차별조례 제정’ 공약이 있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성소수자를 위한 공약이 없는 상황이다. 이번 선거는 1인 8표를 행사하게 된다. 유권자들은 이러한 당의 정책들을 잘 비교해 보아 자신의 정체성에 부합하는 투표에 한 표를 실어야 할 것이고, 정당 및 정치인들은 말 뿐인 공(空)약이 아니라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내는 공(公)약으로 이행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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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소개] 성적 다양성, 두렵거나 혹은 모르거나, 이후, 2007

2010.05.31 01:31 | Posted by 민주노동당 성소수자위원회 성소수자위원회

<<성적 다양성, 두렵거나 혹은 모르거나>>, 이후, 2007
성적 다양성의 의미와 성소수자 운동의 현재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도서

책 제목처럼 많은 사람들은 성적 다양성이라는 말 자체를 잘 모르거나 두려워한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한국에서 동성애, 성소수자와 관련된 책들을 찾아보기란 쉽지가 않다. 하루에도 무수히 많은 책들이 쏟아지는 상황 속에서도 2000년 이후 한국에 소개된 성소수자 관련 서적들은 겨우 10권 안팎 수준이다. (물론 기독교와 연관된 책들은 종종 발간되어지지만 객관적으로 접근하기보다 종교적 관점에 치중하고 있다는 단점이 있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성소수자들의 삶과 존재의 이유에 대해 궁금해 하지 않고 그것을 이해하는 수준도 낮은 편이다. ‘성소수자들은 누구일까?’ ‘그들은 어디서 살고 있을까?’ ‘과거에는 존재했을까?’라는 물음들에 대한 적절한 답변과 성소수자들의 삶을 이해를 하기까지 작용하는 큰 걸림돌이 무엇인지를 설명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에 이 책을 추천하게 되었다. <<성적 다양성, 두렵거나 혹은 모르거나>>는 성적다양성에 대한 다양한 물음에 대해서 답변할 준비가 되어 있는 책으로서 충분히 추천할 가치가 있다.

이 책이 발간되기 앞서 이후 출판사 관계자 몇 명이 동성애자인권연대를 찾아왔다. 발간취지를 설명하면서 한국의 성소수자 운동의 현황에 대해 질의하고 답변하는 인터뷰 시간을 가졌고 책 이미지로 사용할 사진 몇 컷을 요청했다. 이 책에 반복적으로 등장한 사진이 있는데 바로 2004년 세계사회포럼이 인도 뭄바이에서 개최될 당시 행사 참가자들과 함께 폐막행진을 할 때 찍었던 사진이다. 사진에는 “Stop the War against the homosexual (동성애자에 대한 전쟁을 중단하라)" 라는 문구가 크게 적혀있다. 이 사진은 저자가 책 속에서 반복적으로 강조하고 있는 국제적으로 벌어지고 있고 끔찍한 인권침해 - 사형, 태형, 구금, 강간, 협박, 테러 등 -를 즉각 중단하라는 외침을 설명하고 있다.

저자는 동성애 역사를 문화적, 인류학적으로 살펴보는 것은 물론 불교, 힌두교, 이슬람교, 기독교 등 각 종교의 시각과 인도, 아프리카 등 제3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성소수자 운동, 운동 내의 논쟁들도 자세히 소개하고 있다. 유럽과 북남미, 아시아, 아프리카를 넘나들며 각 나라의 성소수자들의 현실을 꼬집고 이들을 대상으로 벌어지고 있는 인권침해 만행을 철저히 고발하고 있다. 그리고 동성애가 서구로부터 잘못된 문화가 들어와 고착화되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편견을 깰 수 있게 고대부터 현재까지 동성애가 존재했고 나라마다 각기 다른 문화와 제도가 존재하고 있음을 설명한다.

이 책에서 흥미롭게 볼 부분을 소개하자면 우리가 알고 있어야 하지만 그동안 소개되지 않았던 스톤월 항쟁 이전의 역사적 사건을 자세히 언급하고 있다는 점이다. 칼 울리히스, 오스카 와일드, 마르쿠스 히르쉬펠트 등 성소수자 운동에 큰 염감을 주었던 이들도 소개되어 있고 고대그리스와 중세시대, 이슬람권에서 동성애를 바라봤던 관점의 변화에 대해서도 설명하고 있다. 시공간을 넘어 성소수자가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안도감과 존재에 대한 지속성을 느끼게 해준다.

저자는 또한 각 문화마다 동성애가 용인되었다 불법화되었는지를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동성애자를 사형시키고 있는 이슬람권 국가 (이란 외 6개국)들도 중세에는 동성애 문학이 번영하기도 했고 711년 무슬림이 스페인을 침략했을 때는 동성애를 억압하고 있던 동성애 법률을 없애기도 했다. 반면 동성결혼이 허용되고 상대적으로 성소수자 차별이 적은 서유럽의 경우 20세기 중반만 해도 동성애자들이 파시즘의 희생양이 되거나 동성애를 치유, 치료의 대상으로 보았다. 단 1917년 러시아혁명 직후 몇 주 만에 반동성애 법률이 폐기되고 동성애를 합법화했던 성과를 1920년대 등장한 스탈린주의, 마오주의가 행했던 반동성애 정책과 연장선에서 보면서 사회주의를 표방했던 국가 모두가 반동성애적이었다고 평가한 건 아쉬운 부분 중 하나다.

저자는 마지막으로 성소수자들이 수백 년 동안 싸워왔던 사회정의를 언급하며 성적다양성이 존중되고 관용적인 사회를 만드는 것이야말로 모두를 위한 길이라고 주장한다. 성소수자를 향한 폭력과 억압이 전 세계에 존재하지만 그에 맞선 저항들도 함께 존재하고 있음을 소개하고 있어 글을 읽는 독자로 하여금 자신감을 고양시켜주고 있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세계에 성적 다양성의 의미를 던지며 우리가 좀 더 민주적이고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해 누구와 함께 싸워야 하는지를 명쾌하게 알려주고 있다.

정욜 _ 민주노동당 성소수자위원회, 동성애자인권연대

* 이 글은 인권재단 사람(www.esaram.org) 2010년 1~2월호에 기고된 글입니다. 민주노동당 당원들이 꼭 한번 읽어보았으면 하는 책이라 성소수자위원회 웹진에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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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수자, 언제쯤이면 가슴이 동의할 수 있을까.







언제나 마음에 담고 생각하고 있는, 그러나 막상 받아드니 참 어려운 숙제가 당 성소수자위원회 간사로부터 답지했다. 성소수자에 대한 칼럼을 써 달란다. 사실 필자가 성소수자를 접한 경험은 일천하다. 2008년의 촛불마당에서 성소수자들의 레인보우 깃발을 앞세운 ‘성소수자 부대’의 진격, 그리고 당 생활을 하면서 성소수자위원회 간사와 그녀의 애인을 마주한 것, 그리고 최근 3.8여성대회 때 성소수자 한 무리(?)를 만난 것. 대한민국 전체 성소수자를 만난 것은 아니지만 새삼 성소수자와 필자가 같은 사회의 구성원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실감하기엔 충분한 것이었다.

그리고 생각을 해 보았고, 사람들을 만나서 같이 얘기를 해 보았다.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의 근본적인 원인은 무엇일까. 왜 아직까지 성소수자들이 ‘커밍아웃‘을 할 정도로 사회의 성숙도가 무르익지 않았을까. 왜 진보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자부하는 사람들도 성소수자를 ’가슴‘ 으로는 동의하지 못하는 걸까.

‘촛불집회 같이가기‘ 라는, 2008년도 촛불마당에서 만난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다. 그 자리에서 성소수자 이야기를 꺼내니 역시 뜨거운 논쟁이 한차례 오고 갔다. 결론은 ‘남성 이성애자들의 기득권 사수 심리’ 였다. 참 알 듯 말 듯 한 문제해결 방법.. 그렇게 우리는 또 고민이 한가득 든 소주한잔을 기울였다.

솔직히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도 성소수자에 대한 거리감을 조금은 가지고 있음을 인정한다. ‘그들의 취향을 인정하고 존중한다’ 라고 말하고는 있지만 그들에 대한 거리감을 변명하기 위한 수사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3.8 여성대회에서 만난 성소수자들. 그들과 대화하기 위해 참 여러 가지 것들을 생각해야 했다. 이 표현 저 표현 사이에 혹시 저 사람들이 마음 아파할 표현들이 숨어있지는 않을까하는 류의 여러 가지 생각들. 하지만 막상 대화를 나누다 보니 내가 그렇게 고민한 것 자체가 민망할 만큼 편안한 대화를 이끌어 나갔던 기억이 난다. 어찌 보면 짧은 만남이었지만 그 만남은 나에게 상당히 많은 생각을 하게 해 주었다. 혹시 나 스스로 나를 닫고 있지는 않았을까. 상대방이 ‘성소수자‘ 라는 얘기만 듣고는 어쩔 수 없이 ’움찔‘ 하는 걸 보면 아직까지도 성소수자에 대해 내 마음이 그렇게 많이 열리지만은 않은 것 같다.

성소수자에 대한 그 많은 안티와 비난, 그리고 무개념이 논리적으로 합당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취향‘을 바탕으로 한 ’차별’ 이 무슨 논리와 무슨 합당함을 가지고 있겠는가. 남은 것은 이 사회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이성애자들이 ‘머리’ 가 아닌 ‘가슴’ 으로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많이 마주하고, 많이 대화하고, 많이 공감하는 과정이 반복되고 많이 행하여질수록 서로의 마음이 열릴 수 있을 것이고 그러다 보면 성소수자를 아무런 거리낌 없이 대하는 이성애자들이 더욱 더 많아지게 될 것이고 그때쯤 되면 성소수자들의 ‘커밍아웃‘이 더 이상 뉴스가 되지 않는, 참 ’자연스러운‘ 사회가 될 수 있을테니까.

그 길로 가기 위해서 우리는, 아니 진보정당 민주노동당 당직자로 일하고 있는 필자부터 성소수자에 대한 어색함을 떨치지 못하고 있는 ‘입으로만 진보주의자’의 자세에서 자유로워져야 할 것 같다. 성소수자에 대한 어색함에서, 부당한 잣대를 가지고 있는 나 자신의 가슴에서 자유로워지고 싶다. ‘머리’ 가 아닌 ‘가슴’ 으로 함께한다는 것은 진보정당 당직자에게는 미덕이고 필수 항목이다.


장우식 _ 민주노동당 중앙당 홍보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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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하쿠나 2010.06.05 09:57

    참 진솔한 내용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더 좋은 만남들과 교류들이 생겨나겠지요^^?

  2. 이반해방전사 2010.06.05 10:05

    마음에 담겨져 있는 좋은생각을 담아주셔서 고맙습니다 동성애자 당원으로서 이성애자 당원동지들의 이런 지지와 격려의 글을 읽으면 용기가 되고 힘이됩니다..함께 해요^^

  3. 달팽 2010.06.07 17:29

    솔직한 내용이 참으로 마음에 와닿습니다.
    앞으로 위원회 활동, 성소수자 인권 활동에 함께해요~!

故 단영 추모 1주기를 맞이하며...

2010.05.31 01:08 | Posted by 민주노동당 성소수자위원회 성소수자위원회

故 단영회원이 좋아했던 후리지아꽃




내가 기억하는 단영이라는 사람.

[이 글은 2010년 3월12일, 민주노동당 성소수자위원회에서 함께 활동했던 故단영 동지의 1주기 추도식에서 고인을 추억하며 함께 읽은 글입니다. 단영은 그녀가 성소수자 운동을 하며 예명으로 성소수자라는 그녀의 정체성이 불필요하게 밝혀질 일을 방지하고자 예명을 씁니다.]

우리가 단영이라는 사람을 어떻게 기억하는 것이 좋을까요?

우리가 대부분 그렇듯이 그는 이름 없는 활동가로 남았습니다. 하지만 무명의 활동가는 삶 속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결코 잊을 수 없는 동지로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무명의 투사들이 운동을 만들고 이 세상을 조금씩 바꾸어왔다는 것을요.

서른 세해. 무언가 이루기엔 짧았습니다. 그 흔한 외국 한번 나가보지 못했고, 마음껏 놀지도 돈을 써보지도 못했습니다. 늘 가난했고 늘 쫓기었고 늘 힘들었던 삶. 늘 몸이 아팠고 인정받지 못했던 삶. 하지만 당신은 정말 멋진 사람입니다. 나를 비롯하여, 당신으로 인해 깊이 감동받았던 사람들이 분명히 존재하고 있으니까요.

무명의 이야기입니다. 이룬 것 없다 해도 이미 이루고 간 사람. 늘 서 있는 그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기로는 최고라고 자부할 수 있던 무명 활동가의 삶입니다.

1991년 단영은, 강경대 열사의 죽음 이후 거리로 뛰쳐나온 민주주의를 열망하는 수많은 사람들 속에 선 고등학생이었습니다. 머리에 뽀얗게 사과탄 가루가 내려앉으면 학교로 돌아와 친구들과 뒤처리를 하기 바빴지요. 그녀는 동대문에 위치한 한 여고에서 직선제 학생회를 함께 운영했습니다. 이른바 ‘고운’세대입니다. 그녀는 종종 고등학교 때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학교의 모진 방해를 뚫고 대동제에 학생들을 불러 모으는데 성공한 이야기를 상기된 표정으로 들려주곤 했습니다. 친구들과 와~하고 운동장으로 쏟아져나가던 팔팔한 그녀가 생각나 웃음이 지어집니다. 동네를 주름잡던 다부진 소년 같은 단영이 푸름으로 빛나던 청소년 시기였습니다.

1993년, 그녀는 친한 친구 따라 대학을 가서 노래패에 들어갔습니다. 여기서 그녀는 드럼을 쳤습니다. 깊고 울림 있는 목소리로 힘차게 노래하던 그녀가 떠오릅니다. 그 뒤 국제사회주의자로써 활동에 매진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국가보안법 때문에 비합법조직, 이적단체로 쫓기면서도 사회주의자로서의 신념을 강하게 지니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1994년 중반을 넘기면서 학교를 중퇴하고 서울에서 생활했습니다. 집도 없이 지내고 사발면 한 그릇 먹을 돈이 없던 고단하고 숨 막히는 시기였지만 그녀는 기꺼이 한 명을 만나기 위해 그 활동을 이어나갔습니다. 그 뒤 백화점의 판매직 직원으로 일하면서도 여전히 투쟁의 현장에 있고자 했습니다. 그러면서 몸이 많이 망가졌습니다. 그녀가 걷고자 한 길이지만, 아직도 저는 그녀가 그 때 조금만 몸을 더 돌봤더라면, 하는 생각이 여전히 듭니다.

1997년 동성애자인권연대(이하 동인련)의 전신인 대학동성애자인권연합이 출범하면서 그녀는 동성애자들의 투쟁에 동참했습니다. 동인련 사무실에서 당시를 기록한 몇몇 사진들을 발견하고는 처음 거리로 나왔던 동성애자들의 자긍심에 가슴이 벅차올랐습니다. 그녀도 그 속에 있었습니다. 늘 이야기했습니다. 동성애자운동은 정말 내가 하고 싶었던 운동, 내 스스로를 찾아가는 운동이기에 가장 행복한 운동이라고 말입니다. 저도 그것을 이미 잘 알고 있습니다. 억눌린 사람들이 스스로를 해방하기 위해 일어서는 과정이 얼마나 감격스러운 일인지를요.

2000년, 그녀는 민주노동당 창당과 함께 그녀가 살고 있던 지역에 생긴 성동광진 지구당으로 입당하여 활동하기 시작했습니다. 파업현장을 찾아다니며 정치 실천단을 하고, 여성위원회 활동, 지방선거 지원 등을 하며 또 누구보다 당 활동을 열심히 했습니다. 여기서 그녀는 많은 노동자들을 만났고 이들과 막역한 지기가 되었습니다. 밤을 새워 토론하고 함께 실천하며 지내던 동지들입니다. 그 때는 아마 그녀가 가진 재능을 가장 잘 발휘한 시기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누구든 진심으로 만나고 마음을 여는 재능이지요.

그녀가 가진 재능은 무엇보다도 어려움을 잘 알아주는 것이었습니다. 현장에서 막히고 어려워서 눈물 흘리고 포기하고 싶을 때 그녀는 약한 몸이지만 우리를 붙들어주는 강한 기둥 같았습니다. 어려워본 사람만이 아는 여유, 그럼에도 옳은 것을 위한 강직함, 특유의 에너지로 우리에게 기운을 불어넣어 주었습니다.

그녀는 퀵서비스 노동자로 한동안 일했습니다. 작은 키에 작은 체구, 화이바를 벗으면 같이 일하는 동료 아저씨들은 깜짝 놀라며 처녀가 왜 이런 일을 하냐고 물어보곤 했습니다. 우리는 역시 ‘형님’이라며 웃곤 했지만, 그녀는 자기 인생을 내던진 시기였다고 합니다. 돈도 학력도 희망도 없고 하지만 어떻게든 먹고 살아야 했던 나날들. 어머니에게 생활비를 드려야 하고, 어떻게든 돈을 벌고 싶어 몸부림쳤던 날들. 다시 몸이 망가졌습니다. 몇 번 교통사고를 겪고 몸져 누우면서 이 일을 그만두었습니다. 사람들은 몰랐을 겁니다. 열정적으로 활동하던 그녀가 갑자기 활동을 쉬고 모습이 보이지 않던 이유를요.

2003년부터 그녀는 한 동네에서 논술 선생님으로 아이들 가르치는 일을 시작했습니다. 아이들은 그녀를 엄청 좋아하고 잘 따랐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할 때 그녀는 자신이 가진 능력을 정말 잘 발휘했습니다. 생활이 조금 안정되면서 그녀는 다시 동인련에 나왔습니다. 그 때가 2004년이었습니다.

당시 동인련에 있던 여성들에게 그녀는 왕언니이자 큰 형님 같았습니다. 고민도 들어주고 감싸도 주면서 다시 우리와 함께 하게 되었습니다. 그녀가 처음 함께한 일은 동성애자 상담센터를 만드는 일이었습니다. 글도 오랜만에 써보고 활동도 오랜만이다 했지만 누구보다 열심이었습니다. 우리가 발행한 자료집에는 그녀가 정리해놓은 성소수자의 노동차별에 대한 글이 실려 있습니다. 정말 정성어린 글이고 앞으로 우리가 관련 활동을 하면서 기초자료로 훌륭한 역할을 해준 글입니다. 그리고 저에게는 사회주의로 삶을 살아가는데 무엇이 중요한지 늘 다잡아주는 가장 절친한 동지이자 선배, 그리고 연인이 되었습니다. 제게 일생에서 가장 큰 영향을 준 사람을 꼽으라면 단영을 말하겠습니다. 그녀는 사람을 진심으로 만나고 대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가르쳐준 사람입니다.

2005년이 되어도 그녀는 계속 아팠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먹어온 스테로이드제 때문에 급격한 알러지와 발작, 크고 작은 병이 잇따랐습니다. 저는 그녀를 데리고 잘한다는 한의원에 갔고 그 때부터 치료를 시작했습니다. 뜨거운 쑥뜸, 죽염, 봉침, 한약......그리고 매일 산을 뛰면서 2년을 꼬박 치료했습니다. 아마 그때 당시 함께 생활한 분들은 그녀가 얼마나 몸이 아팠는지 알 겁니다. 그리고 얼마나 건강을 열망했는지 잘 아실 겁니다. 2006년 어느 날 마지막 치료라며 충주에 있는 산으로 들어갔습니다. 한 달을 누워 가슴에 커다란 흉터를 내며 뜸을 떴습니다. 건강해지면 다시 열심히 활동할 수 있다며 환하게 웃었습니다.

그리고 그 즈음 또 활동을 쉬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세상 사람들은 그런 속사정은 잘 모를 겁니다. 그래서 많이 애태웠습니다. 저도 가슴이 시커멓게 타고 그녀 가슴은 더욱 타들어갔겠지요. 어떻게든 빨리 병을 고쳐 그녀의 빛나는 웃음을 보고 싶었습니다. 그녀는 사람들 사이에 있어야 빛나고 윤이 나는 천성이 조직가였으니까요. 그래서 그렇게도 사람들 사이에서 잊혀지고 활동을 못하는 것에 대한 조급함이 강했나 봅니다.

2008년 벽두, 새 출발을 다짐하며 그녀와 저는 소백산에 올라 일출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늘 하고 싶었던 연극을 통한 교육을 하기 위해 과감히 교대 입학 시험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나는 옆에 함께 가는 동반자로써 한결 건강해지고 긍정적으로 변화한 그녀가 참 감사하게 느껴졌습니다. 이제 우리도 긴 터널을 지난 것 같은 안도가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안정감이 오래가지는 않았습니다. 7월이 되면서 그녀는 가끔 길도 까먹고 번호도 까먹고 했습니다. 늘 똑 부러지고 인간 네비게이션으로 통하던 그녀에겐 좀처럼 볼 수 없던 변화였습니다. 8월 초... 악성 뇌종양 말기라는 청천벽력같은 소식이 들이닥쳤습니다. 그리고 8개월간의 투병 후 그녀의 생일 전날 단영은 하늘나라로 새로운 여행을 떠났습니다.

직장과 학교 모두 그만두고 그녀를 간병하던 기간 내내 저는 이 말도 안 되는 사실을 납득해야만 하는 과정을 반복했습니다. 우리 모두에게 하루하루가 전쟁 같은 나날이었습니다. 그녀는 가장 힘든 질병의 고통 속에 날마다 의식이 흐려지고, 저는 어떻게해도 인정받을 수 없는 동성 파트너의 한계, 가족 바깥의 가족으로 너무나 서럽지만 그렇다고 그만둘 수도 없는 간병을 지속해 갔으니까요. 우리는 너무 외로웠습니다. 일생 그렇게 추웠던 겨울이 있을까요? 우리가 둘 다 마음 놓고 행복하게 오후를 즐겼던 시간은 가끔 주어지던 우리가 다니던 교회 사랑방에서의 낮잠이지 않을까요.

거짓말처럼 단영을 떠나보낸 후 저는 정말 할 일이 없다, 몸이 참 편하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사람은 그렇습니다. 몸이 일으켜지지도 않아서 정말 간병 못하겠다는 생각도 많이 했었는데 말입니다.

그리고 남은 저는, 숙제처럼, 벽제 화장장에서 장지로 출발할 때 저를 버리고 간 단영의 가족들에 대한 원망을 풀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저는 아직도 영문도 모른 채, 단영이 마지막 묻힌 장소도 모르고 삽니다. 가족들에게 몇 번을 연락하고 물어보고 찾아가서도 물어봤습니다. 이유도 이야기하지 않고 가르쳐주지도 않는 가족들 앞에서, 내가 그녀의 동성 연인이었다는 사실이 나를 더 위축되게 했습니다. 친구들은 아마 그래서 안 가르쳐주는 거라고 많이들 이야기했습니다. 그렇지만 이제는 원망을 털어야겠습니다. 이제는 이해 안되는 모든 일에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는 사실을 납득해야 합니다. 그리고 단영이 사랑한 가족들이라는 사실을 제가 받아들여야만 합니다. 가족이 되고 싶어서 되지도 않는 용을 썼던 제 모습이 생각나서 웃음도 나왔지만, 그걸 보답받기를 바라지는 않기로 했습니다. 저 가족들만이 잘못한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나에게만 주어진 비참함이면 복수하면 되지만, 성소수자로 살아가는 누구나 겪는 아픔이라면, 혼자 증오하기 보다는 그 현실을 바꾸기 위해 노력하는 편이 훨씬 낙관적인 방법이죠. 1주기를 보내며 새로운 다짐입니다.

그렇게 1년이 다 되었습니다. 어제 사진을 정리하는데 많이 눈물이 났습니다.

사람이 살아있다는 건 뭘까요? 저는 얼마 전에 언니의 유품인 옷가지 몇 개, 주로는 머리에 쓰고 있던 두건에서 짧은 머리카락을 몇 개 발견하고는 아직 그걸 빨지 않았어요. 그 머리카락은 산 걸까요, 죽은걸까요? 우습지만 그런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저는 문득문득 이유 없이 울기도 합니다.

아마 제가 살면서 또 많은 이들을 만나고 하겠지만 단영이라는 사람은 다시 만나지 못하겠지요. 그 사실을 깨달을 때마다 참 울고 싶어집니다. 꼭 슬픔에서 벗어나지 못해서는 아닙니다. 슬픔은 애초에 벗어났죠. 다만 사람은 삶의 어느 순간에, 순간적으로는 감당하지 못할 감정을 울음으로 표현하게 되는 걸겁니다.

여러분, ‘지금 이 순간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다면, 다음에는 더 많은 이웃을 사랑할 수 있다’고 법정스님이 말씀하셨지요. 단영은 제가 정말 사랑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여러분 모두 단영을 각자의 마음으로 똑같이 아끼고 사랑하시지요. 저는 앞으로도 열심히 사랑하는 사람이 될 겁니다. 그것이 단영이라는 사람이 보여준 ‘운동’의 방식, 바로 ‘사랑’하는 자의 힘을 실천하는 것이니까요.

그리고 그것이 우리가 단영을 진정으로 기억하는 것이지 않을까요.
단영의 1주기를 함께 추모하고, 웃고 울어준 동지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이경 드림
새순돋는 2010년 3월에

[편집자주] 웹진준비가 늦어져 고인을 추모하는 글이 늦게 게재되었습니다. 이 점 글을 보내주신 이경씨에게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그녀를 모르는 사람이라도 이 글을 보며 함께 추모하고 성소수자 인권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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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하쿠나 2010.06.05 10:01

    그래도 단영동지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함께 추모하고...
    그녀를 가슴에 담고..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어서 외롭지 않을거라 생각해요.

  2. 틈새 2010.06.07 22:46

    마음이 아파오는 글이네요. 단영 씨를 잘 알지도 못했고 힘든 투병이 시작되고 나서야 동인련과 이경 씨를 통해 알게 되었지만 명망가가 아닌 활동가로서 최선을 다해 자신의 삶을 살았던 단영 씨에게 가슴 깊이 존경을 보냅니다. 이경 씨도 힘내세요!

톰 포드 감독의 <싱글맨> - 존재론적 고뇌로 확장하는 퀴어 영화

2010.05.31 00:51 | Posted by 민주노동당 성소수자위원회 성소수자위원회



톰 포드 감독의 <싱글맨> - 존재론적 고뇌로 확장하는 퀴어 영화

1960년대를 배경으로 한 크리스토퍼 이셔우드의 소설『싱글맨』을 주관적으로 아주 간략히 요약하면 이렇다. 50대 후반의 게이 ‘조지(콜린 퍼스)’는 오랜 연인이었던 ‘짐(매튜 구드)’을 교통사고로 잃었다. 소설은 그 후 짐의 환영에 파묻혀 지낸 무수한 날들 중 하루를 선택하여 그 하루 동안 일어난 일상의 기복을 세세하게 묘사한다. 그는 동성애자에 대한 이해를 교양인의 덕목으로 생각하는 이웃집 부인의 가식에 진절머리를 친다. 짐과 자신의 주변을 늘 맴돌며 애증이 뒤섞인 미묘한 감정의 교류를 해온 여인들과 조우한다. 그리고 대학교 제자의 젊은 육체에 이끌리며 그리스 시대의 소년애를 겹쳐낸다. 결국 이웃집 부인에게 화를 퍼붓지도 못했고 그 여인들과의 명확한 관계 정립을 해내지도 못했으며 제자에게는 고백조차 하지 못했다. 그 하루는 어제의 하루이며 또 내일의 하루이다. 죽음만이 내일다운 내일로 안내하는 미래를 열어준다.

세계적인 디자이너 톰 포드에 의해서 영화로 재탄생한 이 작품 역시 소설이 담아낸 본질적 가치의 자장 안에 머물고 있다. 다만 그 가치의 진폭을 조금 달리 할 뿐이다. 소설에는 작가가 자신의 경험을 투영하듯이 영화 속에는 감독이 자신의 경험을 희미하게 덧씌운다. 소설 속에는 없는, 스페인에서 온 ‘카를로스(코르타 하레나)’라는 인물을 추가 등장시킨다거나 감독의 실제 첫 사랑이었던 남자의 성인 ‘팔코너’라는 성을 짐에게 부여한 것이 그 예이다.

감독에 따르면, 소설『싱글맨』의 동성애적인 면이 아니라 인간적인 면에 이끌려 영화화를 결심했다고 한다. 그가 자신의 정체성을 동성애자라는 섹슈얼리티로만 정의 내리는 것을 경계하는 태도와 일맥상통한다. 젊은 시절 그가 소설을 통해서 만날 수 있었던 조지는 자신과 닮은 동성애자가 아니라 자신과 닮은 한 인간이었다. 물론 톰 포드가 동성애자가 아닌 인간에 주목할 수 있었던 것은 동성애에 대한 인식을 바꿔 놓은 선배 세대들의 치열한 투쟁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고백한다.

옷감을 어루만지던 손으로 빛과 어둠을 통제하고자 하는 욕망을 품을 수밖에 없었던 것도 하나의 정체성으로 규정되기를 거부하는 그의 성향 탓이었으리라. 덧붙여, 한 시절을 풍미하고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져버릴 패션과 달리, ‘인간’을 다룬 잘 만든 영화 한편은 세월이 흘러도 스크린을 통해 영원히 기억될 수 있으니, 금상첨화이다.

그리하여 소설 속에서 묘사된 당시의 동성애에 대한 시대반영적인 담론은 영화 속에서 희미해진다. 대신, 오랜 연인을 잃고 홀로 외롭게 늙어가는 한 인간의 본연적 고독이 시대를 초월하여 더욱 뚜렷하게 표상된다. 소수자에 대한 두려움, 공산주의에 대한 두려움, 흑인문화에 대한 두려움, 핵전쟁에 대한 두려움 등을 경유하여 궁극적으로 홀로 늙어가는 것에 대한 두려움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조지의 제자 케니(니콜라스 홀트)의 말처럼,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상대방의 겉모습뿐이다. 그래서 인간은 본래적으로 고독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카를로스의 말처럼, 끔찍한 것들도 자신만의 아름다움이 있다. 우리가 고독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길은 그 내재한 아름다움을 찾으려는 존재론적 숙고로부터 시작된다. 조지는 뒤늦게 그 사실을 깨닫는다.

우리는 화면의 미묘한 채도 변화를 통해서 조지의 심리 변화를 감지한다. 클로즈업으로 진행되는 조지와 케니의 대화 장면은 조지를 담은 창백한 질감의 숏과 케니를 담은 따뜻한 색감의 역 숏의 병치를 통해 미묘하게 대비되는 채도의 차이를 보여준다. 두 사람 간의 대화가 깊어질수록 케니의 온화한 체온은 점차 조지에게 전달된다. 우리는 점차 풍부한 빛깔을 찾아가는 조지의 얼굴을 통해 아름다움에 감염된 자의 행복을 느낀다. 깊은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것 같기도 하고 유유히 잠영을 즐기는 것 같기도 한 양가적인 장면이 반복적으로 조지의 꿈을 장악하고 있었으나, 그 순간 조지는 물 밖으로 얼굴을 내밀면서 망상은 종결이 난다.

‘멈추어라, 너 정말 아름답구나!’

파우스트가 이 말을 뱉어내는 순간, 메피스토펠레스가 그의 영혼을 가져가버리듯이 삶의 진정한 가치를 발견한 순간 조지의 심장도 마비된다. 동성애자로서, 나아가 한 인간으로서 나는 어떻게 늙어갈 것인가에 대해 고민할 시간이 왔다. 홀로 외롭게 늙어가지 않기 위해서라도 주변의 아름다움을 눈여겨보자. 그리고 우리는 성 소수자이기에 앞서 언젠가 죽음을 맞이할 한 인간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자.

김경태_동성애자인권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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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하쿠나 2010.06.05 10:04

    역쉬.. 경태님의 글은... 참 많은 고민을 줍니다..

    우리의 앞으로의 인생, 동성애자로서의 삶, 주변의 많은 동지들...
    우리가 무심코 지나치는 순간의 찰나들... 모두 소중하다는 것을 잊지말아야 할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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