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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평] 드라마 <인생은 아름다워> 비난 및 동성애자 혐오․조장을 당장 중단하라

2010.10.19 17:18 | Posted by 민주노동당 성소수자위원회 성소수자위원회




지난 9월 28일(수) 조선일보 A35면에 국가와 자녀들의 앞날을 걱정하는 참교육 어머니 전국모임과 바른 성문화를 위한 전국연합은 <인생은 아름다워>보고 ‘게이’된 내 아들 에이즈로 죽으면 SBS 책임져라! 라는 제목으로 성소수자 혐오 조장 광고를 실었다.

이들은 ‘동성애자 AIDS감염 확률이 일반인의 730배’, ‘동성애는 문화적․환경적 요인으로 학습되며 확산되고 있다’고 주장하며 아직 발의조차 되지 않은 ‘차별금지법’을 동성애를 부추기는 법안이라며 비난하고 있다.

근거도 없고 말도 안 되는 논리로 동성애에 대한 무차별적 비난과 공격을 하고 있는 이 광고를 보고 많은 국민들이 분노를 감출 수 없었다. 동성애 혐오는 이제 더 이상 가만히 두고 볼 수 없는 문제가 되었다. 동성애는 학습․전파되는 것이 아니며 삶의 한 모습이자 다양한 성적지향의 발현이다. 동성애가 학습되며 마치 병이나 유행처럼 확산된다고 주장하는 논리는 동성애자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이며 모독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특히 이 광고는 AIDS에 대한 공포와 편견을 확산시켜 HIV/AIDS감염인들을 더욱 고통 속에 빠트리고 있다.

비단 이번의 광고만의 문제가 아니다. 동성애자 혐오를 조장하는 세력들은 2007년 차별금지법이 제정 논의과정에 있을 당시 지금과 같은 논리로 동성애자 차별을 정당화할 수 있도록 차별사유 중 성적지향을 삭제하도록 종용해왔다. 그 결과 ‘성적 지향과 성별정체성 등 7개 사유’가 삭제된 누더기 차별금지법이 되어 상정되었다가 입법에 좌절된 바 있다. 또한 지난 5월 27일에도 조선일보에 이번 광고와 비슷한 내용의 <인생은 아름다워>와 동성애를 비난하는 광고를 실었다. 이처럼 동성애를 혐오하는 세력들은 동성애자가 자유롭고 평등하게 살 수 있는 사회를 건설하는 것에 끈질기게 방해하고 있다.

지난 9월 17일 반기문 UN 사무총장은 제네바에서 열린 제15차 UN인권이사회에서 성적지향을 이유로 다른 사람을 차별하는 것이 정당화 되어서는 안 된다고 강하게 강조한 바 있다. 이미 국제사회는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금지와 인권보장을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우리나라도 앞으로 이와 함께 가야 한다.

동성애 혐오는 폭력이며 범죄와 다름없다. 동성애 혐오를 조장하는 세력은 자신이 바로 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패악을 부리는 장본인이라는 것을 하루빨리 직시해야 할 것이다. 민주노동당은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를 조장하는 그 어떤 세력이라도 맞서 싸울 것이며 다양한 사람들과 더불어 사는 삶, 있는 그대로 존중하는 평등한 사회를 위해 끝까지 노력할 것이다.


2010년 10월 1일
민주노동당 성소수자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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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수자위원회 소식

2010.10.19 16:44 | Posted by 민주노동당 성소수자위원회 성소수자위원회

안녕하세요? 시간을 훌쩍 뛰어 넘어온 성소수자위원회입니다. 하도 오랜만이라 그동안 풀어놓을 이야기가 많을 것 같아요. 지난 7월부터 새로운 지도부와 새로운 분위기로 민주노동당이 열의를 가지고 나아가고 있답니다.

지난 9월 18일에는 성소수자 정치캠프를 다녀왔습니다. 비록 많은 회원들이 모이지는 못했지만 당과 성소수자운동을 고민하고 뜨겁게 우애를 다지고 왔습니다.

허심탄회하게 우리의 약점과 강점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 보았는데요. 당원들이 위원회에 접근하기 어려운 점, 전체적인 정치 구도 상 성소수자운동에서의 입지가 좁아지지 않았나 하는 우려와 함께 당원들이 소수자 운동에 덜 민감해 보인다는 점 등이 이야기 되었습니다.

성소수자위원회 내부에서는 정당의 정치조직으로서 중앙당과 좀 더 긴밀하게 움직이지 못하는 점, 새로운 성소수자들에게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또 각자의 활동이 많아 많은 시간을 할애하기 어려운 점이 있으나 더 다양한 분야와 역할을 맡을 수 있기에 장점으로 승화시키자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이러한 것에도 불구하고 민주노동당의 성소수자위원회는 끈끈한 연대감으로 활동을 하고 있고 다른 위원회와는 달리 아래로부터 투쟁으로 세워진 위원회라는 점에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민주노동당은 좋은 강령을 가지고 있고, 진보정당의 의원을 보유하여 조례제정 등 NGO가 하지 못하는 정당만의 활동을 펼칠 수가 있다는 장점이 있었습니다. 의제와 투쟁 면에서 적극적으로 당과 운동을 견인해나가자는 결의가 모아졌습니다.

앞으로 어떤 활동에 집중하면 좋을지 이야기 해 보았는데요. 지금 진행하고 있는 것들도 모두 중요성이 있지만 앞으로 좀 더 새롭게 집중해보자고 한 활동은 아래와 같습니다.

- 당내 성소수자 교육 강화

- 의제와 이슈에 빠르게 대응하는 구조

- 성소수자 혐오문제


더 구체적인 고민을 시작해야 하겠습니다.

차별 없는 세상을 위한 기독인연대와 동성애자인권연대, 완전변태와 함께 동성애혐오반대 공동행동 ‘열림’을 결성하여 동성애에 대한 혐오조장에 맞서는 활동을 하고자 하였습니다. 그 첫 번째 활동으로 8월부터 9월까지 동성애자 인권지지 광고모금을 진행하였는데요. 많은 분들이 지지하고 참여해 주셔서 동성애자 인권지지 광고가 9월 13일 한겨레신문에 나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성소수자를 혐오하는 세력들이 차별금지법을 저지하기 위해 1인 시위, 법무부 항의, 광고테러 등 갖가지 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이러한 혐오조장에 단호히 맞서고 보다 많은 사람들이 성소수자 인권에 한발 더 가까이 갈 수 있도록 고민하고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11월부터는 당내 성평등강사 양성교육이 시작되고, 각 지역에서 성평등교육이 시작됩니다. 성평등교육 이수자를 상대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아직 성소수자교육을 받아보지 못한 당원들이 많아서 교육에 대한 요구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당내에 성소수자 교육을 강화할 것을 고민하고 있는 시점입니다. 영상교안과 성평등강사/당원들이 편하게 볼 수 있는 성소수자 교육 지침서를 내고자 준비하고 있습니다.



10월 26일에는 진보신당과 함께 진보정당과 성소수자운동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자 합니다. 관심있으신 분들의 많은 참여 부탁드려요!

얼마 남지 않은 2010년은 차별금지법 이야기로 다시 떠들썩한 시간들이 될 것 같습니다. 앞으로 성소수자위원회의 활동과 차별금지법 등 소식을 빠르게 전해드리겠습니다. 많이 지켜봐주시고 지지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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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애 혐오를 마주하다.

2010.10.18 18:56 | Posted by 민주노동당 성소수자위원회 성소수자위원회


 

발단은 이랬다. 2010년 5월 27일, 조선일보에 경악할 만한 내용의 광고가 실렸다. “며느리가 남자라니, 동성애가 웬 말이냐!” 그런데 구호가 어찌 낯설지 않았다. 단체 이름도 그랬다. 2007년 차별금지법을 동성애 허용법안이라며 비난하고 조직적으로 움직여서 차별사유 중 ‘성적지향’을 삭제하도록 했던 바로 그 단체 동성애허용법안반대국민연합(이하 동반국)이었다.

문득 이런 구절이 생각난다. 작년에 왔던 각설이, 죽지도 않고 또 왔네. 작년도 아닌 3년 전에 왔던 각설이가 다시 오다니. 웬 말이냐. 각설이는 정겹기라도 하지. 이들이야말로 혐오스럽기만 하다.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마냥 반가워 할 수 없는 노릇이다.

지난 6월 5일에 있었던 퀴어문화축제에 성소수자위원회는 이 혐오광고 이야기를 꺼냈다. 급하게 준비한 것이었지만 많은 사람들이 찾아왔다. 엽서쓰기 행사에서는 ‘내가 며느리다’ ‘동성애 반대라니? 동성애허용법안반대국민연합이 웬 말이냐?’와 같은 재기발랄한 글도 있었고 평등한 세상을 바라는 마음이 절절한 글들도 있었다. 우리도 많은 사람들에게 성소수자 인권을 알리고자 뜻있는 단체들과 동성애혐오반대공동행동 열림을 결성하고 광고모금을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213명과 33개 단체가 참여의사를 밝혀왔다. 악의적인 광고를 보고 사람들에게 그동안 분노가 많았다는 것이 느껴졌다. 사람들은 지금까지 표출할 계기가 없었을 뿐 이 혐오에 대해 무엇인가 하고자했다. 그 결과 9월 13일 한겨레에 동성애자 인권지지 광고가 실리게 되었다.




하지만 이들의 브레이크 없는 행보는 계속되었다. ‘바른 성문화를 위한 전국연합’(이하 바성연) ‘동성애차별금지법반대 국민연합’으로 이름을 계속 바꾸어가며 조선, 중앙, 국민일보에 계속해서 광고를 내고 있다. 얼마 전에는 수많은 네티즌들과 김수현 작가, 홍석천씨가 나서서 일침을 놓아서 연일 화제였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꿈쩍도 하지 않고 오히려 10월 29일에는 국회 본관에서 동성애 반대를 내건 토론회도 개최한다고 한다. 특정 기독교 라인을 통해서 ‘동성애 차별금지법’이 저지되도록 항의하자는 선동을 계속해서 하고 있다는 제보도 계속해서 들어오고 있다.


이들이 이렇게 주목하고 있는 차별금지법은 동성애차별금지법이 아니라 ‘성적지향’을 포함한 다양한 차별사유들에 대해 차별을 금지하는 일반법이다. 법무부가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이 법은 10월~11월 사이에 정리되어 빠르면 올해 11월 국회에 상정될 가능성이 있다.


그러면 다른 나라들은 어떨까? 독일의 일반평등대우법에 보면 동성애, 양성애, 성전환을 포함한 ‘성적 정체성’의 차별을 금지하고 예방한다. EU는 고용 및 직업에 관한 평등대우의 일반적 구성 이라는 지침을 통하여 ‘성적지향’에 대해 직․간접적 차별을 금지하고 있다.
이 외에도 캐나다 또한 인권법을 통해서, 프랑스는 프랑스법 2편 2장 ‘인간에 대한 침해’를 통해 성적지향에 대한 차별을 금지하고 있다.(각국의 차별금지법, 법무부, 2008) 이처럼 선진국이라 일컬어지는 국가들이 차별금지법 등 다양한 법제도를 통하여 억압받는 사람들을 1차적으로 방어해주고 평등한 삶을 보장하는 기본법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심각한 차별이 일어났다고 하더라도 그것에 대해 구제 및 방어할 수 있는 법과 제도가 전혀 없다. 따라서 우리 사회에 성소수자들이 없고, 성소수자들에 대한 범죄나 차별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통해 해결할 수 있는 법이 없기 때문에 성소수자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기회가 없고 따라서 ‘없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앞서 일어난 동성애 혐오 광고만 하더라도 차별금지법이 존재했다면 그렇게 쉽게 동성애를 비하하는 광고를 낼 수 있었을까? 동성애자라서 불행하게 사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인 편견을 끊임없이 재생산 하는 세력들 때문에 불행하다는 것을 그들은 알고 있을까?


이 혐오와 관련하여 눈에 띄게 활동하고 있는 바성연이 10월 8일자로 낸 반박(?) 성명을 보자. 신문에 동성애가 사회를 무너뜨린다고 광고하면서 동성애자를 혐오를 하지 않는다고 한다. 동성애를 일컬어 동성애 현상이라고 표현한다. 전문가집단이 아니므로 해답을 줄 수 없다고 한다. 그러면서 동성애자가 얼마나 되겠느냐고 코웃음 친다. 동성애를 찬성과 반대 할 수 있는 것으로 논의를 끌고 간다. 에이즈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무시하고 동성애가 최대의 원인이라고 이야기 한 후, 그것에 비판하는 이야기는 모략이라고 주장한다. 우리나라에서 동성애와 관련한 혐오범죄는 없다고 한다. 갑자기 동성애자와 탈북자를 비교한다. 아마 그 글을 접하는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무엇이 문제인지 알 것이다. 바성연과 필자가 말하는 ‘정상적인’의 기준이 다를 수 있겠지만 말이다.


나치가 처음으로 동성애자를 탄압했을 때 사람들은 자신과 상관없는 이야기라며 그 탄압을 묵과하거나 동조했다. 그리고 곧 나치는 유태인을 탄압했고, 집시를 탄압했고, 사회주의자를 탄압했다. 결국 독일의 민주주의 전부를 탄압하였을 때 사람들은 그때서야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이미 주변에는 함께 해 줄 사람들이 아무도 없었다. 지금 당장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를 멈추지 않는다면 우리사회 또한 위와 같은 경로로 후퇴할 것이 분명하다. 역사는 거짓말 하지 않으며 우리에게 항상 교훈을 준다.


레이가 (민주노동당 성소수자위원회)

Comment

  1. j 2010.10.26 11:46

    민주노동당에 성소수자위원회가 있어서 이런 일들을 함깨 해주는 것이 정말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소수자를 위한 많은 활동을 하기를 기대합니다.

  2. 이쁜 나 2012.04.24 15:13

    하나님이나 예수님께서도 동성애자들을 이해하실거얘요! 걔네들은 선천적으로 동성애기질이 있는자들인데 막무가내로 정신병자로 몰수는 없잖아요?

살과 살이 마주치는 감각의 제국, 혹은 열정의 시대

2010.10.18 15:04 | Posted by 민주노동당 성소수자위원회 성소수자위원회

-  자전소설『테이킹 우드스탁』과
   영화 <테이킹 우드스탁>가 욕망하는 것


“사랑받을 가망이 없다고 느끼게 되면 섹스는 순전히 육체적 경험으로만 남는다. 그로부터 얻는 쾌감, 그 육체적 감정적 황홀경, 그 순수한 에너지의 분출은 외로움과 이성애자 세상으로부터의 전면 거부라는 감옥으로부터 탈출할 구멍을 제공한다. 오직 성적일지언정 누군가 나를 열렬히 원한다는 그 순수하고 강렬한 체험은 인생에 정당성을 부여한다. 나를 원하는 누군가 있다는 것은 기꺼이 살아갈 이유가 되어준다. 성적인 접촉, 어떻게 정의되든 그 접촉은 많은 게이들의 피와 뼛속 깊이 녹아 있는 존재론적 고독에 대한 해독제가 되었다. 우리의 성적 취향이 마음에 안 든다는 이유로 사회가 우리를 억압할 경우, 섹스는 혁명적인 행위가 되고, 많은 이들에게는 분노를 표출하는 행위가 된다. 그것은 세상을 향해 치켜올리는 가운데 손가락이자, 우리를 경멸하는 이들에게는 골칫거리였다. 그것은 우리가 얼마나 다른지를 확인시켜준다. 그것은 우리도 살아갈 권리가 있음을 주장한다.”

- 엘리엇 타이버, 『테이킹 우드스탁』중에서 



긴 인용으로 이 글의 서두를 연다. 전설의 록 페스티발인 ‘우드스탁 페스티발’의 창시자이자 화가 및 극작가로 다재다능한 활동을 해온 엘리엇 타이버는 자전 소설『테이킹 우드스탁』을 통해 60년대를 회고한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소설은 엘리엇 타이버가 우여곡절 끝에 ‘우드스탁 페스티발’을 성공적으로 개최하며 역사의 한 획을 긋는 과정을 생생하게 묘사한다. 그런데 사실 그가 더욱 천착하고 있는 지점은 게이라는 자신의 성 정체성을 둘러싼 다양한 욕망과 경험들이다. 거기에는 유명한 사진작가 로버트 메이플소프, 극작가 테네시 윌리엄스, 배우 록 허드슨 등과의 내밀한 성적 체험에서부터 스톤월 항쟁에 이르는 공식적 역사까지 세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성 소수자들이 꿈꾸는 혁명은 금지된 육체적 욕망에서 비롯된다. 내가 욕망하는 몸과 나를 욕망하는 몸을 자유롭게 향유하는 것. 혁명은 몸에 대한 억압의 사슬을 끊어버리는 데서 출발한다. 그들에게 있어 섹스란 억압의 원인이자 또한 그 억압에 저항하기 위한 최선의 도구이다. 엘리엇 타이버가 과거에 유명 인사들과 벌였던 성적 경험들을 술회하는 것은 단순한 스캔들이나 가십거리로 독자들의 호기심을 충족시켜주기 위해서가 아니다. 자신의 섹스 라이프를 밝히며 공공연하게 가시화하는 것은 그자체로 성 소수자 저항 운동의 기저를 이루는 실천이다. 나아가 그것은 오늘날 주류 역사에 매몰된 퀴어 역사를 복원해내는 고유한 언어의 발명이자 서술 방식이다.


엘리엇 타이버에 따르면, 우드스탁 페스티발은 바로 이 퀴어들이 최전선에 서 있는 몸의 정치학에서 기인한다. 따라서 퀴어 주체인 그가 우드스탁 페스티발의 선구자가 된 것은 당연한 귀결일지 모른다. 이제 그곳에는 성 소수자들을 위시해 세상의 부조리한 핍박에 맞서려는 모든 소수자들의 열정이 결집한다. 미국 전지역에서 모여든 히피들은 저항의 음악에 몸을 맡기고서 마약에 취해 섹스를 하면서 몸의 감각 중추들을 자극하고 증식한다. 그것은 실패한 이성의 시대를 종식시키고자 육체적 접촉이 주는 쾌감에 기회를 제공한다. 이토록 서로의 몸을 갈망하고 서로의 체온을 원하는데, 존재의 이유에 무엇이 더 필요한가! 어떠한 정제된 율법도 살과 살 사이를 비집고 들어올 수는 없다.


이 자전 소설의 진솔한 언어들은 이안 감독의 섬세한 손길을 거쳐 영상으로 옮겨진다. 영화 <테이킹 우드스탁>은 이안 감독에게 있어 <결혼 피로연>, <브로크백 마운틴>과 더불어 퀴어 영화 3부작을 완결하는 영화이며, 제작자인 ‘포커스 픽처스’의 제임스 샤머스에게 있어서는 <브로크백 마운틴>과 구스 본 산트 감독의 <밀크>에 이은 퀴어 영화 3부작의 마지막 작품이기도 하다. 감독으로서, 또 제작자로서 자신의 영화 세계를 일단락하기 위해 선택한 작품은 전작들보다 한층 더 여유롭게 관객들을 감각의 제국으로 이끈다.


영화는 원작에서처럼 엘리엇 타이버가 동성애자로 겪어야만 했던 다양한 경험들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50만 명이 운집한 우드스탁 페스티발의 다채로운 볼거리들을 감각적으로 시각화하는 데 주안점을 둔다. 아마도 원작이 보여준 성적 경험들의 적나라한 묘사에 매혹되었던 관객들이라면 영화의 다소 밋밋하고 느슨한 플롯에 실망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이안 감독이 방점을 찍은 부분은 분명 우드스탁 페스티발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원작과 전혀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안 감독은 영화 매체가 가진 장점을 최대로 부각시키기 위한 취사선택을 했다. 한정된 러닝타임 속에서 시각화의 대상으로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했던 것은 바로 우드스탁 페스티발의 풍광이다. 우드스탁 페스티발의 완벽한 시각적 재현만으로도 엘리엇 타이버의 목소리가 농밀하게 감각적으로 기입될 수 있다. 영화는 서사 장르이기에 앞서 시각 예술임을 명심하자.


그가 제시하는 우드스탁 페스티발의 재현 전략은 크게 두 가지이다. 먼저 페스티발이 벌어지는 베델 평원으로 향하는 히피들의 긴 행렬을 공들여 재현하고 있는데, 그 모습을 긴 호흡으로 관조하듯 담아낸다. 엘리엇 타이버가 책을 통해 들려준 그 세계는 생생한 시각 이미지로 재탄생하여 마치 뉴스릴을 연상시키는 듯한 화면 속으로 관객들을 자연스럽게 초대한다. 그리고 화면을 여러 개로 분할하여 분주한 페스티발의 광경을 다양한 각도에서 보여준다. 그것은 동시 다발적으로 일어나는 행위들을 하나의 스크린에 담아내기 위한 노력이며, 곧 감각을 최대치로 끌어내고자 하는 노력이다.


그는 여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주인공 엘리엇의 시점에서 화면을 일그러트리며 감각을 극대화한다. 마약에 취한 엘리엇의 시선에 투영된 세상을 그대로 재현해내기 위해 화면의 왜곡도 불사한다. 알록달록한 천 조각 위의 문양들은 꿈틀대고 페스티발이 한창인 베델 평원은 파도치듯 울렁거리며 몽환적인 불빛을 뿜어댄다. 이러한 영상의 스펙터클을 통해 관객은 페스티발의 중심으로, 감각의 중심으로 한 발짝 더 들어간다.


히피들이 밀집한 채 나체로 자유롭게 어울리는 그곳은 영화 <브로크백 마운틴>의 원초적 공간인 ‘브로크백 마운틴’이 확장된 공간이다. 고리타분하고 편협한 세상에 반기를 드는 욕망의 몸짓이 꿈틀대는 공간, 혹은 그 욕망이 유일하게 허락되는 공간으로서 일맥상통한다. 또한 <테이킹 우드스탁>은 동시대 <브로크백 마운틴>의 실패한 동성애보다, 그리고 <결혼 피로연>의 게이 아들이 보여준 가부장과의 타협보다 멀리나간, 시대를 초월한 욕망을 전시한다. 적어도 그곳에서만은 엘리엇이 남자와 키스하는 순간, 주변의 환호성을 받는다.


이제 우리는 책을 통해서건, 영화를 통해서건 마음을 열고 느긋하게 감각의 제국, 열정의 시대에 몸을 맡기면 된다. 그러면 살과 살이 마주치며 감각하기 위해 존재하는 몸의 가치를 60년대의 그 치열했던 저항의 공간이 환기 시켜 준다. 우리는 그렇게 감각하는 몸을 소유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든지 살아갈 권리가 있다.



김경태 (동성애자인권연대)

Comment

  1. 캬.. 2010.10.23 08:22

    저도 이 구절 보면서 떨렸는데 말이지요...

나와 민주노동당 - 강석주 성소수자위원장

2010.10.11 19:36 | Posted by 민주노동당 성소수자위원회 성소수자위원회

 

강석주(민주노동당 성소수자위원장)



나와 민주노동당. 어디서 어떻게 이야기를 꺼내야 할지 참 어렵기만 했다. 간단하게 정리를 해 보자면 민주노동당은 “
내가 살아가면서 최초로 가입한 유일한 정당이 민주노동당이다.”라고 정의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현재 내가 정치운동을 하는 공간이자 마음 한구석에는 늘 안타까움을 가지고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민주노동당에 가입한 지 많은 세월이 지났지만 사실 처음 가입할 때에는 “정치를 통해 새세상을 꿈꾸기 위해..”라는 거창한 무언가가 있어서 가입을 했던 것은 아니었다. 사실 그 시기에 나에겐 정치란 TV에서 짖는 dog소리나 내 의사와 무관하게 돌아가는 세상이라고 생각 했던 것 같다. 그럼에도 민주노동당에 가입하게 된 이유는 주변에 알고 지내던 사람들이 민주노동당 당원이었고, 열성적으로 나에게 열변을 토하면서 정치의 중요성을 말해주던 사람들로 인해 민주노동당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 사람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들이 바라는 세상이 나에게는 조금 더 좋은 세상이 되지 않을까?”라는 반신반의함으로 가입 했던 것 같다. 여기에 조금 더 덧붙이면, 내가 가입한 당이 성소수자위원회가 존재하였고, 내 문제에 관심있는 정당이라는 것도 가입에 한몫한 것 같기도 하다.


그 이후에 평당원으로 생활을 하다가 분당이후에 다른 지역위원회와 부문위원회도 어려웠겠지만 성소수자위원회도 상당히 많은 당원들이 탈당을 하였으며, 위원회의 존폐 위기에 놓이게 되었다. 이때부터 내가 성소수자위원회 활동을 열심히 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민주노동당의 성소수자위원회는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없어져서는 안되는 위원회라고 생각을 했다. 기존의 다른 위원회들과는 달리 당내의 투쟁을 통해 만들어낸 위원회 이기도 하거니와 그 정당의 진보성을 볼 수 있는 하나의 지표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모두가 성소수자, 동성애자를 비정상에 정신병자라고 이야기 하더라도 진보정당은 이러한 문제에 단호하게 대응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민주노동당 안에 성소수자위원회는 없어서는 안되는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고 생각한다.


분당 후 비대위 체계에서 운영위원을 맡게 되면서 정치조직안의 활동을 하게 되었고, 이후에 성소수자위원회 위원장이 되었지만 사실 나에게 정치와 정당은 아직까지 어색한 자리임은 분명하게 느낄 수 있다. 아직도 정당의 관계자를 만날 때마다 뒷걸음치고, 정치의 주요 이슈들에 대해 더욱 열성적으로 문제를 이야기 하지 못하는 내 모습을 볼 때면 정당이라는 옷은 내 자신을 위축시키고 답답하게만 하는 공간이다. 그러나 나는 민주노동당의 정치를 하는 것이 아니라 성소수자로서 내 권리를 위해 민주노동당에 성소수자위원회 활동을 한다고 생각하려고 한다. 성소수자로서 나의 권리, 내가 살아가고자 하는 세상에 한 걸음 다가가기 위한 활동을 위한 자리인 것이다. 그곳에 정당이든 단체이든 간에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정당이라는 곳이 정치적인 이해관계가 얽힌 곳이라 성소수자 문제 뿐만 아니라 다양한 이슈와 문제들에 대해 진보성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위원회의 몫이라는 것은 이제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이제 위원장도 2년째니 출마안하세요?’ 라는 말이나 ‘이번 선거에는 성소수자 후보를 만들어야지요!’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내가 정치의 한 자락에 서 있는 실감을 하게 된다. 내가 민주노동당에서 바라는 점이 있다면, 하비 밀크처럼 성소수자 정치인이 될 수는 없지만, 하비밀크와 같은 성소수자 정치인이 설 수 있는 발판을 만들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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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j 2010.10.26 11:51

    모두가 거창한 꿈을 꾸고 정당에 가입하기보다는 자신의 삶에서 조금더 나아지기를 희망하면서 운동을 함께 만들어 가는 것 같습니다. 아직 민주노동당이 미흡하고 성소수자들에게 희망이 되지 못하더라도 함께 투쟁하고 연대해 나가면서 성장하기를 바랍니다. 성소수자위원회와 함께 연대하고 싸워나가겠습니다.

성소수자 유권자 운동과 지역정치

2010.10.11 18:22 | Posted by 민주노동당 성소수자위원회 성소수자위원회


 
성소수자 유권자 운동과 지역정치

이 글은 2010. 6. 2 지방선거가 끝나고 나서 7.3 민주노동당 성소수자위원회 주최로 열린 정치포럼에서 발표된 글을 재수정하였습니다. 시간이 많이 지났지만 선거에 대응했던 성소수자 운동을 되돌아본다는 측면에서 유의미할 수 있다는 생각에 이번 웹진에 싣기로 하였습니다.



선거를 돌아보며

2010년 선거가 끝났다. 우리가 예상했던 대로 이명박 정부에 대한 불만과 환멸은 선거결과에 그대로 드러났다. 그리고 4대강사업, 세종시 문제, 교육정책 등 그가 추진하고 있는 전반적인 정책에 제동이 걸리기 시작했다. 다만 아쉬운 점이 있다면 선거결과와 다르게 반MB연합의 압력 속에서 부르주아 자유주의 정당인 민주당과의 선거연합을 했던 진보정당의 일관성 없는 원칙이 제대로 평가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선거기간 동안 나는 ‘한명숙 사랑해요’를 외치는 민주노동당 관계자들을 볼 때마다 불편하다 못해 민주노동당 당원으로서 창피하기까지 했다. 진보정당의 역할이 선거연합이라는 그늘에 가려 부르주아 자유주의 정당의 꽁무니나 쫓아다니는 것이라면 과연 당원이라는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것인가 라는 본질적인 의심이 든다. 결과적으로 우리가 그동안 지켜왔던 정책과 신념, 가치관들이 무참히 희생된 것만 같다.

반면 성소수자 유권자로서 선거에 개입해 정치에 참여하는 일은 굉장히 흥미로웠다. 성소수자 인권단체들이 모여 만든 성소수자 차별반대 공동행동은 2010 지방선거 대응으로 후보자들에게 발송할 성소수자 요구안을 마련하였다. 성소수자 요구안을 수용하는 후보들은 적극 지지하고 무응답으로 일관하거나 도저히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답변을 보낸 후보들은 걸러내겠다는 적극적인 의미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무지개행동의 경우 예년과 다르게 2010년 지방선거에서는 ‘우리 동네 무지개가 떴어요’ 라는 캠페인을 별도로 진행했다. 각 지역에 살고 있는 성소수자들의 드러내기를 보여주겠다는 포부를 밝혔지만 아쉽게도 참여율은 저조했다.

마포지역에 거주하는 성소수자들과 지지자들은 최초로 마포레인보우유권자연대(마레연)를 만들어 지역에 함께 살고 있는 LGBT들의 친밀도를 높이기 위한 모임을 가지기도 했고 마포지역에서 출마한 후보자들을 초청하거나 질의서를 보내고 답변을 받아내는 활동을 펼쳤다. 개인적으로는 6월2일 쫑파티 겸 선거결과를 함께 보는 자리에 참여했었는데 사람들의 참여도가 기대이상으로 높아 조금은 놀랐다. 마레연이 선거가 끝난 지금도 지역에 함께 거주한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모임을 유지하려고 한다는 점은 좋은 성과로 남는다.

그 외 동성애자인권연대는 서울 지역 민주진보 교육감 단일화 추대과정에 직접 참여하였고 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는 전국의 교육감 후보들에게 질의를 보내고 답변을 받은 후보들을 공개했다. 이 모든 과정들이 유권자로서 성소수자들도 선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집단임을 드러내기 위한 유의미한 시도들이었다.

그리고 진보정당의 성소수자 관련 공약들도 예년과 다르게 구체화되었다는 점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싶다. 차별금지조례, 1인 가구 지원, 성소수자 인권기본조례, 다양성 위원회 설치 등 지금이라도 당장 시도할 수 있는 많은 공약들이 등장했다. 하지만 이 역시도 당선된 후보자들에게 적극적으로 제안되지 않는다면 우선순위에 밀려 다음 선거의 공약으로 준비시킬 수밖에 없을 것이다.


조직된 성소수자 유권자 운동의 집단적인 드러내기가 필요하다.

선거에 앞서 개인적인 친분이 있는 여러 사람들을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성소수자 운동을 접하지 않았던 사람들조차도 내가 잠정적으로 지지하고 있는 후보군에 대한 지지표명을 적극적으로 하고 있었다. 자신이 지지하고 있는 후보가 가지고 있는 성소수자 공약까지 알고 있었다면 지지를 넘어 확고한 투표로 이어졌을지 모른다. 그 투표가 조직된 성소수자 유권자 운동과 연계된 것이었다면 어떠했을까? 만약 성소수자 100명 중 50명이 진보후보를 지지했다는 유의미한 결과를 우리가 사전에 가지고 있었다면 선거대응도 조금도 달랐을 거고 후보자들이 질의에 대해 답변하는 자세도 조금은 바뀌었을 것이다.

지금까지 성소수자 운동이 선거에 개입해왔던 활동들을 정리해보면 대개 요구안을 만들어 제안하고 각 후보자들에게 질의서를 보내 답변을 공개하는 방식이었다. 2010년 선거에서 특징적인 것을 꼽는다면 동성애자인권연대처럼 후보 추대위 과정부터 참여하는 활동, 무지개행동처럼 요구안을 만들고 지역의 성소수자들이 몇 명이 있는지 드러나게 하는 방식, 마레연처럼 아예 지역 LGBT 유권자모임을 만들어 지역 후보에 한정해 만나는 시간을 갖거나 답변을 받는 방식으로 정리될 수 있다.

하지만 이 모두는 선거 전 활동으로 선거가 끝나면 그동안 준비했던 모든 활동도 정지되어 버린다. 아직까지 선거가 단체의 시기에 맞는 기획활동처럼 취급받기 때문이다. 다른 인권운동과 다르게 성소수자 운동이 선거에 직접적으로 개입해 다양한 유권자 운동을 하는 이유는 성소수자들이 쉽게 드러내지 못하는 삶의 현실과 맞닿아 있는데, 선거 전 준비했던 많은 활동들이 허무하게 끝나는 것 같아 아쉽기까지 하다. 선거 전에는 후보자들에게 요구안을 보내 최소한의 약속이라도 끌어내려고 하는데, 이 노력이 선거 후에도 계속 이어져야 장기적인 전망 속에서 성소수자 유권자 운동도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 유권자 운동에 놓여진 과제는 바로 우리가 지금 누구를 지지하고 있고 어떤 후보에게 표가 갔고 왜 지지했는지를 정확히 분석하는 것이다. 성소수자들이 선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집단이라는 점을 각인시킬 수 있는 자료로서 유의미하지 않을까 한다. 오바마가 미대통령 후보시절 그를 지지했던 많은 집단 가운데 성소수자들이 있었다는 것은 많이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그는 성소수자를 대상으로 한 포스터를 만들어 제작하는 등 남다른 공을 들였다. 오바마의 등장과 함께 LGBT들도 다양한 영역에서 정치활동을 이어나갈 수 있게 되었다. 한국의 성소수자 유권자 운동도 성소수자들의 투표가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를 알아야 질의서에 대한 답변을 공개하는 방식을 넘는 운동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2010 지방선거에서 우리가 어떤 후보에게 표를 던졌는지 분석할 수 있다면 다음 선거 때 좀 더 다양한 실험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두 번째로는 진보의 가치를 가지고 당선한 이들과 함께 공약을 현실화시킬 수 있는 후속작업을 지금 당장 진행해야 한다. 유권자 운동은 선거 전만 개입하는 것이 아니다. 다음 선거 우리가 원하는 후보들을 더 많이 등장시키고 우리가 원하는 성소수자 정치인을 발굴해내기 위해서는 선거 후 대응이 굉장히 중요하다. 유권자 운동이라는 탈을 쓰진 않아도 좀 더 중장기적인 목표 속에서 선거 전 약속했던 공약을 지키게 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2010년 지방선거 결과는 후속대응을 하기 위한 좋은 토대가 되었다. 당선자수가 아직까진 미약하지만 진보정당 출신의 당선자들이 이전보다 늘었다는 것은 우리가 지역에서 다양한 시도를 할 수 있게끔 만들어 주었다.

성소수자 유권자로서 정치참여활동을 벌인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진보, 개혁적인 후보를 제외하곤 (때로는 이들 후보조차도) 질의에 대한 답변은 쉽게 무시되기 일쑤고 선거가 현안에 밀려 요구안조차 깊은 고민 속에서 나오지 못하고 있다. 방법도 아직까진 제한적으로 시도되고 있다. 성소수자 유권자 운동의 성장을 위해서는 마레연과 같이 지역에 터를 두고 있는 LGBT들의 적극적인 드러내기가 필요하며, 그것이 전국 단위의 역할을 할 수 있는 조직과 긴밀히 연관될 수 있다면 우리는 힘 있는 유권자로서 비춰질 수 있을 것이고. 정치영역에서 활동하는 성소수자들도 많이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정욜 (민주노동당 성소수자위원회 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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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지방선거를 바라보며, 이제 진보연합이 절실하다.

2010.10.04 15:47 | Posted by 민주노동당 성소수자위원회 성소수자위원회



* 이 글은 지난 6.2지방선거 이후에 성소수자위원회에서 성소수자의 눈으로 6.2지방선거를 바라보면서 쓴 글이며 성소수자포럼에 발제되었던 글입니다. 시기가 많이 지났기는 하나, 그 내용의 중요성이 있기에 웹진을 통해 공유하고 기록하고자 합니다.



곽이경 (민주노동당 성소수자위원회)

6. 2지방선거의 개표결과를 지켜보느라 새벽까지 잠을 설친 사람들이 많았을 것이다. 이미 비슷한 종류의 기사가 많이 나왔으니, 이번 선거를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MB에게 날리는 통쾌한 뒤집기”였다. 더불어 “촛불이 죽었고 보수화되었다”고 이야기하던 논자들에 대해서도, 다시금 급진화의 물결이 저변에 도도히 흐르고 있음을 입증한 선거였다고도 할 수 있겠다. MB가 ‘반성’이나 하라던 ‘촛불국민’들은 높은 투표율로 한나라당을 참패시키며, 4대강 삽질, 민영화, 전쟁몰이, 전교조 탄압, 이명박식 교육, 막가파 개발 등에 제동을 걸었다. 성소수자들이 누구에게 투표했는지야 확인할 길은 없지만, 당연하게도 다수가 한나라당의 참패에 통쾌함을 느꼈으리라.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 두 진보정당들도 2006년 지방선거와 비교하면 대단히 많은 당선자를 낳았다. 특히 민주노동당은 수도권인 인천에서 처음으로 기초단체장을 당선시키고, 울산 북구를 되찾아왔다. 이전보다 더 많은 기초의원과 광역의원들이 당선되었다. 이를 두고 민주노동당은 “반MB민주연합의 승리”라고 이야기한다. 물론 진보정당이 지방자치단체에 진출하면 분명히 진보적 관점에서 노동자, 서민, 억압받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더욱 귀기울여 듣고 실천할 것임은 자명한 일이다.


하지만 반MB민주연합은 문제였다. 선거만 보자면 민주노동당은 민주당과 연합하여 (광역단체장 후보를 단일화하고) 더 많은 기초단체장과 의원들을 당선시킬 수 있었다. 그렇다면 성공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계급정치의 면에서 보자면 아쉬운 점이 너무도 많다. 서울처럼 격전지에서의 성적은 더욱 초라하다. 서울시장후보를 일찍 단일화한 덕분에 진보적 목소리를 거의 들을 수도 없었고, 존재감도 미미했다. 물론 진보신당 노회찬 후보의 정책과 공약이 급진적이고 좋았지만, 선관위가 토론기회에서조차 배제시켜버리는 바람에 아쉽게도 대중들은 진보후보의 목소리 듣기가 힘들었다. 지역에서 선거를 치르는 후보들은, 광역단체장은 민주당과 손잡았는데, 정작 자신은 민주당 후보를 제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안타까운 상황도 생겨났다. 여튼 존재감이 없던 덕분에 서울지역에서 민주노동당의 정당득표율은 전국 절반에 그치고 말았다. 덕분에 그동안 진출했던 서울시의원 비례1번조차 당선되지 못했다.


반면에 내가 사는 영등포구에 구청장으로 출마한 진보신당 후보는 무려 7.6%를 얻기도 했다.(진보정당이 처음 구청장으로 출마했는데도 엄청 높은 득표율이다!) 전국적으로 볼 때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을 합한 진보정당에 대한 지지는 진보%가 넘는 득표율로 나타났다. 그 말은, 반MB정서가 막강하여 민주당의 지지율이 급상승했지만, 한편으로는 적지 않은 사람들이 진보적 대안을 요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반MB정서로 다수가 민주당을 선택하긴 했지만, 사람들은 김대중-노무현으로 이어지는 민주당 정부 진보년도 크게 다를 바 없었다는 사실도 기억하고 있다. 잘 알다시피, 이라크 파병, 한미FTA, 비정규직법, 의료보험 민영화 등을 애초에 추진한 것은 민주당이었지 않나. 그러므로 민주노동당 지도부가 민주당과 공동정부를 구상한다면 강기갑 대표의 표현대로 “진보정당으로서 자신의 정체성과 색깔을 보이지 못하게”될 것이다. 그야말로 차악이 최악이 되어버리는 상황이다.


반MB민주연합을 두고 민주노동당 지도부는 “성공적”이라고 평가하지만, 그 때문에 “진보적 대안”을 염원하는 대중에 부응하는 “진보적 목소리”는 사라지고, 그동안 민주당이 저지른 엄청난 해악과 과오조차 진보의 이미지로 그럴듯하게 포장하는 효과를 낳았음을 꼭 기억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고 진보신당을 민주노동당보다 낫다고 평가할 수는 없다. 심상정 후보도 유시민을 지지하며 마지막 순간 후보 사퇴를 하였고, 부산에서도 민주연합이 성사되었다. 그리고 현재 진보신당은 앞으로의 방향에 대해 여전히 민주연합을 반대하지 않고 열어놓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그러므로 두 진보정당 간에 어디가 더 나았는가를 두고 논의하는 것은 적절치 않은 것 같다.


그럼 민주노동당을 우리는 어떻게 볼 것인가? 민주노동당은 여전히 노동자 계급 정당이다. 당원의 40%가 조직 노동자들이며 여전히 노동계급 이슈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한다. 이번 선거에서의 선거연합이 실망스러운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자유주의적 자본가 정당인 민주당과는 분명히 다르다. 그러므로 아예 민주노동당과의 협력을 거부하거나 민주당 일부로 취급하는 이들에 대해서는, (심정적으로는 이해할지 몰라도) 바로 동의하기는 어렵다. 여전히 민주연합이 아닌 진보연합으로의 방향성은 유효하며, 우리는 이를 실현하기 위해 여전히 노력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우리 성소수자도 반MB민주연합에 기댈 수는 없다. 그것은 앞서 말한 것처럼 성소수자도 민주당에 기대할 것이 없다는 말과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여기서 접할 수 있는 정당과 성소수자 문제에 대한 사례는 극히 제한적이다. 하지만 포퓰리즘적인 자본가 지향의 정당이 어떤 식으로 동성애 쟁점 같은 논쟁적이고 공격받기 쉬운 쟁점을 위기 상황에서 후퇴시켜 버릴 수 있는지 보여주는 예로 80년대 영국 노동당 예가 적절할 것 같다. 다음은 <동성애자 해방과 마르크스주의>에서 관련 사례를 발췌한 것이다.


노동당이 기반한 선거주의 때문에 동성애자 권리를 옹호한 이러한 새로운 정책은 언제나 실행되지 못했다. 19
83년 이후로 동성애자 권리에 대한 지지는 당내부와 우익 양 방향에서 모두 공격받게 되었다. 이런 공격 앞에서 그들은 끊임없이 후퇴했다. 반동성애 감정은 넓고도 깊게 퍼져 있으며, 불과 지난 몇 해 사이엔 더 엄청나게 강해졌다. 언론이 에이즈에 대해 떠들며 병적인 히스테리를 부추겼기 때문이다. 그들은 에이즈를 ‘동성애로 인한 전염병’ 으로 묘사했다. 그런 이데올로기적인 영향 때문에 동성애자 운동과 노동당 안의 동성애자 활동가들은 더더욱 수세에 몰리게 되었다.


동성애자 권리에 대한 지지 여부가 시험대에 오를 때마다, 노동당은 번번히 극적으로 실패했다. 1983년 버몬지 보궐선거에서 피터 태첼 은 여전히 언론이 끄집어 내는 최악의 반동성애적 모함을 받게 되었다. 당시 노동당 당수였던 마이클 풋 은 그를 모른 척했다. 그리고 보도된 바에 따르면, 닐 키녹 은 피터 태첼에 대한 마녀사냥에 관해 질문을 받고 다음과 같이 논평했다고 한다. “피터의 문제는 마녀와 요정 - 요정은 구어로 남자 동성애자를 뜻한다 - 을 구분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채텔은 그의 (좌익적인) 지구당으로부터 ‘공식적인 자리에 나타나지 말고, 비난에도 응수하지 말라’ 는 지시를 받았다. 결국 노동당은 거센 동성애 반대운동에 공공연히 대항하지 않았다. 그러기는커녕 피하려고 애썼다. 그러나 그 문제가 운동의 되었던 이상, 그런 책략은 자기 무덤을 파는 것이었음이 입증되었다.


동맹 (Alliance : 1983년 과 1987년 영국선거에서 자유당과 사회민주당이 결성한 일종의 선거연합) 은 반동성애 물결을 타고 승리를 휩쓸었다. 이번 지방후보는 확실한 이성애자였다. 이 점을 강조하기 위해 선거전단에는 후보 개인의 사진만이 아니라 아내와 아이를 꼭 껴안은 사진까지 들어 있었다. 그가 얼마나 ‘정상적인지’ 보여주려고 말이다.


한 편, 미국 민주당을 현재 진행되는 반MB민주연합에 빗대어 비교하기도 한다. 때문에 일부 시민단체에서는 미국 민주당 모델로 가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진보정당들이 (색깔을 버리고) 민주당 밑으로 모여야 MB를 패퇴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또 적지 않은 이들이 지적하듯이 미국 민주당과 공화당이야말로 다를게 별로 없는 두 정치집단이며, 진보정당들이 민주당과 잘못된 연합을 한 탓에 지금 미국은 대안적 정치세력을 만들어내기 너무 어려워졌다. 지난 대선에서 켈리가 ‘부시만 아니면 다 된다’는 슬로건으로 출마한 것은 왠지 이번 지방선거를 떠오르게 한다. 켈리는 여러분도 알다시피 이라크 전쟁 지지자였다.


그럼 켈리에 대한 지지를 둘러싸고 동성애 쟁점이 혼란에 처하게 된 이야기를 잠시 하고자 한다. 공화당과 민주당은 동성결혼문제를 대선 전략으로 이용하고자 했다. 부시는 이라크전쟁 장기화와 반인륜적인 점령으로 떨어진 자신의 지지율을 사회의 보수적 정서에 기댐으로써 회복시켜보려고 했다. 그 중의 하나가 동성결혼에 대한 반대였다. 동성결혼과 같이 일반적으로 터부시되는 이슈에 대해 보수적인 입장을 취함으로써 사회를 냉각시키고 이라크전쟁에 대한 비난을 모면하려는 것이었다. 한편 민주당 캘리의 텃밭은 메사추세츠주였는데, 그 주에서 동성결혼 합법화 발표가 나면서 켈리의 입장은 좀 난처해졌다. 때문에 그는 각종 보수단체의 공격을 피하기 위해 “동성결혼을 반대하지만 동성결혼을 금지하는 헌법개정에는 반대하는 애매한 입장”을 가지고 있었다. 켈리의 이런 태도는 동성결혼 뿐만 아니라, 사형제도, 낙태 등의 민감한 사안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뉴욕타임즈는 이러한 그의 태도를 매우 기회주의적이라고 비판했다. 이런 그가 도대체 부시보다 나을 것은 뭐였단 말일까? 미국 진보운동은 이 가운데서 우왕좌왕하다가 실패하고 말았다. 공화당엔 우파 동성애자들이 있었는데도 말할 것 없이, 동성결혼을 반대했다. 도저히 이해 안가는 일이지만, 이것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깨달음은, 공화당이든 민주당이든 성소수자에게 해로웠다는 것이다!


한국으로 돌아와보자. 노무현 정부 시절에 여성운동가들이 대거 참여 정부로 들어갔지만 과연 여성의 삶은 나아졌는가? 마치 이제는 뭔가 될 듯할 희망을 주다가 더한 배신으로 끝나는 형국이었다. 우리가 아직도 붙들고 있는 차별금지법은 바로 노무현 정부 시절 누더기가 되었다. 우익 기독교의 거센 반발에 냉큼 성적 지향을 차별 영역에서 삭제해버린 건 다름아닌 민주당 정부였다. 동성애는 약한 고리이다. 동성애에 대한 사회적 낙인과 혐오증은 진보운동도 이 문제에 매우 취약하도록 만든다. 그럴때일수록 누가 우리의 ‘동맹’인가를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성소수자는 민주당에게 배신 당할 것인가? 아니면 부족하나마 소수자들의 권익을 옹호하고, 사회적 차별을 금지하기 위해 애써온 진보 정당과 함께 독자적 대안을 만들어내야 할 것인가? 답은 명백한 것 같다.


현재 당 지도부 선출을 위한 당직선거가 진행되고 있다. 당직 선거 후보들의 공약을 살펴보면 사실상 민주연합을 모두 지지하고 있기 때문에 큰 차이점이 나타나지 않아, 좌파적 관점으로는 누구에게 표를 던져야 할지가 난감한 것이 사실이다. 당의 독자성을 강화하여 실현할 것인지, 진보연합을 통해 민주연합으로 갈 것인지에 대한 방법적 차이만 있을 뿐이다. 어떤 후보는 상대적으로 진보대연합을 강조하긴 하지만 민주연합의 과정으로서의 한계를 두고 있기에 아주 동의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그러면 앞으로는 어떻게 할 것인가?


민주연합에 기댈 것이 아니라 독자적인 진보적 대안을 창출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진보연합을 다시금 성사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우선과제이다. 앞으로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민주연합과 진보연합 사이의 논쟁은 더욱 커질 것이다. 우리는 이런 논쟁에서 성소수자 당원들의 입장을 명확하게 전달할 필요가 있다.


또한, 민주노동당은 이제 인천과 울산에서 구청장으로 지방정부를 이끌게 되었다. 예전 울산에서 두 민주노동당 구청장들이 보여주었던 ‘공무원 노동자에 대한 단호한 방어’가 기억난다. 민주노동당이 지방정부를 구성한다는 것은, 보다 명확한 노동자 서민 중심의 정책(예산배정부터), 중앙정부의 탄압 등에 맞선 단호한 대처와 방어 등을 기대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잘 되면 민주노동당은 진보정치의 희망을 염원하는 대중을 지역으로부터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민주당이나 국참당과의 공동지방정부 구성은 제발 하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이다. 지금이야 민주당이 진보적 언사를 할 지 몰라도 근본적으로 태생이 다른 정당이다. 민주노동당은 민주당이 노동자서민을 배신했을 때 그 책임을 떠안으려는 것일까? 도청에 소수가 임명되어 들어간다한들 주요 정책에 얼마나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을 것인가?


앞서 이야기한 내용의 요지는 “계급 이익”은 “성소수자의 이익”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당이 계급의 이익을 옹호하도록 요구하고 견인하는 것에 우리 몫도 있다는 것이다. 민주노동당이든 진보신당이든 진보운동은 더 이상의 분열을 원치 않는다. 그렇다면 무엇이 필요한가?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이제는 진보연합이 절실하다.’ 그리고 그것은 단지 기술적인 선거연합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 식의 연합은 선거공학에 따라 무원칙하게 민주당과도 타협하는 잘못을 범한다. 진보연합은 이명박 정부에 맞선 진보진영의 공동투쟁의 연합이 되어야 한다. 지금 국민들은 이명박 정부의 모든 것에 분노하고 있다. 2008년에 우리가 보았던 것과 마찬가지로, 투쟁의 고양은 진보정치의 장을 넓혀 잠재적으로 우리와 함께할 동지들을 발견하게 해 줄 것이다. 투쟁 속에서 건설된 진보연합은 비로소 독자적 대안을 건설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건설되는 독자적 대안이라야 진정 이 사회를 변화시키기 위한 의미 있는 토론과 실천으로 이어질 것이다. 성소수자 운동도 그 일부가 되어야 하고 함께 이끌어 가야 할 것이다.



 <참고 <동성애자 해방과 마르크스주의>에서 영국 노동당의 사례 일부 발췌함>

GLF가 완강했던 1970년대에는 투사들이 노동당에 신경쓸 겨를이 거의 없었다. 대다수의 혁명가들이나 동성애자 활동가들에게 노동당은 활동의 중심이 아니었다. 1970년대 후반에 들어, 동성애자임을 솔직하게 드러냈다는 이유로 많은 동성애자들이 해고당했다. 그러자 투쟁이 툭툭 불거져 나왔다. 노동당은 이런 운동에 동참하지 않았다. 오히려 어떤 경우에는 노동당 지방의회가 해고에 앞장서기까지 했다!

1979년에 수잔 쉘은 레즈비언임을 솔직하게 드러냈다는 이유로 뉴햄의 노동당 지방의회에 의해 해고당했다. 이것은 숱한 사례들 가운데 하나에 불과했다. 전통적으로 성 정치에 관한 노동당의 전력은 매우 보수적이었다. 그들에게는 동성애를 상류계급의 비행(非行) 쯤으로 여기는 강경한 청교도적 감리교파의 기질이 있었다. 이런 태도는 스탈린주의와 아주 비슷했다.

1960년대에 노동당은 동성애자들의 권리나 그 어떤 법률개혁도 옹호하지 않았다. 그런 일들은 언제나 의회 내 자유투표의 결과였다. 노동당은 보수적인 두 지지층, 즉 감리교 유권자들과 가톨릭 유권자들을 늘상 의식했다. 그래서 피억압 계층의 옹호자 역할을 단 한번도 하지 않았던 것이다. 심지어 인종차별주의에 대한 투쟁처럼 노동당이 ‘단단히 책임지겠다’ 는 사안에 대해서도 노동당의 행적은 보수당과 다를 게 없다.

인종차별적인 이민규제의 역사가 그 사실을 증명해 준다. 동아시아로부터의 아시아계 이민의 제한이나 2계층제 (two-tire - 법제화된 개념은 아니고 범죄자.동성애자 등을 천민으로 분류하는 것) 영국 시민권이라는 개념을 도입한 것도 노동당 정부였다. 백인종차별주의자들의 표를 잃게 될까봐 두려워한 나머지 원칙에 대한 책무를 저버렸던 것이다. 하지만 노동당의 의무 태만이 단순히 불성실함이나 개인적인 배신에서 비롯한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개량주의의 한계 때문이다. 노동당이 내각을 구성하고 있을 때에도 실질적인 권력은 그들에게 없다. 여전히 국가의 운영권을 쥐고 있는 건 선출되지 않은 공무원이나 판사, 군장교 등이다. 일개 노동당 정부가 그들의 행실과 편견을 제어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런데도, 대부분은 아니더라도 꽤 많은 1970년대 동성애자 활동가들이 지금은 노동당에 들어가 있다. 동성애자 밀집지역에 반대할 정도로 이제 동성애자 해방운동은 거의 개량주의와 한통속이 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어떻게 이런 지경에까지 이르렀을까?

1970년대 계급투쟁이 침체되면서, 당장 변화가 일어나리라 기대하던 많은 활동가들은 사기가 떨어졌다. 이미 노동계급에게는 사회를 박살내고 새세상을 건설할 만한 힘이 없는 듯했다. 이 막다른 골목을 빠져나갈 길을 제시해 주는 게 노동당인 것 같았다. 남녀 동성애자들이 자율성을 계속 유지하면서 일할 수 있는 공간을 노동당의 광범한 교회조직이 제공해 준다는 주장이 대두되었다. 그들은 더 폭넓은 노동운동의 일부가 되고, 노동당 조직을 통해 사회를 서서히 변화시킬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들은 혁명적인 변화를 포기하고 점진적인 개혁을 택했다. 그들은 해당 위원회에서 적당한 사람들을 골라 자기들 편으로 끌어들이려고 노력했다. 말만 달랐지 정치에서는 GLF 이전의 CHE 꼴로 되돌아간 거나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한편에서는 노동당 내 일부가 변하고 있었다.

당의 왼편에 있던 많은 사람들이 노동당 정부의 최근 행적에 환멸을 느끼고서 전통적인 노동당 정치에 이의를 제기하였다. 1980년대에는 토니 벤 이 신좌파의 지도자가 되었다. 단순히 노동당 대회에서 합당한 결의안 (노동당 정부는 늘상 이것을 묵살했다)을 내오는 것 뿐 아니라, 활동가들이 하원의원들과 정부를 통제할 수 있도록 당의 구조를 바꿀 필요가 있다고 그는 주장했다.

또한 신좌파는 1970년대 운동의 핵심을 추출해낸 새로운 정치를 받아들였다. 그 결과 이전의 노동당 좌파들보다 훨씬 더 강력하게 억압에 맞선 투쟁을 강조하게 되었다. 이것을 위하여 두가지 상호보완적인 전술이 채택되었다. 하나는 당의 정책과 체질을 변화시키기 위해 전국적으로 노동당 내부에서 투쟁하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즉각적인 개혁을 밀어붙이기 위해 지방의회에 있는 좌파의 기반을 활용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특히 동성애자들의 권리를 이전 어느 때보다 더 힘차게 옹호하는 것을 뜻했다.

노동당 대회에서 소수파는 평등 고용정책을 통과시키고, 동성애자 조직에 보조금을 지급했으며, 남녀 동성애자 분과위원회를 창설했다. 그리고 1986년 노동당 대회에서는 정식으로 동성애자 권리에 대한 지지가 확인되었다. 이 사안을 다음번 선거강령에 포함시키는 데는 3분의 2의 득표차가 필요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동당이 기반한 선거주의 때문에 동성애자 권리를 옹호한 이러한 새로운 정책은 언제나 실행되지 못했다.

1983년 이후로 동성애자 권리에 대한 지지는 당내부와 우익 양 방향에서 모두 공격받게 되었다. 이런 공격 앞에서 그들은 끊임없이 후퇴했다. 반동성애 감정은 넓고도 깊게 퍼져 있으며, 불과 지난 몇 해 사이엔 더 엄청나게 강해졌다. 언론이 에이즈에 대해 떠들며 병적인 히스테리를 부추겼기 때문이다. 그들은 에이즈를 ‘동성애로 인한 전염병’ 으로 묘사했다. 그런 이데올로기적인 영향 때문에 동성애자 운동과 노동당 안의 동성애자 활동가들은 더더욱 수세에 몰리게 되었다.

동성애자 권리에 대한 지지 여부가 시험대에 오를 때마다, 노동당은 번번히 극적으로 실패했다. 1983년 버몬지 보궐선거에서 피터 태첼 은 여전히 언론이 끄집어 내는 최악의 반동성애적 모함을 받게 되었다. 당시 노동당 당수였던 마이클 풋 은 그를 모른 척했다. 그리고 보도된 바에 따르면, 닐 키녹 은 피터 태첼에 대한 마녀사냥에 관해 질문을 받고 다음과 같이 논평했다고 한다.

“피터의 문제는 마녀와 요정 - 요정은 구어로 남자 동성애자를 뜻한다 - 을 구분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채텔은 그의 (좌익적인) 지구당으로부터 ‘공식적인 자리에 나타나지 말고, 비난에도 응수하지 말라’ 는 지시를 받았다. 결국 노동당은 거센 동성애 반대운동에 공공연히 대항하지 않았다. 그러기는커녕 피하려고 애썼다.

그러나 그 문제가 운동의 되었던 이상, 그런 책략은 자기 무덤을 파는 것이었음이 입증되었다. 동맹 (Alliance : 1983년 과 1987년 영국선거에서 자유당과 사회민주당이 결성한 일종의 선거연합) 은 반동성애 물결을 타고 승리를 휩쓸었다. 이번 지방후보는 확실한 이성애자였다. 이 점을 강조하기 위해 선거전단에는 후보 개인의 사진만이 아니라 아내와 아이를 꼭 껴안은 사진까지 들어 있었다. 그가 얼마나 ‘정상적인지’ 보여주려고 말이다.

1986년 노동당 대회에서 동성애자 권리에 관하여 좌파가 거두었던 승리에도 오점은 남아 있다. 그때도 마찬가지로 그 문제를 숨기려는 시도가 있었기 때문이다. BBC 방송이 대회 생중계를 딱 한번 중단한, 동성애자 권리를 토의하는 시간 15분을 ‘놀이학교’ 라는 프로그램의 시간대와 일치하도록 용의주도하게 계획했던 것이다!

대부분의 노동당 지방의회에서 공식적인 고용차별을 폐지하고, 남녀 동성애자 분과위원회를 만들었으며, 지방의 동성애자 단체에 자금을 지원했다. 그러나 동성애자 해방을 위해 한 일은 그게 전부였다. 이런 모든 일은 환영할 만한 일이긴 했다. 그러나 지방세 지출상한선을 저지하는 데 실패한 탓에 그들에게는 자금이 부족했다. 때문에 실제로 남녀 동성애자들에게는 별로 달라진 게 없었다. ‘긍정적인 이미지’ 정책을 통하여 유일하게 이 문제에 좀 더 깊이 다가가려 했던 것은 해린지 지방의회였다.

이 정책은 지방의회의 모든 선전 통로를 이용하여 남녀 동성애자들의 긍정적인 이미지를 조성하려던 것이었다. 특히 학교에서 이 정책을 활용하여 오직 이성애만이 ‘정상적’ 이라는 관념을 되받아칠 계획이었다. 그렇지만 노동당의 분파에 의해 채택되어 1986년 지방선거의 쟁점이 되었다.

지방의 보수당원들은 당장에 우익의 반발을 충돌질했다. ‘부모 행동단체’ 가 설립되었다. 이들은 가두에 나서서 ‘변태성욕자들’ 에 반대하고 ‘품위있는 가족의 가치’를 옹호하는 지지세력을 규합했다. 몽상가가 아니고서야 그 정책에 대한 반대가 전혀 없으리라고 예상한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그런 우익 광신자들과 싸울 전술이 노동당에게 없었다는 것이 비극이었다. 반격에 맞서려는 운동이 시작되긴 했지만, 주로 노동당 외부의 활동가들에 의존한 운동이었다. 이 운동은 ‘긍정적인 이미지’ 정책이 지방의회의 공식 정책으로 채택되게 하는 것을 주된 임무로 삼았다. 그래서 그 이상으로 지방의회를 ‘난처하게 할’ 지 모를 일은 일체 하지 않도록 정해져 있었다. 이런 이유로 그들은 후퇴하기 시작하면서 지방의회에 맞설 수가 없었다.

노동당 해린지 지구당은 공식적으로는 이 정책을 포기한 적이 없었다. 그저 그대로 내버려 두기로 결정했을 따름이었다. 동성애자 권리가 선거에서 불리하게 작용하리라는 게 점점 더 분명해 짐에 따라, 노동당 최고의원들까지도 그 문제에서 손 뗄 궁리만 하게 되었다. 1986년 후반에 결정적인 배신의 순간이 다가왔다. 반발은 흑인 사회로까지 확대되었다. 그 결과 ‘동성애는 흑인가족의 기초를 위협하려는 백인들의 계략’ 이라고 단언하는 ‘흑인 부모 행동단체’ 가 등장하였다.

1986년 12월에는 이 단체 지도자들 가운데 한 사람이 교육위원회 - ‘긍정적인 이미지’ 정책을 후원했던 바로 그 단체다! - 의 인종관계 수석고문으로 임명되었다. 1987년 총선의 전초전에서 보수당과 동맹은 동성애자 권리문제를 이용해 노동당을 공격하였다. 이것은 ‘정신나간 좌익’ 에 대한 반대운동의 일부였다. 그들이 공격하면 할수록 노동당은 점점 더 후퇴했고, 이러한 후퇴는 1987년 2월 그린위치 보궐선거 직후의 패주로 이어졌다.

동맹의 뜻밖의 승리에 자극을 받은 키녹의 공보관 패트리샤 헤윗 은 런던 하원에 다음과 같은 편지를 보냈다. “연금 수령자들 가운데 남자 동성애자와 여자 동성애자는 비용이 많이 듭니다.” 노동당의 누군가가 이 편지를 즉시 푸퍼트 머독 의 『선』(Sun) 지에 누설했고, 『선』지는 그것을 이용하여 동성애자 권리를 맹렬하게 공격하기 시작했다. 오래 전부터 동성애자 권리에 대한 지지를 포기할 수 없을까 호시탐탐 노리고 있던 노동당은 당장 이 운동에 들러붙었다.

헤윗이 우익 광신자였던 것은 아니다. 그녀는 1970년대에는 전국 시민자유 회의 (NCCL : 1989년부터 ‘자유’ 라는 이름으로 개칭한 시민운동단체) 의 서기로 있으면서 NCCL이 동성애자 차별에 대해 원칙적인 입장을 고수해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하기도 했다.

그녀는 단지 노동당이 벗어날 수 없는 선거정치의 논리를 유독 분명하게 표현하고 있을 뿐이다. 동성애자 권리는 표를 끌어모을 수 없는 문제니까 빼버리는 게 당연했던 것이다. 노동당 좌파는 거의 대부분 헤윗의 편지에 이의를 달지 않았다. 그러기는커녕 오히려 그들도 패주에 동참했다. 동성애자 권리를 가장 충실하게 지지했던 노동당 런던 지구당도 곧이어 그 문제와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그들이 모두 우익을 입 다물게 만들어 버리면 반격도 사라질 거라고 기대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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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애자 당원으로부터 온 편지-성소수자를 위한 진보정당의 역할과 과제 ①

2010.10.04 15:38 | Posted by 민주노동당 성소수자위원회 성소수자위원회

민주노동당 성소수자위원회
위원 여기동

여는글

안녕하세요^^ 저는 성소수자위원회의 당원 여기동입니다. 이렇게 편지로 당원 여러분을 만나게 되어 반갑습니다. 국민승리21에 가입하여 당원이 되었고 성소수자위원회에서 2004년 초대위원장을, 그리고 2008년 가슴 아픈 분당의 해에 5기 위원장을 맡으면서 어느덧 6년 동안 성소수자위원회의 길을 걸어왔습니다.

워낙 글재주가 없어서 제목을 어떻게 정할까 고민하던 차에 문득 떠오른 생각이 논문처럼 딱딱한 글 보다 ‘지인으로부터 온 편지’처럼 편안하고 마음으로 읽을 수 있는 형식이 좋겠다 싶었습니다. 그래서 제목을 ‘동성애자 당원으로부터 온 편지’로 적어보았습니다‘. 갑작스레 웬 편지일까? 라는 불명확한 테마를 정확하게 전달해야 할 필요가 있겠다 싶어 부제로 성소수자를 위한 민주노동당의 역할과 과제라는 표현을 더했습니다. 이 두 가지 제목은 당원들이 이 글을 읽고 저자가 무엇을 이야기하려고 하는지 관점을 명확하게 파악하는데 도움을 줄 것입니다.

이 편지는 한 동성애자 당원이 민주노동당과 당원들에게 전하는 작은 글입니다. 비록 글이 미진하고 표현이 부족한 점이 있더라도 여러분의 마음의 텃밭에 씨앗이 되어 예쁘게 담겨졌으면 합니다.

여러분에게 들려드릴 테마는 성소수자들이 살아가는 사회적 맥락(social context), 억압과 해방을 향한 투쟁, 당 강령의 의미와 가치 그리고 진보정당의 역할과 과제입니다.


1.한국사회 성소수자와 사회적 약자들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

저는 올해 48살이 되었습니다. 카톨릭학생회 학생운동을 통해 새로운 세계관을 만나며 두 가지 꿈을 갖게 되었습니다. 하나는 진보정당 당원이 되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노동자계급 차원에서 병원노동조합원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 당시에 동성애운동은 미처 생각하지 못하였지만 이런 운동의 경험이 지금의 동성애자 해방운동에 중요한 밑바탕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졸업 후에 저의 꿈은 민주노동당과 병원노동조합의 활동을 통해 이루어 졌습니다.

한국사회는 동성애자를 비정상, 정신적으로 문제 있는 사람들 또는 에이즈를 퍼뜨리는 나쁜 인간의 유형으로 여기고 우리 사회에서 함께 하는 것을 두려워하고 동성애, 동성애자, 동성결혼(동성커플 파트너쉽), 동성애자를 위한 사회문화적 제도, 동성애자의 인권 등 동성애와 관련된 모든 것들을 거부하고 부정합니다. 존재자체를 부정하고 싶은 마음들이죠.

동성애에 대해 올바르게 인식하지 못하는 이런 사고체계는 이성애우월주의(hetrosexism)에서 비롯되며 동성애혐오증(homophobia)은 차별과 폭력을 가져오는 주된 원인입니다.

성정체성으로 인하여 동성애자들은 가족과 직장 그리고 사회적 관계 속에서 자신을 드러내지 못하고 어둠속에서 숨어 살기를 강요받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선택하여 결혼할 권리조차 제도적으로 인정받지 못하여 동성커플의 친권은 어느 곳 에서도 존재하지 못합니다. 파트너가 아파서 병원에서 검사를 받거나 치료 또는 입원을 할 때에도 아무런 권리를 행사할 수 없습니다.

군형법에서 동성애를 계간(동성애를 짐승들의 행위로 간주하는)으로 규정하여 처벌하는 조항이 있습니다. 청소년동성애자들은 아웃팅(자신이 알리는 것을 원하지 않음에도 알려지는 것)을 당하면 친구들에게 왕따를 당해야하고 교정에서 손잡고 다니지 못합니다.

직장, 학교, 군대, 가족 등의 여러 측면에서 동성애자들은 차별과 억압의 장벽에 가로 막혀 숨을 쉬지 못할 정도로 극도의 고통 속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요즈음 방송되는 드라마에서 동성애자 아들에게 정상으로 돌아오고 어두운 곳에서 있지 말고 밝은 곳으로 나오라고 절규하는 모습이 오늘날 동성애에 관한 고정관념이라는 생각과 가족의 고통을 잘 보여주는 측면입니다.


2. 동성애자 억압의 역사

당원 여러분께서는 동성애자들이 언제부터 존재했고 어떻게 살아왔을까? 하는 궁금증을 갖고 있을 것입니다. 사실 저도 동성애자로서 인류의 역사에서 동성애자들은 언제부터 존재했을까? 고대 인류에서 부터 있었을까? 아니면 18-19세기 과학이 발전한 시대에 발견되었을까? 하는 질문들을 스스로 가져봅니다.

문헌을 통해 그리스, 로마시대에는 동성애는 비정상으로 규정하지 않았고 중세기독교에서는 죄악으로 여겼습니다. 과학적 근거로 제시할 수 없지만 면 동성애자들은 인류 시작부터 존재했다고 보여지며 정상과 비정상의 구분법은 역사 시기마다 사회적으로 규정을 다르게 해석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 당에서는 언제부터 동성애자들이 활동하고 있었을까? 저를 비롯한 동성애자 당원들이 2001-2002년도부터 카페를 통해 모임을 갖기 시작하여 ‘붉은이반’이란 이름으로 활동을 시작하였습니다. 그 이름 그대로 진보적인 정치사상과 신념을 가진 동성애자들을 상징합니다. 우리는 2002년 대통령선거를 맞이하여 동성애 커뮤니티에 우리 당의 정책과 후보를 홍보하였으며 정치후원금을 모금하는 활동을 열심히 하였습니다. 동성애자 당원들이 스스로 이런 활동을 시작한 것은 저는 성소수자 당원들이 당에 많은 애정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위원회는 불편한 진실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시련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2004년 당직자 선거에 출마한 몇 명의 후보들이 동성애를 ‘서구 자본주의나 제국주의 문화의 퇴폐적 결과’라는 말로 동성애를 비하하고 동성애자 당원의 가슴에 못을 박은 사건이 발생하였습니다. 이런 당안에서의 혐오에 대해 우리는 강력하게 반발하면서 문제를 제기하였고 비하발언을 한 후보의 낙선투쟁을 열심히 하는 과정에서 동성애혐오증이 계속 나타났습니다. 우리의 존재를 부정당하고, 동성애자 당원들을 당에서 나가라고 하는 모욕을 당하면서 화가 났고 우리는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었고 두렵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투쟁은 우리 존재의 존엄성을 보존하기 위한 정의로움이었기 때문입니다. 가장 감동적이었던 순간은 이런 투쟁의 과정중에 있었던 대의원대회장에 우리를 지지하는 이성애자당원들이 ‘붉은일반’을 만들어 우리를 방어해주고 지지해주었으며 함께해준 그 순간에 가슴이 뜨거워지고 눈물을 흘린 시간이었습니다.

이런 과정을 경험하면서 예전에 읽었던 동성애자 억압의 사회사가 떠올랐습니다. 서양의 진보정당 역사에서도 이러한 동성애혐오적 태도와 탄압의 역사가 있었습니다. 그 사례를 몇 가지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극우 나찌정권도 동성애자에게 분홍색 역삼각형(pink triangle) 딱지를 붙여 가스실로 데려가 수많은 동성애자를 학살하였습니다. 볼세비키혁명 이후 성에 관한 억압이 사라졌지만 스탈린 공산파시즘시대에는 다시 통제하고 억압하였습니다. 쿠바혁명군에 가담했던 동성애자는 이념적 이탈자라는 굴레를 씌워 수용소에 갇혀 있다가 자신의 조국 쿠바를 버리고 미국으로 망명을 해야 했습니다. 중국공산당 파시즘은 동성애 관계를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추정하건데 북한과 베트남 사회주의 정부에서도 동성애자는 자유롭지 않을 것으로 생각되어 집니다. 동성애자들은 좌, 우 어느 곳에서도 행복하게 살수 없는 존재였습니다.

제가 금강산 여행 갔을 때 안내원에게 동성애의 개념을 설명하고 북한사회에서 동성애자들의 존재에 대해 묻자 그는 자신들의 나라에는 그런 사람들은 없다고 하였습니다. 보이지 않는 현상이기 때문에 존재하는 동성애자들을 바라보지 못하는 ‘동성애 부존재 착시현상: 동성애자들이 드러내지 않고 있어 이성애자들이 동성애자의 존재를 알지 못하는 현상’을 볼 수 있었습니다.

사회주의 혁명을 통해 새로운 사회에서 동성애자들을 억압하는 역사는 제 자신이 사회주의자로서 매우 가슴이 아프고 ‘배반당한 혁명’에 화가 납니다.

왜 자유롭고 평등한 세상을 만들고자 염원했던 동지들을 그런 벼랑으로 몰아넣어야 했을까? 동성애에 관한 지식이 부족해서 일까? 아니면 이제 더 이상 동지로서의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여서 일까? 하고 많은 자괴심의 분노 의 늪에 빠져듭니다.

다시 이야기를 돌려 성소수자위원회를 이야기하면 2004년 이런 작은 투쟁을 통해 우리의 열정으로 위원회를 건설할 수 있었고 성소수자 당원들은 기뻤습니다. 우리의 위원회를 공식화하여 인정을 받았다는 의미는 실로 커다랗기 때문이며 성소수자 교육, 정책 등의 공식적 활동이 가능해졌기 때문입니다. 현재 성소수자위원회는 제6기를 맞이하였고 게이, 레즈비언, 양성애자, 트랜스젠더 당원들이 함께 하고 있고 우리를 좋은 친구로 여겨주는 당원들과 함께 하고 있습니다.


 

* 글이 긴 관계로 다음 웹진에서 이어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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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ight here, right now"- 국제에이즈회의 참석기

2010.10.04 15:20 | Posted by 민주노동당 성소수자위원회 성소수자위원회

 

민주노동당 성소수자위원회 강석주


국제에이즈회의[World AIDS Conference]는 2년에 한번씩 열리는 세계10대 국제회의 중 하나이다. 2년마다 개최되는 이 회의는 전세계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에이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부 관계자, 국제기구, 제약회사, 과학자, 연구가, 정책가, 에이즈 활동가와 감염인들이 참석하는 회의이다. 이번에는 제18차 회의로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회의가 개최되었다. 세계 각지들에서 온 2만 여명 참가자가 함께 일주일 동안 에이즈와 관련된 다양한 문제를 함께 논의하는 자리가 되었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다양한 전시, 토론, 심포지엄, 영화제 등의 프로그램이 진행이 되었고, 에이즈와 관련된 신개념의 치료법, 감염인들의 지원과 에이즈의 낙인을 방지하기 위한 다양한 문제의식에 대한 논의들이 각 회의장에서 진행이 되었다.




에이즈 컨퍼런스장에서는 다양한 운동과 목소리들이 생생하게 전달될 수 있었다. 의약품 접급권, 각 국가별로 문제점, 글로벌이슈 등 다양한 문제의식을 가진 사람들의 시위가 진행이 되었다. 특히 주목하는 것은 이번 18회 주제가 “right here, right now"와 같이 권리를 지키기 위해서는 바로지금, 바로 여기에서 해결이 되어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가진 활동들이 많이 있었다는 것이다.

특히 이번에 주요한 시위이슈는 에이즈기금이 갈수록 줄어들고 미국을 비롯한 G8국가들의 에이즈 기금에 대한 약속을 이행하지 않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그렇기에 미국의 활동가들과 세계의 수백명의 사람들은 오바마 대통령과 G8국가들을 향한 시위를 조직을 하였다. 이러한 시위는 컨퍼런스 기간 동안 게속적으로 진행이 되었으며, 컨퍼런스장 내에서는 다양한 홍보물이 게시가 되었다. 집회는 act up 활동가들과 빨간 우산을 든 섹스워커, 빈곤 활동가, 핑크 트라이앵글을 입은 많은 성소수자 활동가들이 함께 참여하여 집회를 주도하였다.





“Obama lied, millions die!" [오바마의 거짓말로 수백만은 죽어!]

"Keep your promise, we want to live!" [당신의 약속을 지켜, 우리는 살고 싶다!]


글로벌 경제위기로 인하여 많은 나라들이 글로벌펀드를 비롯한 기금에 대한 기부를 줄이고 있으며, 이로 인하여 글로벌펀드는 심각한 위기에 빠지게 되었다고 한다. 글로벌펀드에 따르면 경제위기로 지난 3년간 25%의 기금이 삭감이 되었다고 한다. 이는 미국을 비롯한G8 국가들이 에이즈 기금에 약속한 금액을 이행하지 않게 되자 저개발 국가에서는 에이즈 치료제를 복용하지 못하게 될 정도가 되었다고 한다. 또한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에서 에이즈를 종식하겠다고 했지만, 미국 내에서도 에이즈 기금이 모자라 의약품 보조가 어려운 현실이다. 이에 미국은 책임있는 태도를 보여야 할 것으로 보인다.


2006년 캐나다 국제 에이즈 회의에서 한국의 많은 활동가들이 FTA반대 투쟁과 의약품 접근권 확보를 위해 국제 활동가들과 함께 연대 활동을 벌였다. 올해에도 여전히 의약품 접근권 문제와 FTA 문제는 중요한 이슈 중에 하나였다. 특히 이번에는 미국의 FTA 보다 EU가 추진하고 있는 FTA를 중단하라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나오고 있었다. EU가 추진하는 FTA로 인하여 의약품에 대한 특허권 강화와 제약자본의 횡포의 문제는 우리에게 풀어야할 숙제인 것이다.


이번 18회 국제에이즈회의는 개인적으로 참 중요한 지점을 가진다. 그간 에이즈의 국내적인 문제점만 바라보던 나에게 영감을 준 회의였으며, 그 회의에서 만난 많은 LGBT활동가들을 통해 우리가 어떻게 나아가야 할 지 알게 해 주었다.


“right here, right now"


이제 에이즈 문제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에이즈의 확산을 막기 위해서는 지금 우리가 함께 이곳에서 싸워야 할 것이다. 에이즈 감염인의 치료접근권을 위해 고가의 에이즈 치료제의 횡포에 맞서야 하고, 에이즈 감염인의 사회적 차별과 편견과 맞서 싸워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지금 이 자리에서 함께하고 함께 결단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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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j 2010.10.26 11:48

    에이즈 문제를 보면 명확하게 신자유주의의 표본을 볼 수 있는 것 같습니다. 특히 치료제 문제를 보면 절실하게 제국주의와 신자유주의 문제에 투쟁이 중요함을 알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을 합니다. 앞으로도 좋은 정보 많이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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