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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민주노동당'에 해당되는 글 2

  1. 2010.10.11 나와 민주노동당 - 강석주 성소수자위원장 (1)
  2. 2009.08.19 그 동안 우리 참 많이 끈끈해졌어! (4)

나와 민주노동당 - 강석주 성소수자위원장

2010.10.11 19:36 | Posted by 민주노동당 성소수자위원회 성소수자위원회

 

강석주(민주노동당 성소수자위원장)



나와 민주노동당. 어디서 어떻게 이야기를 꺼내야 할지 참 어렵기만 했다. 간단하게 정리를 해 보자면 민주노동당은 “
내가 살아가면서 최초로 가입한 유일한 정당이 민주노동당이다.”라고 정의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현재 내가 정치운동을 하는 공간이자 마음 한구석에는 늘 안타까움을 가지고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민주노동당에 가입한 지 많은 세월이 지났지만 사실 처음 가입할 때에는 “정치를 통해 새세상을 꿈꾸기 위해..”라는 거창한 무언가가 있어서 가입을 했던 것은 아니었다. 사실 그 시기에 나에겐 정치란 TV에서 짖는 dog소리나 내 의사와 무관하게 돌아가는 세상이라고 생각 했던 것 같다. 그럼에도 민주노동당에 가입하게 된 이유는 주변에 알고 지내던 사람들이 민주노동당 당원이었고, 열성적으로 나에게 열변을 토하면서 정치의 중요성을 말해주던 사람들로 인해 민주노동당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 사람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들이 바라는 세상이 나에게는 조금 더 좋은 세상이 되지 않을까?”라는 반신반의함으로 가입 했던 것 같다. 여기에 조금 더 덧붙이면, 내가 가입한 당이 성소수자위원회가 존재하였고, 내 문제에 관심있는 정당이라는 것도 가입에 한몫한 것 같기도 하다.


그 이후에 평당원으로 생활을 하다가 분당이후에 다른 지역위원회와 부문위원회도 어려웠겠지만 성소수자위원회도 상당히 많은 당원들이 탈당을 하였으며, 위원회의 존폐 위기에 놓이게 되었다. 이때부터 내가 성소수자위원회 활동을 열심히 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민주노동당의 성소수자위원회는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없어져서는 안되는 위원회라고 생각을 했다. 기존의 다른 위원회들과는 달리 당내의 투쟁을 통해 만들어낸 위원회 이기도 하거니와 그 정당의 진보성을 볼 수 있는 하나의 지표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모두가 성소수자, 동성애자를 비정상에 정신병자라고 이야기 하더라도 진보정당은 이러한 문제에 단호하게 대응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민주노동당 안에 성소수자위원회는 없어서는 안되는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고 생각한다.


분당 후 비대위 체계에서 운영위원을 맡게 되면서 정치조직안의 활동을 하게 되었고, 이후에 성소수자위원회 위원장이 되었지만 사실 나에게 정치와 정당은 아직까지 어색한 자리임은 분명하게 느낄 수 있다. 아직도 정당의 관계자를 만날 때마다 뒷걸음치고, 정치의 주요 이슈들에 대해 더욱 열성적으로 문제를 이야기 하지 못하는 내 모습을 볼 때면 정당이라는 옷은 내 자신을 위축시키고 답답하게만 하는 공간이다. 그러나 나는 민주노동당의 정치를 하는 것이 아니라 성소수자로서 내 권리를 위해 민주노동당에 성소수자위원회 활동을 한다고 생각하려고 한다. 성소수자로서 나의 권리, 내가 살아가고자 하는 세상에 한 걸음 다가가기 위한 활동을 위한 자리인 것이다. 그곳에 정당이든 단체이든 간에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정당이라는 곳이 정치적인 이해관계가 얽힌 곳이라 성소수자 문제 뿐만 아니라 다양한 이슈와 문제들에 대해 진보성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위원회의 몫이라는 것은 이제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이제 위원장도 2년째니 출마안하세요?’ 라는 말이나 ‘이번 선거에는 성소수자 후보를 만들어야지요!’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내가 정치의 한 자락에 서 있는 실감을 하게 된다. 내가 민주노동당에서 바라는 점이 있다면, 하비 밀크처럼 성소수자 정치인이 될 수는 없지만, 하비밀크와 같은 성소수자 정치인이 설 수 있는 발판을 만들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Comment

  1. j 2010.10.26 11:51

    모두가 거창한 꿈을 꾸고 정당에 가입하기보다는 자신의 삶에서 조금더 나아지기를 희망하면서 운동을 함께 만들어 가는 것 같습니다. 아직 민주노동당이 미흡하고 성소수자들에게 희망이 되지 못하더라도 함께 투쟁하고 연대해 나가면서 성장하기를 바랍니다. 성소수자위원회와 함께 연대하고 싸워나가겠습니다.

그 동안 우리 참 많이 끈끈해졌어!

2009.08.19 23:05 | Posted by 민주노동당 성소수자위원회 성소수자위원회

그 동안 우리 참 많이 끈끈해졌어!

이경 (민주노동당 성소수자위원회)

당원번호 12600번. ‘민주노동당과 나’에 대한 글을 쓰라니 제일 먼저 떠오르는 건 당원번호다. 일종의 반사작용 같은 거다. 선거 나갈 때도 쓰고, 연락할 때도 늘 이름 옆에 붙어있고, 서로 입당시기 추적할 때도 쓰고...등등. 내가 민주노동당을 처음 만난 건 2000년 초 지하철에서였다. 이제 막 창당한 민주노동당을 알리는 선전활동을 접한 것이었는데, 스물둘의 내게는 가슴 뛰는 만남이었다. 드디어 노동자 정당이 우리나라에도 만들어졌구나! 나는 떨리는 마음으로 가입원서를 작성했다. 학생위원회 활동도 열심히 하고, 효순이 미선이 추모 집회도 조직하고, 2002년 대선에서는 권영길 후보 따라 전국을 돌기도 했다. 그 때를 돌이켜보면 열정적인 당원이기는 했는데, 성소수자로서의 내 삶은 운동과 섞이지 못하고 개인적이거나, 학교 울타리를 벗어나질 못했던 것 같다.

대학을 졸업하면서는 동성애자인권연대 활동을 시작했다. 내 요구를 가지고 운동하다보니 정말 신이났고, 어느 새 당은 좀 재미없는 곳이 되어버렸다. 특히 학교 졸업 후 내 지역위원회는 영등포가 되었는데, 일면식도 없고 공통 관심사도 없을 것 같은 지역당원들을 만나는 것 자체가 내게는 좀 부담이었다.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성소수자 운동이라고 말하는 것 자체가 힘들었었고, 그 사람들이 관심이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앞섰다.

2004년 여름이 올 무렵, 성소수자위원회를 만들었다. 성소수자위원회 창립은 당 자체에도 상당한 도전이었다고 생각한다. 곱지 않은 시선, 이해 못하는 당 간부들, 부차적인 문제로 치부되는 서러움, 대놓고 당하는 모욕 등. 생각해보면 민주노동당이 진보정당이었어도, 당시 성소수자 문제에 대해서는 웬만한 자유주의자보다도 못한 인식을 가지고 있다는 걸 뼈저리게 깨닫는 동시에 이것을 바꾸는 것이 당에서 우리가 할 일이구나 싶었다.

2005년 성인지 정책생산 및 예산교육 (정책위원회 주최)


그래도 참 신났다. 드디어 새로운 역사가 쓰여지는구나, 책에서만 봤던 정당에서의 성소수자 활동이 시작되는구나! 간부교육에서 2005년 초 처음 성소수자 인권 교육을 할 때 그 어느 때보다 진지한 태도로 교육에 임하는 당원들을 보며 가능성이 있음을 느꼈다. 지금까지 몰랐으면 어떤가, 이제부터 배우려고 하면 되는 거다. 배우고자 하는 힘. 존중하고자 하는 힘. 이것이 진보정당의 힘이다. 물론 당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지만, 우리는 꽤 든든한 우군을 만난 셈이었다. 이때의 나를 돌이켜보면 성소수자 활동가로서는 참 열심이었지만, 당은 그저 우리의 연대단위 정도로만 생각했던 듯하다.

2005년 초, 영등포구위원회에서 연락이 왔다. 지금은 친한 동갑내기 친구들이지만, 당시 영등포 소식지 제작을 맡고 있던 이들이 당원인터뷰를 하고 싶다며 전화가 온 것이다. 여의도 어느 포장마차 골목에서 나는 처음으로 지역 당원들에게 커밍아웃을 했다. 지역위 활동은 또 새로운 세계였다. 일상적으로 생활 속에서 만나는 당원들은 달랐다. 성소수자 문제도 아주 구체적으로 도전받고 그만큼 현실적으로 깊이 생각해야 했다. 지역위에서 교육부를 맡으면서 여성 당원들과 성소수자 인권 토론 모임도 가졌고, 지역 당원들은 나 때문에라도 성소수자 교육을 더 열심히 들었다. 민감한 문제를 가지고 기탄없이 토론하고, 또 아낌없이 서로를 지지할 수 있었던 기반에는 함께 부대끼며 활동해온 세밀한 믿음들이 밑바탕이 되지 않았나 싶다.

분당은 개인적으로도 많이 참담한 일이었다. 대의원대회장에서 소위 일심회 당원들에 대한 출당을 거부하는 비표를 들었을 때는 아마 입당 후 가장 참담한 순간이었지 싶다. 하지만 들지 않을 수 없었다. 다른 나라들에서 성소수자들이 세간의 낙인과 조롱에 몰려 결국 진보정당 내에서도 쫓겨나는 참담한 꼴을 많이 보지 않았나? 그런 기분이었다. 이 쪽 아니면 적이 되는 당시의 혼란스런 상황 속에서도 성소수자위원회를 지켜낸 것은 참 놀랍고도 고마운 일이다.

지내다보면 헛웃음이 날 때가 있다. 민주노동당의 주요 활동가인 당원으로부터, 동성결혼은 안된다, 내가 부모라면 (동성애자 자녀와) 연을 끊겠다, 소수에 불과할 뿐이기 때문에 반쪽 권리만 인정해줘도 된다는 말을 듣거나, 가끔은 양성애자는 기회주의자가 아닌가라는 놀라운 이야기를 들을 때, 5년 동안 이런 사람들의 생각조차 바꾸지 못했다는 허탈함에 빠지기도 한다. 하지만 당 성소수자위원회 하며 쌓아온 내공이란게 뭔가. “진보정당 당원이라면”. 그거 하나 믿고 우리는 더욱 거침없이 들이댄 나날들이다. 성소수자로 살다보면, 우리들끼리 있으면 적어도 편한데 좀 답답하다. 그래서 세상 밖으로 한발자국만 내딛으면 그 순간 참 싸늘하고 두렵다. 당 안에서도 그런 싸늘한 시선과 종종 마주치지만 그래도 성소수자위원회도 있는 당인데, 당의 지향과 정책에 분명히 우리 이야기도 있는데 하며 가슴을 펼 수 있는 것이다.

작년에 나의 동성 파트너가 악성 뇌종양 말기 판정을 받았는데 사보험도 치료비도 없었다. 많은 친구들이 십시일반 치료비를 모아주었다. 참 웃기는 얘기지만, 난 지난 9년 동안의 당생활 중 그 때가 제일 고마웠다. 진심으로. 진보정치에서는 우리 기사를 내주고, 모금 배너를 달아주었다. 성소수자위원회는 포도를 팔아 치료비를 보태고 당원들에게 치료비 모금을 하러 백방으로 뛰었다. 이름 모를 당원들이 통장에 돈을 입금하고, 각 부문위원회와 지역위 등에서 돈을 모아줬다. 정말 괴로운 시기였지만 참 든든했다. 우리 사이를 속이지 않고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이렇게 정성을 모아주는구나. 이 사람들이 평소에 동성결혼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든, 성소수자 권리에 대해 어느 정도 인식했든 그건 그 순간 중요하지 않았다. 모이는 치료비 자체가 우리 성소수자들에 대한 말이 필요 없는 지지였다. 성소수자가 뭔지도 몰랐던 민주노동당이, 지난 5년 동안 이만큼 크게 변화한 것이다.

나는 현재 두 명 분의 당비를 낸다. 하나는 내 몫이고, 다른 하나는 당활동 참 빡시게 했고 나보다 더 성소수자위원회를 아꼈던 한 동지의 몫이다. 돈이 없어도 당비, 회비 같은 건 밀리지 않으려고 노력했던 그 동지가 지금은 이 세상에 없지만, 여전히 당에 한 몫을 하고 싶을 것 같아서 이렇게라도 한다.

      성소수자 반차별선언 지지 기자회견


그래서 나에게 당은, 끊임없이 서로 손을 내밀어야 할 곳이다. 우리들 옆에 믿을만한 친구 하나만 있으면 희망을 품고 싸워볼만 하기에.


Comment

  1. 장위 2009.08.24 12:55

    감동 ㅜㅜ 잘 읽고 갑니다

  2. 이경 2009.08.24 15:53

    잘 읽어주셨다니 감사합니다^^

  3. 이웃으로 맘대로 링크도 걸었네요~^^
    가슴이 먹먹하네요

  4. 사각머리 2009.08.25 13:19

    힘내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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