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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애자 당원으로부터 온 편지-성소수자를 위한 진보정당의 역할과 과제 ①

2010.10.04 15:38 | Posted by 민주노동당 성소수자위원회 성소수자위원회

민주노동당 성소수자위원회
위원 여기동

여는글

안녕하세요^^ 저는 성소수자위원회의 당원 여기동입니다. 이렇게 편지로 당원 여러분을 만나게 되어 반갑습니다. 국민승리21에 가입하여 당원이 되었고 성소수자위원회에서 2004년 초대위원장을, 그리고 2008년 가슴 아픈 분당의 해에 5기 위원장을 맡으면서 어느덧 6년 동안 성소수자위원회의 길을 걸어왔습니다.

워낙 글재주가 없어서 제목을 어떻게 정할까 고민하던 차에 문득 떠오른 생각이 논문처럼 딱딱한 글 보다 ‘지인으로부터 온 편지’처럼 편안하고 마음으로 읽을 수 있는 형식이 좋겠다 싶었습니다. 그래서 제목을 ‘동성애자 당원으로부터 온 편지’로 적어보았습니다‘. 갑작스레 웬 편지일까? 라는 불명확한 테마를 정확하게 전달해야 할 필요가 있겠다 싶어 부제로 성소수자를 위한 민주노동당의 역할과 과제라는 표현을 더했습니다. 이 두 가지 제목은 당원들이 이 글을 읽고 저자가 무엇을 이야기하려고 하는지 관점을 명확하게 파악하는데 도움을 줄 것입니다.

이 편지는 한 동성애자 당원이 민주노동당과 당원들에게 전하는 작은 글입니다. 비록 글이 미진하고 표현이 부족한 점이 있더라도 여러분의 마음의 텃밭에 씨앗이 되어 예쁘게 담겨졌으면 합니다.

여러분에게 들려드릴 테마는 성소수자들이 살아가는 사회적 맥락(social context), 억압과 해방을 향한 투쟁, 당 강령의 의미와 가치 그리고 진보정당의 역할과 과제입니다.


1.한국사회 성소수자와 사회적 약자들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

저는 올해 48살이 되었습니다. 카톨릭학생회 학생운동을 통해 새로운 세계관을 만나며 두 가지 꿈을 갖게 되었습니다. 하나는 진보정당 당원이 되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노동자계급 차원에서 병원노동조합원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 당시에 동성애운동은 미처 생각하지 못하였지만 이런 운동의 경험이 지금의 동성애자 해방운동에 중요한 밑바탕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졸업 후에 저의 꿈은 민주노동당과 병원노동조합의 활동을 통해 이루어 졌습니다.

한국사회는 동성애자를 비정상, 정신적으로 문제 있는 사람들 또는 에이즈를 퍼뜨리는 나쁜 인간의 유형으로 여기고 우리 사회에서 함께 하는 것을 두려워하고 동성애, 동성애자, 동성결혼(동성커플 파트너쉽), 동성애자를 위한 사회문화적 제도, 동성애자의 인권 등 동성애와 관련된 모든 것들을 거부하고 부정합니다. 존재자체를 부정하고 싶은 마음들이죠.

동성애에 대해 올바르게 인식하지 못하는 이런 사고체계는 이성애우월주의(hetrosexism)에서 비롯되며 동성애혐오증(homophobia)은 차별과 폭력을 가져오는 주된 원인입니다.

성정체성으로 인하여 동성애자들은 가족과 직장 그리고 사회적 관계 속에서 자신을 드러내지 못하고 어둠속에서 숨어 살기를 강요받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선택하여 결혼할 권리조차 제도적으로 인정받지 못하여 동성커플의 친권은 어느 곳 에서도 존재하지 못합니다. 파트너가 아파서 병원에서 검사를 받거나 치료 또는 입원을 할 때에도 아무런 권리를 행사할 수 없습니다.

군형법에서 동성애를 계간(동성애를 짐승들의 행위로 간주하는)으로 규정하여 처벌하는 조항이 있습니다. 청소년동성애자들은 아웃팅(자신이 알리는 것을 원하지 않음에도 알려지는 것)을 당하면 친구들에게 왕따를 당해야하고 교정에서 손잡고 다니지 못합니다.

직장, 학교, 군대, 가족 등의 여러 측면에서 동성애자들은 차별과 억압의 장벽에 가로 막혀 숨을 쉬지 못할 정도로 극도의 고통 속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요즈음 방송되는 드라마에서 동성애자 아들에게 정상으로 돌아오고 어두운 곳에서 있지 말고 밝은 곳으로 나오라고 절규하는 모습이 오늘날 동성애에 관한 고정관념이라는 생각과 가족의 고통을 잘 보여주는 측면입니다.


2. 동성애자 억압의 역사

당원 여러분께서는 동성애자들이 언제부터 존재했고 어떻게 살아왔을까? 하는 궁금증을 갖고 있을 것입니다. 사실 저도 동성애자로서 인류의 역사에서 동성애자들은 언제부터 존재했을까? 고대 인류에서 부터 있었을까? 아니면 18-19세기 과학이 발전한 시대에 발견되었을까? 하는 질문들을 스스로 가져봅니다.

문헌을 통해 그리스, 로마시대에는 동성애는 비정상으로 규정하지 않았고 중세기독교에서는 죄악으로 여겼습니다. 과학적 근거로 제시할 수 없지만 면 동성애자들은 인류 시작부터 존재했다고 보여지며 정상과 비정상의 구분법은 역사 시기마다 사회적으로 규정을 다르게 해석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 당에서는 언제부터 동성애자들이 활동하고 있었을까? 저를 비롯한 동성애자 당원들이 2001-2002년도부터 카페를 통해 모임을 갖기 시작하여 ‘붉은이반’이란 이름으로 활동을 시작하였습니다. 그 이름 그대로 진보적인 정치사상과 신념을 가진 동성애자들을 상징합니다. 우리는 2002년 대통령선거를 맞이하여 동성애 커뮤니티에 우리 당의 정책과 후보를 홍보하였으며 정치후원금을 모금하는 활동을 열심히 하였습니다. 동성애자 당원들이 스스로 이런 활동을 시작한 것은 저는 성소수자 당원들이 당에 많은 애정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위원회는 불편한 진실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시련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2004년 당직자 선거에 출마한 몇 명의 후보들이 동성애를 ‘서구 자본주의나 제국주의 문화의 퇴폐적 결과’라는 말로 동성애를 비하하고 동성애자 당원의 가슴에 못을 박은 사건이 발생하였습니다. 이런 당안에서의 혐오에 대해 우리는 강력하게 반발하면서 문제를 제기하였고 비하발언을 한 후보의 낙선투쟁을 열심히 하는 과정에서 동성애혐오증이 계속 나타났습니다. 우리의 존재를 부정당하고, 동성애자 당원들을 당에서 나가라고 하는 모욕을 당하면서 화가 났고 우리는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었고 두렵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투쟁은 우리 존재의 존엄성을 보존하기 위한 정의로움이었기 때문입니다. 가장 감동적이었던 순간은 이런 투쟁의 과정중에 있었던 대의원대회장에 우리를 지지하는 이성애자당원들이 ‘붉은일반’을 만들어 우리를 방어해주고 지지해주었으며 함께해준 그 순간에 가슴이 뜨거워지고 눈물을 흘린 시간이었습니다.

이런 과정을 경험하면서 예전에 읽었던 동성애자 억압의 사회사가 떠올랐습니다. 서양의 진보정당 역사에서도 이러한 동성애혐오적 태도와 탄압의 역사가 있었습니다. 그 사례를 몇 가지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극우 나찌정권도 동성애자에게 분홍색 역삼각형(pink triangle) 딱지를 붙여 가스실로 데려가 수많은 동성애자를 학살하였습니다. 볼세비키혁명 이후 성에 관한 억압이 사라졌지만 스탈린 공산파시즘시대에는 다시 통제하고 억압하였습니다. 쿠바혁명군에 가담했던 동성애자는 이념적 이탈자라는 굴레를 씌워 수용소에 갇혀 있다가 자신의 조국 쿠바를 버리고 미국으로 망명을 해야 했습니다. 중국공산당 파시즘은 동성애 관계를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추정하건데 북한과 베트남 사회주의 정부에서도 동성애자는 자유롭지 않을 것으로 생각되어 집니다. 동성애자들은 좌, 우 어느 곳에서도 행복하게 살수 없는 존재였습니다.

제가 금강산 여행 갔을 때 안내원에게 동성애의 개념을 설명하고 북한사회에서 동성애자들의 존재에 대해 묻자 그는 자신들의 나라에는 그런 사람들은 없다고 하였습니다. 보이지 않는 현상이기 때문에 존재하는 동성애자들을 바라보지 못하는 ‘동성애 부존재 착시현상: 동성애자들이 드러내지 않고 있어 이성애자들이 동성애자의 존재를 알지 못하는 현상’을 볼 수 있었습니다.

사회주의 혁명을 통해 새로운 사회에서 동성애자들을 억압하는 역사는 제 자신이 사회주의자로서 매우 가슴이 아프고 ‘배반당한 혁명’에 화가 납니다.

왜 자유롭고 평등한 세상을 만들고자 염원했던 동지들을 그런 벼랑으로 몰아넣어야 했을까? 동성애에 관한 지식이 부족해서 일까? 아니면 이제 더 이상 동지로서의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여서 일까? 하고 많은 자괴심의 분노 의 늪에 빠져듭니다.

다시 이야기를 돌려 성소수자위원회를 이야기하면 2004년 이런 작은 투쟁을 통해 우리의 열정으로 위원회를 건설할 수 있었고 성소수자 당원들은 기뻤습니다. 우리의 위원회를 공식화하여 인정을 받았다는 의미는 실로 커다랗기 때문이며 성소수자 교육, 정책 등의 공식적 활동이 가능해졌기 때문입니다. 현재 성소수자위원회는 제6기를 맞이하였고 게이, 레즈비언, 양성애자, 트랜스젠더 당원들이 함께 하고 있고 우리를 좋은 친구로 여겨주는 당원들과 함께 하고 있습니다.


 

* 글이 긴 관계로 다음 웹진에서 이어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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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소개] 성적 다양성, 두렵거나 혹은 모르거나, 이후, 2007

2010.05.31 01:31 | Posted by 민주노동당 성소수자위원회 성소수자위원회

<<성적 다양성, 두렵거나 혹은 모르거나>>, 이후, 2007
성적 다양성의 의미와 성소수자 운동의 현재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도서

책 제목처럼 많은 사람들은 성적 다양성이라는 말 자체를 잘 모르거나 두려워한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한국에서 동성애, 성소수자와 관련된 책들을 찾아보기란 쉽지가 않다. 하루에도 무수히 많은 책들이 쏟아지는 상황 속에서도 2000년 이후 한국에 소개된 성소수자 관련 서적들은 겨우 10권 안팎 수준이다. (물론 기독교와 연관된 책들은 종종 발간되어지지만 객관적으로 접근하기보다 종교적 관점에 치중하고 있다는 단점이 있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성소수자들의 삶과 존재의 이유에 대해 궁금해 하지 않고 그것을 이해하는 수준도 낮은 편이다. ‘성소수자들은 누구일까?’ ‘그들은 어디서 살고 있을까?’ ‘과거에는 존재했을까?’라는 물음들에 대한 적절한 답변과 성소수자들의 삶을 이해를 하기까지 작용하는 큰 걸림돌이 무엇인지를 설명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에 이 책을 추천하게 되었다. <<성적 다양성, 두렵거나 혹은 모르거나>>는 성적다양성에 대한 다양한 물음에 대해서 답변할 준비가 되어 있는 책으로서 충분히 추천할 가치가 있다.

이 책이 발간되기 앞서 이후 출판사 관계자 몇 명이 동성애자인권연대를 찾아왔다. 발간취지를 설명하면서 한국의 성소수자 운동의 현황에 대해 질의하고 답변하는 인터뷰 시간을 가졌고 책 이미지로 사용할 사진 몇 컷을 요청했다. 이 책에 반복적으로 등장한 사진이 있는데 바로 2004년 세계사회포럼이 인도 뭄바이에서 개최될 당시 행사 참가자들과 함께 폐막행진을 할 때 찍었던 사진이다. 사진에는 “Stop the War against the homosexual (동성애자에 대한 전쟁을 중단하라)" 라는 문구가 크게 적혀있다. 이 사진은 저자가 책 속에서 반복적으로 강조하고 있는 국제적으로 벌어지고 있고 끔찍한 인권침해 - 사형, 태형, 구금, 강간, 협박, 테러 등 -를 즉각 중단하라는 외침을 설명하고 있다.

저자는 동성애 역사를 문화적, 인류학적으로 살펴보는 것은 물론 불교, 힌두교, 이슬람교, 기독교 등 각 종교의 시각과 인도, 아프리카 등 제3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성소수자 운동, 운동 내의 논쟁들도 자세히 소개하고 있다. 유럽과 북남미, 아시아, 아프리카를 넘나들며 각 나라의 성소수자들의 현실을 꼬집고 이들을 대상으로 벌어지고 있는 인권침해 만행을 철저히 고발하고 있다. 그리고 동성애가 서구로부터 잘못된 문화가 들어와 고착화되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편견을 깰 수 있게 고대부터 현재까지 동성애가 존재했고 나라마다 각기 다른 문화와 제도가 존재하고 있음을 설명한다.

이 책에서 흥미롭게 볼 부분을 소개하자면 우리가 알고 있어야 하지만 그동안 소개되지 않았던 스톤월 항쟁 이전의 역사적 사건을 자세히 언급하고 있다는 점이다. 칼 울리히스, 오스카 와일드, 마르쿠스 히르쉬펠트 등 성소수자 운동에 큰 염감을 주었던 이들도 소개되어 있고 고대그리스와 중세시대, 이슬람권에서 동성애를 바라봤던 관점의 변화에 대해서도 설명하고 있다. 시공간을 넘어 성소수자가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안도감과 존재에 대한 지속성을 느끼게 해준다.

저자는 또한 각 문화마다 동성애가 용인되었다 불법화되었는지를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동성애자를 사형시키고 있는 이슬람권 국가 (이란 외 6개국)들도 중세에는 동성애 문학이 번영하기도 했고 711년 무슬림이 스페인을 침략했을 때는 동성애를 억압하고 있던 동성애 법률을 없애기도 했다. 반면 동성결혼이 허용되고 상대적으로 성소수자 차별이 적은 서유럽의 경우 20세기 중반만 해도 동성애자들이 파시즘의 희생양이 되거나 동성애를 치유, 치료의 대상으로 보았다. 단 1917년 러시아혁명 직후 몇 주 만에 반동성애 법률이 폐기되고 동성애를 합법화했던 성과를 1920년대 등장한 스탈린주의, 마오주의가 행했던 반동성애 정책과 연장선에서 보면서 사회주의를 표방했던 국가 모두가 반동성애적이었다고 평가한 건 아쉬운 부분 중 하나다.

저자는 마지막으로 성소수자들이 수백 년 동안 싸워왔던 사회정의를 언급하며 성적다양성이 존중되고 관용적인 사회를 만드는 것이야말로 모두를 위한 길이라고 주장한다. 성소수자를 향한 폭력과 억압이 전 세계에 존재하지만 그에 맞선 저항들도 함께 존재하고 있음을 소개하고 있어 글을 읽는 독자로 하여금 자신감을 고양시켜주고 있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세계에 성적 다양성의 의미를 던지며 우리가 좀 더 민주적이고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해 누구와 함께 싸워야 하는지를 명쾌하게 알려주고 있다.

정욜 _ 민주노동당 성소수자위원회, 동성애자인권연대

* 이 글은 인권재단 사람(www.esaram.org) 2010년 1~2월호에 기고된 글입니다. 민주노동당 당원들이 꼭 한번 읽어보았으면 하는 책이라 성소수자위원회 웹진에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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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00원짜리 눈도장

2010.03.18 11:24 | Posted by 민주노동당 성소수자위원회 성소수자위원회

50,000원짜리 눈도장

정욜 _ 민주노동당 성소수자위원회


봄이 가까워져 그런가? 요즘 청첩장을 돌리는 사람이 너무 많아졌다. 매주 결혼식장을 다니다시피 해야하고 지금까지 지출된 축의금을 계산해보니 20만원이 족히 넘었다. 아까운 내 돈. 대부분의 이성애자들은 경조비 지출이 다시 자신에게 되돌아올 것이라는 생각에 별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는 듯하다. 하지만 나에게 되돌아 올 돈은 없다.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를 언제 그만둘지도 모르고 경사도 없는 나에게 억지로 조사를 만들 수 없으니 축의금은 그냥 버리는 돈이나 마찬가지다.

나는 2시간 전에 홍대 근처 예식장을 다녀왔다. 평소 친분이 두터웠던 회사선배의 결혼식이기도 했고 집과 가까운 거리에 있다 보니 자연스럽게 가게 되었다. 어제 마신 술로 숙취가 가시지 않은 상황에서 몸이 천근 만근했지만 어디서 나온 의리인지 몰라도 약속을 지키겠다는 생각에 지친 몸을 이끌고 양복을 꺼내었다. 오늘까지 양복을 입어야 하나 하는 생각이 솟구쳤다. 짜증도 났다. 복장이 뭐 대수냐 하는 생각에 평소 캐주얼한 차림으로 집을 나섰다.

예식장 앞은 사람들을 공장에서 찍어낸 것처럼 사람들이 줄지어 서있었다. 무슨 대축제라고 결혼을 하지 않는 사람들이 더 멋스럽게 차려입고 왔다. 좀 우스웠다. 난 회사사람들과 악수를 하고 인사를 나누었다. 이제는 됐다 싶어 축의금만 내고 도망쳐 나올 심산이었다. 하지만 눈도장 찍을 사람이 너무 많았다. 예식장 앞은 정말 인산인해였다. 7층짜리 웨딩홀에 내가 가야할 곳은 3층이었는데. 이곳은 12시부터 2시까지 3번의 결혼식이 잡혀 있었다. 100명씩 온다고 치면 300명이란 사람들이 이 좁은 예식장을 방문할 것이다. 생각만 해도 답답했다.

나를 포함해 나에게 부탁한 축의금 봉투를 내고 식권 한 장을 받았다. 주례하시는 분은 신랑, 신부를 제외하고 듣지도 않는 사람들을 향해 손짓 발짓 해가며 열변을 토하시고 계셨다. 또 눈도장을 찍으러 돌아다녔다. 부장님, 과장님, 팀원들. 퇴사한 사람들까지 모두 결혼식장을 찾았다. 그래도 결혼식장인데 썩소는 날릴 수 없어서 그냥 기계 같은 웃음을 띠며 예식이 끝날 때까지 멀뚱멀뚱 서있었다.

짜증도 났지만 부럽기도 했다. 결혼식이란 게 겉치레에 불과하지만 가족과 회사동료(심지어 퇴사를 한 사람들까지), 그리고 친구들까지 모두모여 축하받을 수 있는 자리이지 않은가? 그냥 그 자체가 부러웠다. 지방에서 버스를 대절하고 오셨는지 예식이 끝나갈 무렵 어르신 20명 정도가 오셨다. 거동도 불편하신 거 같은데 이제 남은 시간 30분을 보기 위해 오신 것이다. 문득 부모님 생각이 났다. 우리 부모님도 곱디고운 한복을 입고 축하해주러 온 많은 사람들 앞에서 자식 자랑, 결혼 자랑하고 싶으실 게다. 그리고 결혼식장을 마치 놀이터인양 뛰노는 아이들을 보며 저런 손자, 손녀를 안고 싶으실 지도 모르겠다. 부모님도 늘 주변 친구들 자식이 결혼하거나 먼 친척의 자녀가 결혼하면 먼 거리를 마다하지 않고 찾아다니신다. 그리고 지금까지 뿌린 축의금이 언제쯤 다시 들어오나 하며 나에게 하소연을 하신다. 결혼이라는 말만 꺼내면 내가 화를 낸다라는 사실을 잘 알고 계시기 때문에 요즘은 선보라는 말도 뜸해지셨다. 안쓰럽다.

식권은 뒤늦게 예식장을 찾아온 회사동료에게 건네 쥐어주고 답답한 예식장을 벗어났다. 배고픔이 밀려왔지만 혼자 쓸쓸히 밥 먹는 모습을 보이기 실어 다음 약속장소로 향하는 버스를 그냥 탔다. 두통이 밀려왔다. 쓰디 쓴 아메리카노 커피가 마시고 싶어졌다.


최근 신문에 미국 워싱턴DC하고 멕시코시티에서 동성결혼을 하는 커플이 턱시도와 웨딩드레스를 입고 서로 키스하는 사진이 올라 화제였다. 부러웠다. 내가 결혼을 하지 않더라도 정말 진심으로 축하해 줄 수 있는 예식장을 한번 가보고 싶다. 가까운 사람들의 축하를 받으며 턱시도를 입은 남자 둘이. 혹은 아름다운 웨딩드레스를 입은 여자 둘이 예식장을 유유히 걸어가는 모습은 상상만으로도 짜릿하다. 물론 사랑하는 사람과 평생 함께 한다는 선언이 반드시 이성애자와 똑같은 결혼식일 필요는 없겠지만 지금 한국 사회는 그런 욕구마저 가질 수 없다. 그냥 마음에도 없는 이성애자 결혼식만 쫓아다니며 애꿎은 축의금에 분풀이하고 직장동료들에게 ‘나 왔소’하며 눈도장만 찍으러 돌아다닐 뿐이다.

지금도 직장동료들의 청첩장을 받으며 속으로 “또 돈 버리겠네” 생각하는 수많은 동성애자들의 쓰디쓴 마음은 누가 헤아려줄 수 있을까. 또 우리는 언제쯤 결혼에 대한 압력에 시달리지 않고 누군가를 진심으로 축하해줄 수 있는 결혼식장에 가볼 수 있을까.

아깝지 않은 내 축의금의 미래를 위해 오늘도 잘 살아 버텨보자. 그래도 돈은 정말 아깝다. 아까운 내 돈. 아까운 내 휴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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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들꽃의향기 2010.03.22 09:36

    나이가 들어가다 보니 이제 예식장 가는 것도 불편하게 생각됩니다. 그래도 안갈순 없고 해서 급하게 축의금만 내고 나온적이 한두번이 아닌듯.. 빨리 성소수자들도 결혼해서 혼테크(?)라는 말이라도 한번 들어 봤으면 좋겠습니다.

  2. 똘핀 2010.04.07 18:50

    결혼식은 이성애자에게도 비슷하게 느낄때가 많답니다.
    복사기로 찍어놓은듯한 의식도 그렇고 한끼 식사비로 내는 5만원도 아까운 건 같은 마음입니다.
    그리고 계속 비혼으로 살 사람들에게는 더 그렇겠지요^-^

성소수자 정치활동의 경험과 중요성

2009.12.24 14:12 | Posted by 민주노동당 성소수자위원회 성소수자위원회

성소수자 정치활동의 경험과 중요성
- 민주노동당 성소수자위원회 경험 중심으로-


강석주 (민주노동당 성소수자위원회) 



* 이 글을 쓰면서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민주노동당 성소수자위원장직을 맡은 지 1년이 채 되지도 않았고, 정당보다 HIV/AIDS 감염인 인권운동과 성소수자 운동의 경험이 더 많았기 때문에 어떻게 글을 시작하고 마무리를 해야할 지 막막했습니다. 그래서 역사와 관련된 내용은 간단히 짚고, 현재 성소수자 위원회가 하고 있는 고민과 실천을 중심으로 작성해보려 합니다. 오히려 이 자리를 통해 민주노동당 성소수자위원회가 바꾸거나 혹은 짊어지고 가야할 짐이 무엇인지를 서로 소통을 하며 배웠으면 좋겠습니다.



성소수자 인권운동은 민주노동당 성소수자위원회 출범의 토대가 되었다.

성소수자 정치활동은 과연 어떤 의미를 담고 있을까? 사람들마다 그 몫이 다 다르겠지만 나는 성소수자 정치활동을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싶다. 우선 이성애 중심적인 사고를 벗어나 성소수자 감수성이 발현될 수 있는 정치 환경을 만드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성소수자들도 정치참여의 주체로 등장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소수의 인원으로도 가능할 수 있는 일이겠지만 성소수자 정치활동이 소수의 활동가에게만 제한된다면 그 의미는 쉽게 퇴색될 수 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성소수자로서의 삶과 정치의 관계이며, 그 정치가 의회와 선거 후보자에게 국한된 것이 아니라 바로 성소수자의 삶을 변화시키는 모든 활동을 포함시킬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그런 면에서 성소수자 인권운동은 성소수자들이 다양한 경로로 직접적인 정치활동에 참여할 수 있게 한 소중한 자양분이 되었다. 아마도 성소수자 운동이 관련 현안들뿐만 아니라 다양한 사회적 이슈와 현안, 사회적 약자들과의 연대, 기타 정치적 문제에도 관심을 가지고 참여하였기에 성소수자들의 정치참여는 예상보다 더 빨랐을 수 있다. 이미 성소수자 정치인을 배출한 국가와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우리는 소중한 출발을 내딛고 있다.


성소수자들은 운동 초기부터 선거에 개입해왔다. 늘 없는 존재처럼 여겨지거나 주변인쯤으로 취급받았던 성소수자들이 선거에 출마한 후보자들에게 동성애 관련 질의를 던짐으로써 그 대답을 듣고자 했다. 진보정당의 영향력이 굉장히 미미하거나 성소수자들의 정치참여가 두드러지지 않았던 1997년, 2002년의 경우 대선에 출마한 후보들에게 질의를 던지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지만, 2007년은 차별금지법에 맞서는 성소수자들의 적극적인 활동과 맞물려 후보자들에게 단순 질의에만 그치지 않고 답변을 보낸 혹은 보내지 않은 후보에 대한 비판, 대선 10대 요구안 발표, 언론기고 등 적극적인 활동을 펼쳤다. 진보정당에서도 이전과 다르게 사회적 소수자 공약을 발표하고 지지를 호소하기도 했다. 이 모든 활동의 출발점은 성소수자들도 보편적으로 주어지는 선거권을 가지고 있고, 당선 당락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활동이 선거결과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는지는 확인할 길이 없다. 성소수자 운동의 영향력이 강한 미국의 경우 성소수자들의 지지를 겨냥해 레인보우로 도배를 한 오바마 대통령의 선거포스터가 등장하기도 했지만 아직 한국의 성소수자들은 정치꾼들이 계산해 놓은 투표용지 가시권 밖이다. 그런 면에서 2008년 18대 총선에서 진보신당 레즈비언 최현숙 후보가 등장한 것은 역사에도 길이 남을 사건이었다. 앞으로 어떤 선거에서든지 간에 성소수자들의 선거 대응 활동이 기대되는 것은 바로 10년 사이 눈에 띄게 진일보한 성소수자들의 다양한 선거 전략 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2004년 9월 정당 내 최초로 민주노동당 성소수자위원회가 발족하였다. 2002년 대선을 맞이하여 민주노동당에 있는 성소수자당원들과 지지자들이 진보와 성정체성의 의미가 모두 담긴 붉은 이반을 결성하면서 성소수자 커뮤니티를 대상으로 진보후보 지지 선거운동을 벌이게 된다. 이들은 성소수자들이 왜 진보 후보를 지지해야 하는지를 적극 알려나갔고 지지선언을 조직하기도 했다. 2년 동안 붉은 이반과 성소수자들을 지지하는 붉은 일반의 선전으로 당 내에서 성소수자 인권을 지지하는 이들을 넓혀나갈 수 있었고 결국 성소수자위원회를 당 내에 안착시킬 수 있었다.




진보정치에 대한 처음의 기대와 달리 당내에서 성소수자 문제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거나 성소수자에 대한 기본적인 개념조차 알고 있지 못한 사람들을 맞닥뜨려야 했다. 2004년에 있던 당직선거에서는 호모포비아 후보들이 출마해 낙선운동을 전개해야 했고, 같은 해 7월에는 성소수자위원회가 올린 예산안이 타당하지 않은 이유로 전액 삭감되는 일도 있었다. 민주노동당 역시 성소수자를 배척해서는 안된다는 원칙만 가지고 있었지 성소수자들의 현실을 전혀 인식하지 못하거나 고민조차 시작하지 않은 이들이 많았다는 점을 부인할 수가 없다.


민주노동당 성소수자위원회 탄생과정과 초기 활동을 보면 결코 평탄하지 않았다. 대내외적으로 진보정당에서 성소수자 인권증진이 꼭 필요한 가치 중에 하나임을 지속적으로 설득시켜야 했다.당 내 성평등 교육과정을 성소수자 영역으로까지 확대하여 장소와 지역을 가리지 않고 성소수자들의 삶과 인권을 이야기해왔다. 그것은 성소수자위원회가 성소수자 운동과 당내 성소수자들의 힘겨운 투쟁을 통해 만들어낸 산물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성소수자위원회는 민주노동당에 존재하는 부문위원회와는 다른 위상을 가질 수밖에 없다. 민주노동당 강령에는
“성적소수자를 비롯한 우리 사회의 모든 소수자들이 어떠한 종류의 법적, 사회적, 문화적 차별과 편견에 의해서도 고통받지 않고 이 모두가 정정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적극적인 투쟁을 할 것이다”라고 다짐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부족하고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운동을 통한 정치, 정책을 만들어내다.

성소수자운동과 정치는 지속적으로 공존하며 다듬어져 가고 있다. 일부 성소수자 활동가들이 진보정당을 중심으로 소속되어 있어 상호보완 관계는 앞으로도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사회적 소수자들의 이슈를 고민하는 위원회들의 출범은 활동의 저변의 넓히는 데도 기여해왔다. 진보정당 내 성소수자위원회와 성정치기획단이 존재함에 따라 성소수자 운동은 다양한 방법을 동원해 성소수자 인권 이슈를 사회적으로 제기할 수 있는 기회를 확보할 수 있게 되었다. 우선 성소수자들에게 필요한 입법안을 직접 준비할 수 있게 되었고 국정감사에서는 HIV/AIDS 감염인, 성소수자 차별에 관련된 내용을 피감기관에게 시정 조치를 요구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또한 국회에서 성소수자 교육이나 성소수자, HIV/AIDS 관련 법안 공청회 등이 개최될 수 있었다.


제17대 민주노동당이 진보정당 사상 원내 최초로 진출하게 되었다. 사실 진보정당이 적은 의석수를 가지고 할 수 있는 일은 극히 제한적이었다. 10명의 의원이 되지 않으면 법률 하나 발의하기가 쉽지 않는 곳이 국회이기 때문에 성소수자 관련 법안을 상정해서 통과 시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하지만 이런 답답한 현실과 달리 민주노동당이 원내 진출을 하면서 성소수자 운동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자신의 목소리를 대변할 수 없었던 사회적 소수자들은 민주노동당의 국회의원 배출에 기대감이 높았다. 전략적으로 국회를 이용하여 각종 정부정책을 비판하고, 정보를 수집하고, 운동과 함께 정책을 만들어 내는 과정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시도하지 못했던 입법 운동에 대한 논의도 시작되었다. 하지만 법안이 상정되더라도 국회의원들만의 논의 과정 속에서 보수정당의 입맛에 따라 본래의 법안 취지가 얼마나 훼손되는지를 실감할 수 있었다. 민주노동당 성소수자위원회가 성소수자, HIV/AIDS 인권운동과 함께 법안개정을 시도했던 후천성면역결핍증 예방법과 성전환자 성별 정정 특별법 제정, 차별금지법 제정 역시 완성되지 못하고 아쉽게 막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17대 국회가 막을 내리고 18대 국회가 시작되었지만 진보정당의 의석수는 이전보다 더 적어졌다. 용산참사, 4대강 사업 강행, 각종 복지기금 삭감 등 불도저식으로 몰아붙이는 정부 아래 성소수자 차별을 금지하고 인권을 증진시키는 법안 논의는 엄두도 못 내고 있다. 사실 관련 법안이 통과되더라도 성소수자들의 삶을 송두리째 변화시키지는 못할 것이다. 법안 발의라는 과제에서도 간과하지 말아야 할 점은 원내에서 할 수 있는 제한적인 역할에 초점을 두기보다 대중적인 여론형성을 어떻게 형성해 나갈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함께 해야 한다는 점이다. 운동과 여론이 함께 움직일 때야 말로 법안의 문구로만 존재했던 차별이 실제로 보여 지게 된다. 민주노동당에 속해있는 성소수자 활동가들도 바로 이 점을 주목하고 있다.


입법운동에만 매몰되는 것을 경계하고 늘 성소수자 운동 속에서 우리가 실천해야 할 활동을 고민하고 방향성을 찾는 일이 필요하다. 정당 내 부문위원회로 안주하는 것이 아니라 당의 진보성을 지속할 수 있도록 견인하고 강제하는 역할도 마다해서는 안 된다. 특히 의회주의에 대한 환상과 진보를 적당히 타협하고자 하는 모습은 성소수자위원회로서 용납될 수 없는 태도이다. 차선을 택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차악이라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따라서 최근 재보선 선거에서 진보대연합보다 반MB연합을 강조하며 민주당과 선거 연합전술을 펼치려고 했던 진보정당의 태도는 완전히 잘 못된 전략이었고 이는 2010년 지방선거에서도 유념해 지켜보아야 할 대목이다. 조금은 무리해서 확대해석하자면 2007년 차별금지법안 차별항목에서 성적지향이 제외될 때 일부 시민사회 진영에서 7개 차별항목이 제외된 상태에서 차별금지법을 통과시키는 운동을 전개하되 이후 개정운동을 펼쳐야 한다고 했는데. 과연 우리는 이 전술을 용인할 수 있었겠는가.


진보정당 내 성소수자 정치는 바로 ‘진보’의 관점을 타협하지 않고 얼마나 견인할 수 있느냐에 달려있다. 당이 변할 수 있을 거라는 우려를 무관심으로 대처하기 보다는 적극적인 질책과 문제제기를 통해 변화시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한 정당이 의회바라기로 전락되지 않고 성소수자 운동과 함께 숨 쉴 수 있는 협조, 연대체계를 더욱 강화시켜야 한다.



성소수자 정치활동의 변화와 발전

2009년 현재에도 성소수자들의 삶은 그리 녹록치만은 않다. 아직 시도되지도 못한 성소수자 현안은 산적해있고 진보정당 내 당원들을 대상으로 한 성소수자 평등교육도 더욱 강화되어야 한다. 비록 당내에서는 성소수자 운동과제를 중심이 아닌 부차적인 과제쯤으로 생각하는 분위기가 존재하지만 그동안 많은 활동가들의 노력이 있었기에 민주노동당 성소수자위원회가 현재 이 자리까지 왔다고 생각한다.


민주노동당 성소수자위원회는 또 다시 출발선에 서 있다. 2010년 지방선거를 준비하는 활동도 시작되었다. 당장 지역에 성소수자 후보를 내세우지 못하더라도 성소수자 정치를 구현하기 위한 다양한 방법들을 찾아보고 있다. 또한 진보후보들이 성소수자 공약을 외면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받아 안을 수 있게 노력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성소수자 정치활동의 인큐베이터 역할을 하고 있는 성소수자 운동과의 관계를 보다 강화하여 성소수자들의 삶을 실질적으로 변화시키기 위한 활동을 더욱 확장시켜나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당 내에 있는 활동가들이 몇 배 이상의 노력을 경주할 필요가 있다.


누군가 나에게 정치가 무엇이냐고 물어본다면, 보이지도 않고 만져지지도 않는 뜬구름이 아니라 내가 하루하루 겪고 있는 삶, 즉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살고 싶은 바람과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를 되찾고 싶은 욕구가 바로 정치라는 것이다. 선거 때 반짝 등장하거나 국회의원들이 선심 쓰듯 한번 외치고 마는 공약이 아니라 조금 더 낳은 삶을 누리고 싶은 우리들의 욕구가 바로 정치임을 아는 순간 바로 성소수자 정치활동을 시작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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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제임스 2009.12.31 11:16

    성소수자위원회의 활동을 언제나 지지하고 있습니다.
    당 내 많은 고민을 함께 잘 풀어냈으면 좋겠습니다. 당내의 많은 당원들과 소통의 과정을 통해
    많은 활동과 힘을 발휘해나가길 기대합니다. 잘읽고 갑니다.

  2. 이반해방전선 2009.12.31 21:52

    위원장님 사랑해요, 성소수자위원회 화이팅^^

성정체성에 대한 오해와 진실, 세 번째
"성정체성에 대한 오해를 바로잡기 위한 진보정당의 역할"

정욜 (민주노동당 성소수자위원회)

  웹진 레인보友는 그동안 당원들이 알고 있어야 할 기본적인 지식으로 “성정체성"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동성애 원인론을 비판하는 글을 시작으로, 지난 호에는 성정체성 형성과정과 의문들에 대해 소개하였습니다. 이번 호에서는 성정체성에 대한 오해를 바로잡기 위한 진보정당의 역할과 정책과제가 무엇인지 정리해 보고자 합니다.

그동안 게이, 레즈비언으로 살아왔다고 생각했던 사람이 어느 날 결혼한다며 불쑥 찾아와 청첩장을 돌린다면 어떤 생각이 들까? 누가 봐도 행복한 가정을 꾸려왔던 남자가 어느 날 갑자기 자신이 게이라며 아내와 자녀에게 커밍아웃을 한다면 우리는 그 행동에 지지를 보낼 수 있을까?

성정체성은 굉장히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다. 순서도에 맞게 형성되어 가는 것도 아니고 성별, 나이와도 깊은 관련이 없는 듯 보인다. 남자(여자)라고 해서 성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더 많이 하는 것도 아니고, 반드시 청소년기에만 성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시작하는 것도 아니다. 서서히 물이 스며들듯이 찾아오기도 하며, 때론 갑작스럽게 성정체성을 깨닫기도 한다.

성정체성은 단일하고 고정불변한 것도 아니다. 청소년 성소수자 문화 속에서는 ‘탈반’(탈반 : 이반생활을 벗어나다의 의미)이라는 용어가 있을 만큼 ‘변하는’ 사람들에 대한 배신감도 존재하지만 성정체성은 충분히 유동적일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지금 나의 성적지향이 어디를 향해있는가이지 반드시 나의 성정체성을 ‘은장도’를 세워가며 평생 동안 지켜나갈 의무는 없다. 성정체성에 대한 고민, 결정, 선택 모두 개인의 몫이다. 타인이 대신 성정체성을 결정해 줄 수 없다. 주변에서 왈가왈부한 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결혼, 가족과 같이 사회적 관계도가 덧붙여지면 상황이 조금 복잡해진다. 결혼적령기를 맞은 내 친구들 가운데에는 가족들의 성화에 못 이겨 결혼을 진지하게 고민하는 이들도 있고 이미 결혼을 하고나서 성정체성을 알게 되어 괴로움을 호소하는 이들도 있다. 속된 말로 빼도 박도 못하는 상황이 되다보니 고민을 함께 나눌 친구를 만들기보다 그냥 음지에서 섹스할 상대만을 찾는 사람들을 종종 보게 된다. 이미 이혼한 이들도 심심치 않게 만날 수 있다.

결혼한 이가 커밍아웃을 했을 때 그 용기에 박수를 보내 줄 이가 얼마나 될까. 오히려 배우자와 자녀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준 파렴치한 정도의 취급을 받을 것이다. 그것이 바로 우리 사회의 통념이자 질서이고 가치관이다. 일부 성소수자들도 좀 더 도덕적이고 사회적 기준에 적합한 게이, 레즈비언들만이 사회구성원으로 인정받고자 하지 조금이라도 삐딱한 사람들은 자격조차 없다고 치부해버린다.

모두 개인의 책임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성정체성은 개인이 결정할 몫이지만, 그 결정을 하기까지 벌어질 수 있는 수많은 문제들까지 개인의 책임으로 환원시킬 수 없다. 우리는 단 한 번도 성정체성을 긍정적으로 고민해 본 적 없다. 동성애 혐오와 검열의 날을 세운 학교에서는 침묵해야 하고 결혼이라는 압박 속에서 늘 자신을 속여야 한다. 자신을 채찍질해가며 힘들게 알게 된 성정체성인데도 생활하는 모든 공간에서 드러나지 않도록 긴장감을 유지하며 살아가야 한다. 행여나 드러날라 치면 모르는 척, 아닌 척 연기를 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가치관과 사회질서에 가려져 보이지 않는 성소수자들의 삶이다.  

민주노동당 성소수자위원회에서 제작한 레인보友 버튼

  진보정당의 역할

 진보정당은 보이지 않는 성소수자들의 삶을 적극적으로 대변할 수 있어야 한다. 보수정당들이 외면하는 소수자들의 문제를 진보의 주요 과제로 인식하고 당사자들과 시선을 맞추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해서는 안된다. 

성정체성에 대한 오해를 바로잡기 위한 역할을 포기하거나 소홀히 해서도 안 된다. 또한 동성애 원인을 밝혀내기 위한 일체의 연구에 반대해야 하며 성정체성 형성과정에서 혼란을 느끼는 이들을 지지할 수 있어야 한다. 심정적인 지지, 지원을 기본이라고 한다면 사회적 환경을 변화시키고 제도적인 장치를 새롭게 만들어 나가기 위한 적극적인 자세도 필요하다. ‘성정체성을 깨닫는 과정이 왜 이렇게 힘들까?’ 에 대한 의문을 제기할 수 있어야 하고 그에 따른 사회적 책임도 물을 수 있어야 한다.

 성정체성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는 교육과 상담이 시공간을 초월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는 건 기본 과제이며 편견을 조장할 수 있는 법과 제도, 각종 지침들은 뜯어 고쳐야 한다. 차별을 예방하고 인권감수성을 높일 수 있는 법과 제도를 새롭게 만들어 성소수자라는 이유만으로 부당한 인권침해와 차별이 존재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최소한의 조건이 만들어졌을 때야 말로 청첩장을 가져오는 게이, 레즈비언을 만나더라도 당황스럽지 않을 것이고 (자연스러운 성정체성 과정 속에서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로 여길 수 있을 것 이다.), 배우자와 자녀에게 커밍아웃하더라도 그의 행동이 무책임하다며 비난하기 앞서 우선 자신의 성정체성을 ‘제대로’ 알게 되었다는 점을 지지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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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정체성에 대한 오해와 진실, 두 번째
“성소수자들은 그냥 하늘에서 떨어진 줄 알아??”

정욜 (민주노동당 성소수자위원회)

민주노동당 성소수자위원회 웹진 ‘레인보友’는 총 3회에 걸쳐 “성정체성에 대한 오해와 진실”에 대해 살펴보고 있습니다. 레인보우2호에서는 동성애 원인론에 대해 다뤘고 이번 호에서는 성정체성 형성과정과 그 중요성에 대해 소개할 예정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다음 호에는 민주노동당이 앞으로 고민하고 해결해야 할 정책들을 정리해나갈 것입니다. 마지막까지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고등학교 3학년 수능이 끝나갈 무렵 나는 나의 성정체성에 대해 어느 정도 인지하고 있었다. 사실 확실히 인지하기보다 어쩔 수 없는 수긍에 가까웠다. 그 후 몇 해 동안 내가 왜 게이라고 생각하는지에 대한 이유와 계기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였다. 누가 특별히 알려준 것도 없는데 어떻게 알 수 있었을까 라는 생각과 함께 ‘그럴 수도 있을 거야’ ‘숨기고 살면 되지 뭐’ ‘그냥 다른 사람들과 다른 거야’라며 스스로를 다독이곤 했다. 꽤 많은 시간동안 나는 나에게 질문을 던졌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내가 게이로 살아가야 할 특별한 이유가 없는데 나는 왜 이렇게 살아가야 할까. 동성 친구와의 스킨십 때문일까? 아니면 어린 시절 로봇보다 인형을 더 좋아했기 때문인 걸까? 어렸을 때 부모님이 많이 싸워서일까?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말도 안 되는 이유들을 끄집어냈다. 정답도 없는 질문들에 나는 답답함을 느꼈다. 그래도 끈질기게 정답을 찾고 싶었다. 그래야지 오답풀이 문제집을 보며 내가 틀린 문제에 대해 완벽히 이해했을 때처럼 통쾌한 느낌을 가질 것 같았다.

이성애자로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이성애자라는 사실을 의심하거나 숨기고 살아가야 하는 불편함이 별로 없다. 이 사회에서 자연스럽게 여겨지는 한 부분으로 여겨지다 보니 왜 이성애자로 살아가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을 가질 필요도 없고 특별히 자신에게 던질 질문도 없다. 그저 고민자체가 무의미하게 여겨진다. 하지만 성소수자들은 자신이 왜 남들과 다를까 라는 고민에서부터 출발한다. 혼자라는 생각에 외롭고 괴롭다. 자신에 대한 죄책감 때문에 성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긍정할 수도 없다. 그동안 관계 맺어 왔던 모든 사람들이 나를 적대할 것 같고, 내 편이 누구도 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에 때로 자살과 같은 극단의 선택을 하기도 한다.

나는 10년 넘게 동성애자인권연대 활동을 하며 다양한 성소수자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들은 늘 고립되었다는 생각에 매우 힘들어 했고 자기 자신이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다. 또 가족과 친구, 자신이 속한 모든 공간(학교, 군대, 직장 등)에서 자신의 성정체성을 숨기고 살아가야 하다 보니 답답함과 외로움을 느끼고 있었다. 심지어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자신 때문에 그동안 쌓아왔던 인간관계 모두 사라질까 두려워하고 있었다. 성정체성을 고민하면서 갖게 되는 의문들이 모두 동일하지 않겠지만 그 결론이 나의 문제로 귀결된다면 그것만큼 참담한 상황은 없을 것이다.

나 역시 단체에 찾아가기 전까지 비슷한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단체 사무실에 들어가는 순간까지 어떤 사람들이 있을까. 나를 해치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좀처럼 긴장이 사라지지 않았다. 난 아직도 사무실에 첫발을 디뎠던 그 순간을 잊지 못한다. 10년도 훌쩍 넘었지만 내가 입었던 옷과 사무실 위치, 처음 대면했던 사람들의 표정 하나하나까지 정확히 기억하고 있다. 그 만큼 나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이었고 시기였다. 무엇보다 좋았던 것은 나와 같은 사람들을 만난다는 것이었다. 그들과 함께 있다는 것만으로도 죄책감대신 안도감이 들었다. 내 잘못이 아니라는 생각에 기쁨과 희열이 느껴지기도 했다. 대부분의 성소수자들이 맞는 첫 번째 도전은 바로 자기 자신에 대한 인정과 긍정이다. 도움과 지지를 받을 수 있는 곳이 없다보니 늘 혼자만의 몫으로 남겨지게 된다. 다르다의 문제로 접근하기보다 ‘틀리다, 문제가 있다’라는 식으로 접근하기 쉽다. 만약 주변에 고민을 함께 나눠줄 수 없는 단체나 모임, 친구들이 없다면 고립감을 느끼는 정도는 더 심할 수밖에 없다.

성소수자라는 사실을 확신하기까지

성정체성과 관련한 연구는 그동안 많이 있어왔다. 물론 이론적 연구는 참고사항일 뿐 절대적인 진리는 아니다. 개인마다 성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과 시기가 다르다보니 쉽게 일반화시킬 수는 없다. 하지만 성정체성 확립과정에 대한 연구와 현실을 조합해보면 대부분의 성소수자들은 혼란과 인식, 저항과 수용, 그리고 자긍심을 갖게 되는 과정을 거치고 있다. 자신이 처해있는 조건(가족환경, 종교 등)이 다르다보니 각 시기마다 느끼는 정도, 극복하는 정도 모두가 다르다. 어떤 이는 혼란시기 겪게 되는 죄책감과 저항시기 겪게 되는 자기혐오, 수치심이 너무 강해 자신에 대한 자긍심을 찾지 못하기도 한다. 앞서 소개한 경험을 여기에 빗대어보면, 나는 굉장히 운이 좋은 편일 것이다. 적절한 혼란과 수용이 있었고 지금은 나에 대한 자긍심과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성소수자들은 자신에 대한 부정과 혐오 때문에 힘들게 살아가고 있다. 심지어 건강한 삶 자체를 강제로 포기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이성애자에 비해 우울증이 심하고 자살사고가 높다라는 통계는 성정체성을 긍정하지 못하는 성소수자들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준다. 만약 자신의 성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긍정할 수만 있다면 삶의 가치를 높이고 지지그룹들을 계속 확대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지지자들은 삶을 지탱해주는 주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그들이 울타리가 되어 있다는 생각에 이 세상을 좀 더 안정되고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다는 믿음이 생기기도 한다.

확신한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사회는 성정체성만으로 살 수 없다. 자긍심을 끊임없이 흠집내는 상황이 벌어진다. 나에게도 몇 차례의 위험이 있었다. 물론 앞으로도 셀 수 없을 만큼의 도전이 있을 것이다. 대표적으로는 군대생활과 가족이었다. 성정체성이 알려지게 되면서, 지금도 생각하고 싶지 않은 끔찍한 경험을 했다. 나의 자긍심은 다시 죄책감과 혐오로 돌아왔다. 그것을 다시 극복하기까지는 이전보다 더 많은 시간을 걸렸다. 성정체성 형성이라는 것이 어쩌면 다람쥐 쳇바퀴 돌아가듯 보이지만, 자신을 긍정하는 힘은 자신이 놓일 수 있는 차별적인 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힘과 연결되어 있다. 혼자로는 힘들다. 앞서 말한 것처럼 지지자들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정서적인 격려도 중요하지만 도전을 맞이했을 때 함께 싸워 줄 수 있는 동지로서 존재할 필요가 있다.

성정체성을 고민하는 순간부터 이 사회의 구성원으로 살아가며 겪게 되는 수많은 도전들 속에서 지지자를 만나고 더 큰 힘을 낸다면 성정체성은 더 이상 괴로워 할 문제가 아니다. 

민주노동당은 바로 성정체성을 고민하는 과정 속에 있는 이들은 물론 도전 앞에 주춤되고 있는 수많은 성소수자들의 지지자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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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정체성에 대한 오해와 진실, 첫 번째- “ 넌 어쩌다 성(性)소수자가 되었니?”

정욜 (민주노동당 성소수자위원회)

민주노동당 성소수자위원회 웹진 ‘레인보友’는 앞으로 3회에 걸쳐 “성정체성에 대한 오해와 진실”에 대해 좀 더 깊이 살펴 볼 예정입니다. 짧은 지면을 통해 성정체성에 대한 모든 궁금증들을 담아낼 수는 없겠지만 이 글이 당원들의 성소수자 인권감수성을 높이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됐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봅니다. 동성애 원인론을 시작으로 성정체성 형성과정, 그 외의 여러 의문들을 소개하고, 민주노동당이 앞으로 고민하고 해결해야 할 정책들을 정리해나갈 것입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그래도 청소년 때는 안 됩니다.”
몇 년 전 대구에 위치해 있는 인권단체의 초청을 받아 성소수자 인권 관련 강의를 하러 간 적이 있었다. 그 자리에 진보적인 학부모단체에서 참여한 분이 계셨는데 - 아마도 중고생 자녀를 둔 학부모였을 것이다. - 그 분이 몇 십 분간의 논쟁 끝에 내뱉은 말이었다. 그는 동성애가 청소년들에게 유행처럼 퍼져나갈까 매우 우려하고 있었다. 그 당시는 팬픽과 야오이(남성 캐릭터들 간의 동성애를 다룬 여성들의 동인지물) 문화가 청소년들을 사로잡고 있었던 시기여서 더욱 그런 심정이었는지 모른다. 청소년 동성애자에 대한 이러한 시각은 여전히 크게 변하지 않고 있다. 그저 청소년 동성애자는 사회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불량학생이거나 방황하는 시기를 보내고 있다는 식의 인식이 팽배하다. 이 학부모 역시 성소수자 인권을 지지한다고는 했지만 결국 청소년들의 성정체성 문제 앞에서는 이 이상의 답을 찾지 못했다.


                           5월9일, 청소년 성소수자 무지개 봄꽃을 피우다 캠페인

한국 성소수자 사회의식조사(2007)에 따르면, 성소수자들이 자신의 성(별)정체성을 인식하는 시기는 평균적으로 18.6세 때이다. 135명의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도 많은 청소년들이 중학교시기(평균 13.8세)에 성정체성을 인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많은 성소수자들이 청소년기 때 자신의 정체성을 깨닫고 있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는 개인의 성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가볍고 단순하게 무시한다. 혹은 ‘청소년기 때는 안 된다’라는 말로 그들의 존재와 욕망을 부정한다.

청소년 성소수자를 바라보는 이와 같은 태도에는 성 정체성을 방황하는 시기의 잘못된 선택쯤으로 여기고자 하는 의식이 잠재되어 있다. 비유를 들자면, 술, 담배에 대한 선호와 같은 것으로 취급하는 것이다. 이런 사회 속에서 자신의 성정체성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는 청소년들은 더욱 고립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들 때문에 상당수 청소년 성소수자들이 위험한 상황(우울, 가출, 자살 등)에 무방비로 노출되고 있다.

청소년들에게 놓인 사회적인 조건을 보지 않고, 그들의 놀이 문화나 작은 행위만을 이유삼아 ‘일탈했다’ ‘불량하다’라고 규정하는 태도에도 문제가 있다. 사실 성인들에게 청소년들을 통제하고 규제할 수 있는 그 어떤 자격도 주어진 적은 없다. 중요한 것은 성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청소년기에 충분히 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하고 그들이 좀 더 자유롭고, 긍정적인 상황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갈 수 있는 사회적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는 점이다.

넌 어쩌다 이성애자로 살고 있니?

성정체성의 원인을 찾으려는 연구만큼, 흥미로운 것이 있을까? 그런데 더욱 흥미로운 사실이 여기 있다. 성정체성의 원인에 대한 수많은 연구가 진행되어 왔음에도 그 누구도 뚜렷한 원인을 발견하지 못하고, 오직 우스운 가설을 합리화 시키는 주장들만이 난무하는 가운데, 이러한 주장들이 동성애를 혐오하는 사람들에 의해 확대 재생산되어 성정체성을 고민하고 있는 당사자들에게까지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이다. 청소년 성소수자들은 본인의 의사와 무관하게 느껴지는 동성에 대한 호감과 성적인 욕망들이 잘못되었다는 생각에 스스로 병원을 찾기도 한다. 그리고 자신에 대한 혐오와 괴로움 때문에 이성애자가 되기 위한 결심과 실천을 하기도 한다. 이처럼 우리나라 청소년 성소수자들이 겪어야만 하는 낯선 경험들에서 성정체성을 긍정적으로 수용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여기서 잠시, 대표적인 동성애 원인 연구 몇 가지를 소개하고자 한다.

첫 번째, 유전론이다. 이들은 ‘부모로부터 받은 유전적인 요인이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하고 호르몬이나 뇌구조가 이성애자와 다르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두 번째, 정신분석학적으로 접근하는 이들도 있다. 이들은 부모와의 갈등, 가족의 상호작용이 잘못되어 성정체성이 고착된다고 보고 있다.

세 번째로는 ‘학습으로 가능하다’라고 보는 이들도 있다. 어릴 때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발생하는 성경험이나 기숙사, 교도소, 군대와 같은 곳에서 갖게 되는 동성과의 성경험이 성정체성 결정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보는 것이다. 위험한 것은, 이러한 입장을 견지하는 이들은 다시 역으로, 학습과 훈련을 통해 잘못된(?) 성정체성이 교정될 수 있다고 본다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전기충격, 혐오연상 등 끔찍한 동성애 치료법이 이러한 연구와 함께 등장했다.

이와 같이, 그동안 정답이 부재한 문제에(질문의 내용 자체가 잘못된) 부적절한 연구만이 존재해 왔다. 그리고 연구를 빙자해 동성애와 같은 비이성애적 성정체성을 치료하겠다는 거짓으로 끔찍한 폭력이 자행된 지난 역사를 확인할 수 있었다. 동성애의 원인을 탐구하는 연구는 기본적으로 ‘이성애가 이 사회에서 정상이고 동성애나 트랜스젠더의 경우는 비정상’이라는 인식에서 출발한다. 그런데 이성애에 대한 연구는 왜 존재하지 않는 것일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당연한 것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것이 왜 이성애만 당연한 것인지 되물을 수 있어야 한다. 정말 동성애의 원인을 알고 싶다면 이성애의 원인을 먼저 탐구할 것을 제안한다. 이성애의 원인, 이성애자가 되기 위한 방법이 밝혀진다면 자연스럽게 동성애의 원인과 치료법을 발견할 수 있을 것 아닌가. 애초부터 동성애에 대한 시각은 부정적인 이미지로 뒤덮인 것이었다. 사이비 과학자들이 밝힌 동성애의 원인은 늘, 가정이 화목하지 못했거나, 동네 아저씨한테 추행을 당한 경험이 있다거나 아니면 뇌구조가 이상하다거나 하는 식이었다. “우리 집은 화목한 가정입니다. 그래서 전 동성애자가 된 것 같아요!”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던가!

동성애의 원인을 밝히려는 모든 행위, 그 자체가 폭력이다. 1995년 발표된 동성애자 인권선언문에 언급되었듯이 “동성애란 잘못된 선천적인 자질도 아니고, 나아가 성장과 교육의 왜곡에 따른 비정상적인 결과는 더더욱 아니다. 동성애를 해부하고 규명하려는 그 어떤 치밀하고 집요한 노력, 그것은 동성애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고 이것이 많은 이들의 삶 속에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을 부인하려는 광기이자 폭력일 뿐이다.”

당원들이 함께 고민한다면!

우선 원인을 파헤치려는 집착을 버리는 것이 중요하다. 함께 활동하는 당원이 성소수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면, 혹은 성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진행 중이라면 그 사람이 왜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을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 라는 식의 궁금증을 갖기 마련이다. 하지만 의심을 품기보다 우선 존재 그대로를 긍정할 필요가 있다. 성소수자는 누구나 자신의 성 정체성을 인정하기까지 많은 시련을 겪는다. 당신이 알게 된 성소수자에게 ‘어쩌다 이렇게 되었는가’라는 어리석은 물음 대신, ‘잘 이겨냈다’라는 격려 한마디와 ‘차별 없는 세상을 함께 만들자’라는 연대의 마음을 표현하길 제안한다. 그렇다면 아마도 당신은 타인에게 세상에서 가장 값진 선물을 주게되는 것이리라.

만약 성정체성에 대해 고민 중인 당원들을 만난다면 쉽게 답을 내려한다거나, 어떤 계기가 있었는지를 단도직입적으로 묻기보다 고민을 긍정적으로 할 수 있게 이끌 필요가 있다. 상담의 기본이 경청과 무조건적인 긍정이라는 점을 잊지 않고 성정체성 혼란을 함께 겪어주는 것도 중요하다.

이성애에 대한 원인을 찾지 않는 것처럼 “왜 성소수자가 되었을까”라는 물음보다 존재에 대한 긍정부터 시작해보자! 많은 변화가 찾아 올 것이다.

Comment

  1. 이안 2010.02.13 19:30

    ‥* 네이버 오픈캐스트 '비 온 뒤 무지개 - [No.000]' 에 소개됩니다. ('-')/♥

서로를 존중하고 깊이 알아가는 과정~ ‘커밍아웃’ 지지하기.

2009.04.05 21:56 | Posted by 민주노동당 성소수자위원회 성소수자위원회


정욜(민주노동당 성소수자위원회)

  커밍아웃이라고 하면 성(性)소수자가 자신의 성정체성이나 성적지향을 주위의 친구나 가족들에게 알리는 행위를 말한다. 최근에는 정치, 경제, 연예영역을 막론하고 여기저기서 사용되고 있다 보니, 이제 커밍아웃이라는 용어 자체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성애자, 성소수자 불문하고 “자신이 밝히고 싶지 않은 사실을 용기 내어 누군가에게 이야기할 때” 커밍아웃이라는 표현을 쉽게 쓴다. 이제는 언론지면 상의 헤드라인 카피로도 익숙하다. 사실 성소수자 사이에서만 알려져 왔던 이 용어가 대중적으로 사용된다는 것은 매우 반가운 일이다. 가볍게 뱉은 말이라고 할지라도 그 속에서 동성애를 이해하고 커밍아웃의 진정한 의미를 찾지 않을까하는 기대감을 갖게 한다. 하지만 아쉽게도 아직까지 그 정도의 수준은 아닌 듯하다. 커밍아웃을 단순히 드러내기 정도로만 받아드리고 있고 성소수자들이 왜 커밍아웃을 하고 커밍아웃을 어떻게 준비하는지 잘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성소수자들은 왜 커밍아웃을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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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밍아웃은 세상에 대한 도전이자,
                            지지자를 만들기 위한 용기있는 행동이다.

  커밍아웃은 ’벽장으로부터 나오다‘라는 사전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 오랫동안 벽장 속에 숨어 온 성소수자들이 자신감과 용기를 가지고 “내게도 이런 면이 있어...”하며 자기 자신을 표현하는 것이다. 평소 동성애에 대해 단 한 번도 생각하지 못한 사람에게 가장 가까운 친구나 가족 중에 한 명이 커밍아웃했다고 가정해보자. 과연 어떤 상황이 벌어질까? 처음에는 무척이나 당황하고 황당해할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그 다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고민할 것이고 긴 시간 고민 끝에 겨우 내뱉은 말은 ’미쳤어‘ ’농담하지마‘ ’바뀔 수는 있는 거니?‘ ’어쩐지 어릴 때부터 알아봤다‘ ’다른 사람한테 이야기 하지마‘ ’전염되는 것은 아니지?‘ 뭐 이정도의 말이 나오지 않을까 싶다. 이 글을 적고 있는 나도 커밍아웃했던 순간들을 돌이켜 생각해보면 위와 다르지 않은 이야기를 들었던 것 같다. 처음에는 매우 당황스러워서 할 말도 잃어버렸었는데 지금이라면 다시는 그 사람을 보지 않을 것 같다. 앞서 말한 것처럼, 오랜 시간동안 벽장 안에서 힘들게 살다 나의 존재에 대해 말한 것인데 삶의 고민을 함께 나눠주지 못할망정 혐오스러운 말만 앞세운다면 더 이상 말을 이어나갈 가치가 있겠는가

  지난 총선 때는 진보신당에서 최초로 커밍아웃한 레즈비언 후보가 종로지역에서 출마했다. 많은 사람들이 그녀의 커밍아웃을 진심으로 축하했고, 그녀의 도전이 무위로 돌아가지 않기를 바랬다. 모든 성소수자들이 그녀처럼 정치적으로 커밍아웃할 수 없다. 커밍아웃이 자신감과 용기의 표현이라고 하더라도 동전의 양면과도 같아 한 순간에 많은 것들을 잃게 할 수도 있다. 가족으로부터 배제될 수도 있고, 학교와 직장을 잃게 될 수도 있으며, 군대에서 심각한 폭력과 인권침해에 노출될 수도 있다. 이런 현실을 잘 아는 성소수자들이 커밍아웃을 하기란 결코 쉽지가 않다. 벽장은 성소수자의 삶 속에서 끊임없이 만날 수 있다. 하나가 해결된다고 기뻐하고 있을 수 없다. 다음 벽장이 늘 준비하고 있다. 더 나은 삶을 위해서는 벽장 자체가 없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민주노동당 내 성소수자위원회가 있다는 것은 당 내에서 큰 의미의 커밍아웃이다. 민주노동당 내에도 성소수자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릴 수도 있지만 가장 중요한 목적은 무엇보다 성소수자 인권을 지지하는 당원들을 직접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그런 당원들을 통해 척박한 성소수자 인권현실이 개선될 수 있을 거란 기대를 가질 수 있다.

성소수자들이 커밍아웃을 하는 이유는 바로 나를 지지해 줄 수 있는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서다.



커밍아웃한 당원에게 당신이 할 수 있는 세 가지 행동

마지막으로 또 어딘가에서 당신에게 커밍아웃을 준비하고 있는 성소수자 당원이 있을 수 있다는 생각에 그들을 만날 때 취하면 좋을 태도를 간단히 소개해보고자 한다.

1.우선 축하와 지지를 ‘직접적으로’ 표현해 보자.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지만 자기 주변에 성소수자가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을 쉽게 하지 못한다. 민주노동당 당원들도 마찬가지다. 여러 부문위원회가운데 성소수자위원회가 있다 보니, 당 내 성소수자들이 있을 수도 있겠다라고 생각하는 정도지 성소수자들이 자기 주변에, 우리 지역위 내 있을 거란 생각을 하지 못한다. 그러다보니 갑작스런 커밍아웃에 당황하기도 하고 그 다음 어떤 말로 상대와 대화를 이어갈지 고민하게 될 것이다. 우선 성정체성을 찾기 위해 노력해왔던 과정을 극복하고 스스로를 긍정했다는 점을 진심으로 축하해주고 지지를 해주자. 가슴에 담아두지만 말로, 직접적으로 말로 표현하면 더욱 좋을 것이다.

2. 커밍아웃할 만큼 나를 신뢰하고 있다는 점에
                                           대해 고맙다고 말해보자

힘든 일이 있거나 자기만 가지고 있던 비밀을 터놓을 때 갖게 되는 심정은 아마 상대로부터 위로받고 지지받기 위해서다. 또한 아무에게나 그런 비밀과 힘듦을 터놓지 않는다. 커밍아웃도 마찬가지다. 성소수자는 커밍아웃하기 전 상대가 커밍아웃할 만큼 신뢰를 가지고 있는 사람인지 아닌지 가늠해본다. 커밍아웃 자체가 큰 위험부담을 갖고 있는 행동이다 보니, 평소 그 사람이 가지고 있던 가치관과 감수성 등을 돌이켜 볼 것이다. 신뢰가 없다면 커밍아웃은 불가능하다. 그런만큼 상대에게 나를 믿고 의지해 줘서 고맙다고 말하자. 신뢰가 이전보다 더욱 쌓일 것이다.

3. 상대가 동의하지 않는 한 성정체성에 대한 
                                         비밀을 끝까지 지켜주자.

커밍아웃은 상대가 받아주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따라 일생이 바뀔 수도 있는 중요한 문제다. 그런 만큼 상대의 커밍아웃을 받아들일 수 없다 해도 당신 자신의 선에서 비밀을 지켜주어야 한다. 그것이 커밍아웃한 성소수자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가 아닐까. 당신에 대한 전인격적인 신뢰를 바탕으로 커밍아웃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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