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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애 혐오를 마주하다.

2010.10.18 18:56 | Posted by 민주노동당 성소수자위원회 성소수자위원회


 

발단은 이랬다. 2010년 5월 27일, 조선일보에 경악할 만한 내용의 광고가 실렸다. “며느리가 남자라니, 동성애가 웬 말이냐!” 그런데 구호가 어찌 낯설지 않았다. 단체 이름도 그랬다. 2007년 차별금지법을 동성애 허용법안이라며 비난하고 조직적으로 움직여서 차별사유 중 ‘성적지향’을 삭제하도록 했던 바로 그 단체 동성애허용법안반대국민연합(이하 동반국)이었다.

문득 이런 구절이 생각난다. 작년에 왔던 각설이, 죽지도 않고 또 왔네. 작년도 아닌 3년 전에 왔던 각설이가 다시 오다니. 웬 말이냐. 각설이는 정겹기라도 하지. 이들이야말로 혐오스럽기만 하다.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마냥 반가워 할 수 없는 노릇이다.

지난 6월 5일에 있었던 퀴어문화축제에 성소수자위원회는 이 혐오광고 이야기를 꺼냈다. 급하게 준비한 것이었지만 많은 사람들이 찾아왔다. 엽서쓰기 행사에서는 ‘내가 며느리다’ ‘동성애 반대라니? 동성애허용법안반대국민연합이 웬 말이냐?’와 같은 재기발랄한 글도 있었고 평등한 세상을 바라는 마음이 절절한 글들도 있었다. 우리도 많은 사람들에게 성소수자 인권을 알리고자 뜻있는 단체들과 동성애혐오반대공동행동 열림을 결성하고 광고모금을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213명과 33개 단체가 참여의사를 밝혀왔다. 악의적인 광고를 보고 사람들에게 그동안 분노가 많았다는 것이 느껴졌다. 사람들은 지금까지 표출할 계기가 없었을 뿐 이 혐오에 대해 무엇인가 하고자했다. 그 결과 9월 13일 한겨레에 동성애자 인권지지 광고가 실리게 되었다.




하지만 이들의 브레이크 없는 행보는 계속되었다. ‘바른 성문화를 위한 전국연합’(이하 바성연) ‘동성애차별금지법반대 국민연합’으로 이름을 계속 바꾸어가며 조선, 중앙, 국민일보에 계속해서 광고를 내고 있다. 얼마 전에는 수많은 네티즌들과 김수현 작가, 홍석천씨가 나서서 일침을 놓아서 연일 화제였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꿈쩍도 하지 않고 오히려 10월 29일에는 국회 본관에서 동성애 반대를 내건 토론회도 개최한다고 한다. 특정 기독교 라인을 통해서 ‘동성애 차별금지법’이 저지되도록 항의하자는 선동을 계속해서 하고 있다는 제보도 계속해서 들어오고 있다.


이들이 이렇게 주목하고 있는 차별금지법은 동성애차별금지법이 아니라 ‘성적지향’을 포함한 다양한 차별사유들에 대해 차별을 금지하는 일반법이다. 법무부가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이 법은 10월~11월 사이에 정리되어 빠르면 올해 11월 국회에 상정될 가능성이 있다.


그러면 다른 나라들은 어떨까? 독일의 일반평등대우법에 보면 동성애, 양성애, 성전환을 포함한 ‘성적 정체성’의 차별을 금지하고 예방한다. EU는 고용 및 직업에 관한 평등대우의 일반적 구성 이라는 지침을 통하여 ‘성적지향’에 대해 직․간접적 차별을 금지하고 있다.
이 외에도 캐나다 또한 인권법을 통해서, 프랑스는 프랑스법 2편 2장 ‘인간에 대한 침해’를 통해 성적지향에 대한 차별을 금지하고 있다.(각국의 차별금지법, 법무부, 2008) 이처럼 선진국이라 일컬어지는 국가들이 차별금지법 등 다양한 법제도를 통하여 억압받는 사람들을 1차적으로 방어해주고 평등한 삶을 보장하는 기본법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심각한 차별이 일어났다고 하더라도 그것에 대해 구제 및 방어할 수 있는 법과 제도가 전혀 없다. 따라서 우리 사회에 성소수자들이 없고, 성소수자들에 대한 범죄나 차별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통해 해결할 수 있는 법이 없기 때문에 성소수자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기회가 없고 따라서 ‘없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앞서 일어난 동성애 혐오 광고만 하더라도 차별금지법이 존재했다면 그렇게 쉽게 동성애를 비하하는 광고를 낼 수 있었을까? 동성애자라서 불행하게 사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인 편견을 끊임없이 재생산 하는 세력들 때문에 불행하다는 것을 그들은 알고 있을까?


이 혐오와 관련하여 눈에 띄게 활동하고 있는 바성연이 10월 8일자로 낸 반박(?) 성명을 보자. 신문에 동성애가 사회를 무너뜨린다고 광고하면서 동성애자를 혐오를 하지 않는다고 한다. 동성애를 일컬어 동성애 현상이라고 표현한다. 전문가집단이 아니므로 해답을 줄 수 없다고 한다. 그러면서 동성애자가 얼마나 되겠느냐고 코웃음 친다. 동성애를 찬성과 반대 할 수 있는 것으로 논의를 끌고 간다. 에이즈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무시하고 동성애가 최대의 원인이라고 이야기 한 후, 그것에 비판하는 이야기는 모략이라고 주장한다. 우리나라에서 동성애와 관련한 혐오범죄는 없다고 한다. 갑자기 동성애자와 탈북자를 비교한다. 아마 그 글을 접하는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무엇이 문제인지 알 것이다. 바성연과 필자가 말하는 ‘정상적인’의 기준이 다를 수 있겠지만 말이다.


나치가 처음으로 동성애자를 탄압했을 때 사람들은 자신과 상관없는 이야기라며 그 탄압을 묵과하거나 동조했다. 그리고 곧 나치는 유태인을 탄압했고, 집시를 탄압했고, 사회주의자를 탄압했다. 결국 독일의 민주주의 전부를 탄압하였을 때 사람들은 그때서야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이미 주변에는 함께 해 줄 사람들이 아무도 없었다. 지금 당장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를 멈추지 않는다면 우리사회 또한 위와 같은 경로로 후퇴할 것이 분명하다. 역사는 거짓말 하지 않으며 우리에게 항상 교훈을 준다.


레이가 (민주노동당 성소수자위원회)

Comment

  1. j 2010.10.26 11:46

    민주노동당에 성소수자위원회가 있어서 이런 일들을 함깨 해주는 것이 정말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소수자를 위한 많은 활동을 하기를 기대합니다.

  2. 이쁜 나 2012.04.24 15:13

    하나님이나 예수님께서도 동성애자들을 이해하실거얘요! 걔네들은 선천적으로 동성애기질이 있는자들인데 막무가내로 정신병자로 몰수는 없잖아요?

성소수자 유권자 운동과 지역정치

2010.10.11 18:22 | Posted by 민주노동당 성소수자위원회 성소수자위원회


 
성소수자 유권자 운동과 지역정치

이 글은 2010. 6. 2 지방선거가 끝나고 나서 7.3 민주노동당 성소수자위원회 주최로 열린 정치포럼에서 발표된 글을 재수정하였습니다. 시간이 많이 지났지만 선거에 대응했던 성소수자 운동을 되돌아본다는 측면에서 유의미할 수 있다는 생각에 이번 웹진에 싣기로 하였습니다.



선거를 돌아보며

2010년 선거가 끝났다. 우리가 예상했던 대로 이명박 정부에 대한 불만과 환멸은 선거결과에 그대로 드러났다. 그리고 4대강사업, 세종시 문제, 교육정책 등 그가 추진하고 있는 전반적인 정책에 제동이 걸리기 시작했다. 다만 아쉬운 점이 있다면 선거결과와 다르게 반MB연합의 압력 속에서 부르주아 자유주의 정당인 민주당과의 선거연합을 했던 진보정당의 일관성 없는 원칙이 제대로 평가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선거기간 동안 나는 ‘한명숙 사랑해요’를 외치는 민주노동당 관계자들을 볼 때마다 불편하다 못해 민주노동당 당원으로서 창피하기까지 했다. 진보정당의 역할이 선거연합이라는 그늘에 가려 부르주아 자유주의 정당의 꽁무니나 쫓아다니는 것이라면 과연 당원이라는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것인가 라는 본질적인 의심이 든다. 결과적으로 우리가 그동안 지켜왔던 정책과 신념, 가치관들이 무참히 희생된 것만 같다.

반면 성소수자 유권자로서 선거에 개입해 정치에 참여하는 일은 굉장히 흥미로웠다. 성소수자 인권단체들이 모여 만든 성소수자 차별반대 공동행동은 2010 지방선거 대응으로 후보자들에게 발송할 성소수자 요구안을 마련하였다. 성소수자 요구안을 수용하는 후보들은 적극 지지하고 무응답으로 일관하거나 도저히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답변을 보낸 후보들은 걸러내겠다는 적극적인 의미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무지개행동의 경우 예년과 다르게 2010년 지방선거에서는 ‘우리 동네 무지개가 떴어요’ 라는 캠페인을 별도로 진행했다. 각 지역에 살고 있는 성소수자들의 드러내기를 보여주겠다는 포부를 밝혔지만 아쉽게도 참여율은 저조했다.

마포지역에 거주하는 성소수자들과 지지자들은 최초로 마포레인보우유권자연대(마레연)를 만들어 지역에 함께 살고 있는 LGBT들의 친밀도를 높이기 위한 모임을 가지기도 했고 마포지역에서 출마한 후보자들을 초청하거나 질의서를 보내고 답변을 받아내는 활동을 펼쳤다. 개인적으로는 6월2일 쫑파티 겸 선거결과를 함께 보는 자리에 참여했었는데 사람들의 참여도가 기대이상으로 높아 조금은 놀랐다. 마레연이 선거가 끝난 지금도 지역에 함께 거주한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모임을 유지하려고 한다는 점은 좋은 성과로 남는다.

그 외 동성애자인권연대는 서울 지역 민주진보 교육감 단일화 추대과정에 직접 참여하였고 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는 전국의 교육감 후보들에게 질의를 보내고 답변을 받은 후보들을 공개했다. 이 모든 과정들이 유권자로서 성소수자들도 선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집단임을 드러내기 위한 유의미한 시도들이었다.

그리고 진보정당의 성소수자 관련 공약들도 예년과 다르게 구체화되었다는 점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싶다. 차별금지조례, 1인 가구 지원, 성소수자 인권기본조례, 다양성 위원회 설치 등 지금이라도 당장 시도할 수 있는 많은 공약들이 등장했다. 하지만 이 역시도 당선된 후보자들에게 적극적으로 제안되지 않는다면 우선순위에 밀려 다음 선거의 공약으로 준비시킬 수밖에 없을 것이다.


조직된 성소수자 유권자 운동의 집단적인 드러내기가 필요하다.

선거에 앞서 개인적인 친분이 있는 여러 사람들을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성소수자 운동을 접하지 않았던 사람들조차도 내가 잠정적으로 지지하고 있는 후보군에 대한 지지표명을 적극적으로 하고 있었다. 자신이 지지하고 있는 후보가 가지고 있는 성소수자 공약까지 알고 있었다면 지지를 넘어 확고한 투표로 이어졌을지 모른다. 그 투표가 조직된 성소수자 유권자 운동과 연계된 것이었다면 어떠했을까? 만약 성소수자 100명 중 50명이 진보후보를 지지했다는 유의미한 결과를 우리가 사전에 가지고 있었다면 선거대응도 조금도 달랐을 거고 후보자들이 질의에 대해 답변하는 자세도 조금은 바뀌었을 것이다.

지금까지 성소수자 운동이 선거에 개입해왔던 활동들을 정리해보면 대개 요구안을 만들어 제안하고 각 후보자들에게 질의서를 보내 답변을 공개하는 방식이었다. 2010년 선거에서 특징적인 것을 꼽는다면 동성애자인권연대처럼 후보 추대위 과정부터 참여하는 활동, 무지개행동처럼 요구안을 만들고 지역의 성소수자들이 몇 명이 있는지 드러나게 하는 방식, 마레연처럼 아예 지역 LGBT 유권자모임을 만들어 지역 후보에 한정해 만나는 시간을 갖거나 답변을 받는 방식으로 정리될 수 있다.

하지만 이 모두는 선거 전 활동으로 선거가 끝나면 그동안 준비했던 모든 활동도 정지되어 버린다. 아직까지 선거가 단체의 시기에 맞는 기획활동처럼 취급받기 때문이다. 다른 인권운동과 다르게 성소수자 운동이 선거에 직접적으로 개입해 다양한 유권자 운동을 하는 이유는 성소수자들이 쉽게 드러내지 못하는 삶의 현실과 맞닿아 있는데, 선거 전 준비했던 많은 활동들이 허무하게 끝나는 것 같아 아쉽기까지 하다. 선거 전에는 후보자들에게 요구안을 보내 최소한의 약속이라도 끌어내려고 하는데, 이 노력이 선거 후에도 계속 이어져야 장기적인 전망 속에서 성소수자 유권자 운동도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 유권자 운동에 놓여진 과제는 바로 우리가 지금 누구를 지지하고 있고 어떤 후보에게 표가 갔고 왜 지지했는지를 정확히 분석하는 것이다. 성소수자들이 선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집단이라는 점을 각인시킬 수 있는 자료로서 유의미하지 않을까 한다. 오바마가 미대통령 후보시절 그를 지지했던 많은 집단 가운데 성소수자들이 있었다는 것은 많이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그는 성소수자를 대상으로 한 포스터를 만들어 제작하는 등 남다른 공을 들였다. 오바마의 등장과 함께 LGBT들도 다양한 영역에서 정치활동을 이어나갈 수 있게 되었다. 한국의 성소수자 유권자 운동도 성소수자들의 투표가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를 알아야 질의서에 대한 답변을 공개하는 방식을 넘는 운동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2010 지방선거에서 우리가 어떤 후보에게 표를 던졌는지 분석할 수 있다면 다음 선거 때 좀 더 다양한 실험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두 번째로는 진보의 가치를 가지고 당선한 이들과 함께 공약을 현실화시킬 수 있는 후속작업을 지금 당장 진행해야 한다. 유권자 운동은 선거 전만 개입하는 것이 아니다. 다음 선거 우리가 원하는 후보들을 더 많이 등장시키고 우리가 원하는 성소수자 정치인을 발굴해내기 위해서는 선거 후 대응이 굉장히 중요하다. 유권자 운동이라는 탈을 쓰진 않아도 좀 더 중장기적인 목표 속에서 선거 전 약속했던 공약을 지키게 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2010년 지방선거 결과는 후속대응을 하기 위한 좋은 토대가 되었다. 당선자수가 아직까진 미약하지만 진보정당 출신의 당선자들이 이전보다 늘었다는 것은 우리가 지역에서 다양한 시도를 할 수 있게끔 만들어 주었다.

성소수자 유권자로서 정치참여활동을 벌인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진보, 개혁적인 후보를 제외하곤 (때로는 이들 후보조차도) 질의에 대한 답변은 쉽게 무시되기 일쑤고 선거가 현안에 밀려 요구안조차 깊은 고민 속에서 나오지 못하고 있다. 방법도 아직까진 제한적으로 시도되고 있다. 성소수자 유권자 운동의 성장을 위해서는 마레연과 같이 지역에 터를 두고 있는 LGBT들의 적극적인 드러내기가 필요하며, 그것이 전국 단위의 역할을 할 수 있는 조직과 긴밀히 연관될 수 있다면 우리는 힘 있는 유권자로서 비춰질 수 있을 것이고. 정치영역에서 활동하는 성소수자들도 많이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정욜 (민주노동당 성소수자위원회 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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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지방선거를 바라보며, 이제 진보연합이 절실하다.

2010.10.04 15:47 | Posted by 민주노동당 성소수자위원회 성소수자위원회



* 이 글은 지난 6.2지방선거 이후에 성소수자위원회에서 성소수자의 눈으로 6.2지방선거를 바라보면서 쓴 글이며 성소수자포럼에 발제되었던 글입니다. 시기가 많이 지났기는 하나, 그 내용의 중요성이 있기에 웹진을 통해 공유하고 기록하고자 합니다.



곽이경 (민주노동당 성소수자위원회)

6. 2지방선거의 개표결과를 지켜보느라 새벽까지 잠을 설친 사람들이 많았을 것이다. 이미 비슷한 종류의 기사가 많이 나왔으니, 이번 선거를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MB에게 날리는 통쾌한 뒤집기”였다. 더불어 “촛불이 죽었고 보수화되었다”고 이야기하던 논자들에 대해서도, 다시금 급진화의 물결이 저변에 도도히 흐르고 있음을 입증한 선거였다고도 할 수 있겠다. MB가 ‘반성’이나 하라던 ‘촛불국민’들은 높은 투표율로 한나라당을 참패시키며, 4대강 삽질, 민영화, 전쟁몰이, 전교조 탄압, 이명박식 교육, 막가파 개발 등에 제동을 걸었다. 성소수자들이 누구에게 투표했는지야 확인할 길은 없지만, 당연하게도 다수가 한나라당의 참패에 통쾌함을 느꼈으리라.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 두 진보정당들도 2006년 지방선거와 비교하면 대단히 많은 당선자를 낳았다. 특히 민주노동당은 수도권인 인천에서 처음으로 기초단체장을 당선시키고, 울산 북구를 되찾아왔다. 이전보다 더 많은 기초의원과 광역의원들이 당선되었다. 이를 두고 민주노동당은 “반MB민주연합의 승리”라고 이야기한다. 물론 진보정당이 지방자치단체에 진출하면 분명히 진보적 관점에서 노동자, 서민, 억압받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더욱 귀기울여 듣고 실천할 것임은 자명한 일이다.


하지만 반MB민주연합은 문제였다. 선거만 보자면 민주노동당은 민주당과 연합하여 (광역단체장 후보를 단일화하고) 더 많은 기초단체장과 의원들을 당선시킬 수 있었다. 그렇다면 성공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계급정치의 면에서 보자면 아쉬운 점이 너무도 많다. 서울처럼 격전지에서의 성적은 더욱 초라하다. 서울시장후보를 일찍 단일화한 덕분에 진보적 목소리를 거의 들을 수도 없었고, 존재감도 미미했다. 물론 진보신당 노회찬 후보의 정책과 공약이 급진적이고 좋았지만, 선관위가 토론기회에서조차 배제시켜버리는 바람에 아쉽게도 대중들은 진보후보의 목소리 듣기가 힘들었다. 지역에서 선거를 치르는 후보들은, 광역단체장은 민주당과 손잡았는데, 정작 자신은 민주당 후보를 제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안타까운 상황도 생겨났다. 여튼 존재감이 없던 덕분에 서울지역에서 민주노동당의 정당득표율은 전국 절반에 그치고 말았다. 덕분에 그동안 진출했던 서울시의원 비례1번조차 당선되지 못했다.


반면에 내가 사는 영등포구에 구청장으로 출마한 진보신당 후보는 무려 7.6%를 얻기도 했다.(진보정당이 처음 구청장으로 출마했는데도 엄청 높은 득표율이다!) 전국적으로 볼 때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을 합한 진보정당에 대한 지지는 진보%가 넘는 득표율로 나타났다. 그 말은, 반MB정서가 막강하여 민주당의 지지율이 급상승했지만, 한편으로는 적지 않은 사람들이 진보적 대안을 요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반MB정서로 다수가 민주당을 선택하긴 했지만, 사람들은 김대중-노무현으로 이어지는 민주당 정부 진보년도 크게 다를 바 없었다는 사실도 기억하고 있다. 잘 알다시피, 이라크 파병, 한미FTA, 비정규직법, 의료보험 민영화 등을 애초에 추진한 것은 민주당이었지 않나. 그러므로 민주노동당 지도부가 민주당과 공동정부를 구상한다면 강기갑 대표의 표현대로 “진보정당으로서 자신의 정체성과 색깔을 보이지 못하게”될 것이다. 그야말로 차악이 최악이 되어버리는 상황이다.


반MB민주연합을 두고 민주노동당 지도부는 “성공적”이라고 평가하지만, 그 때문에 “진보적 대안”을 염원하는 대중에 부응하는 “진보적 목소리”는 사라지고, 그동안 민주당이 저지른 엄청난 해악과 과오조차 진보의 이미지로 그럴듯하게 포장하는 효과를 낳았음을 꼭 기억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고 진보신당을 민주노동당보다 낫다고 평가할 수는 없다. 심상정 후보도 유시민을 지지하며 마지막 순간 후보 사퇴를 하였고, 부산에서도 민주연합이 성사되었다. 그리고 현재 진보신당은 앞으로의 방향에 대해 여전히 민주연합을 반대하지 않고 열어놓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그러므로 두 진보정당 간에 어디가 더 나았는가를 두고 논의하는 것은 적절치 않은 것 같다.


그럼 민주노동당을 우리는 어떻게 볼 것인가? 민주노동당은 여전히 노동자 계급 정당이다. 당원의 40%가 조직 노동자들이며 여전히 노동계급 이슈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한다. 이번 선거에서의 선거연합이 실망스러운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자유주의적 자본가 정당인 민주당과는 분명히 다르다. 그러므로 아예 민주노동당과의 협력을 거부하거나 민주당 일부로 취급하는 이들에 대해서는, (심정적으로는 이해할지 몰라도) 바로 동의하기는 어렵다. 여전히 민주연합이 아닌 진보연합으로의 방향성은 유효하며, 우리는 이를 실현하기 위해 여전히 노력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우리 성소수자도 반MB민주연합에 기댈 수는 없다. 그것은 앞서 말한 것처럼 성소수자도 민주당에 기대할 것이 없다는 말과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여기서 접할 수 있는 정당과 성소수자 문제에 대한 사례는 극히 제한적이다. 하지만 포퓰리즘적인 자본가 지향의 정당이 어떤 식으로 동성애 쟁점 같은 논쟁적이고 공격받기 쉬운 쟁점을 위기 상황에서 후퇴시켜 버릴 수 있는지 보여주는 예로 80년대 영국 노동당 예가 적절할 것 같다. 다음은 <동성애자 해방과 마르크스주의>에서 관련 사례를 발췌한 것이다.


노동당이 기반한 선거주의 때문에 동성애자 권리를 옹호한 이러한 새로운 정책은 언제나 실행되지 못했다. 19
83년 이후로 동성애자 권리에 대한 지지는 당내부와 우익 양 방향에서 모두 공격받게 되었다. 이런 공격 앞에서 그들은 끊임없이 후퇴했다. 반동성애 감정은 넓고도 깊게 퍼져 있으며, 불과 지난 몇 해 사이엔 더 엄청나게 강해졌다. 언론이 에이즈에 대해 떠들며 병적인 히스테리를 부추겼기 때문이다. 그들은 에이즈를 ‘동성애로 인한 전염병’ 으로 묘사했다. 그런 이데올로기적인 영향 때문에 동성애자 운동과 노동당 안의 동성애자 활동가들은 더더욱 수세에 몰리게 되었다.


동성애자 권리에 대한 지지 여부가 시험대에 오를 때마다, 노동당은 번번히 극적으로 실패했다. 1983년 버몬지 보궐선거에서 피터 태첼 은 여전히 언론이 끄집어 내는 최악의 반동성애적 모함을 받게 되었다. 당시 노동당 당수였던 마이클 풋 은 그를 모른 척했다. 그리고 보도된 바에 따르면, 닐 키녹 은 피터 태첼에 대한 마녀사냥에 관해 질문을 받고 다음과 같이 논평했다고 한다. “피터의 문제는 마녀와 요정 - 요정은 구어로 남자 동성애자를 뜻한다 - 을 구분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채텔은 그의 (좌익적인) 지구당으로부터 ‘공식적인 자리에 나타나지 말고, 비난에도 응수하지 말라’ 는 지시를 받았다. 결국 노동당은 거센 동성애 반대운동에 공공연히 대항하지 않았다. 그러기는커녕 피하려고 애썼다. 그러나 그 문제가 운동의 되었던 이상, 그런 책략은 자기 무덤을 파는 것이었음이 입증되었다.


동맹 (Alliance : 1983년 과 1987년 영국선거에서 자유당과 사회민주당이 결성한 일종의 선거연합) 은 반동성애 물결을 타고 승리를 휩쓸었다. 이번 지방후보는 확실한 이성애자였다. 이 점을 강조하기 위해 선거전단에는 후보 개인의 사진만이 아니라 아내와 아이를 꼭 껴안은 사진까지 들어 있었다. 그가 얼마나 ‘정상적인지’ 보여주려고 말이다.


한 편, 미국 민주당을 현재 진행되는 반MB민주연합에 빗대어 비교하기도 한다. 때문에 일부 시민단체에서는 미국 민주당 모델로 가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진보정당들이 (색깔을 버리고) 민주당 밑으로 모여야 MB를 패퇴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또 적지 않은 이들이 지적하듯이 미국 민주당과 공화당이야말로 다를게 별로 없는 두 정치집단이며, 진보정당들이 민주당과 잘못된 연합을 한 탓에 지금 미국은 대안적 정치세력을 만들어내기 너무 어려워졌다. 지난 대선에서 켈리가 ‘부시만 아니면 다 된다’는 슬로건으로 출마한 것은 왠지 이번 지방선거를 떠오르게 한다. 켈리는 여러분도 알다시피 이라크 전쟁 지지자였다.


그럼 켈리에 대한 지지를 둘러싸고 동성애 쟁점이 혼란에 처하게 된 이야기를 잠시 하고자 한다. 공화당과 민주당은 동성결혼문제를 대선 전략으로 이용하고자 했다. 부시는 이라크전쟁 장기화와 반인륜적인 점령으로 떨어진 자신의 지지율을 사회의 보수적 정서에 기댐으로써 회복시켜보려고 했다. 그 중의 하나가 동성결혼에 대한 반대였다. 동성결혼과 같이 일반적으로 터부시되는 이슈에 대해 보수적인 입장을 취함으로써 사회를 냉각시키고 이라크전쟁에 대한 비난을 모면하려는 것이었다. 한편 민주당 캘리의 텃밭은 메사추세츠주였는데, 그 주에서 동성결혼 합법화 발표가 나면서 켈리의 입장은 좀 난처해졌다. 때문에 그는 각종 보수단체의 공격을 피하기 위해 “동성결혼을 반대하지만 동성결혼을 금지하는 헌법개정에는 반대하는 애매한 입장”을 가지고 있었다. 켈리의 이런 태도는 동성결혼 뿐만 아니라, 사형제도, 낙태 등의 민감한 사안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뉴욕타임즈는 이러한 그의 태도를 매우 기회주의적이라고 비판했다. 이런 그가 도대체 부시보다 나을 것은 뭐였단 말일까? 미국 진보운동은 이 가운데서 우왕좌왕하다가 실패하고 말았다. 공화당엔 우파 동성애자들이 있었는데도 말할 것 없이, 동성결혼을 반대했다. 도저히 이해 안가는 일이지만, 이것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깨달음은, 공화당이든 민주당이든 성소수자에게 해로웠다는 것이다!


한국으로 돌아와보자. 노무현 정부 시절에 여성운동가들이 대거 참여 정부로 들어갔지만 과연 여성의 삶은 나아졌는가? 마치 이제는 뭔가 될 듯할 희망을 주다가 더한 배신으로 끝나는 형국이었다. 우리가 아직도 붙들고 있는 차별금지법은 바로 노무현 정부 시절 누더기가 되었다. 우익 기독교의 거센 반발에 냉큼 성적 지향을 차별 영역에서 삭제해버린 건 다름아닌 민주당 정부였다. 동성애는 약한 고리이다. 동성애에 대한 사회적 낙인과 혐오증은 진보운동도 이 문제에 매우 취약하도록 만든다. 그럴때일수록 누가 우리의 ‘동맹’인가를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성소수자는 민주당에게 배신 당할 것인가? 아니면 부족하나마 소수자들의 권익을 옹호하고, 사회적 차별을 금지하기 위해 애써온 진보 정당과 함께 독자적 대안을 만들어내야 할 것인가? 답은 명백한 것 같다.


현재 당 지도부 선출을 위한 당직선거가 진행되고 있다. 당직 선거 후보들의 공약을 살펴보면 사실상 민주연합을 모두 지지하고 있기 때문에 큰 차이점이 나타나지 않아, 좌파적 관점으로는 누구에게 표를 던져야 할지가 난감한 것이 사실이다. 당의 독자성을 강화하여 실현할 것인지, 진보연합을 통해 민주연합으로 갈 것인지에 대한 방법적 차이만 있을 뿐이다. 어떤 후보는 상대적으로 진보대연합을 강조하긴 하지만 민주연합의 과정으로서의 한계를 두고 있기에 아주 동의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그러면 앞으로는 어떻게 할 것인가?


민주연합에 기댈 것이 아니라 독자적인 진보적 대안을 창출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진보연합을 다시금 성사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우선과제이다. 앞으로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민주연합과 진보연합 사이의 논쟁은 더욱 커질 것이다. 우리는 이런 논쟁에서 성소수자 당원들의 입장을 명확하게 전달할 필요가 있다.


또한, 민주노동당은 이제 인천과 울산에서 구청장으로 지방정부를 이끌게 되었다. 예전 울산에서 두 민주노동당 구청장들이 보여주었던 ‘공무원 노동자에 대한 단호한 방어’가 기억난다. 민주노동당이 지방정부를 구성한다는 것은, 보다 명확한 노동자 서민 중심의 정책(예산배정부터), 중앙정부의 탄압 등에 맞선 단호한 대처와 방어 등을 기대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잘 되면 민주노동당은 진보정치의 희망을 염원하는 대중을 지역으로부터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민주당이나 국참당과의 공동지방정부 구성은 제발 하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이다. 지금이야 민주당이 진보적 언사를 할 지 몰라도 근본적으로 태생이 다른 정당이다. 민주노동당은 민주당이 노동자서민을 배신했을 때 그 책임을 떠안으려는 것일까? 도청에 소수가 임명되어 들어간다한들 주요 정책에 얼마나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을 것인가?


앞서 이야기한 내용의 요지는 “계급 이익”은 “성소수자의 이익”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당이 계급의 이익을 옹호하도록 요구하고 견인하는 것에 우리 몫도 있다는 것이다. 민주노동당이든 진보신당이든 진보운동은 더 이상의 분열을 원치 않는다. 그렇다면 무엇이 필요한가?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이제는 진보연합이 절실하다.’ 그리고 그것은 단지 기술적인 선거연합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 식의 연합은 선거공학에 따라 무원칙하게 민주당과도 타협하는 잘못을 범한다. 진보연합은 이명박 정부에 맞선 진보진영의 공동투쟁의 연합이 되어야 한다. 지금 국민들은 이명박 정부의 모든 것에 분노하고 있다. 2008년에 우리가 보았던 것과 마찬가지로, 투쟁의 고양은 진보정치의 장을 넓혀 잠재적으로 우리와 함께할 동지들을 발견하게 해 줄 것이다. 투쟁 속에서 건설된 진보연합은 비로소 독자적 대안을 건설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건설되는 독자적 대안이라야 진정 이 사회를 변화시키기 위한 의미 있는 토론과 실천으로 이어질 것이다. 성소수자 운동도 그 일부가 되어야 하고 함께 이끌어 가야 할 것이다.



 <참고 <동성애자 해방과 마르크스주의>에서 영국 노동당의 사례 일부 발췌함>

GLF가 완강했던 1970년대에는 투사들이 노동당에 신경쓸 겨를이 거의 없었다. 대다수의 혁명가들이나 동성애자 활동가들에게 노동당은 활동의 중심이 아니었다. 1970년대 후반에 들어, 동성애자임을 솔직하게 드러냈다는 이유로 많은 동성애자들이 해고당했다. 그러자 투쟁이 툭툭 불거져 나왔다. 노동당은 이런 운동에 동참하지 않았다. 오히려 어떤 경우에는 노동당 지방의회가 해고에 앞장서기까지 했다!

1979년에 수잔 쉘은 레즈비언임을 솔직하게 드러냈다는 이유로 뉴햄의 노동당 지방의회에 의해 해고당했다. 이것은 숱한 사례들 가운데 하나에 불과했다. 전통적으로 성 정치에 관한 노동당의 전력은 매우 보수적이었다. 그들에게는 동성애를 상류계급의 비행(非行) 쯤으로 여기는 강경한 청교도적 감리교파의 기질이 있었다. 이런 태도는 스탈린주의와 아주 비슷했다.

1960년대에 노동당은 동성애자들의 권리나 그 어떤 법률개혁도 옹호하지 않았다. 그런 일들은 언제나 의회 내 자유투표의 결과였다. 노동당은 보수적인 두 지지층, 즉 감리교 유권자들과 가톨릭 유권자들을 늘상 의식했다. 그래서 피억압 계층의 옹호자 역할을 단 한번도 하지 않았던 것이다. 심지어 인종차별주의에 대한 투쟁처럼 노동당이 ‘단단히 책임지겠다’ 는 사안에 대해서도 노동당의 행적은 보수당과 다를 게 없다.

인종차별적인 이민규제의 역사가 그 사실을 증명해 준다. 동아시아로부터의 아시아계 이민의 제한이나 2계층제 (two-tire - 법제화된 개념은 아니고 범죄자.동성애자 등을 천민으로 분류하는 것) 영국 시민권이라는 개념을 도입한 것도 노동당 정부였다. 백인종차별주의자들의 표를 잃게 될까봐 두려워한 나머지 원칙에 대한 책무를 저버렸던 것이다. 하지만 노동당의 의무 태만이 단순히 불성실함이나 개인적인 배신에서 비롯한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개량주의의 한계 때문이다. 노동당이 내각을 구성하고 있을 때에도 실질적인 권력은 그들에게 없다. 여전히 국가의 운영권을 쥐고 있는 건 선출되지 않은 공무원이나 판사, 군장교 등이다. 일개 노동당 정부가 그들의 행실과 편견을 제어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런데도, 대부분은 아니더라도 꽤 많은 1970년대 동성애자 활동가들이 지금은 노동당에 들어가 있다. 동성애자 밀집지역에 반대할 정도로 이제 동성애자 해방운동은 거의 개량주의와 한통속이 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어떻게 이런 지경에까지 이르렀을까?

1970년대 계급투쟁이 침체되면서, 당장 변화가 일어나리라 기대하던 많은 활동가들은 사기가 떨어졌다. 이미 노동계급에게는 사회를 박살내고 새세상을 건설할 만한 힘이 없는 듯했다. 이 막다른 골목을 빠져나갈 길을 제시해 주는 게 노동당인 것 같았다. 남녀 동성애자들이 자율성을 계속 유지하면서 일할 수 있는 공간을 노동당의 광범한 교회조직이 제공해 준다는 주장이 대두되었다. 그들은 더 폭넓은 노동운동의 일부가 되고, 노동당 조직을 통해 사회를 서서히 변화시킬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들은 혁명적인 변화를 포기하고 점진적인 개혁을 택했다. 그들은 해당 위원회에서 적당한 사람들을 골라 자기들 편으로 끌어들이려고 노력했다. 말만 달랐지 정치에서는 GLF 이전의 CHE 꼴로 되돌아간 거나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한편에서는 노동당 내 일부가 변하고 있었다.

당의 왼편에 있던 많은 사람들이 노동당 정부의 최근 행적에 환멸을 느끼고서 전통적인 노동당 정치에 이의를 제기하였다. 1980년대에는 토니 벤 이 신좌파의 지도자가 되었다. 단순히 노동당 대회에서 합당한 결의안 (노동당 정부는 늘상 이것을 묵살했다)을 내오는 것 뿐 아니라, 활동가들이 하원의원들과 정부를 통제할 수 있도록 당의 구조를 바꿀 필요가 있다고 그는 주장했다.

또한 신좌파는 1970년대 운동의 핵심을 추출해낸 새로운 정치를 받아들였다. 그 결과 이전의 노동당 좌파들보다 훨씬 더 강력하게 억압에 맞선 투쟁을 강조하게 되었다. 이것을 위하여 두가지 상호보완적인 전술이 채택되었다. 하나는 당의 정책과 체질을 변화시키기 위해 전국적으로 노동당 내부에서 투쟁하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즉각적인 개혁을 밀어붙이기 위해 지방의회에 있는 좌파의 기반을 활용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특히 동성애자들의 권리를 이전 어느 때보다 더 힘차게 옹호하는 것을 뜻했다.

노동당 대회에서 소수파는 평등 고용정책을 통과시키고, 동성애자 조직에 보조금을 지급했으며, 남녀 동성애자 분과위원회를 창설했다. 그리고 1986년 노동당 대회에서는 정식으로 동성애자 권리에 대한 지지가 확인되었다. 이 사안을 다음번 선거강령에 포함시키는 데는 3분의 2의 득표차가 필요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동당이 기반한 선거주의 때문에 동성애자 권리를 옹호한 이러한 새로운 정책은 언제나 실행되지 못했다.

1983년 이후로 동성애자 권리에 대한 지지는 당내부와 우익 양 방향에서 모두 공격받게 되었다. 이런 공격 앞에서 그들은 끊임없이 후퇴했다. 반동성애 감정은 넓고도 깊게 퍼져 있으며, 불과 지난 몇 해 사이엔 더 엄청나게 강해졌다. 언론이 에이즈에 대해 떠들며 병적인 히스테리를 부추겼기 때문이다. 그들은 에이즈를 ‘동성애로 인한 전염병’ 으로 묘사했다. 그런 이데올로기적인 영향 때문에 동성애자 운동과 노동당 안의 동성애자 활동가들은 더더욱 수세에 몰리게 되었다.

동성애자 권리에 대한 지지 여부가 시험대에 오를 때마다, 노동당은 번번히 극적으로 실패했다. 1983년 버몬지 보궐선거에서 피터 태첼 은 여전히 언론이 끄집어 내는 최악의 반동성애적 모함을 받게 되었다. 당시 노동당 당수였던 마이클 풋 은 그를 모른 척했다. 그리고 보도된 바에 따르면, 닐 키녹 은 피터 태첼에 대한 마녀사냥에 관해 질문을 받고 다음과 같이 논평했다고 한다.

“피터의 문제는 마녀와 요정 - 요정은 구어로 남자 동성애자를 뜻한다 - 을 구분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채텔은 그의 (좌익적인) 지구당으로부터 ‘공식적인 자리에 나타나지 말고, 비난에도 응수하지 말라’ 는 지시를 받았다. 결국 노동당은 거센 동성애 반대운동에 공공연히 대항하지 않았다. 그러기는커녕 피하려고 애썼다.

그러나 그 문제가 운동의 되었던 이상, 그런 책략은 자기 무덤을 파는 것이었음이 입증되었다. 동맹 (Alliance : 1983년 과 1987년 영국선거에서 자유당과 사회민주당이 결성한 일종의 선거연합) 은 반동성애 물결을 타고 승리를 휩쓸었다. 이번 지방후보는 확실한 이성애자였다. 이 점을 강조하기 위해 선거전단에는 후보 개인의 사진만이 아니라 아내와 아이를 꼭 껴안은 사진까지 들어 있었다. 그가 얼마나 ‘정상적인지’ 보여주려고 말이다.

1986년 노동당 대회에서 동성애자 권리에 관하여 좌파가 거두었던 승리에도 오점은 남아 있다. 그때도 마찬가지로 그 문제를 숨기려는 시도가 있었기 때문이다. BBC 방송이 대회 생중계를 딱 한번 중단한, 동성애자 권리를 토의하는 시간 15분을 ‘놀이학교’ 라는 프로그램의 시간대와 일치하도록 용의주도하게 계획했던 것이다!

대부분의 노동당 지방의회에서 공식적인 고용차별을 폐지하고, 남녀 동성애자 분과위원회를 만들었으며, 지방의 동성애자 단체에 자금을 지원했다. 그러나 동성애자 해방을 위해 한 일은 그게 전부였다. 이런 모든 일은 환영할 만한 일이긴 했다. 그러나 지방세 지출상한선을 저지하는 데 실패한 탓에 그들에게는 자금이 부족했다. 때문에 실제로 남녀 동성애자들에게는 별로 달라진 게 없었다. ‘긍정적인 이미지’ 정책을 통하여 유일하게 이 문제에 좀 더 깊이 다가가려 했던 것은 해린지 지방의회였다.

이 정책은 지방의회의 모든 선전 통로를 이용하여 남녀 동성애자들의 긍정적인 이미지를 조성하려던 것이었다. 특히 학교에서 이 정책을 활용하여 오직 이성애만이 ‘정상적’ 이라는 관념을 되받아칠 계획이었다. 그렇지만 노동당의 분파에 의해 채택되어 1986년 지방선거의 쟁점이 되었다.

지방의 보수당원들은 당장에 우익의 반발을 충돌질했다. ‘부모 행동단체’ 가 설립되었다. 이들은 가두에 나서서 ‘변태성욕자들’ 에 반대하고 ‘품위있는 가족의 가치’를 옹호하는 지지세력을 규합했다. 몽상가가 아니고서야 그 정책에 대한 반대가 전혀 없으리라고 예상한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그런 우익 광신자들과 싸울 전술이 노동당에게 없었다는 것이 비극이었다. 반격에 맞서려는 운동이 시작되긴 했지만, 주로 노동당 외부의 활동가들에 의존한 운동이었다. 이 운동은 ‘긍정적인 이미지’ 정책이 지방의회의 공식 정책으로 채택되게 하는 것을 주된 임무로 삼았다. 그래서 그 이상으로 지방의회를 ‘난처하게 할’ 지 모를 일은 일체 하지 않도록 정해져 있었다. 이런 이유로 그들은 후퇴하기 시작하면서 지방의회에 맞설 수가 없었다.

노동당 해린지 지구당은 공식적으로는 이 정책을 포기한 적이 없었다. 그저 그대로 내버려 두기로 결정했을 따름이었다. 동성애자 권리가 선거에서 불리하게 작용하리라는 게 점점 더 분명해 짐에 따라, 노동당 최고의원들까지도 그 문제에서 손 뗄 궁리만 하게 되었다. 1986년 후반에 결정적인 배신의 순간이 다가왔다. 반발은 흑인 사회로까지 확대되었다. 그 결과 ‘동성애는 흑인가족의 기초를 위협하려는 백인들의 계략’ 이라고 단언하는 ‘흑인 부모 행동단체’ 가 등장하였다.

1986년 12월에는 이 단체 지도자들 가운데 한 사람이 교육위원회 - ‘긍정적인 이미지’ 정책을 후원했던 바로 그 단체다! - 의 인종관계 수석고문으로 임명되었다. 1987년 총선의 전초전에서 보수당과 동맹은 동성애자 권리문제를 이용해 노동당을 공격하였다. 이것은 ‘정신나간 좌익’ 에 대한 반대운동의 일부였다. 그들이 공격하면 할수록 노동당은 점점 더 후퇴했고, 이러한 후퇴는 1987년 2월 그린위치 보궐선거 직후의 패주로 이어졌다.

동맹의 뜻밖의 승리에 자극을 받은 키녹의 공보관 패트리샤 헤윗 은 런던 하원에 다음과 같은 편지를 보냈다. “연금 수령자들 가운데 남자 동성애자와 여자 동성애자는 비용이 많이 듭니다.” 노동당의 누군가가 이 편지를 즉시 푸퍼트 머독 의 『선』(Sun) 지에 누설했고, 『선』지는 그것을 이용하여 동성애자 권리를 맹렬하게 공격하기 시작했다. 오래 전부터 동성애자 권리에 대한 지지를 포기할 수 없을까 호시탐탐 노리고 있던 노동당은 당장 이 운동에 들러붙었다.

헤윗이 우익 광신자였던 것은 아니다. 그녀는 1970년대에는 전국 시민자유 회의 (NCCL : 1989년부터 ‘자유’ 라는 이름으로 개칭한 시민운동단체) 의 서기로 있으면서 NCCL이 동성애자 차별에 대해 원칙적인 입장을 고수해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하기도 했다.

그녀는 단지 노동당이 벗어날 수 없는 선거정치의 논리를 유독 분명하게 표현하고 있을 뿐이다. 동성애자 권리는 표를 끌어모을 수 없는 문제니까 빼버리는 게 당연했던 것이다. 노동당 좌파는 거의 대부분 헤윗의 편지에 이의를 달지 않았다. 그러기는커녕 오히려 그들도 패주에 동참했다. 동성애자 권리를 가장 충실하게 지지했던 노동당 런던 지구당도 곧이어 그 문제와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그들이 모두 우익을 입 다물게 만들어 버리면 반격도 사라질 거라고 기대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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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ight here, right now"- 국제에이즈회의 참석기

2010.10.04 15:20 | Posted by 민주노동당 성소수자위원회 성소수자위원회

 

민주노동당 성소수자위원회 강석주


국제에이즈회의[World AIDS Conference]는 2년에 한번씩 열리는 세계10대 국제회의 중 하나이다. 2년마다 개최되는 이 회의는 전세계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에이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부 관계자, 국제기구, 제약회사, 과학자, 연구가, 정책가, 에이즈 활동가와 감염인들이 참석하는 회의이다. 이번에는 제18차 회의로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회의가 개최되었다. 세계 각지들에서 온 2만 여명 참가자가 함께 일주일 동안 에이즈와 관련된 다양한 문제를 함께 논의하는 자리가 되었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다양한 전시, 토론, 심포지엄, 영화제 등의 프로그램이 진행이 되었고, 에이즈와 관련된 신개념의 치료법, 감염인들의 지원과 에이즈의 낙인을 방지하기 위한 다양한 문제의식에 대한 논의들이 각 회의장에서 진행이 되었다.




에이즈 컨퍼런스장에서는 다양한 운동과 목소리들이 생생하게 전달될 수 있었다. 의약품 접급권, 각 국가별로 문제점, 글로벌이슈 등 다양한 문제의식을 가진 사람들의 시위가 진행이 되었다. 특히 주목하는 것은 이번 18회 주제가 “right here, right now"와 같이 권리를 지키기 위해서는 바로지금, 바로 여기에서 해결이 되어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가진 활동들이 많이 있었다는 것이다.

특히 이번에 주요한 시위이슈는 에이즈기금이 갈수록 줄어들고 미국을 비롯한 G8국가들의 에이즈 기금에 대한 약속을 이행하지 않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그렇기에 미국의 활동가들과 세계의 수백명의 사람들은 오바마 대통령과 G8국가들을 향한 시위를 조직을 하였다. 이러한 시위는 컨퍼런스 기간 동안 게속적으로 진행이 되었으며, 컨퍼런스장 내에서는 다양한 홍보물이 게시가 되었다. 집회는 act up 활동가들과 빨간 우산을 든 섹스워커, 빈곤 활동가, 핑크 트라이앵글을 입은 많은 성소수자 활동가들이 함께 참여하여 집회를 주도하였다.





“Obama lied, millions die!" [오바마의 거짓말로 수백만은 죽어!]

"Keep your promise, we want to live!" [당신의 약속을 지켜, 우리는 살고 싶다!]


글로벌 경제위기로 인하여 많은 나라들이 글로벌펀드를 비롯한 기금에 대한 기부를 줄이고 있으며, 이로 인하여 글로벌펀드는 심각한 위기에 빠지게 되었다고 한다. 글로벌펀드에 따르면 경제위기로 지난 3년간 25%의 기금이 삭감이 되었다고 한다. 이는 미국을 비롯한G8 국가들이 에이즈 기금에 약속한 금액을 이행하지 않게 되자 저개발 국가에서는 에이즈 치료제를 복용하지 못하게 될 정도가 되었다고 한다. 또한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에서 에이즈를 종식하겠다고 했지만, 미국 내에서도 에이즈 기금이 모자라 의약품 보조가 어려운 현실이다. 이에 미국은 책임있는 태도를 보여야 할 것으로 보인다.


2006년 캐나다 국제 에이즈 회의에서 한국의 많은 활동가들이 FTA반대 투쟁과 의약품 접근권 확보를 위해 국제 활동가들과 함께 연대 활동을 벌였다. 올해에도 여전히 의약품 접근권 문제와 FTA 문제는 중요한 이슈 중에 하나였다. 특히 이번에는 미국의 FTA 보다 EU가 추진하고 있는 FTA를 중단하라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나오고 있었다. EU가 추진하는 FTA로 인하여 의약품에 대한 특허권 강화와 제약자본의 횡포의 문제는 우리에게 풀어야할 숙제인 것이다.


이번 18회 국제에이즈회의는 개인적으로 참 중요한 지점을 가진다. 그간 에이즈의 국내적인 문제점만 바라보던 나에게 영감을 준 회의였으며, 그 회의에서 만난 많은 LGBT활동가들을 통해 우리가 어떻게 나아가야 할 지 알게 해 주었다.


“right here, right now"


이제 에이즈 문제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에이즈의 확산을 막기 위해서는 지금 우리가 함께 이곳에서 싸워야 할 것이다. 에이즈 감염인의 치료접근권을 위해 고가의 에이즈 치료제의 횡포에 맞서야 하고, 에이즈 감염인의 사회적 차별과 편견과 맞서 싸워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지금 이 자리에서 함께하고 함께 결단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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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j 2010.10.26 11:48

    에이즈 문제를 보면 명확하게 신자유주의의 표본을 볼 수 있는 것 같습니다. 특히 치료제 문제를 보면 절실하게 제국주의와 신자유주의 문제에 투쟁이 중요함을 알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을 합니다. 앞으로도 좋은 정보 많이 부탁드립니다.

성소수자 인권기본조례를 제정합시다!!

2010.05.31 03:44 | Posted by 민주노동당 성소수자위원회 성소수자위원회

- 민주노동당 성소수자위원회 레이가

 

2007년 법무부에서 제정하려고 내놓았다가 고된 풍파를 겪고 실현화되지 않은 ‘차별금지법’논란이 2010년에 다시 열기가 뜨거워지고 있다. 법무부가 올해 10월 즈음 다시 차별금지법을 제정하려고자 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차별금지법은

"「헌법」의 평등이념에 따라 성별, 장애, 병력, 나이, 출신국가, 출신민족, 인종, 피부색, 언어, 출신지역, 용모 등 신체조건, 혼인여부, 임신 또는 출산, 가족형태 및 가족상황, 종교, 사상 또는 정치적 의견, 범죄전력, 보호처분, 성적지향, 학력, 사회적 신분 등을 이유로 한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합리적인 이유 없는 차별을 금지하고 예방하며 불합리한 차별로 인한 피해자에 대한 구제조치를 규정한 기본법을 제정함으로써, 헌법 및 국제 인권규범의 이념을 실현하고 전반적인 인권 향상과 사회적 약자ㆍ소수자의 인권보호를 도모함과 아울러 궁극적으로 사회통합과 국가발전에 기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법적 근거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하자면 차별금지법은 인간의 기본권을 박탈당할 위협에 노출되어 있는 사회적 약자 및 소수자를 보호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법적 근거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지난 2007년 10월 31일, 법무부가 입법 예고한 차별금지법안의 차별금지대상에서 ‘성적지향’을 비롯하여 ‘학력, 가족형태 및 가족상황, 병력, 출신국가, 언어, 범죄 및 보호처분의 전력’ 등 7개 항목이 삭제되어 올바른 차별금지법 제정의 의미를 훼손시키는 차별금지법이 나타나게 되었다. 특히 그 중 ‘성적지향’의 항목은 여러 가지 차별금지 조항 중에서 가장 거센 반발을 불러 일으켰다. 차별금지법을 ‘동성애 허용법안’이라고 명명하며 일부에서는 ‘며느리가 남자라니, 동성애가 웬 말이냐’ 와 같은 동의하기 힘든 구호가 등장하기도 하였다. 또한 의회선교연합에서는 기자회견을 통해 성적지향 포함 7개 조항을 삭제하라고 입장을 밝혔다. 이러한 현상들의 배경에는 우리 사회 속에서 성적지향과 성정체성에 대한 잘못된 인식과 공포를 조장했던 보수기독교세력의 압력과, 대부분 잘못된 오해로 비롯되어진 사회전반의 호모포비아적 분위기가 있었다. 2010년인 오늘, 다시 차별금지법이 다시 논의되려 하고 있지만 이에 예상되는 여러 가지 어려움과 난관들은 크게 변화되지 않은 실정이다.

 
 
이렇게 기초적인 법안 제정의 어려움들에서 볼 수 있듯이, 우리나라에는 성소수자에 대한 법률이나 제도적 방어막이 전혀 존재하고 있지 않다. 성소수자는 실질적 차별을 받고 있다고 하더라도 구제할 기본적 방안이 없기 때문에 자신 스스로 모든 것을 감내해야하는 상황 속에서 살고 있다. 성적지향과 성정체성에 대한 잘못된 혐오와 편견으로 인해 성소수자들은 침묵을 강요당하고 이 문제는 개인적인 문제로 치부당하기 일쑤이다. 이를 타개하기 위하여 기본적으로 차별금지법과 같은 포괄법이 필요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 포괄법은 적극적인 성격의 것은 아니며, 차별금지를 명시하고 있지만 차별받은 실제상황에 대한 적극적 구제조치가 전혀 없다. 또한 성소수자에 대한 인권감수성이 높아야 하는 공무원, 교사, 청소년 상담기관에 대한 인권교육은 전무하다.


 
모든 지자체는 시민들이 안전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행정을 꾸려나가야 할 의무가 있다. 따라서 정부는 물론 각 시ㆍ도ㆍ기초 지방자치단체들은 성소수자 차별을 금지하고 인권증진을 도모해야 할 책임이 있다. 성소수자가 지역 속에서 주체로 살아갈 수 있도록 각 지자체에서 해결방안이 모색되어야 한다. 성소수자 뿐만 아니라 사회적 소수자들이 안전하며 차별받지 않고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는 지역적 환경과 제도가 만들어 져야 한다.


 
민주노동당의 성소수자인권기본조례는 지역에서 성소수자 차별금지 및 인권증진을 위한 계획을 수립하기 위한 기본과제이다. ‘성소수자’ 인권기본조례로 구상한 것은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혐오가 위의 사례에서 보듯이 극명하고 시급한 과제이기 때문에 포괄적인 차별금지 안에서 다양한 차별항목 중에 하나로 다루어지거나, 여성 관련 조례에 일부분으로 논의되기 보다는 성적지향과 성별정체성이 독자적으로 논의되어야 더 실천적이고, 실현할 수 있는 방법과 통로가 모색되어질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민주노동당이 제시하는 성소수자인권기본조례는 다음과 같은 방향이 포함되어 실현되어야 한다.

① 정기적인 모니터링과, 실태조사를 통해 이성애 중심적인 지역문화, 행정제도를 개선

- 이성애 가족 중심의 지역문화, 행정제도 등을 개선

- 지방자치단체 인권실현 평가 제도를 도입

- 매년 성소수자들이 경험하는 차별실태를 조사하고 차별시정을 위한 정책방안 강구

 

② 성소수자 차별금지 및 인권증진을 위한 기본계획을 수립 / 차별 시정을 위한 정책 마련

- 민ㆍ관 협력팀을 구성하여 계획을 수립하고 이행

- 전담 인력을 배치하고, 그 제원의 확보하여야 함

 

③ 차별방지를 위한 인권교육, 지침마련의 의무화 / 차별행위에 대한 적극적인 시정조치

- 공무원, 교사, 청소년 상담기관 종사자 등을 우선으로 정기적인 인권교육을 실시

- 공공기관, 청소년 상담기관에 비치할 성소수자 인권지침서 · 상담매뉴얼 제작 보급

- 기본계획을 기반으로 차별행위가 발생했을 시 구제할 수 있는 신청제도 마련

- 성정체성과 관련 상담ㆍ지원센터를 마련, 상담지원인력을 배치


 
민주노동당의 후보자 중, ‘성소수자인권기본조례 제정’을 처음으로 자신의 공약으로 삼은 사람은 민주노동당 서울시의원 비례후보 3번인 김동희 후보다. 김동희 후보는 현 마포장애인자립생활센터 소장이며 민주노동당 장애인위원회 정책위원장, 장애인주거지원법제정추진연대 준비위원장 등을 역임하고 있다. 출마의 변에 ‘중증 장애인으로 그리고 기초생활수급권자로서 이 사회 빈곤과 차별의 한복판에서 살아왔다...(중략)... 저는 이 사회의 모든 차별과 싸워왔으며, 앞으로 장애인 뿐 아니라 차별받는 모든 이들과 함께 싸울 것입니다.’라고 밝히고 있듯이 그는 누구보다도 소수자의 관점을 견지하고 차별받는 사람들의 마음을 잘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다. 김동희 후보가 시의원이 되면 가장 힘을 쏟을 부분이 바로 차별 없는 서울을 만드는 것이다. 장애인, 성소수자, 여성, 아동, 어르신 등 서민과 도시 안에서 억압받는 사람들을 위한 정책들이 그의 공약이다.

 
 
이번 2010년 지방선거에서는 성소수자 밀집지역을 중심으로 성소수자가 적극적이고 매력적인 유권자층으로 부상하고 있다. 마포의 경우, 마포레인보우 유권자연대(마레연)를 성소수자 스스로 구성하여 자신의 정체성을 기반에 둔 유권자운동을 펼치고 있다. 마레연은 선거운동이 시작될 즈음이 되면 각 마포의 각 후보들에게 성소수자들의 표심을 좌우할 질문들을 뽑아 질의서를 보낼 예정이다. 또한 성소수자 단체들의 연대회의인 ‘무지개행동’은 7가지 요구안에 합의할 것을 각 후보자들에게 제안하고, 성소수자 유권자들을 가시화하기 위한 홈페이지를 개설하고 있다. 이미 예전부터 성소수자들은 각 선거에서성소수자 인지/ 친화적 후보자를 가려내고 자신의 요구, 주장을 제기하기 위한 질의서를 보내거나 성소수자 후보자에 대한 적극적인 지지를 표명하며 유권자로서의 권리를 행사해 왔다.




  이번 6.2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는 성소수자공약을 마련한 정당도 있고 그렇지 않은 정당도 있다. 민주노동당은 위에 설명한 ‘성소수자 인권기본조례 제정’이 15대 중요공약 중 하나로 들어가 있다. 진보신당의 경우, 성소수자 뿐만 아닌 다양한 차별을 금지하고 인권을 보장하도록 하는 ‘반차별조례 제정’ 공약이 있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성소수자를 위한 공약이 없는 상황이다. 이번 선거는 1인 8표를 행사하게 된다. 유권자들은 이러한 당의 정책들을 잘 비교해 보아 자신의 정체성에 부합하는 투표에 한 표를 실어야 할 것이고, 정당 및 정치인들은 말 뿐인 공(空)약이 아니라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내는 공(公)약으로 이행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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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성소수자위원회 7기를 맞이하며

2010.03.18 11:58 | Posted by 민주노동당 성소수자위원회 성소수자위원회


성소수자위원회 7기를 맞이하며

민주노동당 성소수자위원회 강석주

민주노동당 성소수자위원회가 벌써 7기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그간 성소수자위원회에 많은 굴곡과 어려움들이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굴곡마다 성소수자위원회 소속의 당원들과 지지자 분들의 도움으로 여기까지 무사히 올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특히 분당 이후에 당과 성소수자위원회 존립의 위기에서도 힘께 손을 잡고 위원회를 지켜주신 회원 여러분의 도움이 없었다면 7기 위원회는 없었을 것입니다. 7기 위원회를 맞이할 수 있게 해주신 회원들의 노력과 지지에 항상 감사를 드립니다.

성소수자위원회는 그간 많은 곳에서 활동을 진행했습니다. 특히 6기 위원회는 노동절과 퀴어퍼레이드, 집회현장에서 무지개 깃발을 휘날리며 함께 하였습니다. 또한 정치웹진 레인보우 발간과 당내 성소수자 교육을 통해 당원들과의 소통을 진행하고 있으며, 정책당대회와 지역 순례 프로그램을 통하여 지역에 있는 성소수자들과 함께하는 연대활동을 기획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성소수자 노동권팀을 구성하여 성소수자 노동권 문제에 대한 다양한 활동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 외에도 보이지는 않지만 많은 연대활동과 지원 활동을 통하여 성소수자위원회의 활동의 지평을 넓히고 있습니다.

성소수자위원회는 지난 2월 6일 총회를 통해 7기 위원회를 발족하게 되었습니다. 7기 위원회는 6기성소수자위원회의 활동을 바탕으로 성소수자의 정책적 토대를 만들고 연대의 확장을 통해 입지를 공고히 하는 활동들을 기획하고 있습니다. 그간 여러 사정으로 중단되었던 성소수자 정책관련 연구사업을 진행할 예정에 있으며. 6.2지방선거 공약을 현실화하기 위한 준비 작업도 기획하고 있습니다. 또한 그간의 연대 사업을 강화하고 위원회로 내화할 수 있는 정기적인 회원 토론회와 간담회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1. 성소수자 표준 교안 연구사업

그간 성소수자 교육은 당내 필수교육은 아니지만 성평등 교육안에 포함되어 진행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강의내용이 강의자별로 다르고 수준을 조절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이에 위원회에서는 표준 교안을 제정하기로 하였습니다. 이 교안은 문서교안 뿐만 아니라 당원들이 알기 쉽게 미디어를 통한 교육을 함께 만들어 다양한 형태의 성소수자 교육안을 만나 볼 수 있을 것입니다.

2. 성소수자 인권조례 제정 관련 연구사업

6.2 지방선거에 성소수자위원회에서는 성소수자인권조례 제정을 하나의 공약으로 제안하였습니다. 공약이 공약으로서만 머물지 않고 현실적인 정책으로 반영될 수 있도록 성소수자 인권조례 제정에 타당성을 살펴보고, 앞으로의 정책으로 실현 될 수 있도록 할 것입니다.

3. 성소수자 노동권팀과 레인보우 웹진

2009년에 활발하게 진행되던 성소수자노동권팀과 레인보우웹진 발간사업은 2010년에도 계속됩니다. 성소수자 노동권팀은 그간의 인터뷰를 통한 토론회를 진행하였으며, 이 토론회에서 논의한 내용을 바탕으로 2010년에도 계속적으로 진행이 될 것입니다. 레인보우웹진은 성소수자위원회의 다양한 이슈와 주제를 가지고 당원들을 찾아 갈 것입니다.

4. 새롭게 바뀌는 회원프로그램

2010년에는 성소수자위원회 회원 프로그램이 강화됩니다. 올해의 회원 모임은 2개월의 한번 씩 성소수자위원회의 이슈와 주제를 가지고 작은 토론회와 간담회로 채워질 것입니다. 단순한 모임을 넘어 성소수자 고민을 함께 나눌 수 있는 다양한 주체들과의 토론과 대화로 위원회의 활동의 활력소가 되어줄 것입니다.

이 외에도 지방선거 대응과 당직자 선거대응, 회원 일상사업, 퀴어페레이드, 연대사업 등 다양한 사업을 기획중에 있으니 회원여러분의 많은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A flower that blooms adversity is the most rare and beautiful of all"
고통 속에서 핀 꽃이 모든 꽃들 중에서 가장 고귀하고 가장 아름답다.

디즈니 만화 뮬란에 나오는 대사입니다. 우리의 현재의 어려움과 고난이 민주노동당과 성소수자위원회를 꽃피우게 하고 우리의 삶을 꽃피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활동에 함께 해주시는 성소수자위원회 여러분은 가장 고귀하고 아름다운 분들입니다. 올해에도 우리가 바라는 무지개빛 세상을 꿈꾸며 앞으로 나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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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제임스 2010.03.19 18:07

    성소수자위원회의 2010년 활동을 기대합니다. 열심히 하시는 모습들 보기 좋습니다.

  2. 키키 2010.03.20 00:06

    아, 고통 속에 피는 꽃이 고귀하고 아름답다는 말이, 또 위안이 됩니다. 성소수자위원회의 고군분투에서 희망을 또 느낍니다. 감사하단 말씀 전하고프네요~

‘세계 에이즈의 날’ 역사와 의미

2009.12.24 14:12 | Posted by 민주노동당 성소수자위원회 성소수자위원회

‘세계 에이즈의 날’ 역사와 의미


강석주 (한국HIV/AIDS감염인연대)   


* 이글은 가톨릭 레드리본지에 기고한 내용입니다.

2009년도 벌써 11월을 넘어 12월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12월이 되면 에이즈와 관련된 단체들은 많이 분주해 집니다. 그 이유는 바로 12월 1일이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죠. 12월 1일이 대체 무슨 날이기에 에이즈 관련된 민간단체, 감염인 단체들은 바쁘게 움직일까요? 이날은 바로 ‘세계 에이즈의 날’이기 때문입니다. 올해로 세계 에이즈의 날이 제정 된 지 21년이 되었습니다. 세계 에이즈의 날은 우리나라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전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함께 이날의 의미를 새기며 기념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세계 에이즈의 날이 어떻게 제정이 되었고, 어떠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한번 살펴볼까요?


1988년 1월. 영국 런던에서 세계보건장관회의가 열리게 됩니다. 이때에는 전 세계의 148개 나라에서 참여를 하였습니다. 이때에 주요한 주제가 에이즈와 관련된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에 대한 논의가 있었습니다. 이 회의를 마치며 에이즈 예방을 위한 선언을 하게 됩니다. 이 선언이 바로 [런던선언]입니다. 런던선언은 전 세계가 에이즈 예방을 위한 정보교환, 교육홍보, 인권존중을 하자는 것이 주요한 내용으로 담고 있습니다. 이 전까지만 해도 에이즈 문제는 전 세계의 문제이기 보다는 각 국가에서 개별적으로 치료하고, 예방을 하였습니다. 하지만 각 국가에서 개별적으로 노력을 하였지만 HIV/AIDS감염인들은 더욱 늘어나고, 에이즈는 더 빠른 속도로 확산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에 에이즈에 대한 전 세계적인 힘을 모아 에이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보건장관회의를 개최하였고, 런던선언이 탄생하게 됩니다. 이러한 선언을 바탕으로 1988년 세계보건기구 (World Health Organization/WHO)가 각 국가와 지방자치단체, 국제기구, 개인들 간의 정보교환, 인권존중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구축하는 작업들을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WHO는 1988년부터 1996년까지 에이즈의 날을 제정하여 다양한 행사와 활동을 진행하였습니다. 에이즈와 관련된 국가행사, 홍보행사, 예방활동, 정보공유 등 다양한 분야에서 행사를 기획하게 되었습니다. 이후에 UN에 에이즈와 관련된 전담기구인 UNAIDS로 이전될 때 까지 매년 다양한 주제와 이슈를 가지고 활동을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에이즈의 확산 속도는 더욱 빨라지고, 대중의 인식은 낮기만 했습니다. 또한 많은 사람들이 에이즈로 사망하는 숫자가 많아지자 더욱 전문적인 홍보활동과 캠페인 활동이 필요하게 되었습니다. 단순히 전문가 집단, 보건의료인, HIV/AIDS감염인 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국민들이 에이즈에 대한 경각심을 느낄 수 있도록 해야 할 필요를 가지게 됩니다.





그래서 1997년, UNAIDS는 에이즈에 대한 인식을 높이고 에이즈에 관한 정보를 전 세계적 차원에서 통합하기 위해 세계 에이즈 캠페인(World AIDS Campaign/WAC)을 설립하게 됩니다. 2005년 WAC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케이프타운과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본거지를 두고, 전 세계적인 에이즈 인권 운동으로서의 기능을 하는 독립적인 기구로 발전되게 됩니다. WAC는 에이즈 관련 전문가, 지도자들을 지원하는 일뿐만 아니라, 세계 에이즈의 날을 위한 준비활동과 매해 이슈와 관련 내용을 담긴 자료를 배포하는 일을 담당합니다. 세계 에이즈의 날의 첫 번째 테마는 '소통’[Communication]입니다. 2005~2010년까지 WAC는 목표와 슬로건을 "STOP AIDS, keep the promise" [에이즈를 막자. 약속을 지키자.]를 테마로 삼았습니다. 이 구호의 의미는 에이즈에 확산을 막기 위해 전세계의 국가들이 약속을 하였습니다. 에이즈 치료제 공급, 예방활동 및 교육활동, 후진국에 대한 에이즈 지원 등과 관련된 약속을 하였으나 실제로는 지켜지지 않아 에이즈 예방활동에 많은 어려움을 겪게 되었습니다. 이에 “에이즈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각 국가의 약속을 지켜야 한다.”라는 의미로 이러한 구호를 외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구호는 에이즈의 날 뿐만 아니라 1년 내내 사용이 되고 있습니다.


에이즈의 날에는 UNAIDS만 행사를 진행하는 것은 아닙니다. 각 국가 및 민간단체, 보건단체, 감염인 단체에서 다양한 행사들을 진행합니다. 각 국가에서는 세계 에이즈의 날을 위한 안건을 만들고 조직하며, 몇몇 국가들은 일주일간 주간을 설정하여 캠페인을 벌이기도 합니다. 뿐만 아니라 세계 에이즈의 날 활동을 국제적, 국가적, 지역적 차원에서 시작하도록 돕는 행사들을 여러 국가와 도시들이 주최합니다. 예를 들면, 미국에서는 대통령이 연례 선언문을 발표하며, 남아메리카와 버뮤다, 브루나이 같은 다른 나라에서는 보건장관이 에이즈에 대한 관심을 고취하는 연례 연설을 진행합니다. 가장 많은 나라에서 보편적으로 하는 행사들은 콘서트와 집회를 개최하고, 에이즈로 고통 받다 돌아가신 분들을 위한 추모제, 에이즈 정책과 관련된 토론회와 간담회 등으로 구성됩니다. 또한 미국에서는 에이즈로 고통 받고 돌아가신 분들을 기리는 상징인 추모 퀼트를 제작하여, 미국 전역의 도시에 전시를 하기도 합니다.




세계 에이즈의 날의 국제적 상징물은 레드 리본입니다. 이 레드리본의 의미는 에이즈를 예방하기 위한 활동을 적극적으로 참여하겠다는 의사 표현이고, 에이즈로 인하여 고통 받는 사람들에 대한 지지의 상징이며, 에이즈라는 질병이 사리지기를 바라는 우리의 희망의 표현입니다. 몸속에 혈액과 따듯한 마음을 의미하는 레드리본을 몸에 부착하게 됨으로 HIV/AIDS감염인들에 대한 차별과 낙인을 없애고, 사회가 함께 더불어 살 수 있는 인간다운삶을 살아가자는 운동의 표현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표현은 다양한 방식으로 보여지게 됩니다. 이러한 레드리본은 개인이 달기도 하고, 에이즈의 날에는 각 나라의 주요 상징물에 전시하여 에이즈에 대한 경각심을 다시 한번 일깨우게 하기도 합니다.


세계 에이즈의 날은 에이즈를 예방하기 위한 우리의 바람이 담겨있는 날입니다. 비록 현재의 에이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많은 어려움들이 우리 앞에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에이즈의 날을 맞이하여 우리의 의지를 다시 한 번 다잡고 함께 에이즈 문제를 함께 해결하기 위한 다양한 활동을 벌이는 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한국에서 살아가고 있는 HIV/AIDS감염인들의 삶은 열악하기만 합니다. 사회적인 낙인과 차별로 인하여 사회생활이 어렵기만 합니다. 세계 에이즈의 날을 맞이하여 에이즈의 날을 단순히 일회성 홍보 행사가 아닌 에이즈에 대한 관심과 HIV/AIDS 감염인들에 대한 지원이 더욱더 많아지길 희망합니다. 또한 주변에 소외되고 차별받는 HIV/AIDS감염인들에게 용기와 힘을 복돋아 줄 수 있는 날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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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 왜 집에 가기 싫은 걸까?

2009.11.01 22:48 | Posted by 민주노동당 성소수자위원회 성소수자위원회

명절, 왜 집에 가기 싫은 걸까?


강석주 (민주노동당 성소수자위원회 위원장)


여러분들은 추석 명절을 어떻게 보내셨나요? 저는 예년과 다르게 짧은 연휴여서 그런지 조금은 아쉽기도 했지만 그래도 가족들이나 친척들과 보내는 시간이 상대적으로 줄어들다 보니 좀 만 버티면 되겠구나 하는 생각도 했답니다. 신문을 보니 추석명절에 가장 힘든 사람이 며느리들이라고 하네요. 스트레스 지수가 높아지기 때문이겠죠. 성소수자들도 명절이 달갑지만은 않습니다.


몇 해 전부터 명절에 집에 가지 않는 버릇이 생기기 시작하였습니다. 명절에 가더라도 당일보다는 연휴 전에 가서 집에 선물을 드리고 조용히 올라오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명절이 되면 차라리 성소수자 친구들과 영화를 보거나 다른 오락거리를 찾는 것이 더 좋았습니다. 그 이유는 가족들과 주변의 친척들과 있어보았자. ‘결혼은 언제하냐’는 잔소리만 듣게 될게 뻔하기 때문이죠. 아니나 다를까 이번 추석에도 부모님의 협박 아닌 협박이 있었습니다. ‘추석인데 언제 올 건지..’ ‘명절인데도 집에 오지 않으면 언제 얼굴을 보느냐는 둥..’여러 가지 이유로 피해가지 못하도록 올아 붙이면서 집에 꼭 오라고 신신당부를 하셨습니다. 평소에 하던 거짓말도 잘 통하지가 않더라구요.


명절이 맞이하는 대부분의 성소수자들은 저와 처지가 비슷할 겁니다. 벌레도 아닌데 두렵고 피하고 싶기만 합니다. 가족, 친척들에게 장시간 결혼에 대해 취조당해야 하는 상황은 애정 어린 관심이라기보다 오히려 폭력적으로 느껴집니다. 직장과 사회에서 끊임없이 정상가족 구성에 대한 요구가 빗발치는 상황에서 꿋꿋하게 버티면서 살아가고 있는 성소수자들은 항상 긴장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가족들의 끊임없는 결혼 요구는 마치 가시방석에 앉아 있는 기분이 듭니다. 명절이 되면 주변의 지원사격과 더불어 총공격의 기세를 올리시기에 성소수자들은 고개를 숙인 채 모든 육탄공세를 받아내야 합니다. 명절에 집중 포화되는 가족들의 훈계(?)는 성소수자들을 더욱 의기소침하게 만듭니다. ‘나는 왜 성소수자가 되었을까?’ 라는 생각부터 욱 하는 마음에 ‘커밍아웃을 해 버릴까?’ ‘불효를 하지 않기 위해서 이성과 결혼을 해야 하나?’까지 다양한 고민을 하게 만듭니다. 이러한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어 성소수자라는 사실 자체가 불효자가 될 수 밖에 없겠구나 라는 생각으로 끝나게 됩니다.


명절날은 평등하게 사람들에게 찾아오는데 그 명절을 지내는 방식은 모두 다릅니다. 가족이 없거나 가족으로부터 소외받는 사람들은 명절의 의미가 무색할 정도로 외롭고 괴롭습니다. 모두가 즐겁게 나누어야 하는 추석이 성소수자들을 더욱 위축시키고 가족관계를 어렵게 만드는 날이 된다면 공휴일이라는 점을 제외하고 과연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뉴스에서는 가족들의 즐거운 명절 모습을 보여주겠지만 그 뒷면에는 반갑게 초대받지 못한 이들이 존재합니다. 성소수자들과 같이 초대받아도 가족들을 피하고 싶은 이들도 있죠.


성소수자들도 명절에 가족들과 편하게 만나고 오랜만에 보는 친척들과 반갑게 인사하고 싶습니다. 서로의 안부를 묻고 맛있는 떡과 음식을 나눠 먹으며 밤을 새가며 수다를 떨고 싶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명절 분위기를 비롯해 가족들의 생각들도 많이 바뀌어야겠죠. 가족에 대한 가치관과 사회기준도 변해야 합니다.


추석 보름달에 소원을 한 번 빌어보렵니다. 뭐 따지고 보면 대단한 소원도 아닙니다. 내년에 보름달을 볼 때쯤이면 더 이상 명절이 힘들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가족에게 자신의 성정체성을 숨기며 살아가는 성소수자들도 좀 더 자유롭게 명절연휴를 즐길 자격이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당부드리고 싶은 말은 주변에 아직 결혼을 하지 않았거나 못했거나 하시는 분들이 있다면 그냥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받아주시고 카드값 독촉하듯이 결혼을 언제할거냐 라고 채근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듣는 성소수자 굉장히 짜증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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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내 성소수자 교육은 왜 필요한가?

2009.08.19 23:32 | Posted by 민주노동당 성소수자위원회 성소수자위원회

당내 성소수수자 교육 왜 필요한가?

강석주 (민주노동당 성소수자위원회 위원장)


              2009. 퀴어퍼레이드 행사장에 세워진 반차별선언  나무


최근에 성평등 교육, 성소수자 교육으로 시도당 및 지역 방문이 많아졌다. 교육을 계기로 성소수자 문제에 관심있는 당원들을 만나는 것은 매우 설레고 즐거운 일이다. 하지만 매년, 매번 기초교육 위주로만 교육이 진행되다보니 당원들과 깊이있는 이야기를 나누기엔 많은 한계가 있다. 성소수자와 관련된 다양한 인권의제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성소수자들의 삶은 물론 기초, 기본적인 개념을 알고 있어야 한다. 하지만 아직까지 당 내에서 교육을 제외하고 성소수자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많이 부족하다보니 늘 다람쥐 쳇바퀴 돌 듯 교육이 반복된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 교육을 통해, 아니면 개인적인 관계속에서 당원들을 만나다보면 성소수자의 기본 개념조차 잘 모르고 있는 것은 물론 심지어 무서워하기까지 한다는 느낌이 든다. 물론 예전보다 많이 나아졌지만 여전히 실수가 두려워 쉽게 질문하지 못하고 접근하지 못한다.  

또한 2시간의 교육이 끝나고 난후에
“전 성소수자는 인정하는데 그들의 권리는 인정하지 못하겠어요.”라는 어이없는 말로 당황스럽게 하는 경우도 종종 생기곤 한다.

성소수자를 인정하는데 그들의 권리를 인정하지 못하겠다는 말은 상당한 어패가 있는 말이다. 이 말을 풀어보자면“성소수자의 이사회에 존재성을 인정은 하지만, 그들이 우리와 같은 동등한 인권을 가지는 것은 반대합니다.“라는 말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성소수자나 동성애자가 우리 사회에 엄연히 존재하였고 동성애자에 처벌이나 규제로는 존재하였지만, 성소수자는 사회의 일원이 아니라 ‘비정상적’혹은 ‘정신병적’집단으로 낙인을 찍음으로 존재성 자체를 부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말의 진정한 뜻은 ”저는 성소수자를 받아들이고 인정할 수 없습니다.”의 의미가 되는 것이다.

성소수자는 항상 사회 속에서 언제나 존재해 왔다. 세의 기독교 문명 속에도 사도간의 동성애라 던지, 중세 일본 무사계층의 동성애적 관계라 던지, 누어족은 나이차가 있는 여자들 사이에 결혼이 이루어지는 것들이 바로 그것에 대한 반증일 것이다. 이런 사실들은 역사적 기록으로 존재하고 있으며, 성소수자들은 언제나 자신들의 존재를 말하고자 노력을 했다. 그런데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성소수자, 동성애자라는 규정은 200년도 채 되지 못했고, 우리 사회에서 성소수자의 이야기는 금기의 이야기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예나 지금이나 우리의 존재성에 대해 그들에게 설득하고 있는 것이다

왜 우리는 존재하고 사회의 구성원으로 살아가고 있는데, 존재성을 인정받고 설득해야 할까? 참으로 억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우리를 인정하지 않는 그들과 끊임없이 토론하고 맞서서 싸워왔다. 동성애를 혐오하고 부인하는 사람들, 그 혐오를 이용하는 정상가족주의와 기독교 근본사상들, 그들에게 우리는 이사회에 언제나 존재하고 있으며, 언제나 앞으로도 존재할 것임을 끊임없이 알려내고 있는 것이다.

민주노동당의 성소수자위원회는 우리의 존재성을 알리는 큰 축임에는 분명하다. 성소수자의 존재를 인정받고, 권리를 쟁취하기 위한 정당 내 존재하는 위원회이기 때문이다. 당내에 처음 성소수자 위원회가 생길 때 성소수자 당원들의 노력이 없었다면 현재의 위원회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만큼 당내에 성소수자에 대한 인식이 있어서 라기보다는 성소수자 당원들의 끊임없는 요구와 투쟁이 위원회를 세울 수 있도록 했다고 볼 수 있다.

그렇기에 당 내에 성소수자에 대한 인식과 관심은 적다고 할 수 있다. ‘일부의 당원들 안에서는 성소수자위원회가 꼭 있어야 돼?’이야기하는 당원도 본적이 있다. 또한 지역에서는 ‘성소수자를 지지하는 정당이라 가입하기 꺼려진다.’라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당내에 성소수자 위원회가 있고 성소수자 당원들이 있지만 커밍아웃하기 하기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특히 지역위에서 활동하는 성소수자 당원들은 절대 자신이 성소수자임을 밝히지 않는다고 한다. 못한다고 하는 것이 더 맞는 표현일 거 같다. 그것은 성소수자임이 밝혀지게 되면, 지역위에 함께 하는 당원들이 자신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에 대한 두려움이라고 한다. 실제로 성소수자임이 밝혀지게 되면, 어제까지 투쟁의 현장에서 함께 싸우던 당원들이 자신을 비난하는 듯한 얼굴로 쳐다보고 거리감을 두거나, 일종의 가쉽거리가 되는 것이 너무나 두렵다고 한다.

당내 성소수자 교육은 왜 필요한가? 동성애자 억압에 대한 해방, 정상가족 이데올로기 제거 등의 거창한 이유를 대기 보다는 가장 현실적이고 간단한 이유를 답하고 싶다. 당내 성소수자 당원들이 자신의 존재성을 부인하지 않고, 당당하게 드러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또한 함께 하는 당원들이 성소수자라서 부끄러운 것이 아닌 성소수자 당원이 있어 더 기쁘고 당의 활력소가 되어주었으면 좋겠다는 바램이 있기 때문이다. 성소수자임이 특이한, 특별한 사람이 아닌 그냥 나와 조금 다른 동지라고 인정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조금 더 바란다면, 성소수자의 힘든 투쟁에 언제나 연대의 손길을 가지고 함께 그들의 권리를 위해 함께 싸워준다면 그것은 성소수자의 억압의 투쟁에 큰 힘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우리가 바라는 사회는 단지 모든 착취와 억압을 종식시키는 것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성애와 정체성을 일그러트리고 파괴하는 모든 편견과 억압에서 해방되는 것임을 잊지 않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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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톤월 소녀들. 한국에서 다시 태어나다.

2009.06.08 19:06 | Posted by 민주노동당 성소수자위원회 성소수자위원회

 

 

스톤월 소녀들. 한국에서 다시 태어나다.


 

강석주 (민주노동당 성소수자위원회 위원장)




퀴어문화축제는 성소수자들이 자신의 존재성을 확인하고, 성소수자 인권을 지지하는 사람들과 함께 나와 연대를 나누는 축제의 자리다. 성소수자들이 자신의 성정체성을 맘껏 드러내며 한판 놀이를 펼치는 퀴어문화축제가 올해로 벌써 10회째를 맞이하게 되었다. 축제의 백미라고 할 수 있는 퀴어 퍼레이드는 6월13일 청계천 베를린광장에서 펼쳐진다. (5월30일로 예정되어 있었으나,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으로 인해 연기되었다.) 민주노동당 성소수자위원회도 위원회가 건설된 이후부터 이 자리에 꾸준히 함께했다. 현애자 전 국회의원이 정당 역사 상 최초로 지지발언을 했고, 매년 그랬듯이 2009년에도 민주노동당 국회의원이 참석 해 지지연설을 함께할 예정이다. 거리축제 현장에 오면 많은 성소수자들이 가지고 있는 삶의 문제와 이슈를 한 눈에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성소수자들의 투쟁의 역사를 함께 공유할 수있다.

 

 

                                     <뉴시스> 2008. 퀴어퍼레이드 사진
                         여기동 성소수자위원회 전 위원장이 참가자들과 함께 있다.


퀴어 퍼레이드, 1969년 스톤월 항쟁을 기억하다.

뉴욕의 게이 바에 대한 경찰의 단속은 1960년대에는 일상적인 일이었다. 바(bar)에 있는 성소수자들은 백색경고등이 켜지면 즉시 춤과 서로에 대한 더듬거림을 중단해야 했다. 경찰들의 단속이 시작되었다는 표시였기 때문이다. 모욕적인 욕설과 폭행이 있어도 단속이 끝나기만을 기다리며 참아야 했다. 1969년 6월28일, 그날도 스톤월 인(Stonwall Inn)은 여느 날과 다를 바 없어보였다. 경찰들은 그들에게 모욕적인 행동으로 대했고 미성년자, 신분증 미소지자, 여장남자, 종업원들을 강제로 연행해갔다. 다른 날과 다르게 이 날은 연행해가는 경찰들을 향해 밖에 모인 군중들은 동전을 던지기 시작했다. 수갑을 꽉 채워 “아프다”고 항의한 남장여자(다이크)에게 경찰은 곤봉을 휘둘렀고 군중은 그것에 항의하기 위해 계속 동전과 돌을 던졌다. 평소와 다르게 그들의 저항이 거세지자 경찰은 위기감을 느끼고 바 안으로 후퇴해 들어가게 되었다. 군중들은 바에 불을 질렀다. 단속경찰들은 지원 병력을 요청했다. 지원 병력은 당시 베트남전 반대 시위 확산에 대응하기 위해 만들어진 폭동 진압 부대였다. 경찰봉이나 최루가스와 같은 다양한 병기를 소지하고 있었지만 스톤월로 모인 군중들은 도망가거나 뿔뿔이 흩어지지 않았다. 항쟁은 그 날 새벽 4시까지 계속되었다.


‘구역질 나는 건 내가 아니라, 나보고 구역질난다고 하는 이 사회다’

스톤월 항쟁이 있고 나서 3주 뒤 뉴욕의 게이, 레즈비언들은 GLF(Gay Liberation Front): 게이해방전선을 결성하였다. 이들은 이 전과 다르게 미국 사회와 어떤 타협도 하지 않을 것을 천명했으며, 단체명을 베트남민족해방전선에서 따올 만큼 베트남전 반대시위에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고 집회대열에 함께했다. 1970년 최초로 개최된 뉴욕 퍼레이드에는 2000명이 넘는 동성애자들이 참여했다. 게이해방전선은 수 천 명과 맞서 싸울 수 있는 자신감을 북돋아주는 대중 참여를 강조했으며, 더 이상 동성애, 이성애 구별이 필요 없는 급진적인 사회상을 제시했다. 또한 그들은 ‘골방에서 나와 거리로’ ‘천천히 큰 소리로 말하라, 나는 당당한 동성애자다’‘구역질나는 건 내가 아니라 나더러 구역질난다고 말하는 사회다’라는 슬로건을 전면에 내세웠다.


  

                      2008, 브라질 상파울루에서 개최된 퍼레이드 사진
                           (역대 최대인원 350만 명이 참여했다.)


스톤월 항쟁은 전 세계 성소수자들의 인권상황을 빠르게 움직여 놓았다. 여전히 성소수자라는 이유만으로 사형을 집행하거나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는 나라들도 있지만, 많은 나라들에서 동성 간 결혼, 입양이 허용되었다. 청소년 성소수자들이 긍정적으로 자신의 성정체성을 찾아갈 수 있도록 해주는 사회복지 서비스가 만들어졌다. 가장 중요한 변화는 성적다양성이 존중받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성소수자 스스로의 자신감이 커졌다는 것이다. 이 자신감은 한국의 퀴어문화축제로 이어져야 한다. 스스로 고립되는 자신감이 아니라 사회변화를 꿈꾸고 성소수자 인권을 지지하는 이들과 함께 소통함으로써 만들어진 자신감이다. 이제는 당내의 많은 당원들이 성소수자 인권에 대한 지지를 직접적으로 표현할 때다. 성소수자들을 지지하는 많은 당원들이 ‘성적지향에 의해 차별받지 않는 평등한 세상을 위해!’ ‘성적다양성이 존중받을 수 있는 일자리’라고 적힌 구호를 들고 함께 행진한다면 나를 포함한 많은 성소수자들이 용기를 얻고 자긍심을 회복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정당 최초로 성소수자위원회가 건설된 만큼 당원들의 직접적인 참여와 지지가 절실히 필요하다.


2008, 9회 퀴어퍼레이드 참여자들의 퍼레이드 행진모습.
지지하기 위해 참여한 한국기독청년학생연합 깃발이 보인다.



2009년 6월13일 (토) PM 12시 ~ PM 7시

장소 : 청계광장 한화빌딩 앞 베를린 광장 앞

문의 : 02) 2139 - 7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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