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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과 살이 마주치는 감각의 제국, 혹은 열정의 시대

2010.10.18 15:04 | Posted by 민주노동당 성소수자위원회 성소수자위원회

-  자전소설『테이킹 우드스탁』과
   영화 <테이킹 우드스탁>가 욕망하는 것


“사랑받을 가망이 없다고 느끼게 되면 섹스는 순전히 육체적 경험으로만 남는다. 그로부터 얻는 쾌감, 그 육체적 감정적 황홀경, 그 순수한 에너지의 분출은 외로움과 이성애자 세상으로부터의 전면 거부라는 감옥으로부터 탈출할 구멍을 제공한다. 오직 성적일지언정 누군가 나를 열렬히 원한다는 그 순수하고 강렬한 체험은 인생에 정당성을 부여한다. 나를 원하는 누군가 있다는 것은 기꺼이 살아갈 이유가 되어준다. 성적인 접촉, 어떻게 정의되든 그 접촉은 많은 게이들의 피와 뼛속 깊이 녹아 있는 존재론적 고독에 대한 해독제가 되었다. 우리의 성적 취향이 마음에 안 든다는 이유로 사회가 우리를 억압할 경우, 섹스는 혁명적인 행위가 되고, 많은 이들에게는 분노를 표출하는 행위가 된다. 그것은 세상을 향해 치켜올리는 가운데 손가락이자, 우리를 경멸하는 이들에게는 골칫거리였다. 그것은 우리가 얼마나 다른지를 확인시켜준다. 그것은 우리도 살아갈 권리가 있음을 주장한다.”

- 엘리엇 타이버, 『테이킹 우드스탁』중에서 



긴 인용으로 이 글의 서두를 연다. 전설의 록 페스티발인 ‘우드스탁 페스티발’의 창시자이자 화가 및 극작가로 다재다능한 활동을 해온 엘리엇 타이버는 자전 소설『테이킹 우드스탁』을 통해 60년대를 회고한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소설은 엘리엇 타이버가 우여곡절 끝에 ‘우드스탁 페스티발’을 성공적으로 개최하며 역사의 한 획을 긋는 과정을 생생하게 묘사한다. 그런데 사실 그가 더욱 천착하고 있는 지점은 게이라는 자신의 성 정체성을 둘러싼 다양한 욕망과 경험들이다. 거기에는 유명한 사진작가 로버트 메이플소프, 극작가 테네시 윌리엄스, 배우 록 허드슨 등과의 내밀한 성적 체험에서부터 스톤월 항쟁에 이르는 공식적 역사까지 세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성 소수자들이 꿈꾸는 혁명은 금지된 육체적 욕망에서 비롯된다. 내가 욕망하는 몸과 나를 욕망하는 몸을 자유롭게 향유하는 것. 혁명은 몸에 대한 억압의 사슬을 끊어버리는 데서 출발한다. 그들에게 있어 섹스란 억압의 원인이자 또한 그 억압에 저항하기 위한 최선의 도구이다. 엘리엇 타이버가 과거에 유명 인사들과 벌였던 성적 경험들을 술회하는 것은 단순한 스캔들이나 가십거리로 독자들의 호기심을 충족시켜주기 위해서가 아니다. 자신의 섹스 라이프를 밝히며 공공연하게 가시화하는 것은 그자체로 성 소수자 저항 운동의 기저를 이루는 실천이다. 나아가 그것은 오늘날 주류 역사에 매몰된 퀴어 역사를 복원해내는 고유한 언어의 발명이자 서술 방식이다.


엘리엇 타이버에 따르면, 우드스탁 페스티발은 바로 이 퀴어들이 최전선에 서 있는 몸의 정치학에서 기인한다. 따라서 퀴어 주체인 그가 우드스탁 페스티발의 선구자가 된 것은 당연한 귀결일지 모른다. 이제 그곳에는 성 소수자들을 위시해 세상의 부조리한 핍박에 맞서려는 모든 소수자들의 열정이 결집한다. 미국 전지역에서 모여든 히피들은 저항의 음악에 몸을 맡기고서 마약에 취해 섹스를 하면서 몸의 감각 중추들을 자극하고 증식한다. 그것은 실패한 이성의 시대를 종식시키고자 육체적 접촉이 주는 쾌감에 기회를 제공한다. 이토록 서로의 몸을 갈망하고 서로의 체온을 원하는데, 존재의 이유에 무엇이 더 필요한가! 어떠한 정제된 율법도 살과 살 사이를 비집고 들어올 수는 없다.


이 자전 소설의 진솔한 언어들은 이안 감독의 섬세한 손길을 거쳐 영상으로 옮겨진다. 영화 <테이킹 우드스탁>은 이안 감독에게 있어 <결혼 피로연>, <브로크백 마운틴>과 더불어 퀴어 영화 3부작을 완결하는 영화이며, 제작자인 ‘포커스 픽처스’의 제임스 샤머스에게 있어서는 <브로크백 마운틴>과 구스 본 산트 감독의 <밀크>에 이은 퀴어 영화 3부작의 마지막 작품이기도 하다. 감독으로서, 또 제작자로서 자신의 영화 세계를 일단락하기 위해 선택한 작품은 전작들보다 한층 더 여유롭게 관객들을 감각의 제국으로 이끈다.


영화는 원작에서처럼 엘리엇 타이버가 동성애자로 겪어야만 했던 다양한 경험들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50만 명이 운집한 우드스탁 페스티발의 다채로운 볼거리들을 감각적으로 시각화하는 데 주안점을 둔다. 아마도 원작이 보여준 성적 경험들의 적나라한 묘사에 매혹되었던 관객들이라면 영화의 다소 밋밋하고 느슨한 플롯에 실망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이안 감독이 방점을 찍은 부분은 분명 우드스탁 페스티발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원작과 전혀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안 감독은 영화 매체가 가진 장점을 최대로 부각시키기 위한 취사선택을 했다. 한정된 러닝타임 속에서 시각화의 대상으로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했던 것은 바로 우드스탁 페스티발의 풍광이다. 우드스탁 페스티발의 완벽한 시각적 재현만으로도 엘리엇 타이버의 목소리가 농밀하게 감각적으로 기입될 수 있다. 영화는 서사 장르이기에 앞서 시각 예술임을 명심하자.


그가 제시하는 우드스탁 페스티발의 재현 전략은 크게 두 가지이다. 먼저 페스티발이 벌어지는 베델 평원으로 향하는 히피들의 긴 행렬을 공들여 재현하고 있는데, 그 모습을 긴 호흡으로 관조하듯 담아낸다. 엘리엇 타이버가 책을 통해 들려준 그 세계는 생생한 시각 이미지로 재탄생하여 마치 뉴스릴을 연상시키는 듯한 화면 속으로 관객들을 자연스럽게 초대한다. 그리고 화면을 여러 개로 분할하여 분주한 페스티발의 광경을 다양한 각도에서 보여준다. 그것은 동시 다발적으로 일어나는 행위들을 하나의 스크린에 담아내기 위한 노력이며, 곧 감각을 최대치로 끌어내고자 하는 노력이다.


그는 여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주인공 엘리엇의 시점에서 화면을 일그러트리며 감각을 극대화한다. 마약에 취한 엘리엇의 시선에 투영된 세상을 그대로 재현해내기 위해 화면의 왜곡도 불사한다. 알록달록한 천 조각 위의 문양들은 꿈틀대고 페스티발이 한창인 베델 평원은 파도치듯 울렁거리며 몽환적인 불빛을 뿜어댄다. 이러한 영상의 스펙터클을 통해 관객은 페스티발의 중심으로, 감각의 중심으로 한 발짝 더 들어간다.


히피들이 밀집한 채 나체로 자유롭게 어울리는 그곳은 영화 <브로크백 마운틴>의 원초적 공간인 ‘브로크백 마운틴’이 확장된 공간이다. 고리타분하고 편협한 세상에 반기를 드는 욕망의 몸짓이 꿈틀대는 공간, 혹은 그 욕망이 유일하게 허락되는 공간으로서 일맥상통한다. 또한 <테이킹 우드스탁>은 동시대 <브로크백 마운틴>의 실패한 동성애보다, 그리고 <결혼 피로연>의 게이 아들이 보여준 가부장과의 타협보다 멀리나간, 시대를 초월한 욕망을 전시한다. 적어도 그곳에서만은 엘리엇이 남자와 키스하는 순간, 주변의 환호성을 받는다.


이제 우리는 책을 통해서건, 영화를 통해서건 마음을 열고 느긋하게 감각의 제국, 열정의 시대에 몸을 맡기면 된다. 그러면 살과 살이 마주치며 감각하기 위해 존재하는 몸의 가치를 60년대의 그 치열했던 저항의 공간이 환기 시켜 준다. 우리는 그렇게 감각하는 몸을 소유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든지 살아갈 권리가 있다.



김경태 (동성애자인권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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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캬.. 2010.10.23 08:22

    저도 이 구절 보면서 떨렸는데 말이지요...

톰 포드 감독의 <싱글맨> - 존재론적 고뇌로 확장하는 퀴어 영화

2010.05.31 00:51 | Posted by 민주노동당 성소수자위원회 성소수자위원회



톰 포드 감독의 <싱글맨> - 존재론적 고뇌로 확장하는 퀴어 영화

1960년대를 배경으로 한 크리스토퍼 이셔우드의 소설『싱글맨』을 주관적으로 아주 간략히 요약하면 이렇다. 50대 후반의 게이 ‘조지(콜린 퍼스)’는 오랜 연인이었던 ‘짐(매튜 구드)’을 교통사고로 잃었다. 소설은 그 후 짐의 환영에 파묻혀 지낸 무수한 날들 중 하루를 선택하여 그 하루 동안 일어난 일상의 기복을 세세하게 묘사한다. 그는 동성애자에 대한 이해를 교양인의 덕목으로 생각하는 이웃집 부인의 가식에 진절머리를 친다. 짐과 자신의 주변을 늘 맴돌며 애증이 뒤섞인 미묘한 감정의 교류를 해온 여인들과 조우한다. 그리고 대학교 제자의 젊은 육체에 이끌리며 그리스 시대의 소년애를 겹쳐낸다. 결국 이웃집 부인에게 화를 퍼붓지도 못했고 그 여인들과의 명확한 관계 정립을 해내지도 못했으며 제자에게는 고백조차 하지 못했다. 그 하루는 어제의 하루이며 또 내일의 하루이다. 죽음만이 내일다운 내일로 안내하는 미래를 열어준다.

세계적인 디자이너 톰 포드에 의해서 영화로 재탄생한 이 작품 역시 소설이 담아낸 본질적 가치의 자장 안에 머물고 있다. 다만 그 가치의 진폭을 조금 달리 할 뿐이다. 소설에는 작가가 자신의 경험을 투영하듯이 영화 속에는 감독이 자신의 경험을 희미하게 덧씌운다. 소설 속에는 없는, 스페인에서 온 ‘카를로스(코르타 하레나)’라는 인물을 추가 등장시킨다거나 감독의 실제 첫 사랑이었던 남자의 성인 ‘팔코너’라는 성을 짐에게 부여한 것이 그 예이다.

감독에 따르면, 소설『싱글맨』의 동성애적인 면이 아니라 인간적인 면에 이끌려 영화화를 결심했다고 한다. 그가 자신의 정체성을 동성애자라는 섹슈얼리티로만 정의 내리는 것을 경계하는 태도와 일맥상통한다. 젊은 시절 그가 소설을 통해서 만날 수 있었던 조지는 자신과 닮은 동성애자가 아니라 자신과 닮은 한 인간이었다. 물론 톰 포드가 동성애자가 아닌 인간에 주목할 수 있었던 것은 동성애에 대한 인식을 바꿔 놓은 선배 세대들의 치열한 투쟁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고백한다.

옷감을 어루만지던 손으로 빛과 어둠을 통제하고자 하는 욕망을 품을 수밖에 없었던 것도 하나의 정체성으로 규정되기를 거부하는 그의 성향 탓이었으리라. 덧붙여, 한 시절을 풍미하고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져버릴 패션과 달리, ‘인간’을 다룬 잘 만든 영화 한편은 세월이 흘러도 스크린을 통해 영원히 기억될 수 있으니, 금상첨화이다.

그리하여 소설 속에서 묘사된 당시의 동성애에 대한 시대반영적인 담론은 영화 속에서 희미해진다. 대신, 오랜 연인을 잃고 홀로 외롭게 늙어가는 한 인간의 본연적 고독이 시대를 초월하여 더욱 뚜렷하게 표상된다. 소수자에 대한 두려움, 공산주의에 대한 두려움, 흑인문화에 대한 두려움, 핵전쟁에 대한 두려움 등을 경유하여 궁극적으로 홀로 늙어가는 것에 대한 두려움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조지의 제자 케니(니콜라스 홀트)의 말처럼,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상대방의 겉모습뿐이다. 그래서 인간은 본래적으로 고독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카를로스의 말처럼, 끔찍한 것들도 자신만의 아름다움이 있다. 우리가 고독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길은 그 내재한 아름다움을 찾으려는 존재론적 숙고로부터 시작된다. 조지는 뒤늦게 그 사실을 깨닫는다.

우리는 화면의 미묘한 채도 변화를 통해서 조지의 심리 변화를 감지한다. 클로즈업으로 진행되는 조지와 케니의 대화 장면은 조지를 담은 창백한 질감의 숏과 케니를 담은 따뜻한 색감의 역 숏의 병치를 통해 미묘하게 대비되는 채도의 차이를 보여준다. 두 사람 간의 대화가 깊어질수록 케니의 온화한 체온은 점차 조지에게 전달된다. 우리는 점차 풍부한 빛깔을 찾아가는 조지의 얼굴을 통해 아름다움에 감염된 자의 행복을 느낀다. 깊은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것 같기도 하고 유유히 잠영을 즐기는 것 같기도 한 양가적인 장면이 반복적으로 조지의 꿈을 장악하고 있었으나, 그 순간 조지는 물 밖으로 얼굴을 내밀면서 망상은 종결이 난다.

‘멈추어라, 너 정말 아름답구나!’

파우스트가 이 말을 뱉어내는 순간, 메피스토펠레스가 그의 영혼을 가져가버리듯이 삶의 진정한 가치를 발견한 순간 조지의 심장도 마비된다. 동성애자로서, 나아가 한 인간으로서 나는 어떻게 늙어갈 것인가에 대해 고민할 시간이 왔다. 홀로 외롭게 늙어가지 않기 위해서라도 주변의 아름다움을 눈여겨보자. 그리고 우리는 성 소수자이기에 앞서 언젠가 죽음을 맞이할 한 인간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자.

김경태_동성애자인권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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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하쿠나 2010.06.05 10:04

    역쉬.. 경태님의 글은... 참 많은 고민을 줍니다..

    우리의 앞으로의 인생, 동성애자로서의 삶, 주변의 많은 동지들...
    우리가 무심코 지나치는 순간의 찰나들... 모두 소중하다는 것을 잊지말아야 할것입니다.

‘여성화된 남성’으로서의 ‘초식남’과 ‘미소년’으로부터 배우는 관계 맺기

2010.03.18 11:36 | Posted by 민주노동당 성소수자위원회 성소수자위원회

 ‘여성화된 남성’으로서의 ‘초식남’과 ‘미소년’으로부터 배우는 관계 맺기


김경태_동성애자인권연대


(여성과의) 섹스나 결혼보다 다양한 취미활동과 외모 가꾸기에 물심양면으로 더 많은 공을 들이는 초식남의 등장은 소비 트렌드를 변화시키고 있다. 혹자는 남성 본연의 임무(?)를 등한시하는 여성화된 남성이라며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기도 하는 반면에, 혹자는 여성과 남성의 장점만을 모아 놓은 신남성의 탄생이라며 반기기도 한다. 어찌됐든 덕분에 여성과의 섹스를 꺼리는 많은 게이들은 초식남으로 위장하며 잠시나마 자신의 라이프 스타일을 마음껏 향유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 이제 여성화된 남성이라는 오래 묵은 편견 아닌 편견에 시달려온 남성 동성애자들, 그리고 그 여성화된 남성이라는 수식어를 본의 아니게 공유하게 된 초식남은 여성성이라는 공통분모 아래 한배를 타게 된 것이다.

“여성스럽다”라는 표현에 다소 민감하게 반응하는 게이 커뮤니티에서는 아마도 여성화된 남성으로서의 게이라는 필자의 시대착오적인 정의에 기겁을 할지도 모르겠다. 아마도 여성스러움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은 스스로가 이분화된 고정적 성역할의 편견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들의 기대와 달리 여기에서 말하는 여성성은 바로 그러한 이분법으로부터 탈피하여 사람 대 사람의 대등한 관계 맺기에 초점을 두려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원천이다. 실제로 초식남의 여성성을 논한다면, 그것은 그들이 물질적 욕구보다는 커뮤니케이션의 욕구가 더 강하다는 측면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이 소비하는 행위는 다다익선의 물욕을 채우기보다는 개인 대 개인의 원활한 소통과 교류를 증진시키려는 인간적인 관계 맺기로 향하고 있다.

초식남의 라이프 스타일이 전형화된 게이의 그것과 닮았더라도 초식남은 분명 게이가 아니다. 또한 모든 게이가 초식남처럼 살지도 않을 것이다. 그래도 적어도 이성애규범적인 사회가 요구하는 고리타분한 남성상으로부터 이탈해 대안적인 남성상을 제시해준다는 점에서 서로를 의지할 수 있다.

단편적으로 말해, 초식남이 동성 성애만 부재한 ‘호모화된’ 남성이라면 야오이물에 등장하는 미소년들은 게이 정체성의 동성 성애만 가져온 ‘호모화된’ 남성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동인녀들이 창조해 낸 미소년 주인공들 역시 여성화된 남성이라고 명명할 수 있는데, 여성들의 이상적 남성상에 부합하는 남성이라는 차원에서 그렇다. 나아가 그의 정체성은 이상적인 연인이면서 더불어 이상적인 자아로서의 의미까지 함축하고 있다. 엄밀히 말해 동인녀들이 재현해 낸 생물학적 남성은 남성과 여성이라는 이분법적 젠더의 억압에 갇혀 있지 않는 자웅동체적인 인물이다.

야오이물에서 그러한 이상적인 남성상이 구축되는 가장 중요한 메커니즘은 바로 대등한 관계에 대한 지속적인 모색과 추구이다. 미소년 간의 관계성을 부풀리고 과장하며 확대해석한 패러디 작품이 바로 야오이물인 것이다. 여기에 여성 캐릭터가 배제되어 있는 이유는 미소년들 간의 사랑에 여성이 개입하는 것이 견고한 판타지 구축에 위협을 가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연유는 이분화된 성의 등장이 관계성에 대한 집중력을 흩으러 놓기 때문이다. 미소년들의 진정한 아름다움은 외모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속내에 감응하는 뛰어난 능력에서 나오는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

삐거덕 거리는 이분법적인 사회에서 유연하고 유기적인 관계맺기의 첨병이자 이상적 존재로서 등장하는 ‘초식남’과 ‘미소년’이 게이 정체성의 변주로서 탄생했다는 것이 그저 우연의 일치에 불과한 것일까? 물론 필자는 게이 정체성의 우월성이나 진보성을 증명하기 위해 초식남과 미소년을 소환한 것은 아니다. 나는 단지 반문하고 싶다. 만약 우연이 아니라면 우리들이 잘 할 수 있는 중요한 무언가를 등한시하거나 간과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초식남이 시큰둥하게 바라보는 자본주의적 남성다움이라는 허상에 게이들이 오히려 더욱 사로잡힌 채 물신화된 관계 맺기에만 열중하는 것은 아닐까? 야오이물이 판타지일 수밖에 없는 이유가 현실 속 게이들은 그곳의 미소년들만큼 성 정체성에 구애받지 않는 대등한 관계 맺기의 소중함을 모르기 때문이 아닐까?

★ 초식남 : '온순하고 묵묵히 자신의 일에만 집중하며, 연애에는 관심이 없는 대신 개인적 취미에 돈과 시간을 투자하며 독신생활을 즐기는 남자를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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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들꽃의향기 2010.03.22 09:33

    글이 재미있네요. 생각할 것도 많은 것 같습니다.

“우리들의 일터에 Pink를 허하라!”

2010.03.16 18:08 | Posted by 민주노동당 성소수자위원회 성소수자위원회


당 성소수자위원회, ‘성소수자 노동권’ 토론회 열어

“(직장을 선택할 때 정체성을 고려하는 면이) 굉장히 커요. 내가 게이니까 좀 더 덜 마초적인 데, 그리고 좀 더 여성친화적이고 이런 데를, 그런 직장을 찾았죠. 그래서 좀 더 안정적인 곳, 내가 결혼을 하거나 그러지 않아도, 남들과 좀 달라도, 내 고용이 좀 잘 보장이 되는, 그런 데를 찾다 보니까 이 회사에 오게 된 거죠.” _(30대 초반, 대기업 정규직, 남성 동성애자)

“그러니까 실질적으로 진짜 피부에 와 닿는 거에요. 경조사 제도는. 그러니까 내가 게이라서 포기해야 될 부분이 다 그쪽에 몰려 있는 거지요. 내가 당장 못 받는 게 결혼 자금 못 받지. 휴가 못 받지. 결혼 자금이 얼만 줄 알아요? 복지제도 안에서 결혼하게 되면?”
_(30대 후반, 금융권 정규직, 남성 동성애자)

“나는 정말 꿈이. 평생 같이 살 사람이 있으면 우리 회사에는 사내 혜택들이 많잖아요. 그런 혜택들을 함께 누리고 싶어요. 예를 들어서 F.O.C라는 문자티켓같은. 무료티켓. 국내선이라든가 국제선 할인되는 티켓이 제공이 되는데 직계 가족들한테. 부인. 부인의 부모님까지 제공되는 거거든요. 내가 듣기로는 KLM에는 동반자법이 있어가지고 동반자로 등록되어 있으면 같은 혜택을 받는다고 들었어요.”
_(30대 후반, 항공사 정규직, 남성 동성애자)

성소수자들이 그들의 일터에서 발생하는 노동권 침해를 고발하고 인권을 보장받는 방안을 찾기 위해 머리를 맞댔다.

6일 저녁 민주노동당 성소수자위원회와 동성애자인권연대가 공동주최한 ‘성소수자와 노동 토론회 - 우리들의 일터에 Pink를 허하라!’

이날 토론회는, 지난해 10월부터 진행된 동성애자 10명에 대한 심층 면접조사 결과를 공개하고 동성애자, 곧 성소수자들이 일터에서 겪는 인권 침해 사례를 허심하게 논의하는 자리였다.

발제자로 나선 민주노동당 성소수자위원회 레이가 활동가는 “심층 면접조사를 진행하면서 우리가 예상한 것보다 훨씬 다양한 사례들과 마주할 수 있었다”면서 “여성 혹은 남성으로서, 직업에 따라, 정규직-비정규직의 차이 등에 따른 문제가 성소수자로서의 이유와 얽혀 복잡한 양상의 노동현실을 만들어낸다는 점을 볼 수 있었다”고 심층 면접조사에 참여한 소감을 전했다. 레이가 활동가는 이어 “성소수자 노동권에 대해 성소수자만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평등한 노동을 꿈꾸는 것(운동)에 함께 연대하면서도 사회적 인식을 변화시킬 현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성소수자들이 바람는 것은 자신이 사랑하는 상대가 누구인가로 차별받지 않고 노동할 권리, 남들과 다르지 않게 노동할 수 있는 권리, 성소수자가 인간으로서, 노동자로서 모든 불편부당한 대우를 받지 않을 권리, 그리고 그 노동으로 인해 얻어지는 미래도 차별받지 않을 권리가 전부다”고 밝혔다.

“저 같은 경우는 복지제도가 맞춤형 복지제도라고 각각 알아서, 어떤 종류를 쓸 수 있다 이렇게 정해져 있어서 자기가 카드로 계산하거나 나중에 청구를 해서 받는 거예요. 복지한도가 기본 30만원 제공되고 거기에 붙는 게 배우자. 배우자가 있으면 또 30만원 주고 가족, 자녀가 세 명까지 10인가 20씩 더 주고. 근속기간에 따라서 주는데 저 같은 비혼 여성들은 기본밖에 못 받아요. 그런데 결혼한, 가족을 구성하고 있는 여성들은 훨씬 많은 2배, 3배를 받는 거예요.”
_(30대 초반, 공무원, 여성 동성애자)

“그런데 만약 (사내 복지 혜택 등이)인정되면, 누군가한테 얘기를 해서 받아야 하는 거잖아요? 그렇다면 결국 커밍아웃을 해야 한다는 얘긴데.”
_(30대 초반, 공무원, 여성 동성애자)

곽이경 동성애자인권연대 활동가는 심층 면접조사를 통해 밝혀진 성소수자들의 인권침해 사례, 노동현장에서 느낀 부당 사례를 발표하면서 “대다수 성소수자들은 직장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지 않기 때문에 고용에 있어, 아예 성적지향을 이유로 채용되지 않는다거나, 직접적인 고용상 불이익을 당하는 경우는 흔치 않았다”며 “그래서 이번 면접에서도 주로 내재한 차별을 드러내는 것이 중심이 됐다. 결혼제도는 성소수자에 대한 고용상 차별을 만들어내고 고용에 있어 배제를 심화시키는 대표적인 문제로 꼽혔다”고 전했다.

“성소수자도 일을 통해 자아를 실현하고, ‘노동하는 인간’으로서의 존재를 실현할 권리가 있다”는 곽이경 활동가는 “숨 막히는 이성애 중심적 가족제도는 직접적으로 우리의 권리를 박탈하지만, 한편으로는 비혼 노동자들의 권리를 무시하고 기혼 노동자에게는 말로 설명하지 못할 희생을 강요하는 못된 이데올로기”라며 “현재 존재하는 ‘노동 권리장전’에 성소수자라는 이름을 새겨 넣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성소수자에게 좋은 것은 모든 노동자에게 좋다’는 캐치프레이즈를 걸고 우리 의제를 통합적으로 소화해낼 재치와 적극성이 필요할 때”라고 주문하기도 했다.

노조를 결성하거나 노조에 가입했지만 활동을 하지 않는 성소수자들의 얘기도 나왔다.

곽이경 활동가는 "1명은 부지부장으로 활동하며 노조를 이끌었던 적극적인 활동가였으며, 동료들에게 자신의 성적지향을 커밍아웃한 경험이 있는 간호사였고, 다른 1명은 여전히 노조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고 다른 조합원과의 친밀도가 높지만, 성적지향을 커밍아웃하지 않은 상태였다"며 "이 둘의 얘기는 노조도 성소수자 문제에 관심 없고, 성소수자 당사자들도 노조와는 영 별개의 문제라고 생각하는 현실을 타개할 단초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실제 노조에서도 성소수자 권리와 관련한 교육은 이뤄지지 않으며, 이 문제가 작업장에서 어떤 방식으로 고려되고 접근해야 하는지도 논의되지 않고 있다는 문제 지적이었다.

곽 활동가는 "이제부터라도 성소수자를 존중하는 환경으로 바꿔가는 시도가 이뤄져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파업과 같은 어려운 일을 함께 겪었고, 일체감을 느끼며 노조를 경험한 성소수자들은 노조가 성소수자에 대한 고민이 전혀 없는 것은 인정하지만, 서로에 대한 신뢰와 동지적 관계가 무너지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고 전했다.

이날 토론회는 10여명의 성소수자들이 참석해 토론내용을 경청했다. 이들은 ‘현실적으로 동성애자는 커밍아웃을 일터에서 할 수 있는가’, ‘복리후생 측면에서 보장받지 못하는 동성애자들의 복지를 기업에 사회적 책임으로 요구할 수 있는가’ 등 현실적 대안을 찾는 물음을 던지기도 했다.

민주노동당 성소수자위원회는 앞으로 토론회와 캠페인 등을 열어 성소수자 인권 문제를 사회적 이슈와 쟁점으로 만드는 활동을 펴나갈 계획이다.

진보정치 정보연 기자

* 이 글은 민주노동당 뉴스에 실린 기사입니다.
http://news.kdlp.org/2010/03/06/K0000002390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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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에서 성소수자가 일하기란…

2010.03.16 17:58 | Posted by 민주노동당 성소수자위원회 성소수자위원회


감봉·이직·해고 등 부당대우 걱정 커밍아웃 ‘절레절레’

직장 복지제도, 성소수자 헤아림 절실

* 이 글은 민주노동당 기관지 '진보정치' 462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지난 2000년 9월 연예인 홍석천 씨는 본인의 성정체성을 커밍아웃(공개)하자 출연 중이던 방송프로그램에서 바로 퇴출당했다. 한 성소수자는 홍 씨 사례를 ‘해고’라고 했다. 그가 커밍아웃으로 인해 일터에서 쫓겨난 노동자라는 의미에서다.

직장 내 커밍아웃에 대한 성소수자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민주노동당 성소수자위원회와 민주노총 여성위원회, 그리고 동성애자인권연대는 지난해 10월부터 성소수자들의 노동권 실태를 파악하기 위해 성소수자 10명을 1대1 인터뷰했다. 인터뷰에 참여한 성소수자들은 홍석천 씨의 경우처럼 커밍아웃으로 인해 해고되는 등 노동권을 박탈당할 수 있어서 커밍아웃하는 것을 부담스러워했다.


“(커밍아웃 해서)회사에서 굳이 긁어 부스럼을 만들 필요가 없다는 거지. 글쎄, 회사에서 커밍아웃을 할 생각을 별로 해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지만 만약 한다면 그걸 가지고 ‘회사를 그만둬라, 가뜩이나 마음에 안 들었는데’라면서 협박을 할지도 모른다거나. 구체적으로는 약간 성희롱이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해봤지. 그런데 뭐 기본적으로 (커밍아웃을)해야겠다는 생각을 안 해봐가지고.” (30대 초반의 레즈비언 L씨, 대학 비정규직)


성적 지향 숨기려 끊임없이 포장

“내가 일도 잘하고 부족한 게 없는데, (동성애자란)그 하나(이유)로 갑자기 내가 무슨 이 세상에서 있어서 안 되는, 흠이 엄청 많은 사람이 되는 게 너무 싫은 거죠. 갑자기 문제가 없다가 문제 있는 사람으로 낙인찍히는 것 같고. 내가 그 사실로 인해 일을 갑자기 못하는 사람이 아니고, 그렇게 아무 해가 될 게 없는데, 굳이 회사에 해가 될 사람으로 낙인찍히는 게 싫은 거죠. 그걸로 당연히 인사에 불이익이 있을 것도 예상되고.”

“전 그냥 회사에서 (커밍아웃)하는 건 위험하다고 생각했어요. 왜냐면 지금은 동기와 사이가 좋지만 회사일이란 건 나중에 어떻게 얽힐지 모르기 때문에 철저하게 나를 보호하기 위해서….” (30대 초반의 게이 A씨, 대기업 정규직)

실제 성소수자들은 자신의 성적 지향이 직장 내에서 밝혀지면 감봉·이직·해고 등의 부당대우를 받기 때문에 커밍아웃은 승진 및 고용 유지에 위협요소가 될 것이라고 판단한다. 성소수자 본인들도 성적 지향으로 인한 차별은 감수할 수밖에 없는 것이라 받아들이고 있고 자신의 노동권 문제를 고민하기 어려워하는 경우도 있다.

성소수자 인권운동단체인 동성애자인권연대의 이경 활동가는 “성소수자들은 자신의 존재가 회사에서 드러나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포장을 한다”고 전했다. 이성애자 동료들 사이에서 본인의 성적 지향을 숨기면서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 그러나 이 활동가는 “자신의 성적 지향으로 인해 직장에서 남모를 스트레스에 시달려야 하는 것은 당연히 감내해야 할 고통이 아니다. 인간으로서 적어도 불행하지 않게 노동하기 위한 기본적 조건”이라고 강조했다.

“사실 저는 회사에 입사하면서부터 만나던 애인이 있으니까. 그 애 얘기를 여자처럼 해요. 그냥 핸드폰에 저장해놔도 잘 모르고 그냥 만나고 있다, 나이가 많지만 학생이다, 그래서 결혼은 안한다, 근데 (결혼)할 생각은 별로 없다, 그냥 그렇게 얘기하죠.” (30대 초반의 게이 H씨, 사무직 정규직)


직장 내 후생복지제도서도 배제

성소수자들이 성적 지향을 공개하지 못하는 두려움과 함께 이성애자들과 평등하게 노동하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데엔 실제 제도적인 불이익 문제도 있었다. 특히 이성애자를 중심의 혼인제도가 그런데, 현 사회규범 아래선 법적 혼인을 할 수 없는 성소수자들이 직장 내에서 혼인 여부로 차별을 경험한다는 것이다. 혼인 여부가 채용에서 승진, 해고에 이르기까지 알게 모르게 많은 영향을 미친다는 것. 비혼자로 살 수밖에 없어서 스스로 진급과 승진을 포기하는 성소수자들도 있다.

“정책상으로는 없는데, 대놓고 얘기를 해요. ‘결혼 안하면 진급은 못한다’, ‘그렇게 알고 있어라’는 등. 그런 의식이 있어요. 가정을 다스려야 회사에서 책임감도 있다는 식으로. 그래서 과장까지는 가능해도 그 이상은 어렵다는 걸 은연중에 알리죠. (그런 얘기를 들으면)그렇게는 오래 (직장생활을)못하겠구나…. 그런데 만약(사내 복지혜택 등이)인정되면, 누군가한테 얘기를 해서 받아야 하는 거잖아요? 그렇다면 결국 커밍아웃을 해야 한다는 얘기인데.” (H씨)

“그러니까 결혼을 안 하면 많이 혜택을 못 받는 거지. 결혼 때 못 받지, 그 다음에 자녀 학비, 임원 되면 대학학비까지 지원해 주는 것 같던데, 그런 것도 못 받지.” (30대 초반의 게이 Y씨, 사무직 정규직)

정보연 기자 newby@kdlpnews.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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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V/AIDS 감염인의 숨은 인권찾기, 정말 인권은 멀고, 날은 춥더군요.

2009.12.22 16:49 | Posted by 민주노동당 성소수자위원회 성소수자위원회

HIV/AIDS 감염인 인권주간 ‘숨은인권찾기- 인권은 멀고, 날은 춥고’ 참여기 
 HIV/AIDS 감염인의 숨은인권찾기,  정말 인권은 멀고, 날은 춥더군요.


 한영희 (성적소수문화환경을위한모임 연분홍치마)



지난 11월 27일부터 12월 1일까지 다채로운 문화제와 캠페인을 자랑하는 HIV/AIDS 감염인 인권주간이 펼쳐졌다. 내가 활동하고 있는 성적소수문화환경을위한모임 연분홍치마(이하 연분홍치마)가 HIV/AIDS 감염인 인권주간에 참여한 지는 2회째이지만, 개인적으로 HIV/AIDS 감염인 인권주간 기획단(이하 기획단)에 참여하면서 활동하게 된 것은 처음이었다. 그러나 기획단에 참여하면서 내가 느끼고 경험한 것은 처음이란 어색함보다는 보다 많은 사람들이 함께 하길 바라는 기획단의 열정과 함께한 사람들의 성실함이었다.



사실, HIV/AIDS 감염인 인권은 에이즈 예방책에만 급급한 한국정부의 현실에서 가려졌고 이 가운데 HIV/AIDS는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질병이 되었다. 자연스럽게 에이즈 감염인들의 권리는 철저히 무시될 수밖에 없었다. 이 현실을 가장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캠페인 기간이 바로 HIV/AIDS 감염인 인권주간이다. 12월 1일 세계 에이즈의 날을 맞아 한국에서 진행되는 HIV/AIDS 감염인에 대한 사회적 차별과 편견에 맞서 벌써 4회째 HIV/AIDS 감염인 인권주간이 진행되었다. 캠페인은 매년 반복적으로 이루어졌고, 에이즈는 적정한 치료와 예방으로 누구와도 함께 일상생활을 유지해나갈 수 있는 질병이지만, 아직 HIV/AIDS 감염인에 대한 사회적 시선은 냉랭하기만 하다.



4회째 이루어진 HIV/AIDS 감염인 인권주간의 다양한 활동 속에서 만나볼 수 있었던 사람들은 모두 누구보다 열심이었다. 사람들은 현 정부의 복지예산 삭감으로 인해 감염인 지원 예산이 대폭 줄어든 것을 어떻게 사회적으로 끄집어낼 수 있을까를 고민했고, 한명이라도 우리들의 캠페인에 동참하기를 고대했다.



뿐만 아니라, 올해는 참여단위별로 지역별 캠페인도 감행해, 기획단 이외의 참여단체들도 적극적으로 캠페인에 나섰다. 앰프와 마이크를 양손에 들고 가판대와 홍보물을 들쳐매고 길거리로 나선 사람들의 모습은 배테랑 프로야구 선수들의 타격자세 못지 않았다. 캠페인에 나선 사람들의 바쁜 손놀림과 애타는 목소리 덕분인지, 감염인 지원 예산삭감과 에이즈 감염인 인권을 지지한다는 서명서의 칸들은 점차 늘어갔다. 급기야는 초등학생부터 하교 중인 고등학생, 나이 드신 노인들에 이르기까지 에이즈라는 말이 낯선 사람들이 하나 둘 홍보물을 주의깊게 살펴보고 애정 어린 서명을 해주었다. 참으로 신기하게도 서명에 나선 사람들을 지켜보며 몇 시간을 거리에서 서있으면서도 서명에 동참해길 바라며 외치는 신이 난 목소리와 가판대 앞에 줄지어선 사람들의 관심은 방안에 누워 뒹굴거리며 놀고 있을 때보다 내 기를 북돋우게 했다는 사실이다. 비단 나뿐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캠페인을 준비했던 모든 사람들이 그렇지 않았을까?


HIV/AIDS 감염인 인권주간을 빛냈던 사람들의 노고와 이에 호응하는 사람들의 마음에도 불구하고 보건복지부 앞의 칼바람은 여전했다. 보건복지부 앞에서 펼쳐졌던 HIV/AIDS 감염인 지원예산 축소 규탄 및 인권보장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에서 우리는 ‘장관님, HIV/AIDS 감염인의 인권은 어디에 있습니까?’라는 현수막을 당당하게 내세웠다. 그러나, 보건복지부 장관을 비롯한 보건복지부 관계자들로부터 감염인 지원삭감에 대한 속시원한 답변 한마디도 들을 수 없었다. 더구나 외국인 강제에이즈 검진과 외국인 감염인 입국금지/강제출국조치에 대한 진정서를 제출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보건복지부 사무실이 아닌 건물 1층 프론트에서 진정서 접수를 해야 했다. 보건복지부 사무실로 올라가는 것을 제지했기 때문이다.



일련의 해프닝들을 경험하면서 다시 한번 하게 되는 생각은 HIV/AIDS 감염인 인권의 문제가 사회적으로 중요해지면, 보건복지부 장관은 만나기 쉬워질까 하는 것이다. 질병에 대한 대응체계를 마련해야하는 정부가 정작 환자들의 목소리는 별반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었다. 오히려 정부는 HIV/AIDS 감염인 지원을 예방책의 일환으로만 생각하고 있기에 오히려 질병에 대한 사회적 공포를 조장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무엇보다 정부는 HIV/AIDS 감염인 인권을 보장정책을 통해서 에이즈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변화시킬 수 있어야 하며 이를 바탕으로 에이즈에 대한 체계적인 치료책을 마련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결국 에이즈에 대한 편견은 에이즈에 대한 사회적 대응책을 만들어내지 못하게 하는 악순환의 고리를 만들어내고 있다.

모든 고민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다. 내가 기획단에 참여하면서 느낄 수 있었던 기획단의 고민과 열정이 왜 더 많은 사람들이 HIV/AIDS 감염인 인권주간에 함께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으로 귀결되었는지 새삼스럽게 다시 인식된다. HIV/AIDS 감염인 인권의 문제를 사회화시키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더 많은 사람들이 에이즈에 대해서 제대로 알고, 감염인들과 함께하는 시간들을 늘여나갔으면 한다. 내년 5회째를 맞이할 HIV/AIDS 감염인 인권주간도 역시 많은 사람들의 지지와 응원속에서 열리길 바라며 이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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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국가인권위원회 제자리 찾기 공동행동에 참여하는 이유

2009.11.02 18:42 | Posted by 민주노동당 성소수자위원회 성소수자위원회

내가 국가인권위원회 제자리 찾기 공동행동에 참여하는 이유


박기호 (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사무국장)


내가 사람으로 태어났을 때, 처음으로 마주친 것은 아마도 공기였으리라. 엄마의 따뜻한 품속에서 나와 처음으로 만난 차가운 공기는, 산소라는 이름으로 내가 살아가는 동안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 되어버렸다. 사람인 이상 공기가 필요 없는 사람은 없으리라. 요즘은 더 좋은 공기를 용기에 담아서 팔기도 하는 세상이니 말이다.


물론 공기 외에도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물, 불 부터 먹을 거, 입는 거 까지 사회가 변함에 따라 필요한 것도 -정말 꼭 필요한 요소들이-하나둘씩 늘게 되었다. 아주 오래전에는 자연에 의존하는 것들이 대부분이었다면-물로 지금도 꼭 필요한 필수요소이기도 하다.- 지금은 사회가 만들어내고 변화시켜온 것들도 있다. 또한 생존에 필요한 것과 살아가면서 필요한 것들로 나눌 수 도 있지만, 현재 사회에서는 이 두 가지 모두를 가지고 있어야 사람다운 삶을 살게 되지 않을까한다. 모두 동의하지는 않겠지만 이제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는 집도 필요하고, 소통을 위한 도구도 필요한 것처럼, 나로써 살아가기 하기 위한 조건들이 하나씩 늘어가고 있다. 특히 현재 한국사회에서는 돈의 유ㆍ뮤에 따라 사람에게 꼭 필요한 것들이 제약을 받게 되는 상황이 많아져서, 이제는 꼭 필요한 것들을 인권의 이름으로 보장해 주려고 많은 이들이 노력하고 있다. 이러한 조건들 중 의, 식, 주로 명명하는 것들은 생존에 필요한 절대적인 조건처럼 내가 나로 살기 위해서는 사람으로 살기 위해서는, 인간으로 살기 위해서는 '인권'의 이름으로도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인권은 태어난 처음으로 만나 꼭 필요한 요소로 자리 잡은 공기처럼 내가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동안 꼭 필요한 요소인 것이다.


그런 인권의 지수를 가장 극명하게 표출 되는 곳은 바로 국가인권위원회이다. 그런 인권위의 모습이 정말 황당하다. MB 정부의 정권 인수위 시절부터 국가인권위원회의 위상 격하를 위해 모질게도 애를 쓰더니 요즘은 그 효과가 정말 뼈저리게 아프게 나타나기 시작했다. 대통령 직속 기구로의 전환시도라든가 대통령 직제령을 이용하여 행안부가 시행한 조직 축소, 그러더니 업무파악조차 못하고 호떡 뒤집듯 자신의 소신을 마구 바꾸어 버리는 무자격자에 하수인인 현병철 위원장 임명에, 또 다른 무자격자 사무총장까지 내세워 국가인권위원회의 위상을 급격히 무너뜨리고 인권위원회의 손발을 다 자르고 있다.


더군다나 성소수자들은 여간해서는 깨지지 않는 편견과 오해 속에서 살아가야 하기 때문에, 사회 소수자로서 더더욱 국가인권위원회의 존재가 필요하다. 많은 권력자들이 진실을 감추려 대중의 눈을 가릴 때, 자신의 야욕을 위해 누군가를 희생 시킬 때, 가장 빈번하게 이용당해야 했던 집단이 성소수자가 아닌가? 제2차세계대전속에서 희생당한 소수자나 80년대 AIDS/HIV 발병시 동성애자들에게 화살을 돌린 미국 사례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사회 안전 혹은 진실을 은폐하기 위해 가장 먼저 내버리는 것은 아쉽게도 사회적 약자들의 삶, 인권, 그중에서도 가장 약자라고 할 수 있는 성소수자들의 삶과 인권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권력에 대해 쓴 소리를 하게끔, 성소수자를 비롯한 사회적 약자들의 인권을 보호하고자, 국가인권위원회를 바로 세우고자 국가인권위원회 제자리 찾기 공동행동이 움직이고 있다. 나 또한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의 이름으로 성소수자의 이름으로 참여하고 있다. 최소한 자기 역할이 무언인지 아는 국가인권위원회로 만들고자 노력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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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오이 문화와 여성, 그리고 동성애

2009.08.19 22:38 | Posted by 민주노동당 성소수자위원회 성소수자위원회

야오이 문화와 여성, 그리고 동성애

김경태(동성애자인권연대)


남성 아이돌 그룹의 멤버들을 주인공으로 그들 사이의 사랑과 섹스를 다룬 팬픽을 비롯해 BL(Boy's Love)계열의 만화와 소설을 과거에는 그다지 깊이 있게 고민해보지는 않았었다. 다만 남성들이 즐기는 포르노 동영상에서 남성의 성적 판타지에 복속된 여성 이미지가 소비되듯이, 그 책에 묘사된 꽃미남 간의 사랑과 섹스가 여성의 성적 판타지 속에서 소비될 뿐이다. 그리고 그로 인해 여성들이 어떤 쾌락이나 일시적인 해방감을 느낀다면, 그것이 가질 수 있는 미덕의 전부라고 생각했다. 흔히 이런 문화를 지칭하는 일본어 ‘야오이’, 즉 ‘절정 없음(야마나시)’과 ‘위기 없음(오치나시)’과 ‘의미 없음(이미나시)’의 줄임말이 얼마나 자기 성찰적인 명명인가 하고 감탄할 정도였으니까. 거기에다 대고 동성애자들의 현실이 부재한다거나 그들의 삶을 왜곡하고 있다고 비난의 눈초리를 보내는 건, 마치 <반지의 제왕>에서 ‘호빗족’의 삶을 얼마나 정확하게 묘사했냐고 따져 묻는 것만큼 어불성설이다. 물론 조금 골치 아픈 문제가 하나 있긴 하다. 안타깝게도(!) 동성애자들은 판타지 소설에서뿐만 아니라 현실 속에도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언제까지나 판타지 속 인물로 소비되기에는 그들의 인생이 너무 팍팍하다는 것이다. 그럼 어찌해야 될까? 그 해답의 실마리를 찾기 위해 내 경험을 먼저 간략히 얘기하고자 한다.

어느 날 친척집에 갔다가 여고에 다니는 조카의 방 책꽂이를 기웃거리는데, 제목은 적혀 있지 않았지만 고급스런 문양의 하드커버로 제본된 두꺼운 책 한권이 범상한 책들 사이에서 내 이목을 끌었다. 나는 예쁜 것에 이끌리는 본능으로 조심스레 그 책을 꺼내 들어 펼쳐 보았다. 그것은 ‘슈퍼주니어’의 ‘팬픽’이었다. 그 책에는 13명의 멤버가 각각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13편의 단편소설이 빼곡하게 실려 있었다. 사실 이전까지 꼼꼼하게 팬픽을 읽어볼 기회가 없던 터라 문득 호기심이 발동하여 내가 좋아하는 멤버를 주인공으로 한 팬픽을 차근차근 읽어나갔다. 그런데 정말 신기하게도 그곳에는 동성애자들,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청소년 게이들의 현실은 없었다. 주인공은 남자 친구와 남자 교사, 그리고 의붓아버지에게 차례로 강간을 당하며 괴로워하거나 함께 흥분을 느낀다. 그 어디에도 성 정체성에 대한 고민은 없고 그는 당연하듯 주변의 포악한 남성들에게 끊임없이 겁탈을 당할 뿐이다.

가만 보니, 그 주인공인 처한 여러 상황들은 오히려 현실 속 여학생의 그것과 더 닮아 있었다. 여성들은 자신들이 처한 성적 약자의 위치에 남성을 대체해 놓고 동일한 남성에게 학대받는 장면을 목격하는 것이다. 여성을 배제시킨 의도적 설정 속에서 성적 우열의 개념은 공수攻守로 구분된 남성 사이에서만 효력을 발휘한다. 그곳에서 여성은 약자가 되어버린 남성이라는 성적 주체를 바라본다. 그리하여 여성의 자리에 남성을 치환할 수밖에 없는 현실 속 여성 섹슈얼리티를 고민하지 않고서는 야오이 문화를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즉 야오이 문화는 동성애가 아니라 여성 섹슈얼리티의 은유적 확장이자 우회적 반영인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더 이상 동성애 재현의 정치적 올바름이라는 잣대로 재단할 수 없는 야오이 문화를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할까? 먼저 우리는 동성애 재현이 아니라 수용자인 여성 독자에게 보다 주목할 필요가 있다. 주지했듯이 야오이 텍스트에 갇힌 채 오로지 그것만을 비판하거나 해석하는 행위는 늘 현실적이냐 비현실적이냐의 이분법적 대립에 봉착할 뿐이기 때문이다. 보다 유연한 시각으로 야오이 문화를 응시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소비하는 여성들이 처한 ‘성적 소수자’로서의 입지에 대한 이해가 우선해야 할 것이다. 팬픽에 등장하는 아이돌들이 절대로 ‘혐오스러운’ 게이일 리가 없으며 다만 그들만의 세계에서 서로 사랑하는 것뿐이라고 주장하더라도 우리는 그녀를 편협하다고 비난해서는 안 된다. 대신, 가부장적인 이성애자 남성에게 억압받는 동일한 약자의 층위에 서 있는, 광의적인 의미의 성적 소수자로서 서로 연대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사실 여성들의 삶 역시 여전히 동성애자들만큼 팍팍하니까. 따라서 야오이 문화를 부정하며 동성애자를 제대로 이해하라고 그녀들에게 강요하는 행위는 그녀들이 그 팍팍한 현실 속에서 잠시나마 숨 쉴 수 있는 해방구를 막아버리는 꼴이 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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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칼럼 - 한국 사회에서 성소수자의 법적지위

2009.06.08 19:33 | Posted by 민주노동당 성소수자위원회 성소수자위원회


장서연, 공익변호사그룹 공감 변호사

아직 한국 사회에서 성소수자의 존재는 제대로 드러나지 않는다. 존재가 있음에도 사회적으로 그 존재가 잘 드러나지 않는다는 것은 여전히 한국사회 전반에 성소수자들에 대한 혐오와 차별이 뿌리 깊이 있고 이를 마주해야 하는 성소수자들의 사회적 지위를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성소수자의 존재에 대한 무지와 무시는 한국 사회의 법제도에도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현재 한국 사회의 법제도에 성소수자의 존재를 전제로 하거나, 성소수자의 생활 및 사회관계를 규율하고 있는 법제도는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한 사회적 환경에서 성소수자들은 자신의 존재조차 드러낼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하고 있고, 자신들의 사회관계나 생활관계에 대하여 법제도 밖의 사각지대에 머물 수밖에 없게 된다.

     ‘차별금지법 대응 및 성 소수자 혐오 차별 저지를 위한 긴급
공동행동’을 꾸린 활동가들이
지난해 11월 서울 광화문 네거리에서 펼침막을 들고 시위를 벌이고 있다. <무지개행동 제공>


한국 사회에서 성소수자의 존재가 드러나지 않고 있던 것과 마찬가지로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 역시 가시화되지 않았던 측면이 있다. 역설적이게도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이 가장 노골적으로 드러난 것은 2007년 말에 있었던 차별금지법 입법과정에서였다. 지난 차별금지법 입법과정을 통하여 '동성애 차별금지법안 저지 의회선교연합(국가조찬기도회, 성시화운동본부, 한기총과 KNCC)' 등 보수기독교 단체들이 주도하고 있는 반동성애 진영 VS. 동성애자 인권운동의 전선이 가시화되었다고 평가받고 있다. 반동성애 진영은, 현재도 ‘반동성애국민연합’을 결성하고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시위하는 등 사회적으로 동성애자에 대한 노골적인 혐오와 차별을 드러내고 있다. 성소수자에 대한 노골적인 혐오와 편견이 가시화되고 있고, 심지어 이런 반동성애진영이 정치 세력화되어 있다는 것은 앞으로 성소수자와 관련한 법제도 개선과 입법에 많은 난관이 있음을 예고하고 있다.

그러나 성소수자의 존재는 어느 시대에나 존재하여 왔고, 성소수자의 인권 보장은 세계적인 추세가 되어가고 있다. 차별금지법 등에 차별금지사유로 ‘성적지향’을 명문화하는 것은 한국 사회에 존재하는 성소수자들의 존재를 드러내 주는 것이며, 그동안 ‘비정상’의 범주에 있던 성소수자들의 존재를 인권의 보편적 관점에서 ‘정상’으로 선언하는 의미가 있다.

한편, 성소수자의 인권 보장과 함께 동성파트너십에 관한 법적 인정은 거스를 수 없는 세계적인 추세가 되어가고 있음에도, 한국 사회는 여전히 동성커플의 법적관계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법적으로 관계를 인정받지 못하기 때문에 동성커플이 살아가면서 겪는 불편함은 매우 크다. 파트너가 갑자기 아프거나 다치더라도 보호자 역할을 할 수 없으며, 파트너가 사망을 해도 유가족이 되지 못하며 당연히 유산상속도 받지 못한다. 배우자의 지위로서 국가가 보장하는 국민연금, 의료보험, 세금면제 등의 혜택을 누리지 못하며 직장에서는 배우자로서의 가족수당, 경조사로 인한 휴가 등도 없다. 오랫동안 공동생활관계를 유지하다가 헤어지게 되었을 때도 재산분할청구 등 법적인 보호도 받지 못한다. 무엇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동성커플이 이성커플과 동등하게 다루어지지 않는다는 것 그 자체로 이미 동성애자는 비정상적이라는 편견을 조장하고 강화시킨다는 점이다.

09.5.26 캘리포니아 대법원이 동성결혼에 반대하는
주민발의안 8을 통과시키자 
수많은 시위대가 거리로 나왔다.

동성애자의 가족구성권의 법제화의 길 역시 현시점에서는 쉽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앞으로 동성커플의 관계에 대한 법적 문제도 점차 발생할 것이고, 이와 관련한 법적 보호의 필요성도 점차 대두할 것이다. 나아가 세계화 시대를 맞이하여 벌써부터 외국에서 인정하고 있는 동성커플에 대한 법적인정을 국내에서 어떻게 적용할 것인지에 대한 국제사법적인 논의들도 생기고 있다.

최근 법원에서는 더디지만 차츰 해석을 통하여, 성소수자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성소수자가 처한 상황을 개선하려는 모습도 보여주고 있다. 성전환자를 강간죄의 개체로 인정한 부산지방법원의 판결뿐만 아니라, 군법원에서는 ‘계간’을 처벌하도록 규정한 군형법 제92조가 헌법에 규정된 죄형법정주의, 과잉금지원칙에 위배되고, 동성애자 군인의 성적자기결정권, 평등권,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침해할 소지가 있다는 이유로 헌법재판소에 위헌제청을 한 바 있다. 더디지만 이러한 개별적인 사례들이 하나 둘씩 쌓여 성소수자와 관련한 법제개선을 하는데 일조를 하고, 일상에서의 성소수자에 대한 상황을 개선시키고 인식을 변화시키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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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칼럼 - 광주연가

2009.06.08 19:27 | Posted by 민주노동당 성소수자위원회 성소수자위원회

태성(동성애자인권연대)

광주를 내려가는 길은 내내 비가 내렸다.

대학을 다닐 때조차 가본 적이 없는 망월동 묘지를 간다는 부담감이 머리가 깨질 것 같은 개인적인 문제들을 잠시 내려놓을 수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감으로 바뀌어 광주행을 결정했지만, 녹록치 않은 삶의 무게처럼 어두운 날씨는 마음을 더없이 무겁게 만들었다.



                          5월16일, 비가 부슬부슬 내리던 날 / 광주 구묘지 전경



망월동에 내려서는 먼저 신묘지라고 불리는 근래에 단장을 한 묘지부터 들렸다. 굉장히 깨끗했지만 무언가가 부족하고 썰렁했던 분위기는 광주항쟁의 충분한 진상규명과 처벌이 되지 않은 채 남아있는 구묘지의 수많은 영령들 때문이란 것도 처음 알게 된 사실이었다.

깨끗했던 신 묘지와는 달리 구 묘지를 보는 순간 나는 이내 참았던 무언가가 울컥하고 터진 듯한 느낌을 감출 수 없었다. 묘지라고 불리기엔 턱없는 시설들과 그저 시신들을 차례로 묻기만 한 것 같은 묘지들의 간격과 크기는 경악스러울 만치 허술하고 초라했다.

이름이 익숙한 열사들과 분명하게 신원이 확인된 사람들은 그나마 이름이 새겨진 이정표라도 있었지만 신원이 파악되지 않은 사람들에겐 이름조차 없는 허름한 비석만이 덩그러니 놓여있었고 어떤 묘는 이미 내려 앉아 형체를 찾아내기 어려울 정도인 모습을 하고 있었다.

착잡한 마음을 뒤로 하고 헌화를 한 뒤 우리는 급하게 또 구청으로 초청한 연사의 강의를 듣기위해 서둘러 차에 올랐다. 다큐멘터리와 영화, 혹은 간간히 뉴스에서 보아왔던 금남로와 구청을 보며 감회가 새로웠고 그분들이 그토록 원했던 민주주의 항쟁이 일어난 곳이라는 이유만으로 충분히 아름답고 따뜻했다.

도청에 도착해서는 광주항쟁이 일어난 여러 가지 정황과 일들에 대해 지루하게 참아가며 시간이 빨리 지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우린 몹시 지쳐있었고 배도 매우 고팠다. 이야기가 마무리 되던 즈음 계속 우리들 곁에 앉아계시던 어머니 둘의 이야기를 들을 때 까지는 적어도 그랬었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을 지으면서 입구를 도청 별관 쪽으로 내야 한다는 문화관광부는 어머니들의 요구와 이야기를 듣지 않고 철거를 강행할 계획이다. 어머니들은 눈물겨운 호소는 우리 모두를 가슴 아프게 했고 몇몇은 참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다. 나는 생각했다. 누가 저분들에게 저렇게 커다란 아픔을 줄 권리를 가지고 있는가.

꽃다운 열여덟, 스물의 아들을 잃고 그 분들은 존재 자체가 스스로에게 미안 했을지 모른다는 생각은 내게 끝없는 슬픔을 주었다. 그분들의 씻겨가지 않는 상처는 아물지 않았는데 오히려 참회 대신 그 상처를 후벼 파는 잔인함을 또다시 벌이고 있는 문화관광부는 즉각 공사를 중지해야만 한다.

죽지 못하고 살아있음을 미안해하며 가슴 저 깊은 곳에서 자식을 묻고 살아왔을 인고의 세월은 세상이 달라졌다고 말하는 21세기가 와서도 치유되지 않고 오히려 깊어가는 것 같다.

이유가 무엇이든 어머니들의 요구는 받아들여져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화관광부는 대책위의 활동자금이 되는 통장마저 가압류하여 투쟁기금 조차 마음대로 쓰지 못하는 상태가 되었다. 이글을 읽는 사람들이 유족회, 부상자회, 민주노동당 광주시당에 문의하거나 관련 홈페이지피 지지서명이나 후원금을 보내 주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본다.

도청을 나오면서 지칠 대로 지친 나는 태권브이님이 맛있는 곳이라고 데리고 간 음식점에서 정말이지 몸과 마음이 치유되는 기적 같은 음식들을 맛보았다. 이후 성소수자들이 이용하는 업소들 돌며 성소수자위원회에 대한 지지를 호소하고 유인물도 나눠주고 술자리로 피곤한 하루를 마무리 지었다.

다음날 아름다운 조선시대 정원 소쇄원을 잠깐 둘러보고 광주 항쟁 집회를 참석했다. 역사의 현장에서 그것도 5.18 광주민주화 항쟁 기념 집회에 참석한 감회란 정말이지 잊을 수 없는 몇몇 집회의 기억으로 남아 있을 것 같다. 너무 아쉽지만 1시간여의 집회를 참석 한 뒤 우리는 또 급히 서울행을 서둘러 준비했다.

짧았지만 너무도 많은 기억을 남긴 채 1박 2일의 광주행은 마무리 되었다. 서울로 올라와서는 호남의 기막힌 음식들로 며칠 밥을 먹지 못했다. 그건 아마 음식 맛 이라기보다는 광주에 대한 그리움이었는지 모른다.

아름답고 따뜻했던 기억 속 광주.

하지만 민주화 항쟁이 일어난 진실규명과 책임자들의 처벌 같은 역사의 숙제와 어머니들의 슬픔을 조금이라도 치유해야 하는 꼭 풀어야할 과제들은 여전히 우리들 곁에 남아있다. 80년 핏빛 봄날의 그날, 생생한 아픔을 잊지 못하는 분들이 한분이라도 더 살아계실 때 기필코 풀어야할 현시대 우리 모두의 숙제 광주.

다시 기회가 되면 꼭 한번 다시 가고픈 시간과 기억은 더없이 좋은 추억으로 남았다.

ps. 1박2일의 일정을 위해 정말이지 수고해주신 민주노동당 당원이신 태권브이님께 진심어린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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