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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칼럼 - 한국 사회에서 성소수자의 법적지위

2009.06.08 19:33 | Posted by 민주노동당 성소수자위원회 성소수자위원회


장서연, 공익변호사그룹 공감 변호사

아직 한국 사회에서 성소수자의 존재는 제대로 드러나지 않는다. 존재가 있음에도 사회적으로 그 존재가 잘 드러나지 않는다는 것은 여전히 한국사회 전반에 성소수자들에 대한 혐오와 차별이 뿌리 깊이 있고 이를 마주해야 하는 성소수자들의 사회적 지위를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성소수자의 존재에 대한 무지와 무시는 한국 사회의 법제도에도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현재 한국 사회의 법제도에 성소수자의 존재를 전제로 하거나, 성소수자의 생활 및 사회관계를 규율하고 있는 법제도는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한 사회적 환경에서 성소수자들은 자신의 존재조차 드러낼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하고 있고, 자신들의 사회관계나 생활관계에 대하여 법제도 밖의 사각지대에 머물 수밖에 없게 된다.

     ‘차별금지법 대응 및 성 소수자 혐오 차별 저지를 위한 긴급
공동행동’을 꾸린 활동가들이
지난해 11월 서울 광화문 네거리에서 펼침막을 들고 시위를 벌이고 있다. <무지개행동 제공>


한국 사회에서 성소수자의 존재가 드러나지 않고 있던 것과 마찬가지로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 역시 가시화되지 않았던 측면이 있다. 역설적이게도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이 가장 노골적으로 드러난 것은 2007년 말에 있었던 차별금지법 입법과정에서였다. 지난 차별금지법 입법과정을 통하여 '동성애 차별금지법안 저지 의회선교연합(국가조찬기도회, 성시화운동본부, 한기총과 KNCC)' 등 보수기독교 단체들이 주도하고 있는 반동성애 진영 VS. 동성애자 인권운동의 전선이 가시화되었다고 평가받고 있다. 반동성애 진영은, 현재도 ‘반동성애국민연합’을 결성하고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시위하는 등 사회적으로 동성애자에 대한 노골적인 혐오와 차별을 드러내고 있다. 성소수자에 대한 노골적인 혐오와 편견이 가시화되고 있고, 심지어 이런 반동성애진영이 정치 세력화되어 있다는 것은 앞으로 성소수자와 관련한 법제도 개선과 입법에 많은 난관이 있음을 예고하고 있다.

그러나 성소수자의 존재는 어느 시대에나 존재하여 왔고, 성소수자의 인권 보장은 세계적인 추세가 되어가고 있다. 차별금지법 등에 차별금지사유로 ‘성적지향’을 명문화하는 것은 한국 사회에 존재하는 성소수자들의 존재를 드러내 주는 것이며, 그동안 ‘비정상’의 범주에 있던 성소수자들의 존재를 인권의 보편적 관점에서 ‘정상’으로 선언하는 의미가 있다.

한편, 성소수자의 인권 보장과 함께 동성파트너십에 관한 법적 인정은 거스를 수 없는 세계적인 추세가 되어가고 있음에도, 한국 사회는 여전히 동성커플의 법적관계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법적으로 관계를 인정받지 못하기 때문에 동성커플이 살아가면서 겪는 불편함은 매우 크다. 파트너가 갑자기 아프거나 다치더라도 보호자 역할을 할 수 없으며, 파트너가 사망을 해도 유가족이 되지 못하며 당연히 유산상속도 받지 못한다. 배우자의 지위로서 국가가 보장하는 국민연금, 의료보험, 세금면제 등의 혜택을 누리지 못하며 직장에서는 배우자로서의 가족수당, 경조사로 인한 휴가 등도 없다. 오랫동안 공동생활관계를 유지하다가 헤어지게 되었을 때도 재산분할청구 등 법적인 보호도 받지 못한다. 무엇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동성커플이 이성커플과 동등하게 다루어지지 않는다는 것 그 자체로 이미 동성애자는 비정상적이라는 편견을 조장하고 강화시킨다는 점이다.

09.5.26 캘리포니아 대법원이 동성결혼에 반대하는
주민발의안 8을 통과시키자 
수많은 시위대가 거리로 나왔다.

동성애자의 가족구성권의 법제화의 길 역시 현시점에서는 쉽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앞으로 동성커플의 관계에 대한 법적 문제도 점차 발생할 것이고, 이와 관련한 법적 보호의 필요성도 점차 대두할 것이다. 나아가 세계화 시대를 맞이하여 벌써부터 외국에서 인정하고 있는 동성커플에 대한 법적인정을 국내에서 어떻게 적용할 것인지에 대한 국제사법적인 논의들도 생기고 있다.

최근 법원에서는 더디지만 차츰 해석을 통하여, 성소수자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성소수자가 처한 상황을 개선하려는 모습도 보여주고 있다. 성전환자를 강간죄의 개체로 인정한 부산지방법원의 판결뿐만 아니라, 군법원에서는 ‘계간’을 처벌하도록 규정한 군형법 제92조가 헌법에 규정된 죄형법정주의, 과잉금지원칙에 위배되고, 동성애자 군인의 성적자기결정권, 평등권,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침해할 소지가 있다는 이유로 헌법재판소에 위헌제청을 한 바 있다. 더디지만 이러한 개별적인 사례들이 하나 둘씩 쌓여 성소수자와 관련한 법제개선을 하는데 일조를 하고, 일상에서의 성소수자에 대한 상황을 개선시키고 인식을 변화시키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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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레이 반차별 선언- 류민희

2009.06.08 19:18 | Posted by 민주노동당 성소수자위원회 성소수자위원회

릴레이 반차별 선언- 류민희 (민주노동당 성평등 강사단, 4.29 서울 광진구 시의원 재보선 출마자)



#1.

전교조 조합원들과 함께 여성학자에게 성교육을 받았더랬다.

교육이 끝난 후 한 전교조 조합원이 강사에게 좀 멋쩍어 하면서 질문했다.

“저는 여고에서 근무하고 있는데요. 여자아이들 중에서 동성애를 하는 아이들이 좀 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그걸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겠어서요. 동성애들 하는 여고생들을 어떻게 지도해야 할까요?”




#2.

경기도의 한 지역위에 성평등교육을 하러 갔더랬다.

교육이 끝난 후 한 당원이 나에게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주장했다.

“저는 사실 민주노동당이 동성애 이야기 같은 건 안했으면 좋겠어요. 사실 저도 동성애자들이 불쌍하다고는 생각하지만, 잘 모르는 사람들은 이런 얘기 하면 변태인줄 알고........ 하여간 이런건 괜히 대중들에게는 오해받을 수도 있고 하니까 그냥 나중에 집권하고 나면 그때 도와주면 되잖아요.”

우리 사회에서 가장 ‘진보적인’ 사람들이 모여있다고 하는 두 단체에서의 경험은 여전히 우리에게 동성애를 적극적으로 엄호하고 지지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해주었더랬다.

중고생들은 ‘하자가 있는’ 행동을 하는 친구들을 가리켜 ‘호모’라고 부르며 놀리며 동성애를 비하하는 분위기에 익숙하다. 학교에서는 동성애 행위를 한 학생들을 처벌하고, 담임교사가 동성애자 학생의 부모를 불러 ‘다시는 딸에게 동성애를 시키지 않겠다’는 각서를 쓰게 했을 정도로 인권침해가 횡횡하니 아이들의 그러한 태도는 어쩜 당연할수도 있다. 결국 동성애를 비정상 취급하는 우리 학교속에서 많은 아이들은 지극히 정상적인 자신의 성정체성 때문에 학교를 떠나거나 괴로워 자살을 고민하게 된다.

청소년 동성애자 105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조사 대상자의 70% 이상이 자살에 대해 생각해본 경험이 있고, 18.1%가 ‘매우 자주 해봤다’고 응답했으며, 실제 자살을 시도해본 경우가 45.7%로 절반 가까이에 이르렀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가 고민해야 할 것은 ‘동성애를 하는 아이들을 어떻게 지도해야 할까’가 아니라 ‘동성애를 억압하는 우리 학교를 어떻게 지도해야 할까’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을 힘있게 주장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 바로 진보정당의 역할일 것이다.

무엇보다도 동성애자들이 우리가 ‘도와주어야 할 불쌍한 사람들’이거나 ‘고쳐야만 할 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 아니라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자연스러운 성애라는 것을 발견할 수 있는 다양한 역사적 사료들과 인간의 80퍼센트는 양성애자라고 발표했던 킨제이보고서를 보더라도 동성애는 자연스러운 인간의 성애의 한 형태일 뿐이다.

그럼에도 일부 보수 단체들은 동성 결혼이 법적으로 허용되면 현재 음성화 돼 있던 동성애자의 권리 주장이 양지로 드러나 사회가 혼란에 빠질 것이라는 주장을 하거나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종족유지를 위한 생식을 위해, 인류의 보존과 영속성을 위해 이성끼리”하는 것이라며 “자연질서와 전통에 반한 행동”이라며 동성애 차별을 옹호한다.

그러나 성애를 향유하는 남녀가 오로지 생식과 출산을 목적으로 해야 한다는 것처럼 어처구니없는 얘기도 드물다. 같은 인간이 이성이든, 동성이든 생식ㆍ출산과 상관없이 자연스러운 감정과 욕구에 따라 만나고 헤어지는 것은 ‘자연 질서에 반하는’ 것이 전혀 아니다. 그것은 오로지 일부일처 가족제도를 통해 노동계급과 노동력 재생산을 통제하려는 자본주의 질서에만 반할 뿐이다.

존중받아야 할 ‘차이’ 가 ‘차별’로 이어지지 않도록 ‘세상을 바꾸고’ 싶어하는 모든 이들이 연대해서 함께 싸우는 것이 필요한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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