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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칼럼 - 한국 사회에서 성소수자의 법적지위

2009.06.08 19:33 | Posted by 민주노동당 성소수자위원회 성소수자위원회


장서연, 공익변호사그룹 공감 변호사

아직 한국 사회에서 성소수자의 존재는 제대로 드러나지 않는다. 존재가 있음에도 사회적으로 그 존재가 잘 드러나지 않는다는 것은 여전히 한국사회 전반에 성소수자들에 대한 혐오와 차별이 뿌리 깊이 있고 이를 마주해야 하는 성소수자들의 사회적 지위를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성소수자의 존재에 대한 무지와 무시는 한국 사회의 법제도에도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현재 한국 사회의 법제도에 성소수자의 존재를 전제로 하거나, 성소수자의 생활 및 사회관계를 규율하고 있는 법제도는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한 사회적 환경에서 성소수자들은 자신의 존재조차 드러낼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하고 있고, 자신들의 사회관계나 생활관계에 대하여 법제도 밖의 사각지대에 머물 수밖에 없게 된다.

     ‘차별금지법 대응 및 성 소수자 혐오 차별 저지를 위한 긴급
공동행동’을 꾸린 활동가들이
지난해 11월 서울 광화문 네거리에서 펼침막을 들고 시위를 벌이고 있다. <무지개행동 제공>


한국 사회에서 성소수자의 존재가 드러나지 않고 있던 것과 마찬가지로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 역시 가시화되지 않았던 측면이 있다. 역설적이게도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이 가장 노골적으로 드러난 것은 2007년 말에 있었던 차별금지법 입법과정에서였다. 지난 차별금지법 입법과정을 통하여 '동성애 차별금지법안 저지 의회선교연합(국가조찬기도회, 성시화운동본부, 한기총과 KNCC)' 등 보수기독교 단체들이 주도하고 있는 반동성애 진영 VS. 동성애자 인권운동의 전선이 가시화되었다고 평가받고 있다. 반동성애 진영은, 현재도 ‘반동성애국민연합’을 결성하고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시위하는 등 사회적으로 동성애자에 대한 노골적인 혐오와 차별을 드러내고 있다. 성소수자에 대한 노골적인 혐오와 편견이 가시화되고 있고, 심지어 이런 반동성애진영이 정치 세력화되어 있다는 것은 앞으로 성소수자와 관련한 법제도 개선과 입법에 많은 난관이 있음을 예고하고 있다.

그러나 성소수자의 존재는 어느 시대에나 존재하여 왔고, 성소수자의 인권 보장은 세계적인 추세가 되어가고 있다. 차별금지법 등에 차별금지사유로 ‘성적지향’을 명문화하는 것은 한국 사회에 존재하는 성소수자들의 존재를 드러내 주는 것이며, 그동안 ‘비정상’의 범주에 있던 성소수자들의 존재를 인권의 보편적 관점에서 ‘정상’으로 선언하는 의미가 있다.

한편, 성소수자의 인권 보장과 함께 동성파트너십에 관한 법적 인정은 거스를 수 없는 세계적인 추세가 되어가고 있음에도, 한국 사회는 여전히 동성커플의 법적관계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법적으로 관계를 인정받지 못하기 때문에 동성커플이 살아가면서 겪는 불편함은 매우 크다. 파트너가 갑자기 아프거나 다치더라도 보호자 역할을 할 수 없으며, 파트너가 사망을 해도 유가족이 되지 못하며 당연히 유산상속도 받지 못한다. 배우자의 지위로서 국가가 보장하는 국민연금, 의료보험, 세금면제 등의 혜택을 누리지 못하며 직장에서는 배우자로서의 가족수당, 경조사로 인한 휴가 등도 없다. 오랫동안 공동생활관계를 유지하다가 헤어지게 되었을 때도 재산분할청구 등 법적인 보호도 받지 못한다. 무엇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동성커플이 이성커플과 동등하게 다루어지지 않는다는 것 그 자체로 이미 동성애자는 비정상적이라는 편견을 조장하고 강화시킨다는 점이다.

09.5.26 캘리포니아 대법원이 동성결혼에 반대하는
주민발의안 8을 통과시키자 
수많은 시위대가 거리로 나왔다.

동성애자의 가족구성권의 법제화의 길 역시 현시점에서는 쉽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앞으로 동성커플의 관계에 대한 법적 문제도 점차 발생할 것이고, 이와 관련한 법적 보호의 필요성도 점차 대두할 것이다. 나아가 세계화 시대를 맞이하여 벌써부터 외국에서 인정하고 있는 동성커플에 대한 법적인정을 국내에서 어떻게 적용할 것인지에 대한 국제사법적인 논의들도 생기고 있다.

최근 법원에서는 더디지만 차츰 해석을 통하여, 성소수자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성소수자가 처한 상황을 개선하려는 모습도 보여주고 있다. 성전환자를 강간죄의 개체로 인정한 부산지방법원의 판결뿐만 아니라, 군법원에서는 ‘계간’을 처벌하도록 규정한 군형법 제92조가 헌법에 규정된 죄형법정주의, 과잉금지원칙에 위배되고, 동성애자 군인의 성적자기결정권, 평등권,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침해할 소지가 있다는 이유로 헌법재판소에 위헌제청을 한 바 있다. 더디지만 이러한 개별적인 사례들이 하나 둘씩 쌓여 성소수자와 관련한 법제개선을 하는데 일조를 하고, 일상에서의 성소수자에 대한 상황을 개선시키고 인식을 변화시키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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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칼럼 - 광주연가

2009.06.08 19:27 | Posted by 민주노동당 성소수자위원회 성소수자위원회

태성(동성애자인권연대)

광주를 내려가는 길은 내내 비가 내렸다.

대학을 다닐 때조차 가본 적이 없는 망월동 묘지를 간다는 부담감이 머리가 깨질 것 같은 개인적인 문제들을 잠시 내려놓을 수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감으로 바뀌어 광주행을 결정했지만, 녹록치 않은 삶의 무게처럼 어두운 날씨는 마음을 더없이 무겁게 만들었다.



                          5월16일, 비가 부슬부슬 내리던 날 / 광주 구묘지 전경



망월동에 내려서는 먼저 신묘지라고 불리는 근래에 단장을 한 묘지부터 들렸다. 굉장히 깨끗했지만 무언가가 부족하고 썰렁했던 분위기는 광주항쟁의 충분한 진상규명과 처벌이 되지 않은 채 남아있는 구묘지의 수많은 영령들 때문이란 것도 처음 알게 된 사실이었다.

깨끗했던 신 묘지와는 달리 구 묘지를 보는 순간 나는 이내 참았던 무언가가 울컥하고 터진 듯한 느낌을 감출 수 없었다. 묘지라고 불리기엔 턱없는 시설들과 그저 시신들을 차례로 묻기만 한 것 같은 묘지들의 간격과 크기는 경악스러울 만치 허술하고 초라했다.

이름이 익숙한 열사들과 분명하게 신원이 확인된 사람들은 그나마 이름이 새겨진 이정표라도 있었지만 신원이 파악되지 않은 사람들에겐 이름조차 없는 허름한 비석만이 덩그러니 놓여있었고 어떤 묘는 이미 내려 앉아 형체를 찾아내기 어려울 정도인 모습을 하고 있었다.

착잡한 마음을 뒤로 하고 헌화를 한 뒤 우리는 급하게 또 구청으로 초청한 연사의 강의를 듣기위해 서둘러 차에 올랐다. 다큐멘터리와 영화, 혹은 간간히 뉴스에서 보아왔던 금남로와 구청을 보며 감회가 새로웠고 그분들이 그토록 원했던 민주주의 항쟁이 일어난 곳이라는 이유만으로 충분히 아름답고 따뜻했다.

도청에 도착해서는 광주항쟁이 일어난 여러 가지 정황과 일들에 대해 지루하게 참아가며 시간이 빨리 지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우린 몹시 지쳐있었고 배도 매우 고팠다. 이야기가 마무리 되던 즈음 계속 우리들 곁에 앉아계시던 어머니 둘의 이야기를 들을 때 까지는 적어도 그랬었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을 지으면서 입구를 도청 별관 쪽으로 내야 한다는 문화관광부는 어머니들의 요구와 이야기를 듣지 않고 철거를 강행할 계획이다. 어머니들은 눈물겨운 호소는 우리 모두를 가슴 아프게 했고 몇몇은 참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다. 나는 생각했다. 누가 저분들에게 저렇게 커다란 아픔을 줄 권리를 가지고 있는가.

꽃다운 열여덟, 스물의 아들을 잃고 그 분들은 존재 자체가 스스로에게 미안 했을지 모른다는 생각은 내게 끝없는 슬픔을 주었다. 그분들의 씻겨가지 않는 상처는 아물지 않았는데 오히려 참회 대신 그 상처를 후벼 파는 잔인함을 또다시 벌이고 있는 문화관광부는 즉각 공사를 중지해야만 한다.

죽지 못하고 살아있음을 미안해하며 가슴 저 깊은 곳에서 자식을 묻고 살아왔을 인고의 세월은 세상이 달라졌다고 말하는 21세기가 와서도 치유되지 않고 오히려 깊어가는 것 같다.

이유가 무엇이든 어머니들의 요구는 받아들여져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화관광부는 대책위의 활동자금이 되는 통장마저 가압류하여 투쟁기금 조차 마음대로 쓰지 못하는 상태가 되었다. 이글을 읽는 사람들이 유족회, 부상자회, 민주노동당 광주시당에 문의하거나 관련 홈페이지피 지지서명이나 후원금을 보내 주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본다.

도청을 나오면서 지칠 대로 지친 나는 태권브이님이 맛있는 곳이라고 데리고 간 음식점에서 정말이지 몸과 마음이 치유되는 기적 같은 음식들을 맛보았다. 이후 성소수자들이 이용하는 업소들 돌며 성소수자위원회에 대한 지지를 호소하고 유인물도 나눠주고 술자리로 피곤한 하루를 마무리 지었다.

다음날 아름다운 조선시대 정원 소쇄원을 잠깐 둘러보고 광주 항쟁 집회를 참석했다. 역사의 현장에서 그것도 5.18 광주민주화 항쟁 기념 집회에 참석한 감회란 정말이지 잊을 수 없는 몇몇 집회의 기억으로 남아 있을 것 같다. 너무 아쉽지만 1시간여의 집회를 참석 한 뒤 우리는 또 급히 서울행을 서둘러 준비했다.

짧았지만 너무도 많은 기억을 남긴 채 1박 2일의 광주행은 마무리 되었다. 서울로 올라와서는 호남의 기막힌 음식들로 며칠 밥을 먹지 못했다. 그건 아마 음식 맛 이라기보다는 광주에 대한 그리움이었는지 모른다.

아름답고 따뜻했던 기억 속 광주.

하지만 민주화 항쟁이 일어난 진실규명과 책임자들의 처벌 같은 역사의 숙제와 어머니들의 슬픔을 조금이라도 치유해야 하는 꼭 풀어야할 과제들은 여전히 우리들 곁에 남아있다. 80년 핏빛 봄날의 그날, 생생한 아픔을 잊지 못하는 분들이 한분이라도 더 살아계실 때 기필코 풀어야할 현시대 우리 모두의 숙제 광주.

다시 기회가 되면 꼭 한번 다시 가고픈 시간과 기억은 더없이 좋은 추억으로 남았다.

ps. 1박2일의 일정을 위해 정말이지 수고해주신 민주노동당 당원이신 태권브이님께 진심어린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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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레이 반차별 선언 - 방제식

2009.06.08 19:22 | Posted by 민주노동당 성소수자위원회 성소수자위원회


릴레이 반차별 선언 - 방제식 (민주노동당 인천시당 계양구위원회 지방자치위원장)



정신병자에서 동지가 된 동성애자

성소수자? 아니 그전에 알고 있던 동성연애자 혹은 동성애자!!

사실 여기동(민주노동당 성소수자위원회 초대위원장)이라는 사람을 만나기 전까지는 동성연애자라고 불리는 것이 왜 싫은지에 대해서조차 관심이 없었다. 우리 사회에서 성소수자들이 얼마나 많은 차별을 받고, 박해를 받으며 살고 있는지에 대한 이해에 앞서 그에 대한 관심 자체가 없었기 때문이다. 관심이 없었던 것은 살아오면서 내가 동성애자들을 만날 기회가 없었으며, 또한 그들에 대한 소식을 접할 기회조차 없었기 때문이다. (솔직히 이것도 관심이 있었다면 이렇게까지 소식을 듣지 못할 상황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런데 거의 없는 기회 중 첫 번째가 바로 중학교 때였다. 선생님 중 한 분이 동성애자에 대한 언급을 하면서 “동성애자는 정신병중 하나다”라는 이야기를 했는데 그 근거 중 하나로 자연세계에는 없는 인간에게만 유일한 현상이라고 하는 것이었다. 그 때부터 여기동이라는 실존인물을 만나기전까지 나에게 동성애자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존재였던 것이다.

5년여 전, 화재로 인해서 옮겨야만 했던 4평 남짓의 당시 민주노동당 계양구지구당 사무실. 그 작은 사무실에서 처음으로 동성애자와의 만남이 이루어졌다. 당시 계양구에서는 장애인 사업을 준비하고 있었다. 당시 부평구지구당 한상욱 위원장이 정신장애인과 함께 활동하고 있는 여기동씨를 소개해 준 것이다. 만나기 전에 동성애자라는 말을 들었는데 별 다른 거부감이나 어색함은 없었다. 아마 이것도 무관심 중 하나였을 것이다. ㅎㅎ

이런 만남을 계기로 동성애에 대한 나의 인식도 급진적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정신병자에서 우리 사회에서 차별과 억압을 받는 소수자로서 함께 싸워 제대로 된 권리를 찾아야할 대상으로 말이다. 그 중간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이러한 변화가 가능했던 것은 급진적(?) 동성애자가 바로 내 첫 만남의 대상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파트너와의 삶을 공개하고, 당당하게 소개하는 모습에서 왜 이들은 이성애자들이 당연히 누려야할 권리(결혼이나 양육, 부양가족대상 등 안하면 오히려 이상한)들을 누리지 못하고 이렇게 속이고, 감추고 살아야하는지에 대한 감성적 분노가 먼저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동성애자와 함께 만난 내 주위 사람들은 모두 별다른 거부감없이 동화되고 변화되어 갔다. 선거를 함께 하면서 만난, 동성애문제와 관련해서는 상당히 보수적이라고 생각되는 40대 후반의 가정주부들, 혹은 상당히 가부장적일 것으로 생각되는 50대 전후의 남성들도 지역주민들도 그 동성애자를 만나면서 친해지고, 그리고 자연스런 대화의 과정에서 동성애자임을 밝혔음에도 조금 놀란 듯 하지만 무난히 수용하는 것(물론 표현하지 않는, 혹은 당사자 앞이라 표현하기 힘든 그 속마음을 들여다볼 순 없지만)들을 보아오면서 관계가 이해를 넓히는 것이라는 생각도 많이 하게 되었다.

하지만 민주노동당 당원이라도 동성애자를 만나지 않은 사람들은 오히려 동성애에 대해 교육을 하고, 이야기를 해도 이해가 쉽지 않은 경우를 많이 보아왔다.

동성애를 이해하는 가장 빠른 길... 좁은 소견이지만 그것은 바로 동성애자들을 직접 만나고, 이야기하고, 함께 생활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당에서도 그런 기회들을 자주 만들어 주었으면 하는 생각을 자주한다. 동성애 이해를 위한 교육이나 강연 등도 도움이 되겠지만 그 뿐 아니라 일상적인 생활 속에서도 더욱 많아졌으면 한다.

* 정신병자 대신 정신장애인이라는 표현을 써야 맞지만 당시 나의 생각과 이해를 반영하기 위해서 그냥 그 때 생각하고 사용했던 표현을 그대로 사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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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동성애자=정신병자란 생각은 해본적이 없었는데요. 언젠가 30대 중반 이상의 분들과 동성애자 관련한 이야기를 나누다 동성애는 정신병이다는 말을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
    물론 저도 당사자가 아니기때문에 공감하거나 이해할 수 는 없지만, '차이'를 인정하고 알아가는게 중요하지 않을까 싶어요. 그럼, 다음 웹진을 기다리겠습니다~~^0^

릴레이 반차별 선언- 류민희

2009.06.08 19:18 | Posted by 민주노동당 성소수자위원회 성소수자위원회

릴레이 반차별 선언- 류민희 (민주노동당 성평등 강사단, 4.29 서울 광진구 시의원 재보선 출마자)



#1.

전교조 조합원들과 함께 여성학자에게 성교육을 받았더랬다.

교육이 끝난 후 한 전교조 조합원이 강사에게 좀 멋쩍어 하면서 질문했다.

“저는 여고에서 근무하고 있는데요. 여자아이들 중에서 동성애를 하는 아이들이 좀 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그걸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겠어서요. 동성애들 하는 여고생들을 어떻게 지도해야 할까요?”




#2.

경기도의 한 지역위에 성평등교육을 하러 갔더랬다.

교육이 끝난 후 한 당원이 나에게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주장했다.

“저는 사실 민주노동당이 동성애 이야기 같은 건 안했으면 좋겠어요. 사실 저도 동성애자들이 불쌍하다고는 생각하지만, 잘 모르는 사람들은 이런 얘기 하면 변태인줄 알고........ 하여간 이런건 괜히 대중들에게는 오해받을 수도 있고 하니까 그냥 나중에 집권하고 나면 그때 도와주면 되잖아요.”

우리 사회에서 가장 ‘진보적인’ 사람들이 모여있다고 하는 두 단체에서의 경험은 여전히 우리에게 동성애를 적극적으로 엄호하고 지지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해주었더랬다.

중고생들은 ‘하자가 있는’ 행동을 하는 친구들을 가리켜 ‘호모’라고 부르며 놀리며 동성애를 비하하는 분위기에 익숙하다. 학교에서는 동성애 행위를 한 학생들을 처벌하고, 담임교사가 동성애자 학생의 부모를 불러 ‘다시는 딸에게 동성애를 시키지 않겠다’는 각서를 쓰게 했을 정도로 인권침해가 횡횡하니 아이들의 그러한 태도는 어쩜 당연할수도 있다. 결국 동성애를 비정상 취급하는 우리 학교속에서 많은 아이들은 지극히 정상적인 자신의 성정체성 때문에 학교를 떠나거나 괴로워 자살을 고민하게 된다.

청소년 동성애자 105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조사 대상자의 70% 이상이 자살에 대해 생각해본 경험이 있고, 18.1%가 ‘매우 자주 해봤다’고 응답했으며, 실제 자살을 시도해본 경우가 45.7%로 절반 가까이에 이르렀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가 고민해야 할 것은 ‘동성애를 하는 아이들을 어떻게 지도해야 할까’가 아니라 ‘동성애를 억압하는 우리 학교를 어떻게 지도해야 할까’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을 힘있게 주장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 바로 진보정당의 역할일 것이다.

무엇보다도 동성애자들이 우리가 ‘도와주어야 할 불쌍한 사람들’이거나 ‘고쳐야만 할 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 아니라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자연스러운 성애라는 것을 발견할 수 있는 다양한 역사적 사료들과 인간의 80퍼센트는 양성애자라고 발표했던 킨제이보고서를 보더라도 동성애는 자연스러운 인간의 성애의 한 형태일 뿐이다.

그럼에도 일부 보수 단체들은 동성 결혼이 법적으로 허용되면 현재 음성화 돼 있던 동성애자의 권리 주장이 양지로 드러나 사회가 혼란에 빠질 것이라는 주장을 하거나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종족유지를 위한 생식을 위해, 인류의 보존과 영속성을 위해 이성끼리”하는 것이라며 “자연질서와 전통에 반한 행동”이라며 동성애 차별을 옹호한다.

그러나 성애를 향유하는 남녀가 오로지 생식과 출산을 목적으로 해야 한다는 것처럼 어처구니없는 얘기도 드물다. 같은 인간이 이성이든, 동성이든 생식ㆍ출산과 상관없이 자연스러운 감정과 욕구에 따라 만나고 헤어지는 것은 ‘자연 질서에 반하는’ 것이 전혀 아니다. 그것은 오로지 일부일처 가족제도를 통해 노동계급과 노동력 재생산을 통제하려는 자본주의 질서에만 반할 뿐이다.

존중받아야 할 ‘차이’ 가 ‘차별’로 이어지지 않도록 ‘세상을 바꾸고’ 싶어하는 모든 이들이 연대해서 함께 싸우는 것이 필요한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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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월 위원회 활동을 소개합니다.

2009.06.08 19:15 | Posted by 민주노동당 성소수자위원회 성소수자위원회

레이가 (민주노동당 성소수자위원회)

안녕하세요? 민주노동당 성소수자위원회입니다. 드디어 뜨거운 햇살이 내리쬐기 시작하는 6월이 왔습니다. 엄혹한 이 시기에 故 노무현 전대통령의 서거 소식을 놀란 가슴으로 듣고, 6.10항쟁일을 앞두어 햇빛의 열기만큼 투쟁의 열기 또한 뜨거운 달입니다. 모두들 잘 지내고 계신가요?

5월 위원회는 이런 활동을 했습니다 - 광주지역순례

광주에 대해 듣기위해 구 전남도청을 찾았습니다. 많은 열사들의 마지막 투쟁지였던 이곳을 문화관광지 개발이라는 명목아래 일부 철거하려고 하고 있었습니다. ‘이곳을 지날 때 마다 우리 아들 생각이 난다’ ‘이곳을 철거하면 나도 같이 콘크리트에 묻혀 죽겠다’고 말씀하시는 유가족 어머니들의 절절한 한마디에 함께 광주에 방문했던 분들은 눈물을 훔치기에 바빴습니다. 강구영 518부상자회 국장님을 통해 5.18과 도청의 의미, 그리고 구도청 철거문제 투쟁에 대해 자세히 알 수 있었습니다.

광주 특유의 맛있는 음식으로 배를 든든하게 채운 후, 우리는 광주의 성소수자들을 찾아 나섰습니다. 건넨 성소수자위원회 엽서를 보고 재미있어 하며 웃음을 짓는 모습에 저희 마음도 함께 환해지는 느낌이었습니다. 이야기를 나누어 보면, 성소수자 인권 문제에 관심이 있는 광주시민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그리고 위원회의 엽서도 흔쾌히 성소수자들이 이용하는 업소에 비치하도록 해 주셨습니다. 위원회가 마이크를 잡을 때 열심히 귀 기울여 들어주신 광주 여러분 감사했습니다.

6월 위원회는 이런 활동을 합니다 - 민주노동당 정책당대회

당원여러분들이 너무나도 기다리고 있는 정책당대회가 6월 20-21일 부산 벡스코에서 열립니다. 정책당대회에서는 앞으로 2년간 민주노동당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채택하고, 주요 정책들을 논의하게 됩니다. 성소수자위원회도 가만히 있을 순 없죠. 부산을 향해 달려갑니다! 성소수자위원회는 이번 정책당대회를 통해서 당원들에게 성소수자 운동을 소개하고 지지와 격려의 공간을 만들기 위해서 열심히 준비 중입니다. 성소수자 희망나무에 희망의 한마디를 채워보는 시간을 갖고, 정책 토론에 지친 당원들에겐 달콤한 레인보우 칵테일을 마련했습니다. 또한 성소수자 투쟁의 모습들을 담은 영화를 상영하여 성소수자 운동의 현실을 눈앞에 생생히 그려보고,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지려고 합니다. 성소수자위원회에 참여하고 싶었던 당원이 계시다면 성소수자위원회 부스에 수줍게 다가와 인사를 나눌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겠네요. 그리고 직접 참여한다면 더 좋겠지요. 성소수자위원회는 항상 열려있습니다!

02-2139-7749 / lgbtkdlp@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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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정체성에 대한 오해와 진실, 첫 번째- “ 넌 어쩌다 성(性)소수자가 되었니?”

정욜 (민주노동당 성소수자위원회)

민주노동당 성소수자위원회 웹진 ‘레인보友’는 앞으로 3회에 걸쳐 “성정체성에 대한 오해와 진실”에 대해 좀 더 깊이 살펴 볼 예정입니다. 짧은 지면을 통해 성정체성에 대한 모든 궁금증들을 담아낼 수는 없겠지만 이 글이 당원들의 성소수자 인권감수성을 높이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됐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봅니다. 동성애 원인론을 시작으로 성정체성 형성과정, 그 외의 여러 의문들을 소개하고, 민주노동당이 앞으로 고민하고 해결해야 할 정책들을 정리해나갈 것입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그래도 청소년 때는 안 됩니다.”
몇 년 전 대구에 위치해 있는 인권단체의 초청을 받아 성소수자 인권 관련 강의를 하러 간 적이 있었다. 그 자리에 진보적인 학부모단체에서 참여한 분이 계셨는데 - 아마도 중고생 자녀를 둔 학부모였을 것이다. - 그 분이 몇 십 분간의 논쟁 끝에 내뱉은 말이었다. 그는 동성애가 청소년들에게 유행처럼 퍼져나갈까 매우 우려하고 있었다. 그 당시는 팬픽과 야오이(남성 캐릭터들 간의 동성애를 다룬 여성들의 동인지물) 문화가 청소년들을 사로잡고 있었던 시기여서 더욱 그런 심정이었는지 모른다. 청소년 동성애자에 대한 이러한 시각은 여전히 크게 변하지 않고 있다. 그저 청소년 동성애자는 사회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불량학생이거나 방황하는 시기를 보내고 있다는 식의 인식이 팽배하다. 이 학부모 역시 성소수자 인권을 지지한다고는 했지만 결국 청소년들의 성정체성 문제 앞에서는 이 이상의 답을 찾지 못했다.


                           5월9일, 청소년 성소수자 무지개 봄꽃을 피우다 캠페인

한국 성소수자 사회의식조사(2007)에 따르면, 성소수자들이 자신의 성(별)정체성을 인식하는 시기는 평균적으로 18.6세 때이다. 135명의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도 많은 청소년들이 중학교시기(평균 13.8세)에 성정체성을 인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많은 성소수자들이 청소년기 때 자신의 정체성을 깨닫고 있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는 개인의 성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가볍고 단순하게 무시한다. 혹은 ‘청소년기 때는 안 된다’라는 말로 그들의 존재와 욕망을 부정한다.

청소년 성소수자를 바라보는 이와 같은 태도에는 성 정체성을 방황하는 시기의 잘못된 선택쯤으로 여기고자 하는 의식이 잠재되어 있다. 비유를 들자면, 술, 담배에 대한 선호와 같은 것으로 취급하는 것이다. 이런 사회 속에서 자신의 성정체성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는 청소년들은 더욱 고립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들 때문에 상당수 청소년 성소수자들이 위험한 상황(우울, 가출, 자살 등)에 무방비로 노출되고 있다.

청소년들에게 놓인 사회적인 조건을 보지 않고, 그들의 놀이 문화나 작은 행위만을 이유삼아 ‘일탈했다’ ‘불량하다’라고 규정하는 태도에도 문제가 있다. 사실 성인들에게 청소년들을 통제하고 규제할 수 있는 그 어떤 자격도 주어진 적은 없다. 중요한 것은 성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청소년기에 충분히 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하고 그들이 좀 더 자유롭고, 긍정적인 상황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갈 수 있는 사회적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는 점이다.

넌 어쩌다 이성애자로 살고 있니?

성정체성의 원인을 찾으려는 연구만큼, 흥미로운 것이 있을까? 그런데 더욱 흥미로운 사실이 여기 있다. 성정체성의 원인에 대한 수많은 연구가 진행되어 왔음에도 그 누구도 뚜렷한 원인을 발견하지 못하고, 오직 우스운 가설을 합리화 시키는 주장들만이 난무하는 가운데, 이러한 주장들이 동성애를 혐오하는 사람들에 의해 확대 재생산되어 성정체성을 고민하고 있는 당사자들에게까지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이다. 청소년 성소수자들은 본인의 의사와 무관하게 느껴지는 동성에 대한 호감과 성적인 욕망들이 잘못되었다는 생각에 스스로 병원을 찾기도 한다. 그리고 자신에 대한 혐오와 괴로움 때문에 이성애자가 되기 위한 결심과 실천을 하기도 한다. 이처럼 우리나라 청소년 성소수자들이 겪어야만 하는 낯선 경험들에서 성정체성을 긍정적으로 수용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여기서 잠시, 대표적인 동성애 원인 연구 몇 가지를 소개하고자 한다.

첫 번째, 유전론이다. 이들은 ‘부모로부터 받은 유전적인 요인이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하고 호르몬이나 뇌구조가 이성애자와 다르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두 번째, 정신분석학적으로 접근하는 이들도 있다. 이들은 부모와의 갈등, 가족의 상호작용이 잘못되어 성정체성이 고착된다고 보고 있다.

세 번째로는 ‘학습으로 가능하다’라고 보는 이들도 있다. 어릴 때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발생하는 성경험이나 기숙사, 교도소, 군대와 같은 곳에서 갖게 되는 동성과의 성경험이 성정체성 결정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보는 것이다. 위험한 것은, 이러한 입장을 견지하는 이들은 다시 역으로, 학습과 훈련을 통해 잘못된(?) 성정체성이 교정될 수 있다고 본다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전기충격, 혐오연상 등 끔찍한 동성애 치료법이 이러한 연구와 함께 등장했다.

이와 같이, 그동안 정답이 부재한 문제에(질문의 내용 자체가 잘못된) 부적절한 연구만이 존재해 왔다. 그리고 연구를 빙자해 동성애와 같은 비이성애적 성정체성을 치료하겠다는 거짓으로 끔찍한 폭력이 자행된 지난 역사를 확인할 수 있었다. 동성애의 원인을 탐구하는 연구는 기본적으로 ‘이성애가 이 사회에서 정상이고 동성애나 트랜스젠더의 경우는 비정상’이라는 인식에서 출발한다. 그런데 이성애에 대한 연구는 왜 존재하지 않는 것일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당연한 것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것이 왜 이성애만 당연한 것인지 되물을 수 있어야 한다. 정말 동성애의 원인을 알고 싶다면 이성애의 원인을 먼저 탐구할 것을 제안한다. 이성애의 원인, 이성애자가 되기 위한 방법이 밝혀진다면 자연스럽게 동성애의 원인과 치료법을 발견할 수 있을 것 아닌가. 애초부터 동성애에 대한 시각은 부정적인 이미지로 뒤덮인 것이었다. 사이비 과학자들이 밝힌 동성애의 원인은 늘, 가정이 화목하지 못했거나, 동네 아저씨한테 추행을 당한 경험이 있다거나 아니면 뇌구조가 이상하다거나 하는 식이었다. “우리 집은 화목한 가정입니다. 그래서 전 동성애자가 된 것 같아요!”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던가!

동성애의 원인을 밝히려는 모든 행위, 그 자체가 폭력이다. 1995년 발표된 동성애자 인권선언문에 언급되었듯이 “동성애란 잘못된 선천적인 자질도 아니고, 나아가 성장과 교육의 왜곡에 따른 비정상적인 결과는 더더욱 아니다. 동성애를 해부하고 규명하려는 그 어떤 치밀하고 집요한 노력, 그것은 동성애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고 이것이 많은 이들의 삶 속에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을 부인하려는 광기이자 폭력일 뿐이다.”

당원들이 함께 고민한다면!

우선 원인을 파헤치려는 집착을 버리는 것이 중요하다. 함께 활동하는 당원이 성소수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면, 혹은 성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진행 중이라면 그 사람이 왜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을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 라는 식의 궁금증을 갖기 마련이다. 하지만 의심을 품기보다 우선 존재 그대로를 긍정할 필요가 있다. 성소수자는 누구나 자신의 성 정체성을 인정하기까지 많은 시련을 겪는다. 당신이 알게 된 성소수자에게 ‘어쩌다 이렇게 되었는가’라는 어리석은 물음 대신, ‘잘 이겨냈다’라는 격려 한마디와 ‘차별 없는 세상을 함께 만들자’라는 연대의 마음을 표현하길 제안한다. 그렇다면 아마도 당신은 타인에게 세상에서 가장 값진 선물을 주게되는 것이리라.

만약 성정체성에 대해 고민 중인 당원들을 만난다면 쉽게 답을 내려한다거나, 어떤 계기가 있었는지를 단도직입적으로 묻기보다 고민을 긍정적으로 할 수 있게 이끌 필요가 있다. 상담의 기본이 경청과 무조건적인 긍정이라는 점을 잊지 않고 성정체성 혼란을 함께 겪어주는 것도 중요하다.

이성애에 대한 원인을 찾지 않는 것처럼 “왜 성소수자가 되었을까”라는 물음보다 존재에 대한 긍정부터 시작해보자! 많은 변화가 찾아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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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안 2010.02.13 19:30

    ‥* 네이버 오픈캐스트 '비 온 뒤 무지개 - [No.000]' 에 소개됩니다. ('-')/♥

스톤월 소녀들. 한국에서 다시 태어나다.

2009.06.08 19:06 | Posted by 민주노동당 성소수자위원회 성소수자위원회

 

 

스톤월 소녀들. 한국에서 다시 태어나다.


 

강석주 (민주노동당 성소수자위원회 위원장)




퀴어문화축제는 성소수자들이 자신의 존재성을 확인하고, 성소수자 인권을 지지하는 사람들과 함께 나와 연대를 나누는 축제의 자리다. 성소수자들이 자신의 성정체성을 맘껏 드러내며 한판 놀이를 펼치는 퀴어문화축제가 올해로 벌써 10회째를 맞이하게 되었다. 축제의 백미라고 할 수 있는 퀴어 퍼레이드는 6월13일 청계천 베를린광장에서 펼쳐진다. (5월30일로 예정되어 있었으나,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으로 인해 연기되었다.) 민주노동당 성소수자위원회도 위원회가 건설된 이후부터 이 자리에 꾸준히 함께했다. 현애자 전 국회의원이 정당 역사 상 최초로 지지발언을 했고, 매년 그랬듯이 2009년에도 민주노동당 국회의원이 참석 해 지지연설을 함께할 예정이다. 거리축제 현장에 오면 많은 성소수자들이 가지고 있는 삶의 문제와 이슈를 한 눈에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성소수자들의 투쟁의 역사를 함께 공유할 수있다.

 

 

                                     <뉴시스> 2008. 퀴어퍼레이드 사진
                         여기동 성소수자위원회 전 위원장이 참가자들과 함께 있다.


퀴어 퍼레이드, 1969년 스톤월 항쟁을 기억하다.

뉴욕의 게이 바에 대한 경찰의 단속은 1960년대에는 일상적인 일이었다. 바(bar)에 있는 성소수자들은 백색경고등이 켜지면 즉시 춤과 서로에 대한 더듬거림을 중단해야 했다. 경찰들의 단속이 시작되었다는 표시였기 때문이다. 모욕적인 욕설과 폭행이 있어도 단속이 끝나기만을 기다리며 참아야 했다. 1969년 6월28일, 그날도 스톤월 인(Stonwall Inn)은 여느 날과 다를 바 없어보였다. 경찰들은 그들에게 모욕적인 행동으로 대했고 미성년자, 신분증 미소지자, 여장남자, 종업원들을 강제로 연행해갔다. 다른 날과 다르게 이 날은 연행해가는 경찰들을 향해 밖에 모인 군중들은 동전을 던지기 시작했다. 수갑을 꽉 채워 “아프다”고 항의한 남장여자(다이크)에게 경찰은 곤봉을 휘둘렀고 군중은 그것에 항의하기 위해 계속 동전과 돌을 던졌다. 평소와 다르게 그들의 저항이 거세지자 경찰은 위기감을 느끼고 바 안으로 후퇴해 들어가게 되었다. 군중들은 바에 불을 질렀다. 단속경찰들은 지원 병력을 요청했다. 지원 병력은 당시 베트남전 반대 시위 확산에 대응하기 위해 만들어진 폭동 진압 부대였다. 경찰봉이나 최루가스와 같은 다양한 병기를 소지하고 있었지만 스톤월로 모인 군중들은 도망가거나 뿔뿔이 흩어지지 않았다. 항쟁은 그 날 새벽 4시까지 계속되었다.


‘구역질 나는 건 내가 아니라, 나보고 구역질난다고 하는 이 사회다’

스톤월 항쟁이 있고 나서 3주 뒤 뉴욕의 게이, 레즈비언들은 GLF(Gay Liberation Front): 게이해방전선을 결성하였다. 이들은 이 전과 다르게 미국 사회와 어떤 타협도 하지 않을 것을 천명했으며, 단체명을 베트남민족해방전선에서 따올 만큼 베트남전 반대시위에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고 집회대열에 함께했다. 1970년 최초로 개최된 뉴욕 퍼레이드에는 2000명이 넘는 동성애자들이 참여했다. 게이해방전선은 수 천 명과 맞서 싸울 수 있는 자신감을 북돋아주는 대중 참여를 강조했으며, 더 이상 동성애, 이성애 구별이 필요 없는 급진적인 사회상을 제시했다. 또한 그들은 ‘골방에서 나와 거리로’ ‘천천히 큰 소리로 말하라, 나는 당당한 동성애자다’‘구역질나는 건 내가 아니라 나더러 구역질난다고 말하는 사회다’라는 슬로건을 전면에 내세웠다.


  

                      2008, 브라질 상파울루에서 개최된 퍼레이드 사진
                           (역대 최대인원 350만 명이 참여했다.)


스톤월 항쟁은 전 세계 성소수자들의 인권상황을 빠르게 움직여 놓았다. 여전히 성소수자라는 이유만으로 사형을 집행하거나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는 나라들도 있지만, 많은 나라들에서 동성 간 결혼, 입양이 허용되었다. 청소년 성소수자들이 긍정적으로 자신의 성정체성을 찾아갈 수 있도록 해주는 사회복지 서비스가 만들어졌다. 가장 중요한 변화는 성적다양성이 존중받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성소수자 스스로의 자신감이 커졌다는 것이다. 이 자신감은 한국의 퀴어문화축제로 이어져야 한다. 스스로 고립되는 자신감이 아니라 사회변화를 꿈꾸고 성소수자 인권을 지지하는 이들과 함께 소통함으로써 만들어진 자신감이다. 이제는 당내의 많은 당원들이 성소수자 인권에 대한 지지를 직접적으로 표현할 때다. 성소수자들을 지지하는 많은 당원들이 ‘성적지향에 의해 차별받지 않는 평등한 세상을 위해!’ ‘성적다양성이 존중받을 수 있는 일자리’라고 적힌 구호를 들고 함께 행진한다면 나를 포함한 많은 성소수자들이 용기를 얻고 자긍심을 회복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정당 최초로 성소수자위원회가 건설된 만큼 당원들의 직접적인 참여와 지지가 절실히 필요하다.


2008, 9회 퀴어퍼레이드 참여자들의 퍼레이드 행진모습.
지지하기 위해 참여한 한국기독청년학생연합 깃발이 보인다.



2009년 6월13일 (토) PM 12시 ~ PM 7시

장소 : 청계광장 한화빌딩 앞 베를린 광장 앞

문의 : 02) 2139 - 7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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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수자 인권에 대한 반차별선언에 함께합니다!!

2009.04.05 23:39 | Posted by 민주노동당 성소수자위원회 성소수자위원회


한국사회에서 성소수자는 가장 억압받고 고통 받는 사회적 약자입니다. 우리 사회가 성소수자의 성정체성에 대해서 조금씩 귀를 여는 풍토가 조성되고는 있지만 사회문화적 편견과 차별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고 있습니다.

이미 30년 전에 동성애가 ‘정신질환이 아닌 정상적 성정체성’이라는 판명이 났음에도 불구하고 성소수자들이 겪는 고통은 여전합니다.


이런 불합리한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민주노동당은 창당이후 꾸준히 성소수자 문제의 사회적 공론화를 위해 노력해왔고 2004년 한국 정당 역사상 처음으로 당내에 성소수자위원회를 건설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힘을 바탕으로 성소수자의 인간적 권리, 사회적 권리를 신장시키기 위해 부단히 실천해왔습니다.

우리 앞에 놓인 산적한 문제들로 인해 어려움도 있지만 성소수자를 비롯한 사회적 약자들이 사회의 당당한 일주체로 되어 자유롭고 평등하게 살아갈 수 있는 행복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매진하겠습니다. 돌밭도 갈아엎는 소처럼 거침없이 전진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09년 3월 24일

민주노동당 대표 강기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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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수자도 노동자다!!

2009.04.05 23:31 | Posted by 민주노동당 성소수자위원회 성소수자위원회


해와 (동성애자인권연대)


“동성애자들이 왜 거리로 나선 거예요?”

그들, 혹은 그녀들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물어온다. 우리는 잠시 어떻게 대답해야 좋을지 몰라서 머뭇거린다. 때로는 불편했고, 때로는 화도 났고, 항상 난감했던 상황들이다. 우리 중 누군가가 침착하게 설명하기 시작하면 이내 안정을 되찾곤 하지만, 어쩐지 초대받지 못한 손님으로 취급받는 듯한 기분이 든다.

성소수자의 상징인 무지개 깃발을 앞세우고 집회에 참가할 때마다 듣는 질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답하는 것이 그리 녹록치 않은 것이 바로 저 질문이다. 우리는 왜 거리로 나선 것일까? 성소수자는 폭압적인 정부에 반대하여 거리로 나서는 데에 뭔가 특별하고 색다른 이유가 필요한 것일까? 나는 동성애자들이 왜 거리로 나섰느냐고 물어오는 순진무구한 얼굴들을 마주해야 할 때마다 이런 고민들을 해야만 했다.

동성애자인권연대에서 4년 남짓 활동을 해오면서, 나는 수많은 차별들을 지켜봐왔다. 차별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청소년 친구, 게이임을 입증하려면 성관계 사진을 제출해야한다고 강요받았던 군인, 마땅한 일터라고는 유흥업소밖에 없어 여기저기 떠돌다 타국에서 살해당한 트랜스젠더 친구, HIV 감염을 이유로 해고당한 형님, 자본의 논리에 의해 치료제조차 복용하지 못하는 위기에 처했던 감염인 인권 활동가, 그리고 최근의 이런 저런 일들까지. 차별이 많이 사라졌다고들 하지만, 다 기억하지도 다 헤아리지도 못할 만큼 수많은 일들이 아직까지도 우리 주변을 둘러싸고 벌어진다.


우리는 이 모든 슬픔을 삼키면서 거리로 나섰다.

우리에겐 이 모든 차별의 근원이 우리가 힘없는 노동자이기 때문이라는 공통된 의식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서 성소수자라는 정체성을 빼버린대도, 우리는 이 사회에서 일해서 벌어먹고 사는 노동자다. 누군가는 문란하다며 손가락질할지도, 혹 누군가는 하나님의 뜻에 반하는 사탄이라 낙인찍을지도 모르겠지만, 우리는 우리의 존엄한 ‘존재’ 그대로 이 사회에서 어울려 살아가고 있다.

진보정당은 그래서 우리에게 매우 소중하다. 성소수자도 미국산 쇠고기를 먹고 싶지 않고, 한반도 대운하가 환경을 파괴하는 꼴을 목도하고 싶지 않다. 의료법이 개악되면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하게 되고, 청년 인턴제 덕분에 비정규직으로 밤낮없이 일하고도 고작 88만원밖에 받지 못하는 것은 성소수자에게도 예외인 사항이 아니다. 게다가 우리에겐 여기에 더해서 성소수자라는 이유로 천대받고 차별받아야하는 설움이 있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 앞에 던져진 이 모든 과제를 진보정당 안에서 풀어나갈 수 있다고 믿는다. 민주노동당에 성소수자위원회가 존재한다는 것은 우리에게 이런 의미다.

물론 민주노동당 내부에서도 성소수자에 대한 편견과 차별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성소수자 인권문제보다 훨씬 더 중요한 일들이 산적해 있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동성애자들이 왜 거리로 쏟아져 나오는지, 왜 진보정당과 함께하는지 납득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훨씬 많을지도 모르겠다. 그런 사람들에게 나는 반문하고 싶다. 당신은 왜 거리로 나오셨습니까? 왜 진보정당에 함께하십니까? 라고.

성소수자들은 소외되고 억압받는 모든 사람들의 편에 서서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힘을 모으기 위해 거리로 나서고 진보정당에서 활동한다. 당신들의 대답이 우리와 같다면 차별받는 우리들과 함께하는 것이 왜 중요한지 쉽게 납득이 될 것이다. 개인적으로 새롭게 출발하는 민주노동당 성소수자위원회에 거는 기대가 크다. 민주노동당을 통해서, 그리고 성소수자 위원회 통해서, 신자유주의와 이명박에 반대하는 우리 모두의 뜻이 하나로 모여서 향기롭게 빛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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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인보友- 성소수자와 진보정치, 친구가 되다

2009.04.05 23:23 | Posted by 민주노동당 성소수자위원회 성소수자위원회
이 글을 동성애자인권연대 웹진 ‘랑’ 2월호에
 기고한 내용을 재구성한 것입니다.

민주노동당 성소수자위원회 위원장

강 석 주

2004년 당 내외 많은 반대와 이견을 딛고 민주노동당 내 성소수자위원회라는 부문위원회가 탄생했다. 올해로 벌써 여섯 번째를 맞이하게 되었다. 위원회 초기를 생각해보면 진보정당 내에서도 곱지 않게 보는 시선들이 존재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당 내에서 6년 동안 끈질기게 잘 버텨왔다고 생각한다. 성소수자위원회는 당내 성소수자 당사자들의 투쟁을 통해 만들어 냈다는 성과도 있지만 무엇보다 진보정당 안에서 처음으로 성소수자 부문이 만들어졌다는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동안 성소수자 인권의제를 생산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을 해왔고 무엇보다 그것을 쟁취하는 데 상당히 헌신적인 활동을 해 왔다. 민주노동당 성소수자위원회는 여전히 성소수자운동과 진보정치를 연결하는 중요한 가교역할을 하고 있다.

성소수자 위원회 위원장이라는 직함은 처음부터 내게 상당한 부담이었다. 그동안 성소수자 운동과 에이즈 운동을 넘나들며 활동해온 내가 이렇게 무거운 책임을 맡게 될 줄은 감히 상상도 하지 못했다. 나는 그저 성소수자로서 사회를 변화시키는 운동에 참여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했고, 우리가 앞으로 해 나가야 하는 일들에 대한 기대감은 늘 충만했다. 운동을 하면서 힘들고 어려운 순간들도 있었지만 함께 같이 싸워준 친구들이 있었기에 늘 든든했다. 사실 내겐 지금도 정당 안에서 활동하는 것보다 정치와 상관없이 성소수자들과 거리에서 함께 보내는 시간이 더 즐겁다. 그러나 위원장이 되면서 그동안 가져왔던 즐거움과 기대감은 잠시 주춤할 듯하다. 민주노동당 성소수자위원회는 2008년 많은 성소수자 당원들이 집단탈당을 하는 뼈아픈 경험을 하였고 2008년 내내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새로운 모습으로 거듭나기 위해 노력해왔다. 해결해야 할 과제들은 여전히 많고 늘 자료에 묻혀 살고 있을 정도로 친구들과 술을 마시며 수다 떨 수 있는 시간조차 내는 것이 쉽지 않아졌다.

진보정당 안에서도 성소수자 문제에 둔감하거나 포비아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많다. 위원회 초기보다 덜 해졌지만 그렇다고 완벽하게 분위기가 바뀌었다고 볼 수는 없다. 변하지 않은 이들에게 성소수자 문제를 적극적으로 알려나가고, 성소수자 인권증진을 위해 함께 싸워가야 함을 설득시켜내는 것은 여전히 중요한 과제로 남아있다. 또한 정당 내 부문위원회로서 소수자들의 인권문제를 개선하기 위한 노력을 그 누구보다 성실히 만들어가야 할 것이다.

6기 성소수자위원회의 올해의 슬로건은 “레인보友”다. 여기에는‘진보정치가 성소수자의 친구’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의지가 담겨있다. 진보와 성소수자운동이 결합해야 한다는 당위를 넘어 성소수자들에게 가장 친근한 정치를 어떻게 설명하느냐가 올해 성소수자위원회의 주요한 과제이다. 정치는 소수의 의지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특히 요즘처럼 진보든, 보수든 정치에 대한 불신이 만연한 시대에 성소수자들의 삶이 진보정치와 연관이 있음을 설명하는 것은 그 어느 때보다 어려울 수 있다. 성소수자위원회는 단순한 머리에서 나온 정치가 아닌 성소수자 운동과 함께 만들어 가는 거리의 정치를 실현할 것이다. 성소수자 위원회를 보며 아직 부족하고 아쉬운 부분들도 많이 있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성소수자위원회에 대한 기대를 져 버리지 않았으면 한다. 아니, 이전보다 훨씬 높여 가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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